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해방 18] 내가 본 구약성경(10)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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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18] 내가 본 구약성경(10)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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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2 17:4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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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8]

내가 본 구약성경(10)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마음의 할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수소 소장)

 

 

요시아왕의 종교개혁

 

남조왕국 유다의 가장 암흑시기였던 므나쎄(BC 687~642) 왕 때 예루살렘 성전은 아시리아의 신들 형상으로 장식될 정도로 친 아시리아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아시리아의 마지막 강력한 왕 아쉬르바나팔이 BC 627년에 죽자 아시리아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기 7년 전에 유다왕이 된 요시아(640~609)는 <정치와 종교개혁>을 시도하면서 유대민족의 독립을 시도했다. 그때 마침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서(The Book of the Torah)]가 발견되었다(BC 621). 요시아의 서기장이 그 귀중한 문서를 왕에게 보이자 그 내용을 읽고 난 요시아 왕은 놀람을 금치 못해 옷을 찢고 백성들을 성전에 모이게 하여 <모세언약>을 새롭게 하는 예식을 거행케 했다. 이것이 <유월절(Passover)>의 유래이다.

 

이때 요시아 왕은 성전에 붙은 아시리아적인 흔적을 지닌 어떤 신의 행태도 모두 뜯어내고, “도깨비나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자들과 가문의 수호신과 온갖 역겨운 우상들”을 제거시킴으로 <종교개혁>을 시도하였다. 요시아 왕 만큼 <모세전통>을 부활시켜 <민족정신>을 되살린 유다왕은 없었다. 므나쎄 왕 때 친 아시리아 정책을 썼던 관계로 아시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민족정기>가 말살되려는 것을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으로 <모세전통>, 즉 <민족전통>이 되살아나 아시리아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요시아 왕의 지원을 받아 신명기 작가(D작가)는 민족정신인 <모세전통>을 되살려 <신명기 종교개혁>을 시도하여 오경 중에 하나인 [신명기서]를 출판했다(BC 621년경).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의 내용은 신명기 12~26장에 실려 있다. 희브리 말 <토라(Torah)>란 <법적인 문제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르침>이란 뜻이다. 따라서 [토라]란 규율의 법전(code of rules)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종교인 <야웨신앙>을 가르치고, 선포하고, 해설한 내용이다.

 

이 요시아 왕에 의해 주도된 <신명기 종교개혁>의 결점은 그것이 단지 <피상적인 경전주의>와 <얄팍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킬 정도였지 신명기 10장 16절에 표현된 바와 같은 <마음의 껍질>을 벗기는 종교개혁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에의 집중예배는 단지 야웨가 그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시민들로 하여금 거짓 안정을 믿게 했다. [토라]는 단지 그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신명기 신학>은 역사의 신 야웨의 신앙을 단지 복과 화를 나누어주는 단순한 <성공의 철학>으로 축소시킨 점이었다.

 

예레미아의 예언

 

예레미아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처음에는 요시아 왕에 의해 주도된 <신명기 개혁>에 찬성하고 그의 고향 아나돗에서 예언활동을 시작했으나 곧 신명기 작가의 단순한 도덕적 논리에 반기를 들었다. 예레미아는 단지 전통적인 종교예식의 피상적인 개혁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중심부>인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마음의 할례>를 요구했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운동에 찬성하고 뛰어든 예레미아의 예언활동은 40세도 안된 젊은 왕 요시아가 메기도에서 BC 609년 갑자기 전사하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시리아가 약화되자 이집트왕 넥코는 시리아와 유다를 이집트의 통치권 안에 두려고 넥코의 군대는 BC 609년에 북으로 쳐들어 왔다. 이집트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요시아 왕은 출정하였다가 메기도에서 요절하자, 이집트 왕 넥코는 유다를 점령하고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킴을 그의 꼭두각시 왕으로 세웠다. 여호야킴이 즉위하자마자 한 일은 이집트에 바칠 조공을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세를 징수한 일이었다 (열왕기하서 23:35). 여호야킴은 전형적인 악덕 군주로서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권력욕에 사로잡힌 호색가였다. 그는 솔로몬 왕처럼 그의 거대한 궁궐을 짓기 위하여 백성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했고(22: 13), 백성들이야 굶던 말던 사치스런 삶을 즐겼으며 (22: 15), 양심적인 예언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단지 이집트의 힘만 믿고 선량한 민족주의자들을 무수하게 죽이고, 야웨의 예언자까지 살해했으며(22: 16~17), 그에게 반기를 드는 자들은 즉석에서 사형시켰고, 이집트 이외에 신도 인간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 이집트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그는 그의 부친 요시아 왕이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이교주의>를 재부활시켰다.

 

이 암담한 역사 속에서 용감하게 대중 앞에 나서 활동한 예언자가 바로 예레미아이다. 여호야킴이 통치한 지 1년째 되는 해에 예레미아는 성전에 들어가 [성전설교]를 했다. <모세전통>에 충실한 예레미아는 <다윗 언약 신학>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야웨의 임재의 장소로서의 <성전예배>를 부인하고 <출애굽>과 <광야생활>에서 생겨난 <모세언약의 전통>을 강조했다. 그는 성전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성전을 믿고 안심하지만 나는 샤일로를 해치웠듯이 이곳을 해치우고 말리라.” (예레미아서 7:14)

 

그는 성전이 파괴되고 남조유다왕국도 북조왕국 이스라엘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한 예레미아의 성전설교를 왕도, 사제들도, 백성들도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이집트만 믿으면 북에서 오는 바벨론의 침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때 예레미아의 가장 큰 적은 <심판의 골짜기>를 겪지 않고도 <신의 구속>에 이르는 지름길을 약속한 인기 있는 사제들이었다. 이들 <정신적인 사기꾼들>은 전혀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평화로다, 평화로다!> 외쳐댔다. 이들은 문제의 근원을 제거시키지 않고 단지 가벼운 치료로 백성들의 뿌리 깊은 병을 고치려 했다. 이들 정신적 사기꾼들을 향하여 예레미아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두 남을 뜯어 먹는 놈들,

예언자나 사제 할 것 없이 모두 사기나 치는 것들,

내 백성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는구나.

사실은 괜찮은 것이 아닌데.

그렇듯이 역겨운 짓을 하면서 부끄러운 줄이나 알더냐?

부끄러워 했으면 괜찮고

창피한 줄이나 알았으면 괜찮다.“

 

예레미아는 이들 거짓 사제들이 헛된 소망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거짓으로 백성들을 속이며 야웨의 말씀을 공공연하게 노략질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은 <악성암>을 도려내어 깊은 내면적 치료를 가능케 하는 외과의사의 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예레미아가 더욱 고민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치료 불가능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선지자들의 말이 단지 귀머거리의 귀에 떨어질 뿐이며 단지 백성들의 조소거리밖에 되지 않음을 보고 고민한다(6: 10). 호세아가 이미 통찰했듯이 이 고집 센 백성들의 문제는 바로 마음 속이 병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단지 제도들, 즉 법괘(3: 16), 할례의식(4:4), 율법(8:8), 제물(7:21~26), 성전자체(7:4), 등을 믿고 있었다. 언약의 공동체가 꼭 지녀야 할 <사회적 결속>은 파괴되었고, 불신풍조가 만연되어 백성들은 서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남사회처럼 억압의 기구만 피라밋처럼 높이 쌓이게 되었다. 사회의 하층시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되어 갔다. 서로 죽이고 서로 빼앗고, 서로 속이는 흉흉한 세상이 되었다. 디오게네스처럼 예레미아는 의인 하나를 만나기를 원하나 실패하고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에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며,

너희 눈으로 찾아 다녀보아라.

장마당마다 찾아 다녀보아라.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는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5:1~3)

 

이때 백성들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일치시키고 역사적 현실을 꿰뚫어본 예레미아는 역사적 심판이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나타날 것을 미리 내다본다. 첫째는 자업자득으로 오는 심판이다. 예레미아는 반복해서 강조하기를 인간의 비극은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고 말한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자연을 마구 파괴할 때 인간은 수질오염과 공기오염으로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도 이 원리이다. 역사의 심판은 인간의 악한 생각과 행위의 결과로 초래된다는 것이다. 예레미아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땅을 내려다보니 끝없이 거칠고 하늘을 쳐다보니 깜깜합니다.

산을 바라보니 사뭇 뒤흔들리고 모든 언덕은 떨고 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옥토는 사막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아 4;23~26)

 

둘째로, 역사의 심판, 즉 야웨의 심판이 국제정치 상황 속에서 정치적 형태를 취하고 나타날 것을 미리 내다본다. 칼케미시(Carchemish)에서 이집트와 바벨론이 전투를 한 후 북조 이스라엘의 적은 명백히 들어났다. 예레미아는 북의 적 바벨론의 침투를 막지 못하면 예루살렘은 멸망하고야 말 것을 내다보며 울었다(8:18~9:3). 이러한 급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율법>과 <성전예배>에만 미쳐있던 무리들을 보고 예레미아는 가슴을 치고 탄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예레미아가 예언한 대로 여호야킴 왕이 죽고 18세 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를 계승하나 왕이 된지 3개월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어린 왕과 왕비, 장군들, 신하들 그리고 은장이들과 대장장이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으며 단지 가난한 지방민들만 남겨두었다(BC598~597).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 즉 요시아의 가장 어린 아들 마따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키야로 바꾸게 하였다. 시드키야 왕은 친 이집트정책을 쓰며 바벨론에 반기를 들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드키아 왕을 사로잡아 심문하며 시드키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을 살해하고 시드키야의 눈알을 뽑은 다음 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때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 왕궁, 그리고 성안 건물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리하여 남조왕국 유다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BC 587년).

 

신앙의 위기

 

예레미아처럼 그의 백성들의 고난을 자신의 것으로 일치시키고 고뇌 속에서 씨름한 예언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를 가리켜 <고난의 선지자> 혹은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예언 경력 40년 동안 줄기차게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거짓 종교인들과 충돌했다. 예레미아는 가장 인간적인 예언자로서 인간 역사의 비극과 신의 섭리와의 관계를 놓고 깊이 번뇌한 사람이었다. 그는 의심, 모반, 자기비하, 그리고 절망, 등으로 가득찬 <신앙의 시련>을 겪는다. 그는 과연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는지 의심하며 다음과 같이 야웨 신에게 반문한다.

 

“야웨님, 제가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그때마다 옳은 것은 하나님이셨기에

법 문제를 하나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나쁜 자들이 만사에 성공합니까?

사기밖에 칠 줄 모르는 자들이 잘 되기만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나무처럼 심어

뿌리를 박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군요.

그런 자들은 말로는 하나님과 가까운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 떠나가는 것들인데 말입니다....

저것들을 양처럼 끌어다 죽여버리십시오.

잘라내었다가 그날 당장 죽여버리십시오....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잘못으로

짐승이나 새가 죽어 없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여도 주께서 보지 못하신다고

저들은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예레미아 12:1~4)

 

그를 잡아 죽이려는 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해 다니면서 깊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예레미아가 하나님께 한 호소였다. 언제나 잘먹고 잘살고 우쭐대는 것은 악인들이었다. 그는 이제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그의 태어난 날까지 저주한다.

 

“저주 받을 날,

내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나를 죽이셨던들

어머니 몸이 나의 무덤이 되어

언제까지나 탯속에 있었을 것을!

어찌하여 모태에서 나와

고생길에 들어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수모를 받으며 생애를 끝마쳐야 하는가!“ (예레미아 20:15~18)

 

그러면서도 그가 본 <진실의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탓한다.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 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20:7~9)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아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인간 됨됨이와 그의 예언자적 사명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엿볼 수 있다. 예레미아는 천성이 조용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예언자적 사명은 예레미아의 천성적인 예민한 기질과 맞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과 친구들의 애정과 영접을 갈망했다. 그는 그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 아나돗에서 친지들과 평화스럽게 사는데 만족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살던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하며 명확한 역사의식이 있던 사람으로 <역사의 미는 힘>, 즉 <야웨의 힘>에 끌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세의 꼭두각시들인 왕들과 그 밑에서 기생하며 독버섯처럼 무성하게 자라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잠들게 하는 <거짓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이들의 지배 밑에 속고 사는 백성들 모두가 예레미아의 비난의 대상이었기에 그는 끊임없이 적들에 둘러싸여 고독을 되씹어야 했다. 고독의 고통이 그의 가슴을 타눌렀다. 예레미아가 설 땅은 없었다. 그는 결혼도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사교적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절망의 벼랑에서 야웨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는 과연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는지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는 그의 영혼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그를 낳아준 어머니마저 원망한다.

 

“아 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15:10)

 

그러나 그의 비통함이 아무리 심해도 그것은 <자기중심적 태도>에 불과했다. 그는 자살할 기분을 느끼는 가운데 차차 깨어나 죄없는 백성들의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고난이며 하나님의 고난이 바로 백성들의 고난임을 깨닫는다. 최제우 선생이< 인내천 사상>을 깨달은 순간과 같다고 할까? 이 고난 받는 백성들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슬픈 감정(pathos)에 참여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심판>과 <재생>, <파멸>과 <약속>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파괴는 결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건설을 뜻한다고 믿게 되었다. 예레미아는 이제 절망의 골짜기에서 고개를 들고 먼 미래의 <하나님의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공동체(New Communiyy)>에 관한 비젼을 갖게 된다. 재앙 저 너머에 보이는 <새로운 백성(New People)>과 <새로운 시대(New Age)>에 대한 꿈을 갖게된다.

 

남조왕국 유다와 북조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져 빚어지는 민족분단의 비극이 곧 끝이 나고 <통일된 새로운 공동체>가 건설될 날을 내다본다. 새로운 공동체의 새로운 언약은 31장 31~34절에 잘 나타나 있다. 새로눈 공동체에서는 율법이 돌에 새겨지지 않고 마음, 즉 <인간 존재의 내면적 중심>에 기록되리라고 예언한다. 예레미아가 이러한 낙관적인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강대국들, 즉 바벨론, 페르샤,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 통치 밑에 심한 억압과 착취를 받는 가운데 그들의 <민족 정신>은 마음 속 깊이 다져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로마의 착취와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새로운 여호수아, 즉 예수와 제자들은 그 당시 가장 밑바닥 하류민들과 함께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Love Community)>를 형성하게 된다. 이 공동체는 예레미아의 예언처럼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마음에 새겨진 율법>, 즉 <마음에 새겨진 예수>를 가지고 모여든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새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였다. 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New Testament)>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눈물의 선지자 예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며 울다가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죽었을 뿐, 역사적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왔다고 하나 예수를 따르던 일부 제자들과 신도들은 화형에 처해졌으며 고난의 길을 감수해야 했다.

 

계속 주변의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아온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그리도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아온 수난의 역사로 점철된 코리아의 역사와 같을까!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눈에 보이는 황토가 단순한 붉은 흙이 아니라, 원한 많고 눈물 많았던 선조들 피와 살과 뼈의 더미라는 것, 그 피와 살과 뼈의 더미 위를 오늘도, 그들 선조들의 것 만큼이나 큰 원한과 눈물을 안은 코리안들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는 것, 남도의 뜨거운 태양, 질기고 뻗신 쑥, 탱자나무 가시, 삐비꽃들이 더 이상 자연의 현상들이 아니고 불행한 조국 코리아의 역사 속에서 죽은 이들의 고통의 신음과 슬품의 통곡의 현상이라는 것, 그리하여 태양이 불타고 쑥이 뻗어가고 삐비꽃들이 패는 동안은 우리는 그 신음과 고통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것, 아니 단순한 자연의 그 현상들이 신음처럼 통곡처럼 보일 수 밖에 없는 살아있는 신음과 통곡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러한 신음과 통곡을 종식시키려고 광주의거와 6.29,  6.15, 10.4 사건들이 벌어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가슴 속에 새긴 제자들이 새로운 공동체인 초대교회를 이루었듯이, 광주와 천안함, 세월호에서 흘린 피를 가슴 속에 새긴 코리안들은 현 로마의 압박이 심하더라도 남과 북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통일된 백성>, <새로운 통일시대>를 탄생시키고야 말 것이다. 새로운 통일된 코리아를 본받아 세계는 기어코 자주의 길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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