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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식

북녘 | 장편소설《새 나라》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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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4-16 13:5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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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연재하며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편집국은 북 바로알기 운동을 위해 북 문예소설 작품인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새 나라》를 소개합니다. 《새 나라》는 윤경찬 저자이며 2013년 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1945년 해방된 북 조국 땅에 어떻게 새나라가 건설되었는가를 문학적 감동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53

 

 

비는 한대중으로 퍼부었다. 게다가 세찬 바람까지 못되게 불어치는통에 공사장은 뽀얀 비발속에 잠겨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작업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질통을 지고 달리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달리고 경사진 제방으로 오르다가 미끄러지면 기여서라도 오르군 했다. 온몸이 비에 젖고 감탕에 매닥질되였지만 일손을 놓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운상은 건국로력대원들과 함께 남교제방을 보강하는 작업장에서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장마가 시작되자 운상의 신경은 고도로 긴장되였다. 그는 매일매일을 시험관앞에 선 학생의 심정으로 살고있었다. 자기가 설계한 제방이 엄혹한 자연의 세례를 끄덕없이 막아낼것인가? 제일 미타한 곳이 남교제방이였다. 수문을 시공하면서 10메터높이로 동시에 올려쌓은 제방은 새 통수로를 꺾어돌리는 곳에 위치하고있기때문에 물의 압력을 제일 많이 받는 곳이였다. 그래서 흙가마니를 제방의 안쪽에 올려쌓기로 하고 아침부터 그 역사질을 하고있는것이였다.

점심도 건느고 일손을 다그친 덕에 작업은 오후 두시가 남짓해서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건국로력대원들은 녹초가 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밥을 먹자 해도 가설막까지 걸어갈 힘이 없었다.

그때 마침 수영이가 끓인 물통을 들고 작업장에 찾아왔다.

처녀는 여기저기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김이 물물 피여오르는 따끈한 물을 권했다.

《마시세요. 몸이 좀 녹을거예요.》

그러나 사람들은 비속을 뚫고 자기들을 찾아온 처녀의사를 보는 순간 벌써 온몸이 훈훈해지는것을 느꼈다. 처녀의사가 가지고온것은 한고뿌의 더운물이 아니라 자기들은 찬비속에서 탈이라도 만나면 안되는 귀한 존재라는것을 알게 해주는 뜨거운 마음이였던것이다.

그 순간에 수영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선녀같은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껏 자기 안해를 포함하여 녀성일반을 천시해왔고 따라서 녀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정리해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 순간에만은 가슴이 뭉클해져 수영에게 제가끔 인사를 했다.

《의사선생, 고맙수다.》

운상은 남들처럼 물고뿌를 받아들고 타는듯 한 눈길로 처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진정으로 온 세상이 다 듣도록 고맙다는 말을 처녀에게 하고싶었다.

(오늘은 내 말하리라, 설사 거절당한다 해도 사랑한다고 말하리라!)

운상은 처녀가 현장을 떠날 때 무작정 따라갔다.

사람들이 자기네 두사람을 지켜본다는것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수영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이 자리에 나와주오. 할 말이 있소.》

그리고는 처녀가 뭐라 항변할새없이 돌아섰다. 자기의 결심은 절대적인것이기때문에 반대의사를 표시할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몇걸음만에 다시 멈춰서서 오금을 박았다.

《무조건 나와야 하오. 기다리겠소.》

그때의 운상에게서는 예전의 례절있고 정중한 지식인청년이 아니라 사랑에 열렬한 사나이의 기상만 보일뿐이였다.

건국로력대원들이 돌아간 뒤에도 운상은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방을 보강하긴 했지만 강물이 불어날수록 마음의 불안도 커갔던것이다. 그는 수문권양장을 짓느라 대충 웃설미를 올려놓은 곳에 들어가 비를 그으면서 한편으로는 강물이 더 불어나지 않고 얌전해지기를 빌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처녀가 나타나기를 빌었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되여 날은 어두워지고있었다. 비는 여전히 그칠줄 몰랐다. 그렇게 빌었건만 강물은 계속 불어오르고 그때까지 수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처녀가 자기의 언행에 모욕을 느끼고 아예 나타나지 않으려는가.

 

 

그는 처녀가 기다려지면서도 한켠으로는 은근히 두려웠다.

(정작 나타나면 말을 어떻게 할가? 사랑한다고?… 자신없어.)

자신없을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언제 사랑이라는걸 맛보았던가. 지나온 생활의 갈피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것이 사랑이였다고 규정할만 한 장면은 끼여있지 앉았다.

그가 리해하고있던 사랑의 세계는 환희와 행복의 세계였다. 그런데 식민지민족의 지식인청년에게는 민족의 운명, 자기 개인의 운명에 대한 불안과 울분은 차고넘쳤어도 환희와 행복은 깃들 자리가 없었다. 해방과 함께 잠자던 인생의 환희가 눈을 뜨긴 했지만 역시 사랑의 세계는 감당하기 어려울만치 벅차고 신비한 세계였다.

그래서 운상은 지금 처녀를 만나자고 큰소리치긴 했지만 자기의 진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그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권양장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비발속에서 제방을 오락가락하며 혹시 미타한 부분이 없는가를 다시 살펴보았다. 사품치는 흙탕물은 제방의 중간쯤에서 철썩거리며 새로 쌓은 제방을 물어뜯군 했다. 운상은 물결의 못된 장난질을 원망스레 내려다보며 수문가까이로 오다가 딱 굳어졌다. 제방반대켠으로 물이 줄줄 새나오고있었던것이다. 그는 황급히 제방아래로 내려갔다.

물은 수문콩크리트를 친 부분과 제방뚝이 련결되는 곳에서 새나오고있었다. 물이 새는것을 그대로 방임해둔다면 틈새가 점점 넓어져 뚝이 허물어지는것은 물론이고 지탱점을 잃은 수문도 넘어질것이다.

운상은 더 생각할새없이 제방우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흙가마니를 끌어다 안쪽에 보강하기 시작했다. 뚝이 허물어지면 자기가 이 땅에 처음으로 만들어세운 수문이 파괴된다. 그렇게 되면…

날은 이미 어두워진데다 남교제방은 기본공사장과 좀 떨어져있는 곳이여서 주변에는 소리쳐불러올 사람도 없었다.

그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젖먹던 힘까지 총동원하여 질질 끌어다 쌓기를 그 몇번…

이제는 더 쌓을 흙가마니도 없고 남은 기력도 없었다.

흙가마니가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하나만 더…

무엇이 자기를 그런 행동에로 떠밀었는지 운상은 알수 없었다.

그는 허리까지 물속에 잠그고 발더듬으로 지탱점을 찾은 다음 물이 새나가는 틈새기에 자기의 가슴을 가져다댔다. 두팔을 넓게 벌린 자세로 온몸을 제방에 밀착시키니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자신이 장하게 느껴지는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의로운 행동을 하고난 뒤에 찾아오는 그런 감정은 일생에 몇번밖에 맛볼수 없다. 운상은 이 시각 제방우에 엎디여 그 감정을 흐뭇하게 맛보고있었다.

한때는 건축가로서 개인의 명예만을 생각하던 자기가 아니였던가. 그래서 조선의 건축가로 자처하면서도 보통강의 탁류를 청소해버리는 일에서 자신의 몫을 찾을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보통강개수공사와 더불어 인민의 건축가로서 삶의 자세를 다시 세워주시였으니 이제부터는 장군님께서 바로잡아주신 그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먼 인생길을 곧바로 걸어갈 자신이 있었다. 그때문에 운상은 스스로 자신이 장해보이고 수영이앞에, 나라앞에 그리고 장군님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것으로 하여 마음이 편한것이였다.

사품치는 강물에 떠내려오던 굵직한 통나무가 제방을 직각으로 때리고 빠른 물살을 따라 빙그르르 돌면서 허리어방을 치는 순간에 운상은 자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고있는가를 깨달았다. 공포의 전률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줄달음쳤다. 그러나 그는 제방에서 몸을 뗄수 없었다.

수영이가 제방에 나타난것은 그무렵이였다. 저녁때까지도 처녀는 여기로 나올 결심을 못 내리고있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오고 비도 멎지 않으니 수영의 마음은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자기가 안나가면 그 사람이 차디찬 비속에서 밤새 기다릴것만 같았다. 그는 치료실안에서 오락가락하며 자기를 설복하느라 애썼다.

(넌 지금 자신을 속이고있어. 넌 그 사람을 사랑하고있으면서도 코대를 높이는거야. 네가 코대를 높일게 뭐 있어?… 네가 나가지 않으면 그 사람이 밤새 기다릴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 아까 그 사람의 눈빛을 봤지? 호랑이눈빛같은… 요전날 김정숙녀사님께서도 사랑은 성실하고 열렬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그러니 어서 나가봐라.)

결국 수영은 콩당거리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제방으로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제방우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자기의 예측이 빗나간것으로 해서 수영은 실망을 안고 돌아섰다.

그때 강물우에서(틀림없이 물우에서였다.) 자기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영선생이요? 나 운상이요.》

수영은 소리난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와 어깨만 내놓고 제방에 엎디여있는 운상을 어렴풋이 알아보았다. 알아보았다기보다 그렇게 느꼈다.

《거기서 뭘 하세요? 무슨 일이예요?》

《빨리 가서 흙가마니를 가져오오. 물이 새고있소.》

사태를 짐작한 수영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정신있어요? 빨리 나오세요!》

《젠장, 물이 샌다지 않소? 제방이 위험하단 말이요!》

제힘으로는 운상을 끌어낼수 없었다.

히긴 누가 와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든 제방이 먼저이고 자기 목숨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수영이도 물속에 들어섰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뛰여든것이다. 그 순간에는 물이 무섭지도 않았다.

무서운것은 운상의 신상에 닥치는 위험이였다.

운상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가오! 빨리 나가지 못해!》

그래도 수영은 물살을 헤저으며 운상의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힘께 있자요.》

그 말이 담고있는 의미가 하도 커서인지, 가슴을 치는 세찬 물살때문인지 숨이 가빠났다.

그러나 운상은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사납게 소리쳤다.

《안돼! 흙가마니부터 가져오라는데, 빨리!》

처녀는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정황에서 사람도 제방도 구원하자면 운상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것을 리성으로 깨달았던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요.》

수영은 울먹이는 소리로 한마디 남기고는 어둠속으로 내달렸다.

우산을 언제 집어던졌는지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자기가 울고있다는것도 몰랐다. 그렇게 달리면서 처녀는 조금전에 자기가 했던 말을 상기했다.

(함께 있고싶었어, 물속이든 불속이든… 그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가?)

운상은 알아들었다.

그런 순간에는 깊숙이 묻어두었던 진정도 쉽게 알아듣는법이다. 가식은 한가할 때에만 머리를 내밀군 한다.

(고맙소, 수영이, 함께 있고싶었소, 언제나… 동문 내가 소리친것을 용서하겠지? 젠장, 하필 이런 정황에서…)

수영이가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왔을 때 운상은 의식을 잃고있었다.

지체없이 그를 현장치료실로 날라갔다. 밝은 불빛아래 옷을 벗기고 보니 다리와 어깨에서 심한 상처가 드러났다.

그동안에 피는 얼마나 흘렸을가… 떨리는 손으로 상처에 소독솜을 가져다대자 운상은 해쑥해진 얼굴을 찡그리며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냈다. 수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정신이 들어요?》

운상은 힘들게 눈을 떴다. 처음에 보이는것이 수영의 얼굴이였다.

운상은 처녀에게 뭔가 말하고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수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싶어하는지 알았다.

《걱정마세요, 제방은 무사해요.》

운상은 다시 눈을 감았다.

환자상태를 봐선 병원에 후송해야 했지만 수영은 여기서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홍수의 위험이 가셔지지 않았는데 자기가 목숨을 내대고 지킨 그 귀중한 창조물을 내팽개치고 병원에 마음편히 누워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처녀는 운상의 침대곁에서 꼬박 새웠다. 그래도 피곤을 몰랐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수영은 운상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조이기도 하고 앞날의 행복을 공상속에 미리 맛보며 혼자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운상은 새벽녘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말없이 처녀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모포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우에 수영의 손이 살며시 얹혀졌다. 수영은 운상에게 손을 꼭 잡히운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말하지 마세요, 난 다 알아요.)

그들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오래동안 그렇게 굳어져있었다. 마치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것은 자기네 둘뿐인듯싶었다.

 

 

연재

►장편소설《새 나라》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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