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해방 19] 내가 본 구약성경(11) 제2의 엑소도스를 기다리며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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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19] 내가 본 구약성경(11) 제2의 엑소도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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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31 20:0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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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9]

내가 본 구약성경(11)

 

 

바벨론 물가에서

 

- 제2의 엑소도스를 기다리며 -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바벨론 포로생활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의 야웨신앙의 역사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장의 시작이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BC 597년과 BC 587년 두 번에 걸쳐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오로지 가난한 서민들만 예루살렘과 유다땅에 남아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도피하여 이집트로 망명의 길을 떠났으나 이들은 <엘리펀틴 문서(Elephantine Papyri)>에 의하면 모두 곧 이집트문화에 동화되어 이스라엘의 민족종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다. 반면, 그 당시 가장 번성한 세계적인 강대국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의 생활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포로였지만 어는 정도의 사회적 자유가 부여되었다. 특히 사업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어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며 도시 안이나 도시 근교에서 유대인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 수 있는 자유도 허용되었다. 마치 재미동포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자유와 동포들끼리 모여 살며 코리아 타운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민족종교인 <야웨신앙>을 어떻게 유지하며 사느냐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유다땅에서 누리던 초라한 문화에 비교할 때 바벨론의 물질문명은 엄청나게 뛰어난 찬란한 것이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요단강 가의 농업생산물은 거대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가의 바벨론 농경생산물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 성전은 우뚝우뚝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바벨론 신전들에 비교할 때 초라하기 끝이 없었다. 많은 유대인은 그들의 전통적인 신앙이 바벨론의 종교보다 열등하다고 믿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거대한 바벨론 문화에 충격을 받아 어리둥절해 하였으며 상당수는 그 문화에 쉽게 동화되어 버렸다. 미국에 이민 온 코리안들이 미국의 화려한 물질문화에 당황하여 어리둥절하다가는 전통적인 코리안 문화를 벗어던지고 쉽게 미국문화에 동화되어 매몰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많은 코리안이 그들이 믿던 단군교, 천도교, 등의 민족종교를 쉽게 버리고 서구 종교인 기독교의 교인이 되듯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도 상당수가 그들의 초라한 민족종교인 <야웨신앙>을 버리고 바벨론종교를 믿어버렸다. 야웨신앙을 믿던 경건한 유대인들마저도 화려한 바벨론문화 속에서 예배 보는 것이 어색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들은 예배 볼 처소도 없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시편 137편에 잘 나타나 있다.

 

“바벨론 물가에 앉아

시온(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눈물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닥 시온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웨의 노래를 부르랴!” (137:1~4)

 

그러나 민족 혼인 <야웨신앙>을 지키려던 이름없는 무명의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슬피 읊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도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파괴자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시편 137:5~9)

 

그러나 그렇게 화려한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어 매몰되는 과정에서도 이스라엘 민족 전통의 신앙인 <야웨신앙>, 즉 <모세신앙>이 죽지 않고 생존했을 뿐 아니라, 그 신앙의 내용이 보다 심화되고 풍요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강인성>과 <창조적인 생명력> 때문이었다. 물론 많은 유대인이 화려한 바벨론 물질문명에 현혹되어 매몰되었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그들의 과거 전통에 더욱 매달려 <야웨신앙>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유대인 공동체(Jewish C0mmunity)>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바벨론 제국에서 유대인들의 민족적 이상인 야웨신앙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예레미아>와 <에스겔> 그리고 무수한 무명의 선지자들이었다.

 

예레미아는 비록 몸은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바벨론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야웨는 예루살렘 성전에 매여 있지 않으니 먼 타국에서도 기도로 야웨께 가까이 나갈 수 있다고 격려했다 (예레미아서 29:12~14). 이때 바밸론 포로들이 성전도 없이 예배 보며 눈물 흘려 기도한 내용은 상당수가 시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중 몇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편 130편 1절에,

 

“야웨여,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주여, 이 부르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애원하는 이 소리, 귀 기울여 들으소서.”

 

또 시편 138편 2절에서,

 

 “거룩한 당신의 궁전 향하여 엎드려

인자함과 성실함을 우러르며

당신의 이름 받들어 감사기도 드립니다.”

 

이들 시편을 읽노라면 우리 재미동포들의 고독한 신세가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더 잘살아 보겠다고 미국으로 건너온 우리 재미동포들의 신세가 바로 바벨론 포로 시절의 유대인들과 흡사하여 눈물짓지 않을 수가 없다.

 

사제작가의 활동

 

이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의 종교전통을 새롭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때 활동한 유대인들은 에스겔과 무명의 사제들이었다. 에스겔은 BC 597년 여호야긴 왕과 같이 바벨론으로 끌려온 포로 중 하나로 솔로몬 왕 때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으로 취임했던 사독(Zadok)의 후손으로 예루살렘 사제 중 하나였다. 그는 옛날의 사제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신앙적 전통을 상당수 암기하고 있었으며, 포로로 잡혀갈 때 그의 가방 속에 일부의 거룩한 기록들(Sacred Writings)을 가지고 바벨론에 갔다. 유대인들은 에스겔의 집에 모여 예배를 보았다. 유대인 포로들은 예배처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유대교 회당(Synagogue, 함께 모인다는 뜻))을 짓게 되었다. 이것이 회당의 유래였다.

 

이때 익명의 사제작가들(P작가들)은 에스겔과 함께, 혹은 독자적으로 그들의 민족전통인 <야웨신앙>을 새롭게, 그들의 역사적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가르치고, 설명한 내용을 편찬하여 책으로 엮어냈으니 [오경(Pentateuch)]이 이때 완성되었으며, [신명기 역사서], 즉 [열왕기 상 하서]가 완성된 것도 바벨론 포로시기였다. 이들 사제작가에게 있어서 <전통>이란 단지 과거의 사적들을 박물관에 간직해 놓은 죽은 문자나 물건이 아니라, 그들의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맞는 살아있는 야웨 하나님의 산 말씀이었던 것이다. <모세 전통>과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 경험에 비추어 새로이 재해석되었다. 이들 유대인 포로들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한 예언내용이 역사적 사건들로 확인되자 그들 속에 나오는 <소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해방의 날>, 즉 <제2의 엑소도스>를 갈망하게 되었다.

 

이때 에스겔과 무명의 사제들이 지나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소명>을 세계사적 견지에서 강조한 것은 배타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화려한 바벨론 문화 속에 매몰되려는 <민족정기>를 되살려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각도에서 사제작가들의 지나친 <유대교주의>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벨론 문화 속에서 매몰되어가는 민족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지나치게 <야웨신앙>을 강조한 사제작가들은 역사적 드라마 속에서 <인간적인 면>, 즉< 인간적인 갈등>, <좌절>, <근심>, 그리고 <의심> 등을 동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단지 <신적인 면>, 즉 <신학적 구조>에 맞추어 모든 문제를 다루었다.

 

앞 장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다윗과 솔로몬 왕 때(BC 950년 경) 활동한 <야웨작가(J작가)>의 <에덴동산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간의 갈등, 회의, 고뇌, 좌절 등의 인간적인 요소가 사제작가들의 글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시절에 활동한 이 사제작가들(BC 550년 경에 활동함)은 이스라엘의 과거 전통적인 역사에 관한 현실적인 견해를 우리들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사제들의 <신학적 채색안경>을 통하여 그들의 전통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이야기 중 사제작가들이 손을 댄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사제들의 <신학적 구조>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 설교들이다. 또한, 사제들의 글 중 상당수가 <예배용>으로 쓰여졌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자주의자들이 성서의 이야기들을 역사적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역사적인 사실인 양 이야기 하거나 아무 곳에나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다.

 

2의 엑소도스에 대한 기대감

 

페르샤(Persia) 왕 사이러스는 BC 553년 메디아를 공격하여 3년 만에 메디아 왕 아스티아지를 물리치고 메디아 전 지역을 차지하였고(BC 550년), BC 539년 티그리스 강가에 위치한 오피스 전투에서 바벨론 군대를 패배시키고 몇 주 내에 전투도 없이 바벨론 도시를 정복하게 되니 바벨론 제국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바벨론 제국의 폭정에 신음하던 유대인들은 구원군, 즉 페르샤 군이 바벨론으로 쳐들어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기뻐하며 <해방의 날>, 즉 <제2의 엑소도스>를 기대하며 소망에 부풀게 되었다. 그들이 기대한 대로 페르샤 왕 사이러스는 관대한 왕으로 강제노동을 폐지하고, 주택조건을 개선하고, 또 아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이 강제로 끌어온 포로들을 고향에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이러한 국제정치의 변동으로 비롯된 새로운 엑소도스, 즉 바벨론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에 부푼 시대에 활동한 무명의 선지자가 있었으니 우리는 그를 <제2 이사야>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의 희망에 찬 예언이 이사야서 40장에서 55장까지 사이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에서부터 39장까지는 BC 742~700년 사이에 활동한 예루살렘에 살던 이사야에 의해 써졌지만, 이사야 40장부터 55장은 그 시대적 배경이 다른 내용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살던  이사야 선지자보다 150년 후인 바벨론 포로 시대에 살던 무명의 선지자인 <제2 이사야>에 의해 써진 것으로(약 BC 540년경) 일부 구약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 후 페르샤 왕 사이러스는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허락했다.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제2이사야>의 제자인 무명의 예언자가 이사야서 56장부터 66장까지의 내용을 기록하여 이사야서를 완성한 것으로 일부 학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는 이 예언자를 <제3의 이사야>라고 부른다.

 

<제2 이사야>는 페르샤의 사이러스 왕이 새로이 등장함과 동시에 바벨론 학정이 끝나고 모세 같은 새로운 종이 나와 바벨론 포로인 유대인들을 이끌고 제2의 엑소도스를 시도할 것을 간절히 바랐다. <신약시대>에 메시아의 도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용된 [이사야서]의 기쁜소식들은 바로 이러한 근동의 정치적 변동에서 비롯된 새로운 <출애굽>에 부푼 이스라엘인들의 소망을 표현한 내용들이었다. 메시아 예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을 가리켜 마가가 인용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는 말은 바로 이사야서 40장 3절에 기록된 내용으로 <제2의 엑소도스>, 즉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의 해방을 예비하라는 뜻이다. 이때 새로운 엑소도스를 이끌 종은 바로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혼인 <야웨신앙>을 지켜온 <남은 신도들>의 모임인 <언약의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모세 같은 새로운 개인 지도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 종에 대한 예언은 [제2 이사야]에 네 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대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42장 1~4에 의하면,

 

“여기에 나의 종이 있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

그는 기가 꺽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

 

49장 1~6에 의하면 그 종은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특히 신약시대에 <예수의 고난>으로 해석된 52:13~53:12에 나오는 <고난의 종(Suffering Servant)>은 바벨론 포로생활 중 민족혼인 <야웨신앙>을 지키며 그 신앙을 전파하느라고 주위의 바벨론인들은 물론 유대인들의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으며” 그 무리들의 핍박을 받아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고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고난을 받은 <야웨신앙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아마 <제2 이사야>가 그런 종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바벨론 문화 속에서 매몰되어 꺼져가는 민족혼을 지키려는 무명의 예언자들에게는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없었습니다.

눈길을 끌만한 볼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만 보면 피하였듯이

모든 사람이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53: 2~3)

 

그런데 사실상 그는 민족전통을 지킴으로써 유대인들이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그들이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습니다.“ (53:4)

 

유대인들은 대다수가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어 거대한 바벨론 신전에 드나들며 이방신을 섬겼으며 사업에 성공하여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민족전통을 지키면서 고리타분한 <민족이야기>나 하는 야웨 예언자를 시대에 뒤진 놈이라느니, 빨리 바벨론화 되지 못하는 저능아 등으로 악평하며 조소했다. 더구나 바벨론 정부는 유대인 포로들이 사업할 자유와 예배할 자유는 주었지만, <민족해방운동>은 철저하게 막았다. 이 속에서 민족의 독립에 관심을 두고 민족해방 투쟁을 한 예언자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이때 이 무명의 고난의 종이 가슴에 멍이들 정도로 참을 수 없었던 치욕스런 일은 같은 동족으로서 유대인들이 유대인 민족지도자들을 핍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찔림은 유대인들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그들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그들이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그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그들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3: 5~6)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려다 바벨론 당국에 붙잡혀 가서 심문을 받게 되었을 때 이 <고난의 종>은 동지들의 안녕을 위하여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주는 자가 어디 있었습니까?“ (53:7~8)

 

그런 고난의 종들 가운데 혹자는

 

“인간 사회에서 단절되었으며

유대인들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53: 8~9)

 

그러나 그 고난의 종은 민족해방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53:10)

 

그리하여 그의 뜻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마침내 <제2의 엑소도스>는 실현되었고, 그 고난의 종의 제자들은 누가복음 4:16~20에 인용된 바와 같이

 

“억눌린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는 고침을

포로된 자들에게는 자유를

갇힌 자들에게는 석방을“ (이사야 61:1)

 

선포했다. 그리하여 그 <고난의 종>은 희생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되었다. 이제 그 고난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 높이 솟아오르리라.“ (이사야 52: 13)

 

또한,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53:11)

 

또한, 그 <고난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믓해 하리라.“ (3: 11)

 

고< 제2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다.

 

고난의 종 예수

 

바벨론 제국의 포로 시대에 <제2의 엑소도스>인 민족해방운동을 벌이던 무명의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고난을 받으며 혹자는 옥에 갇히고, 고문받고, 처형당하고 고립되었듯이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상태에서 <민족혼>을 지니고 인간의 <자주성 회복운동>, 더 나아가 <민족해방운동>을 시도했던 예수도 마찬가지로 로마의 학대를 받다가 마침내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학살되었다.

 

예수는 그 시대에 그가 해야 할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는 패배자인 것 같으나 그의 십자가 사건을 가슴에 되살린 제자들에 의해 그의 과업, 즉 <엑소도스의 과업>은 계승되었다. 스승을 이해하지 못했던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이 맡기고 간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이 힘줄이 이어지고 살이 붙어 가죽이 씌워지고 숨이 들어가자 제발로 일어서서 대단히 큰 무리를 이루었듯이, 로마문화 속에 흡수되어 민족혼을 상실했던 유대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언약의 공동체>, 즉 초대교회를 형성했다.

 

결론

 

지금 분단된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사는 우리 재미동포들은 지금 태평양 바닷가에 앉아 코리아의 분단을 생각하고 울지 않을 수 없다. 재미동포들은 거대한 현대 바벨론의 문화 속에 쉽게 동화되어 우리의 민족전통을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쳐버리고 조상마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바꾸고 바벨론 종교를 믿고 있다. 민족혼을 지키려고 몰골이 앙상하도록 발버둥 치고 있는 코리안 예언자들에게 저 바벨론의 숭배자들은 내뱉으며 하는 말이,

 

“왜 세계인이 되어 저 태평양을 바라보고 앞으로 전진하지 않고 그 조그마한 나라, 못난 나라 코리아의 전통과 혼을 찾아 무얼 하냐?”

 

고 조소한다. 심지어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고 민족 분단의 비극을 끝장내려고 고생하는 예언자들을 <친북>, <종북>으로 몰아 고립시키고 있다. BC 540년경 <제2 이사야>가 본 <고난의 종>은 예수 시대에도 지금도 다름이 없이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은 진리가 예수에게서 완성된 것으로 믿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사는 달라진 것이 없다. 단지 현재의 제국주의의 식민지 착취구조가 현대화되고 복잡해졌다는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태평양 바다물가에서, 혹은 미시간 호숫가에서, 혹은 허드슨 강가에 앉아 분단된 코리아를 향해 눈물짓는 코리안 예언자들은 다시 새로운 인간해방, 민족해방, 조국통일인 엑소도스를 실현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엑소도스를 실현할 모세임을 자각하고 이 시대의 증인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이 시대의 <고난의 종>으로 활동해야 할 사명감을 절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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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통일대국은 민족사의 순리!
김정은 위원장, 섬분교와 최전연지대, 산골학교 교원들과 기념촬영
[성명] 북 민화협, 침략자, 도발자에게는 무자비한 징벌만이 있을 것 경고
이북의 정치는 왜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
[동영상]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8월 12일(토)
민변 “이재용 판결, 평가는 준엄 형량은 미약…아직 갈 길 멀어”
국민 10만4천명 “KBS·MBC 적폐 이사 파면” 청원
50대 남성, 남과 북의 지도자에게 호소하는 유서 남기고 분신시도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2일(월)
전쟁미치광이들의 부질없는 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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