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해방 24] 내가 본 신약성경(4) 피눈물 나는 피압박민의 저항의 역사 > 새 소식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새 소식

재미 | [신학의 해방 24] 내가 본 신약성경(4) 피눈물 나는 피압박민의 저항의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9-02 16:29 댓글0건

본문

 

 

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24]

내가 본 신약성경(4)

 

 

피눈물 나는 피압박민의 저항의 역사

-[요한계시록]의 연구-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계시 위주의 이남 기독교는 성서 66권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신비적인 해석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의 비역사적인 <낭만적 기독교>에 깊이 빠져있는 이남 기독교는 [요한계시록]에 써진 <역사적 배경>과 <묵시문학>의 유래 등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단지 부분부분적으로 신비화시켜 해석함으로써 교인들을 미혹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한계시록]에는 지극히 상징적인 영상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여러 기이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유대 묵시문학의 유래와 시대적 배경을 검토하면서 [요한계시록]이 어떻게, 언제, 누구에 의해서 왜 써졌는지를 자세히 연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광적인 신도들의 광란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환상적 해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와 초대교회의 박해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사실상 유대교의 한 종파에 불과했다. 사실상 본격적인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생겨난 것은 바울이 이방 나라들에 기독교를 전파하면서부터였다. 바울의 <헬라화된 기독교>가 로마에까지 퍼져가는 동안 바울의 <낭만적 기독교>는 유대교인들뿐 아니라, 이방 신들을 믿는 이교도들, 심지어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도 심한 갈등을 자아냈다. 그것은 기독교가 처음 코리아에 들어왔을 때도 <서학>이라고 배척당하고 선교사들이 박해를 당한 이유와 비슷하다. 지금 동양의 종교들이 미국에 들어와 가족들 간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지역사회와 충돌이 생기고, 국가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바울에 의해 헬라화한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퍼져나갈 때도 발생했다.

 

특히 그 당시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던 로마는 이미 AD 40년대부터 로마 황제 가이우스(Gaius)의 초상을 예루살렘성전에 걸어놓게 명하였다.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똑같이 큰 참변을 당했다. 이때 많은 유대교인이 로마의 황제 예배를 추종하며 유대민족의 전통종교인 유대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당한 부를 축적하며 별별 참담한 짓을 자행했다.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 사건은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나, 유대교인들에게나 동시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AD 64년 여름에 6일 동안 로마에 큰불이 났다. 로마 역사가 태시터스(Tacitus)에 의하면 그 당시 큰 화제는 로마 황제 네로(AD 54~68)가 저지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 의심을 피하고자 네로는 로마인들과 종교적 갈등으로 미움을 받고 있던 기독교인들을 희생 제물로 삼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AD 67~70년 사이에 있었던 유대인과 로마와의 치열한 <유대인 전쟁>에서 기독교인들도 역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큰 재난을 면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으로 도미시안(81~96) 로마 황제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예배하도록 전 로마 신민에게 강요하였다. 이때 전통적 역사 신을 섬기던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큰 박해를 받았다. 이와 같은 여러 차례의 위험에 직면했던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요한이란 사람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그러면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여러 차례의 박해 중에서 언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겠느냐 하는 문제는 학자들에 따라 여러 설이 있다. 혹자는 AD 66년 <유대인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써졌다고 주장하고(The Anchor Bible, [Revelation], J. M. Ford, pp 55~56), 로마 황제 도미시안 박해 때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Understanding the New Testament] p. 363>.

 

[요한계시록]의 구성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첫째 부분은 7 교회에 보내는 편지형식의 예언이 담긴 1장~3장, 둘째 부분은 하나님의 어린양(Lamb)과 관계있는 계시가 기록된 4장~11장, 그리고 셋째 부분은 창녀의 영상이 담긴 12장~19장과 나중 작가의 삽입과 편집으로 손을 댄 20장~2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당수의 신약학자들(Boismard, Hopkins, Ford, 등)은 원래 계시록은 4장에서 22장까지로 구성된 것이며, 사실상 기독교의 <묵시문학>이 아니라, 유대교의 <묵시문학>에 속한 것으로 나중 유대계 기독교인에 의해서 1장~3장, 그리고 22:16, 20, 21절은 삽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기독교 묵시문학>의 장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은 <경전(Canon)>으로 인정받는데 많은 난관을 겪었다. 위에 언급한 학자들에 의하면 계시록 4장~11장은 예수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친 세례요한의 모임에서 나온 것으로써 예수가 공생애로 나오기 이전에 요한 자신과 그의 제자들의 <오리라 한 자>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2장~22장은 예수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세례요한의 제자에 의해(사도행전 19:1~7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 하나)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한 자들의 견해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AD 60~70년에 써진 것으로 믿어진다. [요한계시록] 1장~3장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던 기독교인에 의해 써진 것으로 AD 60년 이후에 로마의 박해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면 왜 일부 학자들은 그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계시(계시록 4장~11장)

 

세례요한에 관해 네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과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일치하는 중요한 네 가지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오리라 한 이의 칭호>,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개념>, <신랑이란 인물을 직접 예수에 적용하는 일>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이미지는 예수에 적용될 때 반드시 세례요한과 관련할 때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29, 36에 보면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칭호를 직접 예수에게 적용하고 있지만, 이사야가 말하는 <고난의 종 그리스도(이사야서 42:1~9, 49:1~13, 50:4,  52:13~53:12)를 지적하고 있지는 않다. 세례요한은 아마 C. H. Dodd이 자적했듯이 유대인 묵시문학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나타나 악의 세력을 멸망시키고 승리할 ‘정복의 어린양’>을 나타내는 것 같다(요한계시록 17:14 참고).

 

둘째로, <오리라 한 그>라는 칭호는 신약성서에서 단지 세례요한과 관련하여서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마가 1:7, 마태 3:11, 누가 3:16, 7:19~20 등등). 마태복음 3:12와 누가복음 3:17에 나오는 <오시는 이>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것이라> 했는데 요한계시록 14:14~16에도 비슷한 내용이 계시되어 있다.

 

셋째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마가복음에는 그렇지 않음) 세례요한이 예언하기를 그의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 기록되어 있는데(마태 3:11, 누가 3:16), <불에 의한 세례>는 사도행전(1:5, 11:16)에는 생략되어 있다. 아마 <불에 의한 세례>는 세례요한의 독특한 가르침이었지 예수의 가르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구약성서 중 <불>에 관한 언급은 주로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25번). 아마 불에 의한 세례는 [요한계시록]에서는 <심판의 세례>를 나타내는 것 같다. 불은 모든 사람을 시험하여 정결케 하기 위하여 모든 인간에게 임할 것이라고 계시록은 기록하고 있다(8:5, 7, 8; 9:17, 18; 14:18; 16:8 ).

 

넷째로, 예수에게 적용된 <신랑>의 이미지는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과의 이야기 속에만 나온다는 것이다(마태 9:15, 마가 2:19~20, 누가 5:34~35, 요한 3:29). 요한계시록은 직접 <어린 양>을 <신랑>으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결혼 이미지>가 기록되어 있다(계시록 19:9, 21:9~14).

 

이 뚜렷한 네 주제 이외에도 계시록은 세례요한의 <사제들에 대한 증오심>과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한 멸망의 예고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계시록에 나오는 <예루살렘 – 창녀> 이미지와 일치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선두자라면 예수는 <오리라 한 이>라고 믿고 세례요한의 많은 제자가 예수를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요한복음 1:35~51). 이들은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로 불렸다(요한복음 1:35~37, 참고 계시록 14:4~5). 이 부분, 즉 4장~11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나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계시록 4장~11장은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의 전통에 의해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세례요한 제자의 해석(12장~22장)

 

12장~22장에는 <예수>란 이름이 담겨 있다(14:12, 17:6, 19:10, 20:4, 22:16). 이 부분은 예수에 대해 세례요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던 세례요한의 제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믿어진다. 저자는 <유대인 전쟁(AD 67~70)>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많은 유대 예언자처럼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내다보았으며, 기독교에 의해 새로운 예루살렘이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태양으로 옷을 입고 그녀를 잡아먹으려는 용을 피하여 하나님이 준비해준 사막에 숨은 여인>은 충실한 기독교 신자나 유대교 신자를 나타내며, <용>은 로마를 상징한다. 특히 계시록 13:1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며, 13:11에 나오는 <땅에서 나온 짐승>은 <지방 사제들>을 가리킨다. 계시록 14장에는 <우상숭배>에 저항하는 자들의 기록이 나온다. 14만 4천 처녀들은 <어린 양>의 동료들로서 그들의 종교를 더럽히지 않은 자들을 상징한다. 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는 < 큰 창녀>, 즉 예루살렘이 소개되고 있는데 예루살렘의 멸망은 장자의 죽음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하나님의 병사인 <흰 말 탄 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시록 20~22절은 메시아의 천년 왕국과 새 예루살렘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AD 60년 말에 기록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편집(1장~3장, 22:16, 20, 21)

 

[요한계시록] 1장~3장 그리고 22장 16, 20, 21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던 기독교인에 의해 첨가된 것으로 일부 학자들은 믿고 있다. 소아시아에 이미 건립된 7 기독교회에 <인자> 같은 자가(계시록1:13)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AD 60년 이후의 일로 믿어진다. 이들 메시지들은 아주 초기 기독교회가 믿었다가 차차 세월이 감에 따라 사라져간 흔적이 있는 <예수 재림의 급박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 기독교의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과 칭호는 [요한계시록]에는 단지 1:1, 2, 5에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어는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란 이름이 단지 8번 언급되어 있는데 5번이 1장~3장에 기록되어 있다. 1장~3장은 계시록의 나머지 부분과 문학 형태상으로도 판이하다. <예수 그리스도>란 칭호도 그렇지만 1:12~16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의 상도 계시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1장~3장에 나오는 7 교회는 모두가 바울이 세운 교회라기보다는 <유대인 기독교회>, <침례기독교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튼 [요한계시록]의 3부분은 세례요한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시기(4장~11장)>, <예수의 시기(12장~22장)>, 그리고 <교회의 시기(1장~3장)>를 다루고 있다.

 

결론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본문 자체의 분석을 통해 볼 때 기독교회는 결국 로마의 지배하에서(BC 63년부터) 은밀한 언어로 로마의 지긋지긋한 지배가 끝나고 역사의 혹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표현해온 여러 유대교의 <묵시 종파들>의 온상에서 성장 발전해온 것이다. 세례요한의 그룹도 역시 이러한 묵시적 그룹 중의 하나였다. 초기 예수를 따르던 그룹도 상당수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참가한 소수의 집단체로서 역시 <바다의 짐승> 즉 로마제국의 학정과 그 밑에 기생하며 안정을 누리고 있던 헤롯당과 예루살렘 사제들의 억압이 끝나고 새로운 예루살렘이 확립될 <종말의 때>를 기다리던 묵시종파 중 하나에 불과했다. 따라서 유대교의 한 종파에 불과했던 초기 예루살렘 기독교회는 억압과 착취를 받던 로마 신민이던 유대 민중의 <종말론적 기대감>을 전 기독교 가르침 중 최전면에 다루었다. 초대교회가 직면한 로마제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역사적 종교인 유대교와 그 한 종파였던 <유대계 기독교>를 충실히 믿으며 민족의 자주정신인 <야웨신앙>을 굳건히 지키려던 <요한>이란 작가는 로마가 조속히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 새 예루살렘이 설 것을 기대하며 여러 묵시문학을 편집하여 [요한계시록]을 썼던 것이다.

 

묵시문학은 은밀한 비밀코드를 사용하거나 <다니엘>처럼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처한 그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묵시문학 중 상당수가 <정치적>이라는 이류로 경전에 끼지 못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간접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묵시문학을 <낭만적 바울의 기독교>에 몰두한 이남 기독교는 단지 신비적으로, 영적으로, 또는 환상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성서의 진리를 왜곡해왔다.

 

이스라엘 민족해방운동인 <엑소도스>, 즉 <출애굽>으로 비롯된 구약의 투쟁역사에서 시작하여 로마의 박해에 대한 강한 저항을 나타내는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나는 이 <피눈물 나는 피압박민의 저항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새로운 로마의 식민지 지배 밑에 신음하고 있는 코리안들은 <민족해방>이라는 역사적 삶의 상황에 뿌리를 두고 성서의 새로운 해석으로 미 제국주의로부터 조국을 해방하고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키는 새로운 엑소도스를 이루어야겠다. 이리하여 깊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이남의 <낭만적 기독교회>는 물론 전 세계의 기독교회가 병에서 치료를 받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할 역사적 에너지를 지닌 새로운 종교로 쇄신해야겠다. 병든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은 쉬운 일이나 병을 올바로 진단하고 올바른 약을 써 치료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깊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우선 절대적이고, 교조적이고, 문자주의적인 기독교로부터 해방하여 참된 <해방의 신학>, 즉 <자주사상>이라는 치료약, 해방의 길, 척도를 제시해보려는 것이 지금까지 시도해온 [신학의 해방]이란 글들의 의도였다. <내가 본 신약성경>(끝)

 

 

 

관련기사

[신학의 해방 23] 내가 본 신약성경(3) 예수의 탄생 이야기

[신학의 해방 22] 내가 본 신약성경(2),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신학의 해방 21] 내가 본 신약성경(1)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인가 바울의 종교인가?

►[신학의 해방 20] 내가 본 구약성경(12) (크리스마스) 이전에 (하누카)가 있었다.

[신학의 해방 19] 내가 본 구약성경(11) 제2의 엑소도스를 기다리며

[신학의 해방 18] 내가 본 구약성경(10)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신학의 해방 17] 내가 본 구약성경(9) 두 갈래의 메시아상

[신학의 해방 16] 내가 본 구약성경(8) <언약의 사랑>을 부르짖은 호세아 선지자

[신학의 해방 15] 내가 본 구약성경(7)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예언자 아모스

[신학의 해방 14] 내가 본 구약성경(6) 예언자들의 갈길

[신학의 해방 13] 내가 본 구약성경(5) 야웨작가의 역사관

[신학의 해방 12] 내가 본 구약성경(4) 궁실 신학의 문제점

[신학의 해방 11] 내가 본 구약성경(3) 야웨 신앙과 바알 신앙과의 갈등

[신학의 해방 10] 내가 본 구약성경(2), 민족이란?

[신학의 해방 9] 내가 본 구약성경(1),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신학의 해방 8] 인본주의적 자유종교운동의 한 예

[신학의 해방 7] 대변혁기의 기독교,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주체사상

[신학의 해방 6] 소망의 신학

►[신학의 해방 5] 공통의 신학, 통일 신학의 모색

[신학의 해방 4] 메시아국가로 등장한 이북

[신학의 해방 3] 하향식 그리스도론의 문제점

[신학의 해방 2] 진리의 영

[신학의 해방 1] 참된 앎의 삼 단계

[신학의 해방, 서론] 신학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해석학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북의 ICBM에 문재인의 정체가 드러나다
No to THAAD & Stop the War Games!
미국 북에게 공식사과
문재인의 오판과 착각
련발적인 탄토탄세례, 《미국이 잘못 뉘우칠 때까지》
임동원, "문재인, 미국에 'NO'라고 말하라"
The Game Is Over and North Korea Has Won
최근게시물
코리아전쟁의 도발자는 누구인가 (31, 32)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10일(목)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7월 7일(금)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7월 21일(금)
북 외무성, 선의로 방북하려는 미국인들에게 북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범민련 남측본부, 15일부터 홈페이지 운영재개
김종훈 “민중이 직접정치하는 당을 만들겠다”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7월 29일(토)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11일(금)
"조선반도판세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미 국무부, ‘북한 여행 규제 조치’ 예고
코리아전쟁의 도발자는 누구인가 (43)
Copyright ⓒ 2000-2017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