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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남조선인권대책협회, 세월호 대참사 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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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4-19 07:0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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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인권대책협회, 세월호 대참사 상보

 

편집국 

 

 

 남조선인권대책협회는 18일 "인두겁을 쓴 야만의 무리, 천하의 패륜아들인 박근혜역도와 괴뢰보수패당의 추악성과 비렬성, 도덕적저렬성을 다시금 만천하에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월호대참사의 상보를 발표한다고 하였다.

 

상보는 전국을 초상집으로 만든 세월호참사 후 정부의 구조노력 부재와 비인간적인 망동, 살인범죄의 진상을 가리워보려는 보수정권의 비열한 행위에 대하여 상세히 밝히며, 세월호참사는 우발적인 사고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백정들이 빚어낸 특대형살인참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민심의 심판에서 벗어나보려고 최후발악하는 박근혜와 공범집단을 그대로 두고서는 국민의 떼죽음을 부르는 제2, 제3의 《세월》호대참사가 그칠새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낸 희세의 살인악마들은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남조선인권대책협회 상보

 

 

남조선에서 세계를 경악시킨 《세월》호대참사가 발생한 때로부터 3년세월이 흘렀다.

 

이날을 맞으며 사고해역이 바라보이는 팽목항을 비롯한 남조선 각지에서는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도 안산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였다.

 

괴뢰역적패당에 대한 원한과 저주의 상징이 된 《세월》호가 력사의 진실을 고발하는 증견자가 되여 륙지에 인양된것을 계기로 유가족들과 각계층의 분노는 더욱 활화산처럼 폭발하고있다.

 

남조선사회 각계는 《박근혜가 구속되니 〈세월〉호가 올라왔다.》고 하면서 역도년을 감옥에 처넣은 그 힘으로 세기적대참사의 진상을 반드시 밝혀내고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하여야 한다며 다시금 투쟁의 초불을 들고있다.

 

지금 괴뢰보수패당은 민심의 격앙된 분노에 당황망조하여 《〈세월〉호인양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박근혜와 〈세월〉호를 련결하지 말아야 한다.》고 횡설수설하면서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 한사코 가로막아보려고 발광하고있다.

 

이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대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용납할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다.

 

배는 침몰해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 법이다.

 

남조선인권대책협회는 《세월》호대참사 3년을 맞으며 인두겁을 쓴 야만의 무리, 천하의 패륜아들인 박근혜역도와 괴뢰보수패당의 추악성과 비렬성, 도덕적저렬성을 다시금 만천하에 고발하기 위해 이 상보를 발표한다.

 

인간백정들이 빚어낸 특대형살인참극

 

인간의 탈을 쓰고 온갖 악덕만을 일삼는 희세의 인간백정, 천하의 살인귀무리가 다름아닌 박근혜역도와 괴뢰보수패당이다.

《세월》호대참사는 그 진면모를 낱낱이 보여주는 산 고발장이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남조선에서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하여 470여명의 승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려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세월》호가 침몰된 곳은 바다기슭으로부터 3㎞ 떨어진 수역이였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해버린 《세월》호는 1시간이 지나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뒤집힌채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는 6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은 172명뿐이고 나머지 300여명은 배와 함께 바다밑에 수장되여버렸다.

 

인류사에는 수많은 참사들이 기록되여있지만 《세월》호사건과 같이 만사람을 아연실색케 한 참변은 일찌기 없었다.

 

사고가 망망대해에서 일어난것도 아니며 여러 시간을 경과한것으로 하여 얼마든지 생명들을 구원할수 있었지만 애처로운 울부짖음만 남기고 통채로 바다속에 빠져버린 《세월》호의 운명을 두고 오늘도 사람들은 놀라움과 의혹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과연 사고는 우발적인것이였으며 생때같은 목숨을 수백명이나 졸지에 앗아간 그 가슴저린 비극은 피할수 없는것이였는가.

 

원래 《세월》호로 말하면 업체가 외국에서 근 20년이나 쓰다가 버린 파철이나 다름없는것을 헐값으로 사들여온 중고품이였다.

 

여기에 제대로 수리정비도 하지 않고 리윤추구에만 몰두하면서 객실과 화물칸을 안전기준을 훨씬 초과하여 무리하게 늘임으로써 배의 안전성과 균형성이 심히 파괴되였다.

 

그러나 북침전쟁열에 들뜬 괴뢰보수당국은 제주도에 새로운 해군기지건설놀음을 벌려놓고 이곳으로 향하는 모든 배들에 공사용자재를 싣도록 강박하였으며 그 덧짐이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를 《세월》호에도 무겁게 실리게 되였다.

 

돈벌이에 피눈이 된 업주들은 여기에 정량의 3배를 초과하는 승객들과 화물들을 싣고 대신 배의 무게중심을 바로잡아주는 평형수를 기준량의 4분의 1밖에 채우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이라는 작자들 또한 1년 혹은 6개월 계약을 맺고 림시고용된자들로서 항로조차 변변히 파악할줄 모르는 무자격자들이였다고 한다.

 

괴뢰패당은 이렇듯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있는 《세월》호를 안전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출항을 허용해주고 인천항에서 제주도로 떠나보냈다.

 

결국 층층이 쌓아올린 무거운 짐을 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여윈 노새처럼 기우뚱거리며 바다물을 헤가르던 《세월》호는 그 중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통채로 뒤집혀지게 되였다.

 

참사가 일어난 후 괴뢰패당이 놀아댄 추태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운것이였으며 당국의 대응이란 엉망진창이였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사고가 발생하자 갑판우에 있던 학생들까지 모두 선실에 가두어놓고는 《가만히 있으라.》,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나발을 불어대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상태에서 선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구조선이 오면 선참으로 옮겨탈수 있는 곳으로 빠져나갔다.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여 구조활동을 벌려야 하는것이 해양경찰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초기구조를 맡은 목포해양경찰은 21척의 함정을 가지고있었다고 하지만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겨우 4척밖에 가동할수 없는 형편이였으며 그중 한척이 사고현장에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승객들을 구원한것이 아니라 선장과 선원들만 처싣고 달아뺐다.

 

당시 재난관리의 총책이라고 하는 괴뢰안전행정부 장관이라는자는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해양수산부 소관》이라고 하면서 꼬리를 사렸으며 청와대 안보실 실장이란자는 저들은 《재난대책사령탑》이 아니라며 쑥 빠져나갔다.

 

사고와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되였다는 119구조대는 현장에 오는 괴뢰우두머리들을 맞아들이느라 도로까지 차단하여 구조작업을 오히려 방해하였는가 하면 구조인원들을 태우고가던 직승기는 전라남도청의 고위인물들을 태우라는 지시를 받고 항로를 바꾸어 딴데로 날아가버렸다.

 

보다 못해 민간인잠수부들이 승객들을 구원하겠다고 나섰지만 괴뢰해양경찰은 저들과 뒤돈을 대고 계약한 민간구조업체 《언딘》소속 인원들만 배에 접근시키고 그외 인원들은 차단해버렸다.

 

《세월》호가 바라보이는 팽목항으로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치한치 바다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배를 보며 안타까이 발을 동동 구르고 《이것이 무슨 나라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부》라며 피의 곡성을 터칠 때 명색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박근혜는 더러운 몸뚱아리를 치닥질하며 있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분격할 일인가.

 

박근혜가 당시 7시간행적에 대해 《정상적인 업무》니 뭐니 하고 뻗쳐대면서 아닌보살하고있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원래 인정머리라고는 꼬물만큼도 없고 매몰스럽기 그지없는 박근혜는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구조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을뿐아니라 고의적으로 태공하였다.

 

《세월》호가 침몰되였다는 보고를 받고도 박근혜는 이미전에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미용사를 청와대에 불러들이고 태연자약하게 골방에 들어앉아 머리치장을 하였으며 극상 내린 지시라는것이 상황파악을 할수 있게 침몰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올려보내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구조활동을 해야 할 해양경찰이 어처구니없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침몰하는 《세월》호를 찍으며 돌아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하는지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장, 차관이 방문했을 때 브리핑과 의전을 어떻게 할지가 재난대응의 초점이다. 참사당일 오전 9시 15분부터 10시 44분까지 5차례 진행된 해경과 청와대통화내용만 보아도 그렇다. 그때 청와대가 해경에 거듭 요구한것이 〈세월〉호참사영상이였다. 대통령, 고위공직자에게 가져다줄 자료부터 요구한것이다.》라고 남조선언론들이 일제히 비난한것은 우연치 않다.

 

애어린 학생들이 선실안에 갇혀 손톱이 빠지도록 창문을 긁어대고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며 흡혈귀 박근혜가 어떤 살기띤 눈초리를 던졌겠는가 하는것은 묻지 않아도 명약관화하게 알수 있는 일이다.

 

이후 인명피해가 심각하다는 청와대 《환관》들의 보고를 받고 급기야 전용미용사를 다시 불러 일부러 머리를 흐트러지게 만든 상태에서 허겁지겁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난 박근혜년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도 찾기 힘든가.》라는 왕청같은 질문을 하여 《대통령이 초보적인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고있다.》는 비난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명색이 집권자라는자가 이 꼴이니 그 수하졸개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300여명의 승객들이 배와 함께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된 끔찍한 참변은 삽시에 온 남조선땅을 초상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괴뢰패당은 피해자가족들의 눈물과 곡성이 하늘땅에 차넘치고있을 때 실종자명단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댔는가 하면 식당에 몰려가 술판, 먹자판을 벌려놓고 낄낄거리면서 흥에 겨워 저가락으로 식탁까지 두들겨대며 《〈세월〉호자작시》까지 읊어대는 추태를 부리였다.

 

뒤늦게 구조현장에 내려간 괴뢰국무총리는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고급호텔의 온돌방에 자빠져 태평스레 코를 골며 잠을 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는가 하면 괴뢰교육부 장관이라는자는 위로는커녕 옆에서 울고불고하건, 기절하건 상관없이 팔걸이의자에 앉아 즉석국수를 게걸스럽게 처먹었으며 그것이 여론화되자 닭알을 넣어 먹은것도 아니라느니, 팔걸이의자가 문제라느니 하고 변명하면서 언론에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는 추태를 부렸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고 백성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이런 살인악마들에게 미련을 품고 애어린 생명들과 피를 나눈 혈육들이 구원되기를 바랐으니 그 결말이 참혹하게 끝날수밖에 없은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다.

 

하기에 남조선언론들과 사회 각계는 《〈가만있으라. 〉는 어처구니없는 안내방송을 믿고있다가 고스란히 죽어갔다.》, 《박근혜에 대한 미련이 이런 참극을 불렀다. 억장지성이 무너질 일이다.》라며 괴뢰보수당국의 살인만행을 격분에 넘쳐 규탄하였다.

 

이렇듯 《세월》호대참사는 우발적인 사고나 자연재해가 아니였다.

 

박근혜역도년을 비롯한 괴뢰보수패당의 반인민적악정이 초래한 인재였으며 희세의 인간백정들이 빚어낸 특대형살인참극이였다.

 

살인범죄의 진상을 가리워보려는 비렬한 망동

 

살인마는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 하기에 어떻게 하나 범죄행위의 진상을 가리워보려고 발악적으로 날뛰는것은 살인자의 본색이다.

 

《세월》호대참사가 일어난 그날부터 저들의 범죄행위를 가리우고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온갖 추악한 행위를 감행한 박근혜년과 괴뢰보수패당의 책동은 천하무도하기 이를데 없는것이였다.

 

박근혜와 수하졸개들은 저들이 저지른 인면수심의 패륜패덕행위에로 향한 비난여론이 류포되지 못하도록 각방으로 훼방을 놓고 폭압의 칼날을 휘둘러댔다.

 

《KBS》방송 전 보도국장이 청와대의 지침을 잘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박근혜의 지령에 따라 목이 달아났으며 많은 언론사들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까지 강요당하였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를 비롯한 《환관》무리들을 내세워 《세월》호참사당일 청와대와 주고받은 교신기록이 있는 해양경찰의 콤퓨터봉사기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광주지검에 압력을 가한것도 이 시기에 있은 일이다.

 

한편 괴뢰패당은 어용언론들을 내세워 《사고현장방문》이니, 《구조활동독려》니, 《실종자가족위로》니 하며 박근혜를 치켜세웠는가 하면 한 로파를 피해자가족으로 둔갑시키고 분향소에 온 박근혜가 그를 《위로》하는 모습을 찍어 언론에 광고하는 조문연출사건까지 조작하였다.

 

한편 역도년은 대학살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 한마디 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책임을 전부 아래졸개들에게 넘겨씌웠다.

 

이에 따라 괴뢰보수패당은 대형참극이 돈에 환장한 려객선의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때문에 일어난것처럼 여론을 내돌리면서 그의 도주와 수색놀음을 연출하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시체만 찾아놓고는 모든 책임을 죽은자에게 떠넘겨버리였으며 선장을 비롯한 몇몇 송사리들을 재판에 걸어 처벌하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이러한 오그랑수로도 민심의 항변을 눅잦힐수 없게 되자 박근혜년은 괴뢰국무총리에게 사고의 책임을 넘겨씌워 사퇴놀음을 벌리도록 하였으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다그어대며 괴뢰해양경찰을 해체해버려 해상범죄가 더욱 늘어나는 악결과를 초래하게 하였다.

 

그야말로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는 격이였다.

 

이렇듯 온 남조선땅을 초상집신세로 만들어놓은 박근혜역도년은 참사가 빚어진 때로부터 며칠도 안되여 미국상전을 끌어들여놓고는 분위기에 맞지 않게 요염하고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아양을 떨며 돌아쳐 다시한번 세상을 경악케 하였다.

 

박근혜와 그 패당의 추태가 얼마나 보기 민망스러웠으면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져널》, 영국의 《가디언》을 비롯한 서방언론들까지 《철면피의 극치》, 《서방에서라면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자리를 보존하기 어려울것이다.》고 비난을 퍼부었겠는가.

 

박근혜와 괴뢰보수패당은 유가족들과 남조선 각계가 한결같이 요구해나선 《세월》호특별법제정도 악랄하게 가로막았다.

 

박근혜년은 《세월》호대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세월》호특별법제정에 대해 약속하는 《대국민담화》라는것을 발표하고서도 《실무적인 해명도 중요하지만 정무적판단이 필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남조선 각계의 특별법제정요구를 한사코 외면해나섰다.

 

야당들과 유가족들이 《세월》호대참사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밝혀내자면 유가족이 포함된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며 특별검사임명권도 야당과 유가족측에 주는 특별법을 제정하여야 한다고 요구하였지만 박근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들어가는 특별법이 채택되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오금을 박았으며 역도년의 사당이였던 《새누리당》패거리들 역시 《특별검사임명과 시행에 관한 법률》에 수사권과 기소권은 사법부에만 줄수 있고 피해자측이 특별검사를 임명하지 못하게 되여있다고 하면서 특별법제정에 훼방을 놓았다.

 

결국 대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나서야 침몰사건의 관련자처벌은 고사하고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할수 없는 유명무실한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월》호대참사의 진상을 덮어버리기 위한 괴뢰패당의 책동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조직된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사사건건 가로막은데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괴뢰보수패당은 특별조사위원회설립준비단에 해양수산부소속 공무원들을 박아넣고 이들을 통해 설립준비단의 활동을 수시로 감시하면서 그 정형을 보고하도록 하였는가 하면 특별조사위원회조직구성에 대해서는 인원이 너무 많다느니, 과도하게 예산을 정하였다느니 뭐니 하고 시비질하면서 승인을 질질 끌다 못해 《세금도적집단》, 《탐욕의 결정체》니 하는 악담까지 줴쳐댔다.

 

《세월》호대참사 1년을 계기로 유가족들과 각계층의 《세월》호대참사진상규명투쟁이 고조되자 마지못해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승인한 박근혜년과 보수패당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유명무실한것으로 만들기 위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이라는것을 조작하여 특별조사위원회 요직들에 저들이 파견한 공무원들을 앉히고 유가족들이 임명한 조사위원장과 위원들의 역할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조사대상도 《정부》가 정한것으로 한정시켰다.

 

괴뢰패당은 특별조사위원회가 자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 《예산만 랑비하였다.》고 하면서 2년도 못되여 해산해버렸으며 이에 대해 남조선 각계와 야당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조사대상에서 청와대를 제외하는 대가로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을 연장해주겠다는 흥정안을 내놓으면서 특대형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심을 심히 우롱하였다.

 

더욱 경악을 금할수 없게 하는것은 괴뢰패당이 《박사모》, 《어버이련합》패거리들을 비롯한 우익보수깡패들을 내몰아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희생자가족들을 《시체장사군》으로 모독하는 집회까지 벌리도록 부추겨댄것이다.

 

박근혜패당의 사촉에 따라 극우보수떨거지들과 《탈북자》인간쓰레기들은 청와대의 자금줄인 《전경련》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을 받아먹고 거리로 몰려나와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 《제2의 광주폭동》, 《선동군》 등으로 유가족들을 모독하였는가 하면 단식투쟁을 벌리는 시위자들앞에서 먹자판까지 벌려놓고 《제대로 단식했으면 이미 죽었어야 하는데 왜 살아있는가.》, 《보상금을 타먹기 위한 연극》이라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담질까지 해댔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패당은 괴뢰국회와 공공장소들에서 《〈세월〉호사고는 한꺼번에 300여명이 죽어 많아보이지만 년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그리 많은것도 아니다.》, 《꼭 불행인것만은 아니며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것이다.》, 《〈세월〉호문제에 진저리가 난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며 남조선사회 각계의 진상규명요구마저 바다속에 빠져든 《세월》호처럼 수장해버리려고 발광하였다.

 

이것은 《세월》호희생자들에게 두벌죽음을 강요하고 그 유가족들의 아픈 가슴에 대못질을 하는 극악한 반인륜적악행이였으며 패륜패덕의 극치였다.

 

박근혜역도년과 괴뢰보수패당의 비렬한 망동으로 《세월》호사건의 진상규명은 한치도 전진할수 없었으며 죽은자만 있고 죽인자는 없으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기막힌 현실이 지속되여 유가족들의 단장의 아픔을 더해주고 분화구를 찾는 용암마냥 끓어번지는 남조선민심의 분노를 더욱 격앙시켰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에서 벗어나보려는 최후발악

 

력사의 심판은 엄정하며 죄는 지은데로 가기마련이다.

 

백성의 피눈물로 축배잔을 들이키며 희희락락하던 박근혜는 마침내 제년이 산처럼 쌓고쌓아온 만악의 무게에 스스로 눌리워 운명의 칠성판에 나자빠지게 되였다.

 

그러나 박근혜역도년은 남조선민심의 버림을 받고 청와대에서 쫓겨나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처박힌 신세가 된 오늘에 와서까지 《세월》호참사를 비롯한 모든 범죄행위를 한사코 부인하면서 상통을 쳐들고 살구멍을 찾아보려고 발악하고있다.

 

박근혜역도의 파렴치한 행위는 《세월》호참사당일 제년의 7시간행적에 대해 별의별 요설을 다 늘어놓으면서 어떻게 하나 세월의 락엽속에 덮어버리려고 발광하고있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되고있다.

 

대형참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남조선 각계층의 투쟁이 활발히 벌어지는 속에 박근혜의 《의혹의 7시간》은 역도년의 목줄을 항시적으로 조여매군 하였으며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그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당황망조한 역도년과 보수패당은 《세월》호대참사를 《정치적쟁점》으로 몰아가는것은 《위헌적발상》이라고 걸고들며 조사를 거부해나섰으며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해나섰다.

 

그 추악성에 대해 남조선잡지 《한겨레 21》은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박근혜와 청와대에 있어서 〈세월〉호참사는 무엇이였을가. 그 속내를 들여다볼수 있는 기록이 있다. 2014년 6월 12일부터 2015년 1월 10일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한의 업무수첩이다. 이 수첩을 보면 당시 청와대의 〈세월〉호참사대응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거악〉으로 만드는데서 시작한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린다. 참사희생자유가족의 목소리도 묻었다. 특히 진실규명의 칼날이 청와대와 〈정부〉로 향할것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립법, 감사, 수사를 통제관리한다. 참사당일 7시간동안 박근혜의 행적을 철저히 비밀에 붙인것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박근혜역도가 7시간행적을 영원히 흑막속에 묻어버리기 위해 얼마나 발악하고있는가 하는것은 특대형정치추문사건으로 력사의 심판대에 오른 시각에조차 법률대리인단을 내세워 모순투성이의 답변서를 제출하는 놀음을 벌려놓은것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역도년은 답변서라는데서 참사가 발생한 당시 청와대 안보실 실장이였던 김장수와 7차에 걸쳐 통화를 하였다고 하였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지고들자 서면보고라고 둘러치고는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못하였다.

 

그리고 당일 오전에 청와대 비서관이 직접 관저로 와서 《세월》호상황을 대면보고하였다고 밝혀놓고서는 그날 관저에 출입한 사람은 간호장교와 미용사외에 아무도 없다고 앞뒤가 맞지 않게 변명을 해댔다.

 

심지어 7시간이 지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든가.》고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한데 대해 《세월》호안에 갇혀있더라도 특공대를 투입했다면 발견하고 구조할수 있지 않느냐는 의미였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여 만사람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박근혜역도가 제출한 답변서의 내용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였으면 괴뢰헌법재판소가 보고서를 다시 제출할것을 요구하고 언론들도 《박근혜는 〈세월〉호참사당일의 7시간을 이제 더이상 숨겨서는 안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은 용납할수 없다.》고 단죄하였겠는가.

 

가관은 역도년이 물에 빠진자 지푸래기라도 잡는 격으로 생뚱같이 참사당일 《정부》종합청사에서의 《차량돌진》이니, 《대통령에 대한 테로시도》니 하며 그것때문에 사고현장에 뒤늦게 도착한것처럼 동영상을 제출하는 놀음까지 벌린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차량이 청사내에 주차하고있던 어느 한 방송국의 차량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더 큰 웃음거리가 되고말았다.

 

지금 남조선사회 각계는 《박근혜에게 있어서 〈세월〉호 7시간은 족쇄》라고 하면서 진실을 토설하지 않으면 그 족쇄는 영원히 역도년을 따라다니며 숨통을 조일것이라고 비난을 퍼붓고있다.

 

박근혜와 괴뢰보수패당은 《세월》호인양도 기를 쓰고 가로막았다.

 

《세월》호의 선체인양은 참사의 정확한 진상규명과 실종자수습을 위한 최선의 방도이다.

 

특히 참사당시 시신들이 나올 때마다 일루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자기 자식이 아니기를 바라던 피해자가족들이 나중에는 절망상태에 빠져 오히려 시신을 먼저 찾은 가족들을 부러워하는 눈물겨운 참상을 목격하면서 남조선사회 각계에서는 《세월》호선체인양을 요구하는 기운이 한껏 높아갔다.

 

그러나 괴뢰보수패당은 《선체인양과정에 추가적인 희생자가 발생할수 있다.》, 《〈세월〉호를 인양하자면 비용이 많이 들기때문에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시신을 인양하면 〈정부〉책임론이 커진다.》고 하면서 반대해나섰다.

 

이에 대한 야당들과 사회 각계의 항의가 비발치자 박근혜와 괴뢰보수패당은 2015년 1월부터 《세월》호인양을 위한 현장조사에 착수한다느니,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인양을 적극 검토하고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민심의 반발을 눅잦히려 하였다.

그러나 실지로는 인양업체를 선정할 때부터 자금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질질 끌어왔으며 인양업체를 선정한 후에도 날씨와 바다물흐름 등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면서 덧없이 시간을 흘러보냈다.

 

그렇듯 사연많은 《세월》호가 박근혜가 탄핵된 후 즉시 인양조치가 취해지고 처참한 모습으로 떠올랐으니 남조선인민들과 유가족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겠는가.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 언론들, 각계층 인민들은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온다.》, 《온갖 거짓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우고 입을 막아도 진실은 드러난다.》고 하면서 사망자수습과 함께 침몰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시금 요구해나섰다.

 

그러나 괴뢰보수패당은 《대선을 앞두고 〈세월〉호라는 태풍을 만났다.》고 하면서 《세월》호인양이 괴뢰대통령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해보려고 발광하고있다.

 

《세월》호인양작업이 한창이던 때에 목포신항을 찾은 《바른정당》의 《대통령》선거후보인 류승민이라는자가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느니, 《보수와 진보로 판가름할 리념문제가 아니》라느니 하고 나발을 불어댄것도, 괴뢰당국것들이 사고원인조사에 6개월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떠들고있는것도 이러한 흉심의 발로이다.

 

한편 괴뢰보수패당은 인양된 《세월》호에 대한 현장조사에서 《세월》호사고희생자, 실종자, 생존자가족들의 대책위원회를 배제하고 괴뢰해양수산부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등 진상조사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있다.

 

이로부터 상업적판단이니 뭐니 하며 배를 륙지로 끌어올리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지체시켜 3년세월 찾지 못한 자식들을 심장속에 품고사는 가족들이 《선체조사위원회와 해양수산부를 인정 못하겠다.》며 항의를 들이대고 롱성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비단 이뿐이 아니다.

 

지금 괴뢰보수패당은 마치 《세월》호선체를 인양한것이 저들의 공적인듯이 날조된 여론을 내돌리면서 이와 관련한 백서를 발표할것이라고 떠들면서도 사고원인에 관한 내용은 명시하지 않기로 하여 《반쪽짜리 백서는 발표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비난이 물끓듯 하게 하고있다.

 

한편 괴뢰검찰은 박근혜의 수족노릇을 하며 특대형정치추문사건에 적극 개입하고 《세월》호진상규명을 가로막기 위해 앞장에서 날뛴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에 대한 구속령장을 청구하면서 특검이 제출한 자료를 대폭 축소하였으며 괴뢰법원은 그 령장을 기각시켰다.

 

그 축소한 내용에 《세월》호구조에 실패한 해경을 수사하던 광주지검에 압력을 가한 사실도 들어있다고 하니 역도년에게 붙어 온갖 전횡과 악정을 일삼던 패당들이 그대로 남아 력사의 진실을 외곡하고 민심의 심판에서 벗어나보려고 광기를 부리며 최후발악하고있다는것을 현실은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박근혜역도년은 구속되였지만 남조선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것은 없으며 인민들이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는 자주의 새 정치, 민주의 새 사회, 존엄있는 새 생활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만고역적 박근혜년과 그 공범집단인 보수패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인민들의 떼죽음을 부르는 제2, 제3의 《세월》호대참사가 그칠새 없을것이다.

 

남조선인민들은 정의의 초불, 단결의 위력으로 박근혜역도년을 력사의 무덤에 처박은 그 열정, 그 용기를 더욱 세차게 분출시켜 역도년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인민의 원쑤, 력사의 반동들인 보수패당을 쓸어버리며 자신들의 꿈과 리상이 성취되는 참된 새세상, 광활한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야 할것이다.

 

박근혜역도년과 괴뢰보수패당이 아무리 발악하여도 《세월》호대참사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으며 특대형참극을 빚어낸 희세의 살인악마들은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주체106(2017)년 4월 17일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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