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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토론연재22]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 사회변혁의 원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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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27 13: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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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22]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

 

사회변혁의 원인에 대하여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지금까지 토론한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이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주체사상의 이해, 즉 <주체사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사회변헉의 원인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회원의 질문에 김현환 소장이 대답한 것을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사회변혁의 원인에 대하여)

 

 

 

질문: 미국, 일본, 영국, 독일같은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첨예화 되었지만 사회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답: 이미 앞의 토론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지요. 앞의 토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한 사회제도에서 다른 사회제도로 넘어간다는 것이 유물사관의 이론입니다. 김정일위원장의 표현을 빌리면  “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해결되고 <낡은 생산방식>이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교체되여나가는 과정”이 바로 유물사관입니다. 그런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자체도 결국은 <인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생산력>을 이루는 노동자, 즉 생산자가 생산에 얼마 만큰의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못가지게 되는가, 생산자의 자주적 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가 없는가, 생산자의 창조적 능력이 계속 증가될 수 있는가 없는가, 바로 여기에 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것도 표현됩니다. 따라서 주체인 인간의 <사회적 조건>, 사회생활의 <객관적 조건>의 위치에만 놓고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분석하게 되면 생산력과 생산관계 자체의 모순의 내용도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앞의 토론에서 강조했습니다.

 

<생산력>이란 인간 밖에 객관화 되어 있는 것이지요. 생산력 자체가 그 어떤 <의욕>이나 <요구>를 가지고 있지 않지요. <생산관계>가 그 어떤 의욕이나 요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어디서 표현되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생산의 담당자인 노동자들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보장되는가, 유린되는가> 하는 데서 표현됩니다. 따라서 <사람>을 중심으로 해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본질>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 중심의 시각을 가질 때만이 현대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첨예화 되었지만 사회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습니다. 생산관계의 교체, 사회제도의 교체를 가져오는 근본요인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만 있다고 보는 유물사관의 이론을 가지고는 <사회변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이북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의 <사회주의 혁명>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들 나라들에서 생산력의 발전수준은 낮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먼저 일어났고,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생산관계를 개조하는 결정적 요인, 즉 사회제도를 변혁하는 결정적 요인은 <역사의 주체인 근로민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의 발전수준>, 즉 <근로민중의 변혁역량>이지요. 실제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첨예화 되었지만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정치적 역량>, <변혁역량>이 튼튼히 준비되지 못하고, 그 역량이 낡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고수하는 데 이해관계를 가지는 <반동세력>을 타승할 만한 정도로 준비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이북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확립된 것은 생산력의 발전수준은 낮았지만 낡은 생산관계를 고수하는 데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정치 세력을 타승할 수 있을 정도로 변혁세력이 성장했고, 그 <변혁역량>이 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호관계로서 사회역사를 설명하는 유물사관은 사회제도의 교체과정도 전면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없지요. 물론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개조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주체인 근로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창조적 능력>의 발전정도이지요.

 

물론 생산력의 발전수준은 낮지만 <민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의 수준>이 높아서 생산관계가 개조되는 경우에도 새로운 사회제도를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산력 수준>은 마련되어야 합니다. 즉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여 사회주의 제도를 세운 다음에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된 민중에게 그들이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물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생산력의 수준은 준비되어야 합니다. 사회주의 제도란 민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주의 혁명을 한 다음 생산력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지위를 물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취업시킬 수도 없고 그들을 먹여 살릴 수도 없는 생산력의 수준을 가지고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생각한 것처럼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해서 생산관계와의 모순이 첨예화 되어 혁명이 일어날 경우, 즉 현재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의 생산력을 가지고 사회주의 혁명을 할 경우, 생산력의 수준은 사람들의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물질적으로 보장하는 최소한의 수준보다 더 말할 수 없이 높지요. 이러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주체인 민중의 <혁명역량>이 이 준비된다면 사회주의의 생산관계, 즉 사회주의 제도를 얼마든지 확립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기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제도가 먼저 확립되는 것이었지요.

 

결국,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생산방식>을 출발점으로 삼고 <경제적 필연성>에 기초하여 사회역사를 설명하는 <유물사관적 방법>보다도 <민중의 지위와 역할>에 기초해서 사회역사를 설명하는 <주체사관적 방식>이 더 합리적이고 합당하며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생산방식의 교체의 역사>, <경제적 필연성이 관통되어 온 역사>로 보기 보다는 역사를 <민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실현되어 온 역사>, <민중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이 높아져 온 역사>로 보는 것이 역사과정을 더 깊이 있게 해명하는 것으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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