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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23] 내가 본 신약성경(3) 예수의 탄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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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26 14:3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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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23]

내가 본 신약성경(3)

 

 

예수의 탄생 이야기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역사란 단지 사실들 만의 나열이 아니라, 사실들의 해석이 내포된다. 발생한 사건들의 내면적 연결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관>이 없이 단지 사실들의 목록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일 중에서 사건이 될만한 일들을 골라내고 그 사건들 속에서 중요한 유형을 찾아내어 사건들의 내적 연결과 그 사건들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가들의 과업이다. 인간의 의식이 진공상태가 아닌 이상 어떠한 사실도, 혹은 한 사건도 해석되지 않은 사실 혹은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에서 사과 한 개가 떨어졌다고 하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태만상의 의미를 주는 <사건>이 될 수 있다. 흔히 발생하는 사과가 떨어지는 일 속에서 뉴턴 같은 과학자는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뉴턴에게 있어서는 이 사과가 떨어진다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 큰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기상학자가 보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센 바람이 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과수원 주인이 볼 때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똑같은 사실이나 발생한 일을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게 해석하여 본다. 이것이 <사건>이다. 따라서 사물을 보는 인간의 <주관적인 관점> 더 나아가 <세계관>이 이미 사건 자체 속에 내포되어버린다. 따라서 인간은 그 누구도 초연한 보도자가 될 수 없다. 모두가 사건의 참여자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사건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방관자가 될 수 없다. 광주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시청자들이나 그 일지를 읽은 독자들은 이미 광주사건에 동참한 자들이다. 이미 광주에서 발생한 일들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는 사건들로 우리의 생 속에 여러모로 작용하고 있다. 예수에게 발생한 일들도 그것들을 <큰 사건>으로 받아들인 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예수의 전기

 

한 인간의 일생을 기록하는 <전기>의 의미가 무엇인가? 한 인간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연대기가 전기인가? 그 연대기 속에 의미 즉 해석을 붙인 것이 전기인가? 물론 후자이다. 예수의 전기를 기록한 복음서의 재료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복음서의 재료들은 사건들의 중심인물인 나사렛 예수의 생애 속에서 <인생의 궁극적 의미의 열쇠>를 발견한 자들의 <공동체>, 즉 <초대교회>에 의해서 정리되어 보존된 사건들의 기록이다. 지금처럼 보도기술이 발달한 때도 아니므로 기자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예수를 쫓아다니며 현지보도를 한 것도 아니다. 그것도 예수가 처음부터 뛰어난 인간으로서 전 로마의 시선을 끌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나이 30에 공생애를 시작하여 겨우 3년 정도 주로 그 당시 가장 버림받았던 갈릴리지방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천한 하층민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그의 활동이 점차 확대되자 마침내 지배층들인 로마 관리들, 헤롯당,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로마와 유대 지배층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하기까지 약 3년간의 예수의 공생애는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생각되었다.

 

예수의 내적 그룹인 열두 제자들은 그들이 따르던 예수가 특별한 인간, 즉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차차 의식이 변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사형수들이 지던 흔한 <십자가>에 의해 처형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는 사건으로 되었다. 십자가 사건 후 모두 두려워 흩어졌던 제자들 가슴 속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던 당시에 깨닫지 못했던 그의 말들, 그의 행적들이 새로운 의미를 지닌 사건들로 그들의 인생에 재발생하기 시작했다. 환한 빛이 그들의 인생에 비취면서 그들의 생 속에 예수가 살아서 동행하기 시작했다. 꿈속에도, 다른 동료들과의 이야기 중에도, 일 중에도 예수가 나타났다. 새로운 인간으로 변해가는 그들의 감격스러운 사건들을 혼자 간직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그가 지닌 감격을 서로 나눌 때 그 감격은 배가 되며, 그의 슬픔을 나눌 때, 그 슬픔은 반으로 감소한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그들의 감격스러운 <내면적 의식>의 변화과정을 서로 나누며 환희를 맛보았다. 가장 만나기 쉬운 형제끼리, 즉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리고 요한과 야곱이 서로 그들의 내적 경험을 나누었다. 그들은 같은 마을에 살던 빌립과 나다니엘, 등을 만나 서로의 의식의 변화를 나누었을 때 그곳에 불이 붙었을 것이다.

 

그들의 스승 예수를 만나 함께 공생애를 시작하던 그때부터 이미 제자들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으며, 십자가 사건 후에 그들의 삶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이와 같은 각성된 제자들이 120명이나 마가 다락방에 모였을 때 그곳에 불이 붙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 <역사의식>이 변하여 역사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보다 더 큰 부활은 없다. 그것이 예수 십자가의 의미, 즉 부활의 참 의미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철저하게 역사를 심판하는 심판대이다. 십자가 사건 후 새로이 깨어난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초대교회는 생겨났고 이들은 이러한 <부활 사건>, 즉 <제자들의 각성의 사건>이 있자 제일 먼저 가진 것을 팔아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유래이다.

 

소아시아의 다소에서 나서 랍비인 가말리엘의 수하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배우고 헬레니즘과 동양종교를 교육받은 바울에 의해 <유대교주의>와 <헬레니즘>, <동양종교>가 융합된 초대 기독교의 신학이 정립되었다는 것을 앞 장 <바울의 기독교>에서 이미 지적하였다. 그 내용은 AD 65년 이 전에 써진 바울 서신들(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데살로니가전서)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이미 앞 장에서 강조했다. 이처럼 예수의 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과 바울에 의해 이미 형성된 초대교회의 <신학적 견지>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 30년이 지난 후에 써진 첫 번째 전기가 [마가복음 ]이고 그 후 약 15년이 더 경과 한 후 [마가복음]을 앞에 놓고 재료로 사용하면서 예수의 전기를 기록한 것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그래서 이 3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앞 장에서 이미 지적하였다.

 

 따라서 복음서의 전통들은 사건들을 단지 보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대교인들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전기는 초연한 <객관적 연대기>가 아니다.  또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전기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도 아니다. 또한, 어떤 사람도 그의 시대와  백성들로부터 유리되어 살 수 없다. 따라서 예수의 전기 속에도 그의 시대에 당연한 진리로 간주하던 전제 조건들(예, 신분제도, 우주관, 등)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 사상적 배경, 등이 기록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

 

시리아의 황제 앤대오커스 4세인 에피파네스(BC 175~163)의 헬레니즘 정책에 반기를 든 <마카비아 혁명>이 성공하여 이스라엘은 모처럼 1세기 동안 독립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미 <내가 본 구약성경>에서 지적하였다. 그러나 BC 63년 로마의 폼페이(Pompey)가 다시 예루살렘을 점령해버렸다. BC 40년 로마는 이두메아 사람 앤티파터의 아들 <헤롯>을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반대파들의 저항으로 BC 37년에 가서야 왕 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통치 영역은 이두메아, 유다, 사마리아, 갈릴리지역, 등을 포함하였다. 예수가 태어난 것은 바로 이 헤롯 왕 때였다. 헤롯은 로마의 괴뢰통치자들 중에 가장 성공한 자였기 때문에 <위대한 헤롯 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헤롯은 <로마 황제의 예배의식>을 지원하여 로마 황제 아우구스트(Augustus)를 기념하는 성전들을 여기저기에 세웠다. 그는 헬라식으로 많은 옛 도시들을 재건했으며 그리스식 체육관, 극장, 경기장, 등을 지어 전 국토를 그리스화하려고 시도했다. 로마는 군사적으로 각처를 점령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문화(헬라문화)>를 그대로 전파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로마의 꼭두각시인 헤롯을 미워한 것은 당연했다. 로마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거대한 액수의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쳤고, 비밀경찰들을 사방에 고용하여 조금이라도 그에게 바치는 충성심에 의심이 가는 자는 가차 없이 처벌하였다. 헤롯은 그의 장모와 두 아들. 그리고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그는 10명의 아내가 있었음)를 충성심이 의심스럽다고 살해한 일도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유혹하려고 BC 20년에 화려한 새 <성전>을 짓기 시작했으나 그의 사망 후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BC 4년 헤롯이 사망하자 예루살렘에서는 큰 반란이 일어나 시리아에 거주하던 로마 총독 바러스(Varus)가 유다에 가서 폭동을 진압했는데 그때 반란 주모자들은 모두 잡혀 처형당했고, 시위에 참여했던 수천 명의 유대인도 로마 병정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로마와 헤롯집단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은 더욱 그 세력을 강화하였고 시골에까지 퍼져나갔다. 그 당시 가장 천대받던 혁명의 중심지 갈릴리에서는 주민들과 로마 병 사이에 자주 큰 충돌이 일어났으며 요단강 건너편에서도 폭동은 연일 발생했다.  목동들은 자진해서 지원병으로 로마에 대항, 게릴라전으로 임했다. 잘 조직된 세계 제일의 로마 병들도 유대인 저항세력들과 싸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로마 병들은 이때 혁명에 가담했던 2천 명의 정치범들을 대량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트는 혁명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헤롯 왕의 세 아들에게 왕국을 세 등분하여 분배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지방의 분봉왕으로서 임명되었는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세례요한과 예수가 활동했다. 유다의 분봉왕으로 발탁되었던 아켈라우스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 의해 쫓겨났고,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은 로마의 총독이 직접 다스렸다. AD 6년에서 유대인 전쟁(AD 66~70)이 발발하던 66년까지 사이에 14명의 로마 총독이 바뀌었는데 폰티우스 빌라도(AD 26~36)에 의해 예수는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한동안 잠잠하던 혁명운동은 AD 6년에 로마의 행정부가 세금을 목적으로 인구조사가 시작된 직후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로마와 유대인 지배층의 억압과 착취가 심해지면 질수록 가장 밑바닥층이었던 암 하아레츠(Am Haaretz)파들과 열심당원들(Zealots)은 더욱 강렬하게 저항운동을 벌였다. 이들 민족주의 혁명파들을 더욱 분개하게 한 것은 로마당국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에다 로마 황제 씨저의 동상과 로마의 독수리기를 세워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들 유대교인은 그들을 억압하는 지배층의 두목으로서 로마 황제를 증오했다. 혁명세력은 조직화되어 갔고 마침내 AD 66년에는 로마에 대항하여 거족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유대인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5년이나 계속되다가 AD 70년에 끝났는데 이 전쟁으로 약 10만의 유대인이 살해됐고,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던 성전이 파괴되었다. 남은 혁명세력은 AD 73년까지 저항을 계속했으나 잘 조직된 로마 군대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다. 이것이 예수가 탄생하기 전후, 그의 공생애 기간, 그리고 그의 십자가 사건 전후 그리고 그의 전기인 복음서들이 써진 시대적 배경이다.

 

그러면 구두로 전달되어 기록된 복음서의 보도 내용 중 어느 정도가 사건 자체이고 어느 정도가 나중에 공동체인 초대교회에 의해 해석되어 기록된 것일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달되는 과정 중에 그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복음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구두로(orally) 전해 내려오던 전통들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인데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로써는 모두가 손으로 베껴 쓸 수밖에 없었다. 한 <원본>이 나오면 그것을 여러 곳에 돌려보기 위하여 베꼈는데 이렇게 베낀 <신약성서 사본(manuscripts)>이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 많은 사본 중 어느 것도 모든 세부적인 면에서 서로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지금처럼 복사기계가 있었던 때가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실수로 잘못 베낄 수도 있고, 더욱 큰 변경은 고의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베끼는 자가 제멋대로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고쳐 쓴 때문이다. 그 복음서를 베낄 때에 베끼는 자들이 처했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요구와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1976년 신학교에서 사용한 공관복음을 비교한 그리스어 성경(지금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음)에는 같은 복음서라도 여러 사본을 페이지 밑에 소개하면서 사본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예가 앞에서 이미 지적한 마가복음 16장 8절 후에 나오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16:9~20)가 어는 <고대사본>에는 생략되어 있고 어는 사본에는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어 성서나 영어 성경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은 사람은 성서의 이야기들을 절대화하며 일점일획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문자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성서학자 중 그 누구도 그 많은 사본 중에 어느 것이 원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마저도 인간의 편견, 요구, 이해관계, 그 당시 당연한 진리로 여겨지던 전제조건들, 그리고 전달하려는 의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야웨작가(J 작가)에 의해 <가나안 전통들>이 <야웨>라는 연결사를 통해 <이스라엘 전통>으로 바뀌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이미 <내가 본 구약성경>에서 지적하였다. 그러면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더 연구해보겠다.

 

예수 탄생의 이야기

 

예수의 전기를 기록한 네 복음서 작가 중 두 작가, 즉 마가와 요한(확실한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편의상 부르는 것임)은 예수의 탄생에 대해 전혀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공생애>만 다루고 있다. 다른 두 작가, 즉 마태와 누가는 <예수 탄생의 이야기>와 그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두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 점들도 있고, 또 서로 모순은 없지만 두 작가가 각기 자신들이 수집한 독특한 재료를 기록한 것도 있다.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겠냐는 것이다. 공생애 동안 예수 자신이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또한, [요한복음] 19장 27절에 보면 예수가 죽은 후 사도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제자들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마 사도들은 그들이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스승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만약에 [요한복음]이 위에 언급한 예수의 제자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면 어찌 그의 복음서에서 전혀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느냐는 문제이다.

 

둘째로, 예수의 전기를 기록할 당시까지 살아있던 예수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자들이 이야기해주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2:21~40에 나오는 시므온(Simeon)과 여자 예언자 안나(Anna)는 아기 예수가 성전을 방문하였을 때 이미 연로했었는데 예수의 공생애 때까지 살아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출처가 불확실하다. 또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출처가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도표를 보면서 비교해보자.

 

 

내용

마태복음

누가복음

형태

이야기체

시적인 드라마체(예배용)

예수 나던 당시의 요셉과

 마리아의 거처지

베들레헴 2:1

갈릴리 나사렛 1:26

예수의 탄생지

다윗의 도시 베들레힘 1:21

베들레헴(인구조사 때문에

호적하러 갔다가 (우연히 

거기서 낳게 됐다.)

탄생 후 예수의 거처지

나사렛(헤롯의 위협으로 이집트에 도망갔다가 헤롯의 사망 후 갈릴리나사렛에 살게됨. 2:13~23

 

나사렛(원래부터 고향으로 나타나 있음

동방박사 이야기

마태만의 재료 2:1~12

전혀 기록이 없음

2살 미만의 어린이를대량

학살한 이야기

마태만의 재료 2:16~18

전혀 기록이 없음

베들레헴의 목자들 이야기

전혀 기록이 없음

누가만의 재료 2:8~20

세례요한이 어머니 

마리아와의 친척 관계

전혀 기록이 없음

누가만의 재료 1:39~20

아무도 이 이야기의 

진실성은  모른다.

초자연적인 탄생

성령으로 잉태한 1:18~25

(꿈에 주의 천사)

지극히 높으신 분이 감싸주어

잉태 1:26~38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

 

 

베들레헴 탄생에 대해

 

예수가 태어나기 전 그의 부모의 고향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지만, 예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그것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던 <초대교회>가 예수의 <메시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앞의 구약성경에서 다룬 [미가서]에 표현된 대로 다윗 왕의 고향 <베들레헴>과 연결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태복음] 2:6절에 인용된 [미가서] 5:1절의 예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다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위의 예언처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에서 탄생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위의 [미가서]에는 베들레헴이 단지 다윗의 고향임을 언급한 것일 뿐, 그의 후손들이 꼭 베들레헴에서 나야 한다고 기록한 것은 아니다. 하여튼 AD 75년경의 복음서 기자들인 마태와 누가는 초대교인들이 예수와 다윗을 연결지어 생각함으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강조하려는 요구를 반영하여 예수의 출생지마저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과 연결지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또한,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신학적 견해>에 따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genealogy), 즉 다윗과 연결된 족보가 나오게 된 것 같다.

 

예수의 초자연적 탄생

 

<초자연적인 탄생>의 필요성은 초대교회의 신학적 배경을 반영한 것으로 <유전적 죄의 원리>와 관련된 것이다. <구속자>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려면 <유전적인 죄>가 없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이유로 탄생한 메시아가 남자인 요셉의 협조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자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의 발상은 유치하다. 이러한 유치한 생각은 반쪽 단계의 생각에 불과하며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 가를 잘 반영해준다. 왜냐하면, 여자인 <마리아의 육체적인 영향>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초대교회는 마리아마저 초자연적으로 탄생했다느니, 마리아는 단지 그리스도를 낳아주는 통로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느니, 등의 헛된 이론들을 제기했다.

 

교회가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 속>에 뿌리를 박고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될 때 문자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헛된 싸움을 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진 하층민들은 안타깝게 교회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데 성서 일부에 써진 예수의 <무죄설>을 가지고 서로 싸움질이나 벌리고 교회가 서로 갈라져서야 되겠는가? 예수가 <죄를 유전받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역사적 메시아가 되는 데는 너무나 부족하다. 마가복음이 보여주듯이 메시아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누가복음] 2:52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았다.” 예수도 날 때부터 이미 메시아로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며, 의식이 고정되었던 것도 아니라 몸도 지혜도 성장했다. 그러면서 <자의식>과 <사회의식>이 자랐고 차차 <하나님에 대한 의식>도 발전해 갔던 것이다. 가장 낮은 하층민들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는 것이라는 자각에 도달했을 때 예수는 자신이 역사 속에서 마땅히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했을 뿐이다. 점령자 로마와 지배층들은 예수의 활동을 위험하게 여겨 합작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십자가 사건 후 변화된 예수의 제자들이 세운 초대교회의 필요 때문에 예수는 구세주가 되었을 뿐이다. 그 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앞에서 언급한 <하양식 그리스도론>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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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9] 내가 본 구약성경(1),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신학의 해방 8] 인본주의적 자유종교운동의 한 예

[신학의 해방 7] 대변혁기의 기독교,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주체사상

[신학의 해방 6] 소망의 신학

►[신학의 해방 5] 공통의 신학, 통일 신학의 모색

[신학의 해방 4] 메시아국가로 등장한 이북

[신학의 해방 3] 하향식 그리스도론의 문제점

[신학의 해방 2] 진리의 영

[신학의 해방 1] 참된 앎의 삼 단계

[신학의 해방, 서론] 신학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해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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