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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21] 내가 본 신약성경(1)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인가 바울의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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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16 19: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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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21]

내가 본 신약성경(1)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인가 바울의 종교인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내가 본 구약성경>에서 [창세기]를 먼저 다루지 않고 [출애굽기]를 먼저 다룬 것은 구체적인 <사회적 존재>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강제노동하던 다른 노예들과 출애굽을 하고 나서 근 40년간 광야를 헤매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그리고 가나안을 정복한 후 통일왕국을 이룩한 다윗 왕(BC 1000-960) 때에 이르러 비로소 야웨작가(J 작가)에 의해 처음으로 [창세기]가 써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바울의 생애>와 그의 [서신들]을 먼저 다루는 것은 바울의 개종사건과 그의 선교활동과 그가 쓴 [서신들]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공관복음]들보다 먼저 써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공관복음서]란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와 바울의 <신앙의 눈>으로 보고 해설하고 교리화한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다.

 

[바울의 서신들]로 그동안 알려져 왔던 13편의 서신 중 현재 확실하게 바울이 쓴 것들(the Undoubted Letters of Paul)로 학자들이 주장하는 서신들은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로마서], [빌레몬서] 7서 뿐이다. 바울서신 중 제일 먼저 써진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AD 51~52년에 써진 것으로 일부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에베소에서 AD 53-55 사이에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AD 55년경 써진 것으로,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56년 경에 써진 것으로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고린도 후서]는 1세기 말에 가서 여러 편지가 하나로 편집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음으로 [빌립보서]는 AD 52~55년 사이에 써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고 56년경이나 혹은 62년경에 에베소에서 써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로마서]는 AD 57년경에 고린도에서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빌레몬서]는 AD 56년경이나 62년경에 써진 것으로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바울이 쓴 것으로 알려진 위에 언급한 7서신들은 [복음서들] 중 가장 먼저 써진 것(AD 66년경)으로 알려진 [마가복음]보다 앞서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의 서신들]로 알려져 있던 나머지 서신들은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을 빌려 써진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골로세서], [에베소서]는 AD 70~80년경에 바울이 사망한 후 바울의 제자들에 의해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목회 서신들>로 알려진 [디모데 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는 AD 2세기 초에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신약학자들은 이들을 <제2의 바울 서신들(Deutero-Pauline Letters>, 혹은 <가짜 바울 서신들(Pseudo-Pauline Letters)>라고 부른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일찍부터 바울이 쓴 서신이 아닌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의 식민지인 소아시아의 실리시아의 수도인 다소(Tarsus)에서 다이에스포라 유대인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다소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 무역과 상업이 성하였으며 특히 헬라문화(Greek culture)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바울은 이곳에서 <헬라철학>을 공부했으며 동시에 유대인으로서 그 당시 명성이 높던 <가말리엘>이라는 랍비로부터 율법을 배웠다. 그는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중산층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 그의 로마 시민권은 그가 나중에 기독교를 선교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이방에 흩어져 사는 다이에스포라 유대인 인구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국내의 인구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던 다이에스포라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짓고 그들의 전통적 종교인 <유대교(Judaism)>를 신봉했다. 이러한 다이에스포라 유대교는 그 당시 로마문화인 헬레니즘과 많이 동화되어 팔레스타인의 성전, 번제, 사제들 중심의 유대교와는 사뭇 다른 독립적이고, 세계적이고, 전 인류적인 구원을 전파하는 <보편적 종교>로 변해갔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상당수가 헬라화된 유대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헬라문화에 동화된 유대교의 가르침과 헬라철학의 가르침으로 무장된 바울은 그의 유창한 그리스어로 기독교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 로마제국에 전파했다.

 

바울의 개종

 

그런데 바울이 언제 어떻게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 2~3년 후인 AD 32~33경으로 보고 있다. 바울의 전기를 기록한 저자로 알려진 누가(Luke)의 [사도행전(Acts)] 기록과 바울 자신이 그가 선교한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 [갈라디아서] 1:22에 보면 바울은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나를 직접 대할 기회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와 야곱을 비롯한 열두 제자들을 포함한 120명 정도가 이룩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다만 바울에 대해 소문만 듣고 알 뿐이라고 다음과 같이 [갈라디아서] 1:23~24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예루살렘 교인들) 다만 전에 자기네를 박해하고 그 교를 없애버리려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하는 일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대주의 교인들>과 <헬라주의 교인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사도행전 6:1~6). 성전예배와 할레, 구원의 독점화를 반대하던 헬라주의 교인들에게 심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 스테반이 첫 순교를 했는데 그때 바울(바울은 로마식 이름이고 개종 이전이었던 이때는 유대식 이름인 사울)이 증인이 되었다고 사도행전 7:58과 8:1에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갈라다아서]와 누가의 이야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은 누가가 나중 바울의 전기인 [사도행전]을 쓸 때 구전으로 잘못 전달된 재료를 기록했거나 누가 자신이 만든 이야기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Gunther Bornkamm은 그의 책 [바울] 15페이지에서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 9:1~2에 의하면 바울은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커스에 있는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청하여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올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Bornkamm은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로마 행정법에 의하면 유대의 대법원이 유대 지방 밖인 다마스커스까지의 관할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반대하건 찬성하건 관계 회당의 권한에 따라 처리되었다는 것이다(Bornkamm 위의 책 15페이지). 고린도후서 11:24에서 바울 자신도 유대교 회당의 처벌을 받은 것을 술회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의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개종사건>은 누가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며 바울 자신은 별로 그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1:15~16에서 바울은 누가가 기록한 <다메섹 도상의 개종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주셨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개종사건>이 있고 난 뒤 바울은 그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3년간 사막에서 지내고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다고 갈라디아서 1:17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개종한 사건이 다마스커스에 있었던 헬라화된 기독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바울의 개종사건에 대한 해석

 

바울은 유대교인으로서 율법을 지키며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던 경건한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헬라철학을 공부한 헬라문화에 정통한 유대인이었다. 사실상 바울은 역사적 예수와 같이 지내던 12 사도들 중의 하나도 아니었고, 예수가 활동하던 본토에서 나서 그 문화에 익숙하던 사람도 아니었으며, 예수가 속해 있던 갈릴리 하류층 시민도 아니었다. 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갈릴리 나사렛 예수,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고난의 종 그리스도(Suffering Servant Christ)>였다.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것은 그가 초기에 믿었던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초자연적인 <신인 그리스도론(Divine Man Christ)>을 신봉했기 때문에 <메시아 관>의 차이에 의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로마서 7:21~25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험했다. 더구나 헬라화된 바울은 다소에서 여러 <동양종교>와 <헬라철학>, <로마종교들>을 신봉하는 여러 종류의 집단들을 목격했기 때문에 유대교에만 인류의 구원이 있다는 <배타주의>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 스테반의 순교로 비롯된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각처로 흩어지게 된 헬라화된 기독교인들과 바울은 사귀게 된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그들을 박해했으나 차차 그의 의식은 변화되어 갔다.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그가 그렇게도 고민하던 율법 문제의 해결을 찾았던 것 같다. 그가 속해있던 이방인들, 유대인들, 헬라인들, 로마인들, 동양인들 모두에게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아 상(Universal Messiah Image)>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찾았던 것 같다. 그의 <유대교 정신>과 <헬라철학>과 <동양종교>가 융합한 것이다. 이 체험이 그의 <개종사건(Conversion Event)>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어쨌든 그의 <개종사건>은 오랜 <교육과정>을 통하여 이룩된 것이지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표현하듯 단순간에 <다메섹 도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누가의 이러한 단순한 사고방식이 <흑백논리>를 제공해주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식의 변화>나 <신앙의 변화>는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경험으로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순간의 선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랜 <고민의 과정>의 결과가 순간적 계시로 표현될 수는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 3년의 생활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사상투쟁을 벌인 끝에 바울의 <낭만적 종교관>이 탄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바울의 그리스도 신화

 

그러면 초대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준 바울이 받아들인 <그리스도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바울이 받아들인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동양종교>를 통합시킨 전 세계 인류를 구원할 <보편적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그리스도(Historical Christ)>가 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Spiritual Christ)>였다. 바울이 받아들인 <영적인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높이 들리워진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highly exalted to the Father)로서 영광 중에 하나님의 우편에 거하다가 심판자(Judge)로 지상에 곧 임제할 분이다(참고: 빌립보서 2:9, 로마서 8:34). 앞 장의 [신학의 해방]에서 길게 다룬 [하향식 그리스도론]의 본보기가 바로 바울의 <영적 그리스도론>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적인 그리스도>가 바로 현실(reality)로서 성령(Spirit)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이 <성령>은 육적인 요소와 지성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신적이고(divine), 천상적이고(heavenly), 영원하고(eternal), 거룩하고(holy), 살아 있고(living), 그리고 생명을 주는(life-giving) 자이다. 이러한 속성들을 지닌 <영적인 그리스도>는 결국 끝없이 텅 빈 구름 나라로 증발하여 들어가는 <환상적 종교>를 낳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은 바울이 받아들인 예수가 <지상의 역사적 인간>이 아니라, 단지 <높이 승화된 그리스도>였다. 그는 왜 예수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 <예수시대>, 즉 <바울시대>가 안고 있던 <역사적 현실>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단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그가 기다리던 <영적 메시아상> 만을 <신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 당시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으로 <사회제도의 개선>을 바랐던 변혁운동가도 아니며, <로마의 식민지 통치>에 반대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보편적 그리스도상>인 <영적 그리스도>를 창출해낸 신학자였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유대교>를 <헬라화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의식적으로 로마의 <식민지 사상>을 낳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것은 <역사적 메시아>보다는 <영적인 메시아>를 강조함으로써 신도들이 <역사적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만들었고, <보편적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유대민족의 식민화를 꾀하고 헬레니즘을 주입하려던 로마의 <정신적 식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독일 신학자 Adolf Von Harnack는 1900년에 쓴 그의 [기독교 문명의 기초자(Founder of Christian Civilization)]라는 글에서 바울은 로마황제의 <문화적 식민화>의 협력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협력자로서 로마를 안정된 제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쓰고 있다<Wayne Meeks, [The Writings of St. Paul], 303페이지). 그가 박해를 받은 것은 그가 결코 그 당시 로마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해서도 아니고, 그 당시 유대인들의 적이었던 헤롯당의 통치에 반대해서도 아니었으며, 단지 <헬라화된 기독교>를 전파하는 중 유대민족주의자들과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역사적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한 때문에 예언자들처럼 박해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했을 때 <로마법>에 호소하여 로마에서 재판받기 위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건너가 그곳에서 그가 받아들인 <영적 그리스도>를 방해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전하였는데 로마가 이것을 허락한 것은 바울의 가르침이 결코 로마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기독교(Christianity of Jesus)> 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쉽게 정치세력들과 유대교회에 억압당하여 지하로 숨어 들어간 반면, <바울의 헬라화된 기독교(Hellenized Christianity of Paul)>는 어떻게 전 로마제국에 쉽게 퍼져나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 아래 신음하던 신민들은 그들이 처한 비참한 역사적 현실을 혁명하려는 희망이 점차 실현성이 없게 되자 그들의 소망을 <환상> 속에서 찾게 되었고, 그 환상 속에서나마 위안과 희망을 품게 되었다. 바울의 <영적 메시아>가 이러한 <환상적 위안>을 제공해주었다.

 

역사종교와 낭만적 종교

 

세계 역사상 두 종류의 종교형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적 종교(historical religion)>와 <낭만적 종교(romantic religion)>이다. <역사적 종교>가 독특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통, 그리고 정치, 사회, 경제 구조와 관계가 있는 종교라면, <낭만적 종교>는 인간의 <보편성>과 <영적 주의>에 강점을 두었으며 <세계주의>를 지향했다. 유대교가 전자라면 기독교는 후자에 속한다. <역사종교>가 독특한 민족의 정신과 전통이 깃든 종교라면, <낭만적 종교>는 세계주의를 지향하며 전 세계를 식민화시키려던 식민주의 종교였다. 그러면 <낭만적>이란 무슨 뜻인가? Friedrich Schlegel은 <낭만적 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환상적인 형태로 감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책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낭만적 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환상적인 형태로 감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종교이다”.

 

<낭만적 종교>는 <강렬한 감정>이 그 내용을 구성하고 <신비적인 상상의 영상들> 속에서 그 목적물을 찾는다. <낭만적 세계>란 모든 세상의 귀찮은 규율들이 멈추고 <비규칙적>이고, <기적적인>, 즉 모든 <현실을 초월한 세계>이다. 이러한 모든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갈망하는 <낭만적 종교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감각>으로 용해되고, 모든 것이 단순한 기분으로 변화되며, 모든 것이 주관적이 되고, <사고>란 단지 <감상의 꿈>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낭만적 종교인들에게는 <감각>은 열광적 기질이 확실히 추구하는 삶의 가치로 여겨진다. 낭만주의자들은 단지 <광휘>와 <환희>에 쉽게 도취한다. 이와 같은 <열광의 상태> 그 자체가 이들에게는 삶의 목표이며, 그 자체 속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낭만적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열망은 역사의 신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에 대한 열망도 아니며, 어떤 행동을 갈구하는 의지의 열망도 아니라, 단지 감각 속에 자신을 쏟아 넣을 수 있는 <달콤하고 파도 같은 열망>으로 변화된다. 그들의 신앙도 모두 열광적 광휘의 순간을 추구하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요사이 손뼉 치며 열광하는 구원파 종교인들이 이에 속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독교를 <참으로 감각적인 종교>라고 평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고 잠시나마 환상에 굴복하고 싶은 욕망의 충족을 <바울의 낭만적 기독교>가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낭만적 열망과 꿈속에서 <역사적 현실>은 단순한 <기분>으로 되어버리고, 기분은 마침내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바울의 낭만주의적 기독교는 <강한 윤리적 충동>, <사회적 양심>, <윤리적으로 삶을 정복하려는 의지력>이 없다. 낭만적 기독교는 <역사적 현실>의 상징인 <십자가>를 영적으로, 즉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삶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실제적인 생각>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게 해준다. 모든 법률, 도덕적 규칙, 관습, 등은 비역사적인 낭만적 기독교에 거슬린다. 낭만적 기독교는 선과 악의 영역밖에 머물기를 원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과 씨름하는 대신에 이들 환상적인 낭만적 기독교인들은 단지 꿈꾸고 즐기며, 광휘에 빠져 자신을 잊기 원한다. 이들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살려고 하며 운명과 투쟁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단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구원이 위에서 내려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이들 낭만적 기독교인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삶의 행위는 <은사>로 대치되며, 생존의 법칙은 단지 <믿음>으로, 현실은 <기적적 구원>으로 대치된다.

 

바울이 다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동양 종교나 이집트 종교의 Mithras와 Adonis, 그리고 Attis와 세라피스 예배 형식은 한결같이 <삶의 도피>를 구하고 <환상적이고 경이스런> 저 세계로 주의를 돌리는 <감상적 자세>를 강조했다. 바울이 다소에서 접했던 이들 동양 종교들이 믿는 것은 <인간이 되었다가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다시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는 초자연 존재를 믿는 신앙>이었다. 이 초자연 존재와의 삶은 신비스런 예배 의식인 <성례식>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를 통해 인간은 지상의 죄와 죽음을 극복하고 구속되어 영원한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바울이 접촉한 많은 동양 종교들은 가르쳤다.

 

이와 같은 여러 동양 종교의 가르침들은 로마 군인들이 닦아놓은 군사도로를 통하여 서로 교환되어 로마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많은 동양 종교가 갖고 있던 <낭만적 물결>은 전 로마에 퍼져갔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신비주의적 광휘를 전파한 <구속자>에 대한 동양 종교들의 감상적 신화는 <전통적 역사 종교>의 <율법주의>와 <결단력>, <인간 의지>를 포기하게 하고 단지 <감각적인 신앙>만을 중시했다. 바울이 그 짧은 기간 동안 전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낭만주의 종교>의 물결을 탓기 때문이다. 지금의 구원파 순수복음주의자들과 영적 주의자들이 믿는 기독교가 쉽게 퍼져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만약에 바울이 전파한 낭만적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도전적이었다면 로마제국이 바울의 선교활동을 허용했을 리가 없다. 지금의 낭만적인 구원파 기독교가 만약에 미 제국주의에 도전적이라면 그들의 선교가 자유스럽게 허용되겠는가?

 

낭만주의자 바울

 

다른 모든 낭만주의자가 그렇듯이 바울도 <생각의 창조자>라기보다는 <생각의 연결자>였다. 바울은 그의 유대교의 배경과 헬라철학과 낭만적 동양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유대교의 교리들과 가르침들을 그 당시 이미 로마제국에 지배적이던 낭만적 동양 종교의 <신비주의>와 융합하려고 시도하였다. 바울은 보편적이며 낭만적인 동양종교들의 신비주의와 유대교의 계시적 전통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동양의 <낭만주의적 종교>에다 <유대교>를 융합하여 새로운 종교인 <낭만적 기독교>를 만들어 내었다. 부패하여 기울어가던 동서 로마가 받아들인 것은 바로 동양의 낭만 종교와 유대교의 융합된 사상인 <낭만적 기독교>였다. 이 두 요소의 융합을 위한 그의 투쟁이 바로 그의 <개종의 경험>이었다. 그가 태어난 소아시아의 다소에서 배운 <낭만적인 동양 종교>와 그의 부모의 고향인 유대에서 배운 <유대교>를 융합하여 바울은 <낭만적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

 

바울은 유대민족이 학수고대하던 메시아의 시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실현됐으며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멋진 <구속론>을 만들어 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각 국가의 신들(gods)을 버리고 한 신(one God), 한 구속자(one Redeemer), 한 구세주(one Savior)를 믿어야 한다고 그는 선교하였다. 로마의 식민지국들의 신민들이 누구든지 <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바울의 생각은 그 당시 <로마 황제>라는 <유일신(Zeus)>을 전파하던 로마의 <식민지 지배논리>와 일치했다. 각 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전통>의 종교를 버리고 한 신(one God)으로 뭉쳐 <한 세계국가>를 이루자는 것이 바로 로마제국이 바라던 <지배논리>였다. 더구나 바울이 강조한 하나님은 하늘 위 어디엔가 앉아있는 <초자연적, 초역사적 존재>이니까 더욱 바람직했다. 역사에 참여해 왔던 <엑소도스의 신>, <해방의 신, 야웨>를 신봉하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민족전통>을 고수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로마제국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낭만주의자 바울은 엉뚱한 비역사적 <환상의 신>을 전파함으로 로마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바울이 강조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은 신자들로 하여금 <수동성>을 갖게 했다.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구원>은 투쟁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은사>로 받는 것이며, 그것도 <이미 예정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예정론>은 신자들의 <수동적 자세>를 낳고 말았다. 인간은 구약성서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단지 하나님의 활동의 <단순한 목적물>이며 은혜, 혹은 저주의 <대상물>이 되었다. 인간이 신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인정한다고 바울은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단지 미덕과 죄의 목적물이지 자주성을 지닌 창조자는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남은 일이란 단지 믿고 영원함이나 맛보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고대 동양종교의 신화에 나오는 교리에 따라 만든 <원죄론>은 인간의 <수동성>, 완전한 <절망감>, 그리고 완전한 <의존심>을 주어 인간에게 <운명론>과 <허무주의>에 빠뜨려버리게 했다. 이것이 바로 로마가 그 점령국의 신민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사상이었던 것인데 바울이 종교적으로 모두 해결해주었다.

 

또한, 낭만주의자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금까지 암흑이 지배하던 곳에 완전한 빛을 제공해준다고 가르쳤다. 창세 전부터 이미 <신이던 예수>는 단지 인간의 형상을 입은 자로 잠깐 세상에 내려와 살다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였으며 머지않아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할 것이라고 그는 가르쳤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의 은사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란 단계적으로 <인간의 투쟁과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은사>로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쳤다. 진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는 자에게 바울의  초자연적인 <영적 메시아론>은 그 신봉자에게 휴식을 주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구속론은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보지 않는 <추상적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리란 처음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속론을 믿는 신도들에게 남은 유일한 활동은 <단지 믿음>으로 얻은 그의 구원을 축하나 하는 일이다.

 

천도교 같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종교가 <사회적 양심>을 강조하고 타인 지향적이었음에 반하여 <낭만적 기독교>는 그 근원이 <종교적 이기주의>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모든 <수동성>은 일종의 <이기주의>이며 그 속에서 개인은 단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신이, 운명이, 국가가, 강대국들이 그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는 것만 생각한다. 낭만주의적 기독교인들은 단지 자신만 생각하며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니체가 멋지게 이런 유형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는 몹시 그 자신에 몰두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따라서, <사회적인 양심>을 지닌 변혁운동가에게 최대의 적은 이러한 <낭만적 종교>를 믿는 개인주의자들이다. 낭만주의 종교는 <사회적 양심>을 지닌 분들이 사회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 더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혁명을 시도해야 하는 로마제국의 신민들에게 있어서 <낭만주의 종교>는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낭만주의자 루터와 토마스 뮌써

 

<종교개혁>을 했다고 잘 알려진 루터(Luther)도 단지 <믿음으로만>을 강조한 바울의 낭만주의 종교로 되돌아간 것에 불과하다. 광산과 제련소를 소유한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던 루터는 종교개혁운동이 로마교황청과 분리되는 데 성공하자 노동자, 농민, 광부, 등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문제에서는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봉건영주의 횡포에 반대했던 종전의 입장을 버리고 낭만주의자 바울이 로마서 13장 1절에서 말한 대로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수동성>과 <절대 의존성>, 그리고 <침묵주의>를 강조했다. 루터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고대 낭만적 종교의 교리인 <원죄설>을 받아들여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선을 행할 능력이 없으며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만> 은사로 죄 사함을 받아 구속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와 같은 낭만적 신앙의 관점에 반대한 루터와 동시대인이었고 같은 성직자였던 토마스 뮌써(Thomas Munzer)는 1490년 가난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써는 처음에는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 참여했으나 루터의 <사회적 양심>이 모자란 것을 알게 되자 루터와 결별하고 하층 시민들에게 글과 설교로 변혁의식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들과 함께 농민전쟁을 전개하였다. 뮌써는 인간이 각자 자신과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자주성을 지닌 일반시민이면 누구나 다 사회를 개혁할 힘을 소유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뮌써는 사회를 개혁할 변혁추진세력을 신, 메시아, 강대국, 등 사회밖에 있는 외부적 힘에서나 어떤 신학적 이론에서 찾지 않고, 일반 대중들 즉, 노동자, 농민, 광부, 막일꾼, 등에서 찾았다. 뮌써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역사창조의 주인은 바로 <자주성을 지닌 근로민중>이라고 믿었다. 뮌써는 1525년 5월 27일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혁명적 지조를 지켰다.

 

결론

 

바울은 그가 처했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침략자인 로마제국의 잔악한 착취와 억압행위를 아무 증오 없이 객관적으로, 혹은 관조적으로, 더 나아가서 감상적으로, 혹은 친 로마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바울이 만들어 낸 <낭만적 기독교>의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수동성>의 후과는 유대민족의 웅위활달하던 기상이 큰 손실을 입고 허무주의와 자포자기, 운명론에 빠져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주와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일부 코리안들이 사대주의와 민족 허무주의에 빠져 <민족 개조론>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70년간 이남을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해온 미 제국주의는 <믿음으로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적 <바울 기독교>를 전파하여 신도들에게 자주적 독립심보다는 절대 의존심을, 자기 확신보다는 기댐을, 진실을 토로하기보다는 침묵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인간이 역사의 목적물에 불과한 바울의 <낭만주의적 기독교>를 종식하고 인간이 역사의 주인임을 믿는 <자주사상>으로 무장할 때가 되었다. 그 길만이 현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나는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받아들인 낭만적인 <영적 그리스도>라는  해석도 결국 <바울의 뇌수의 기능>의 산물이지 따로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만들어 낸 <영적 그리스도>도 결국은 바울의 두뇌가 <가장 이상적인 구세주>로 만들어 놓은 고급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늘 저 어디에선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다가 다시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하러 곧 임재할 그러한 낭만적  <영적 구세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한 후 곧 재림하리라고 학수고대했던 초대 교인들도 예수의 재림시기가 연기되자  많이 동요했던 사실을 신약성경은 여기저기에서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바울의 낭만적 <영적 그리스도>를 2,000년 동안 기다렸으나 아직 재림하지 않고 있다. 바울의 낭만적 구원론은 더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자주사상>이다.  오직 <자주사상>으로 무장한 인간만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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