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통일 어머니 류금수 선생 운명! > 새 소식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새 소식

부고) 통일 어머니 류금수 선생 운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11-10-03 00:00 댓글0건

본문

 
부고) 통일 어머니 류금수 선생 운명!
3일 오후 음성 자택에서 별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1/10/03 [20:0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며 분단을 극복하고자 했던 류금수 선생은 20여년 이상을 가명으로 사는 비극을 겪기도했다. 야만의 역사에서 사람의 역사 를  쓰기 위한 선생의 뜻을 우리 모두 받아 안아야 한다.    ©자주민보이정섭 기자

 
 
▲ 민족통일의 별이 졌다. 무수히 많은 별들 중 유난히 밝은 별이 있듯 류금수 선생의 통일 업적은 유난히 빛나는 별이었으나 3일 운명을 달리함으로써 통일진영을 슬픔에 빠뜨렸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언제나 어머니 같은 큰 마음으로 동지들과 통일운동가들을 자상하게 대했던 류금수 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분단된 조국에서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한평생을 바쳤던 범민련남측본부 고문인 류금수(향년 85세) 선생이 운명을 달리했다.
 
류금수 선생이 3일(오늘)월요일 오후 6시30분경(명을 다한 시각은 4시에서 6시사이로 추정) 충북 음성 자택 안방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을 장녀인 소수영씨가 발견했다. 
 
평소 건강했고 유명을 달리한 3일에도 건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갑자기 운명함으로써 주위를 충격에 빠뜨렸다.
 
류금수 선생은 청주여고 시절 부터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하면서 조국분단 현실을 깨닫고 조국통일운동에 한생을 바치로 결심하고 투쟁전선에 나서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는 등 고초를 당했다. 류선생은 투옥중 한국전쟁과 더불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는 우여 곡절을 겪기도 했다.

▲ 지난 24일 대구의 한모임에 참석하여 통일은 "많은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다"며 실천적 자세를 요구했던 류금수 선생.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지난8월14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과 함께 자주통일대회에 참석 ´심장의붉은피로 조국통일 안아오자´는 구호를 외치던 류금수 선생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류금수선생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범민련남측본부 고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왔으며 최근에는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모임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었다.
  
류금수선생은 평소 "조국통일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한이 없다"며 "늙고 젊음을 떠나 통일을 생각하고 통일운동에 나서는 것이 최대의 애국자"라며 통일운동 떨쳐 나설 것을 호소했다.

범민련연합 고문활동을 함께 해 온 이천재 선생은 "류금수 선생은 타고난 천품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활이나 처신을 바로하는 냉철하고 지혜있는 분이었다. 1941년 쉽지 않은 진학을 했고 해방과 함께 고학년이 되면서 민족의 암울함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극복할려는 용기있는 동지였다"고 회고 했다.

역시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김규철 선생은 "어느분보다 민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분으로 통일을 빼놓고는 생가할 수 없는 분이었는데 통일을 끝내 보지 못하고 운명하셨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류금수 선생의 유해는 분당 서울대 병원에 안치 되었으며 빈소는 3층 10호에 마련되었다. 장례절차는 가족과 범민련남측본부 등 평소 선생이 활동했던 단체들이 논의해 결정하기로했다.
 
한편 장지는 선영이 있는 충남 음성에 모시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통일운동가인 자녀 소수영, 재영, 치영, 미영씨 등이 있다.  
 
                                      류금수(본관 전주) 선생 약력

 
 [약력] 故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류금수 선생 약력

1927년 12월 18일 생. 괴산군 칠성면 갈읍리.

부친 류용규 모친 안초득 사이에 4녀중 장녀.

36년 3월 칠성 심상소학교 입학

36년 6월 28일(음) 여름 수해로 어머니와 세동생을 잃음.

42년 청주 제2고등여고 입학(4년제)

46년 친일교사 퇴진 동맹휴학 주도로 청주여고 퇴학

46년 이화여고편입학, 졸업

46년 중앙대학교 합격

47년 12월 월북

48년 1월 강동정치학원 입소

48년 4월 남북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참가

48년 청주형무소 수감

49년 서대문 형무소 수감

50년 6월 28일-2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인민군에 의해 풀려 남.

50년 7월 초 충북 여맹에서 활동

50년 9월 말 청원군에서 체포, 지서에서 탈출

50년 10월 음성군 삼성면 용대리로 위장 전입. 소진원씨와 가정을 꾸림.

52년 - 66년 3남 2녀 출산(장남은 8살에 병으로 사망)

68년 충북 음성에 위장전입해 20여년을 가명으로 생활하다 본명을 되찾음.

89년 ∼ 민자통 활동

90년 ∼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

90년 부친 류용규의 공적비 건립 (괴산군 필성면 칠성초등학교문 앞)

2001년 8월 범민련 남측본부 방북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 방문.


현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한국진보연대 고문, 전국여성연대 지도위원, 6.15민족공동위원회 충북본부 고문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5월 7일(목)
[논평] 문재인정부는 역사의 범죄자를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
[Reminiscences]3. An Echo of Cheers for Independence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주체사상의 진수, 사상적 알맹이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5월 16일(토)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5월 24일(일)
최근게시물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6월 5일(금)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6월 4일(목)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2권 제 6 장 6. 구국군과 함께
[Reminiscences]Chapter 4 9. An “Ideal Village” I…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6월 5일(금)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 보천보의 불길(2)
내각결정 제60호
편지에 깃든 진정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 보천보의 불길(1)
보천보의 총성은 조선의 영원한 승리의 메아리
자체의 힘으로 전진해나가는 불패의 나라
[사설] 정면돌파전에 박차를 가하여 당창건 75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이자
Copyright ⓒ 2000-2020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