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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17] 내가 본 구약성경(9) 두 갈래의 메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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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14 12:3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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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7]

내가 본 구약성경(9)

 

 

두 갈래의 메시아상 

 

이사야와 미가의 비교연구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수소 소장)

 

 

성서를 읽을 때마다 놀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역사적 현실문제>를 다루었다는 사실과 그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불의를 지적하고 <사회정의>가 성취되도록 예언했다는 점이다. BC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 중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했고, 동시대에 남쪽 유다에서는 이사야(Isaiah, BC 742~700)와 미가(Micah, BC 722년 이전~701) 두 선지자가 활동했다. 이 두 선지자는 남쪽 유다의 번성기었던 우찌야(Uzziah, BC 783~742) 왕 말년에 그 활동을 시작하여 그 후 세 왕 요담(BC 742-735), 아하즈(BC 735-715), 그리고 히즈키야(BC 715-687)시대에 예언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는 아시리아 제국이 근동에 등장하여 BC 732년 아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3세, 745~727)가 시리아를 정복하였고, 10년 후인 BC 722~ 721년에는 이스라엘을 정복하였다.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조 유다에게도 불안정을 안겨주었다. 남쪽 유다 출신으로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아모스 선지자가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며 남북 이스라엘의 자체분열이라는 모순을 제거하고 <민족적 단결>을 이루어 남북이 <통일된 단일국가>를 이루어 북에서 쳐들어오는 강대국 아시리아 제국을 막자고 그렇게 호소했으나 남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머거리였다. 히즈키아 왕이 이사야의 충고를 받아들여 여러 높은 산에 모시고 있던 우상들을 철거하고 <종교개혁>을 시도하여 예루살렘성전 예배에 집중시키며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하려고 시도했으나 아시리아 왕 산헤립(Sennacherib)은 마침내 유다를 침략하여 모든 요새화된 성읍들을 점령하였고 예루살렘마저 포위하고 말았다. 히즈키아 왕은 이사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야의 예언적 견해는 단지 종교적인 것으로 예루살렘성전 예배만 강조한 것뿐이었지 상대적으로 아시리아 제국의 정치, 군사적 힘을 과학적으로 보는 견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히즈키아 왕은 왕실금고에 있는 금과 은을 다 아시리아 왕 산헤립에게 바쳤다. 다행히도 아시리아 제국 내의 분열로 아시리아군이 급히 퇴거하게 되니 예루살렘 성은 구사일생으로 멸망을 모면할 수가 있었다. 이 혼돈 시기에 남쪽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들이 바로 이사야와 미가였다.

 

이 두 선지자는 출신도 다르고 신학적 견해도 서로 판이했다. 그들이 그 당시 사회악을 지적한 <사회정의의 예언자>였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며 직업 사제족과 엄격히 구분되지만, 이사야는 사실상 예루살렘의 특권층 집안 출신으로 <야웨의 성전>과 <다윗의 왕좌>가 있는 예루살렘 시에 큰 애착심을 갖고 있었다. 이사야는 야웨와 다윗왕조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 <궁실신학자들 그룹>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것 같다. 그는 궁궐을 자유스럽게 드나들며 왕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사실상 이사야는 예루살렘 궁중예언자들과 함께 다윗왕조의 영원한 계승을 위하고 왕에게 충고하는 고문의 지위에 있었으며 시온성 예루살렘을 축복하며 다윗왕조의 왕권을 위한 정치적 이념을 뒷받침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이사야는 단지 종교적 견해와 정치적 견해 사이에 마찰이 생기자 남조 유다의 정책을 반대하는 예언을 하고 한동안 예언자 그룹에서 숨어지냈지만, 사실은 반예루살렘이라기보다는 예루살렘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하기 위함이었다.

 

나단을 비롯한 이사야, 신명기 작가, 등 예루살렘 예언자들은 사무엘하서 7장에 나타난 <다윗의 신학(Davidic Theology)>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 궁실신학, 즉 다윗신학의 요지는 나단선지자가 다윗에게 한 축복에 잘 나타나 있다.

 

“나 야웨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리라.

네가 살 만큼 다 살고 조상들 옆에 누워 잠든 다음,

네 몸에서 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튼튼하게 다지리라.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사무엘하 7:12~16)

 

이와 같은 야웨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우월주의>와 <다윗왕조 고수주의>는 이사야가 서 있는 신학적 입장으로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미가 선지자들이 서 있는 <광야전통>, 즉 <엑소도스>에 근원을 둔 <모세언약의 신학(Mosaic Covenant Theology)>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대립이 남북분단의 큰 원인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사야서가 66장으로 구성된 긴 책인데도 그 안에 <엑소도스 사건>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미가 선지자는 도시에서 자란 이사야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 동서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산간의 조그마한 마을인 모레셋에서 이름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 당시 지주들의 착취에 고통당하고 있던 가난한 농부들을 위하여 예언한 촌뜨기 예언자로서 아모스의 집과 거리가 가까운 것으로 보아 아모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당시 남부 유다에도 시골에는 <모세전통>, 즉 <엑소도스 전통>이 간직되고 있었는데 미가는 예루살렘의 <궁실신학>에 반기를 들고 모세전통을 따른 예언자였던 것 같다. 도시출신인 이사야와는 달리 시골출신인 미가는 도시란 <악의 원천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가서 1:5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가문의 죄는 무엇이뇨?

예루살렘이 아니냐?”

 

미가선지자는 또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국토가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도시 놈들의 비행 탓이다.” (7:13)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올 때 이사야는 시온성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으리라고 예언했지만 미가는 “시온이 갈아엎을 밭이 되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 언덕이 잡초로 뒤덮이게 되리라.”(미가서 3:12)라고 예언한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도 멸망을 면치 못하리라고 믿었다. 미가는 시온성 예루살렘이 “백성의 피를 빨아 세워졌고, 백성의 진액을 짜서 건설되었다.”(미가서 3:10)라고 예루살렘의 죄악을 폭로했다. 미가는 예루살렘 도시인들은 하층 시민들의 생활은 돌아보지 않고 “돈에 팔려 재판을 하고, 사제라는 것들은 삯을 받고 판결을 내리며, 예언자라는 것들은 돈을 보고야 점을 친다.”(미가서 3:11)라고 지적했다. 이사야가 모세의 전통, 즉 엑소도스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가는 다윗왕조의 영원성과 다윗도시 예루살렘의 안보를 보장해주던 <다윗의 언약신학>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그 두 선지자 사이에 심각한 <신학적 차이>가 있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메시아사상의 차이점

 

이처럼 예루살렘 예언자들의 궁중신학인 <다윗의 언약 신학>과 아모스, 호세아. 미가같은 선지자들의 <모세언약 신학> 사이의 신학적 견해차는 <메시아사상>에도 두 갈래의 뚜렷한 차이점을 가져오게 하였다. 다윗신학에 흠뻑 젖어 있던 이사야가 장차 민족을 구할 메시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다윗의 혈통>에서 탄생하리라고 믿은 반면, <모세 언약 신학>에 뿌리를 박고 있던 미가는 메시아가 <예루살렘의 궁궐>에서가 아니라 유다땅 <베들레헴>의 천민 가운데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이사야서와 미가서에 나오는 <메시아의 예언>을 좀 더 자세히 인용하면서 두 다른 전통의 <메시아 상>을 관찰해보자.

 

이사야 7:14에 나타난 그 유명한 임마누엘<Immanuel(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 예언은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란 사람에게 이루어졌다고 믿게 되었고, 어떤 그룹에서는 7:14에 나오는 문구는 <처녀탄생>을 나타내는 것으로 믿었다.

마태복음 1:23에 기록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 예수에게서 이루어졌다고 일부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사야가 한 예언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즉 시리아군이 BC 735년에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다윗왕조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장차 태어날 어린아이는 약한 왕 아하즈와 같지 않고 나라를 재건하여 다윗왕조를 계승할 것을 예언한 것으로 7:14에 나타난 여인은 아하즈의 아내 왕비를 말하는 것이며 <어린아이>는 다음 왕이 될 <히즈키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구약학자 F. L. Moriarty는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271페이지에서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7:14에 나오는 처녀는 히브리 성경에 보면 정관사 <the>가 붙어 있고, 동정녀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betula 대신 <결혼할 정도로 성적으로 완숙된 젊은 여인>을 나타내는 alma로 표현되어 있다. 이사야가 여기서 염두에 둔 여인은 정관사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아하즈의 아내 왕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또한, 7:16~17에 나타난 대로 이 <임마누엘> 아이는 히즈키아 왕을 지적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메시아사상>은 이사야 말년에 가서 발전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사야에 의하면 이 임마누엘 아이는 야웨신앙이 결핍된 아하즈와는 달리 야웨신앙을 충실히 이행하며 정치를 할 것이며 민족의 고난기에 살지만, 그가 아주 늙기 전에 아시리아가 침입하게 되면 유다의 두 원수인 두 왕, 즉 시리아의 르신과 북쪽 이스라엘 왕 베가를 쫓아내게 (7:16~17)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그 당시 역사적 고난에 참여할 메시아 아이는 파멸의 광야에서 백성들과 함께 살리라고 이사야는 내다본다. 호세아의 예언같이 <광야>는 이중의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심판의 때>와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미가 선지자의 메시아 탄생에 관한 꿈은 이사야가 본 예루살렘의 다윗의 후손에게서가 아니라, 다윗이 그 소박한 목동 생활을 시작한 <베들레헴>의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메시아가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예수탄생으로 해석되어 마태가 인용한 미가서 5:1은 다음과 같다.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1,123페이지에 보면 미가서 4:1~5:15에 나타난 하나님 용서의 약속과 미래 왕국의 회복에 관한 <종말론적 희망>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편집자들이 삽입시킨 것으로 미가 선지자의 직접적인 예언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메시아 예언도 미가 선지자가 직접 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다윗 왕을 상기시키는 베들레헴을 지적한 것은 아마도 <다윗 언약 신학자들>이 나중 편집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미가 선지자가 직접 한 예언이라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메시아는 악만 꾀하는 <예루살렘>의 궁실에서가 아니라 고난받는 천한 백성 가운데서 나올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왕이 그 인생의 출발을 가장 인정받지 못하는 시골 <베들레헴>에서 목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중 백성들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뜻을 하나로 뭉쳐 통일된 국가를 이룰 수 있었듯이 이스라엘의 위기, 즉 아시리아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는 궁궐의 타락된 생활에서 벗어나 광야, 즉 베들레헴에서 새 출발 해야 된다는 것이다. 목동이 왕이 되는, 즉 하층 사람들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뜻이다.

 

다윗이 위대했다는 것은 결국 그 당시 이스라엘 민중이 위대하였다는 뜻이 아닌가? 그가 위대했던 것은 하층민들의 뜻을, 그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말년 때부터 다윗왕권의 <절대 신성불가침주의>가 팽대해 갔으며, <왕실신학자들>은 <다윗왕조의 메시아주의>로 발전시켜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을 절대화하여 시온주의(Zionism)를 만들어냄으로 북쪽 이스라엘땅이었던 갈릴리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을 극히 멸시했다. 이러한 왕실예언자들은 천막에 거하며 그의 백성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야웨, 살아있는 역사의 신, 해방의 신>을 화려한 성전에 가두어두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일삼고 있었다.

 

예수시대에도 상황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가야바로 대표되는 궁실신학자들은 로마와 헤롯당과 합작하여 성전에서 장사나 일삼고 있었으며 사마리아와 갈릴리는 저주받은 땅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예언자가 설 땅은 천민들이 들끓는 땅, 예루살렘 양반들이 멸시하고 적대시하던 보잘것없는 땅 갈릴리뿐이었다. 아니 그러한 천민들이 사는 갈릴리에서만이, 천민들 중의 한 사람에게서만이 백성들의 깊은 한숨과 뼈저린 가난의 맛을 알아주는 메시아가 날 수 있을 것이다.

 

거친 미디안광야에서 오랫동안 양을 치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신세에서 해방해준 메시아가 되었고,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이름 없는 집안에 태어나 양을 치던 목자 다윗이 가나안을 통일하고 전 민족을 통일시킨 메시아 왕이 되었으며, 버려진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던 젊은 청년 예수는,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누가복음 4:18)

배고픈 자들에게는 배부르게 해준 이유로 궁실신학자들에게 붙잡혀 처참하게 십자가를 지고 죽어 메시아가 되었다.

 

이사야가 오리라 하던 다윗의 후손 메시아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과 예루살렘 궁궐의 왕과 외세인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저주받은 땅 갈릴리에서 인간해방을 부르짖다 십자가를 진 예수와 마태복음에 나열한 긴 다윗왕의 족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신약성경의 최초의 책 마태복음 1:1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왕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는 첫 절을 읽게 되는데 이것은 이미 마태복음을 쓰던 때의 왕실신학자들 신학적 입장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주받은 땅 갈릴리에서 머리 둘 곳이 없어 헤매던 떠돌이 청년 예수를 다시 궁실신학자들이 화려한 왕관을 씌워 죄악의 도시 예루살렘에다 가두어 두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살아계신 역사의 신 야웨를 예루살렘 성전에다 가두어 두고 밥벌이를 일삼던 궁실신학자들처럼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마저 화려한 성전에다 가두어두고 밥벌이를 일삼고 있는 현대판 <다윗왕조 계약 신학자들>은 신도들의 이기적 보신주의를 내세의 환상으로 영구히 타락시키고, 그들의 한과 분노를 감상적인 자선주의로 길들여 제거해버리고 있다.

 

이들 궁실신학자들은 교인들을 걸인화 하는 <구호물자의 신>을 믿게 하여 결국 억압자의 신을 강요한다. 그러나 한편, 광야에서 일어난 야웨신앙, 예언자의 종교, 사랑의 종교는 억압받고 소외되고 비인간화된 민중의 가슴속에서 잠자는 모든 인간적인 것, 모든 하늘의 것을 폭풍처럼 뒤흔들어 일깨워낸다. 그것은 신도들로 하여금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신의 <존엄성>에 눈뜨게 하여 그들의 좌절과 자학을 <종말론적 희망>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민중의 이기적, 개체보존적, 환상적인 도생주의를 연대적, 집단적, 현실적인 도생주의로-만인의 인간다운 삶과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환시킨다. 그것은 교인들의 한과 분노를 그 자학적인 발산으로부터 해방하여, 그것을 하느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강인하고 격렬하고 우렁찬 아우성으로, 나아가서 필요한 경우에는 그 결정적이고 조직적인 폭발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사막의 종교, 변혁적인 종교이다.

 

이러한 변혁적 종교를 시도한 아모스. 호세아, 미가, 그리고 예수, 한국의 무수한 예언자들은 권력구조를 통제하는 다윗의 후손들과 궁실신학자들에게 몰려 무수한 고통을 당해왔다. 그러나 버림받은 땅에서 백성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메시아는 이미 백성들 가운데 임마누엘로 임재하고 있다.

 

“어둠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옵니다.

코리아를 구할 메시아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은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아...

온 백성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당신께서 백성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를 부러뜨리고

혹사하는 자의 채찍을 꺾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난 그분,

우리에게 신이 주신 그분,

지금은 감옥에 갇혀있지만

곧 그 어깨에는 백성을 다스릴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겁니다.

저 핏빛 황토의 언덕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현 로마를 내쫓고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통일된 코리아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울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코리아 해방의 신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입니다.

(이사야 9:1~6절을 고쳐 쓴 것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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