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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13] 내가 본 구약성경(5) 야웨작가의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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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14 23: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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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3]

내가 본 구약성경(5)

 

 

야웨작가의 역사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사막의 거친 생활이지만 자유를 찾아 <속박의 집> 이집트를 탈출한 잡다한 무리들은 40년간 광야를 헤매며 그들의 이상인 <야웨신앙>으로 뭉쳐 <하나의 민족>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들이 사막에서 겪은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법과 제도도 확립할 수 있었다. <사이나이 오아시스>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자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이 과거에 사막에서 겪었던 생활경험을 회고하며 <사이나이 언약>을 만들어 내었다. 그후 가나안을 정복하고 왕조를 이루어 2대 왕 다윗에 이르러 오랫만에 <통일왕국>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북으로는 레바논 산맥에서 이집트 국경에 이르는 거대한 땅과 동서로는 지중해  연안에서 아라비아사막까지의 광활한 지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B.C. 1000년에서 922년에 이르는 80년간 다윗과 솔로몬 왕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영국의 전성시대였던 엘리자베스여왕시대에 쉐익스피어는  많은 희곡작품을 창조해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황금시기였던 다윗과 솔로몬  왕조 때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쉐익스피어 같은 유명한 작가가 있었으니 최근의 구약학자들은 그를 야웨작가(Jahweh 작가, 약칭 J작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하나님의 이름을 야웨(Jahweh)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 야웨작가는 첫째로, <모세의 전통>, 즉 구체적인 <엑소도스사건>에서 <가나안 정복>에 이르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생활체험>에서 출발하여, 둘째로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메소포타미아 지역, 즉, 전 근동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들을 그들의 조상으로 만든 족장들의 이야기(Patriarchal story), 그리고 셋째로 이 족장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조상들을 파헤쳐나가서 결국 전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 <천지창조의 이야기>까지 창작해냈던 것이다. 그것을 도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셋째)

창세기 2장-11장

천지창조,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둘째)

창세기 12장-50장

족장시대(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야기)

(첫째)

출애굽기 1장1절-여호수아

모세의 전통(엑소도스)에서 가나안 정복에 관한 이야기

 

 

<야웨작가>가 활동한 시기는 B.C. 950년경인 다윗과 솔로몬 왕조때였다. 이 야웨작가는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당시 근동지방에 구두로 전해내려온 여러 전설적인 이야기들(saga), 여러 가나안 신들의 예배의식에 얽힌 전설들(cult legends), 농사짓는 방법, 원시적인 역사적 사건들, 원시 진료법, 여러 종족들에 대한 이야기들, 등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이스라엘인들에게 <야웨신앙>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거창한 작품을 창작해냈으니, 그것이 지금의 [구약성서 오경] 여기저기에 표현되어 있다. 일부 구약학자들에 의하면 창세기에 나오는 많은 영웅들의 모험, 업적, 여러 종족들의 역사에 관한 것들을 노래한 서사시(epic), 그리고 전설적 이야기들(saga)은 그 근원이 이스라엘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나안의 사당(shrine)과 연결된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 그리고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베델에서의 꿈 이야기, 등은 원래 가나안에 널리 퍼져 있던 가나안 종교의 예배의식에 관한 전설들(cult legends)이었다고 구약학자 앤더슨(B.W. Anderson)은 그의 책 [구약성서의 이해] 202페이지에서 지적하고 있다.

 

야웨작가는 가나안인들로부터 구두로 물려받은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기가막히게 재창조하여 <야웨신앙>, 즉 <언약의 신앙>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마치 함석헌씨가 한국역사를 <성서적 입장>에서 보려고 시도하면서 한국의 전설적 이야기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과 흡사하다고 보겠다. 이처럼 야웨작가는 그 당시 근동에 유행하던 전설들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야웨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여러 전설들을 선택하여 그 곳에 <야웨>란 연결사를 삽입시켜 그 의미를 전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이스라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이야기처럼 창작하여 엮었던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와 실제적인 <인생경험>을 투사한 이야기로 주위의 이야기들을 새로 고쳐 재창조하는 천재적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여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생에 의미를 주는 현재적 사건으로 재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전달되어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없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이상>이 깃들어 있는 <모세전통>이 다윗과 솔로몬왕때에 붕괴될 위험성을 느낀 <야웨작가>는 그의 시대에 맞게 <야웨신앙>을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해냈던 것이다. 야웨작가에게 있어서 <엑소도스의 의미>야말로 <천지창조>에까지 거스러 올라가는 전 세계사적 의미였던 것이다. <해방자 야웨>가 세계 역사의 주인이라는 그의 확신을 실제화하기 위하여 야웨작가는 야웨신앙이 모세때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앞선 아담의 손자인 <에노스>때부터 야웨를 믿었다고 창작해 냈던 것이다.

 

창세기 4장 26절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셋(Seth)도 아들을 얻고 이름을 에노스(Enosh)라 지어 불렀다. 그때 에노스가 비로소 <야웨>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이것을 볼 때 야웨작가는 그가 엮은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지속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하여 <야웨>라는 <연결사>를 계속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야웨작가가 다룬 에덴동산의 이야기, 노아의 홍수 이야기, 그리고 족장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천지창조(창세기 2:4b~7절)

 

남조 왕국 유다가 B.C. 587년에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살던 때인 B.C. 550년 경에  활동한 사제작가(Priestly Writer, 약칭 P작가)가 <천지창조>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창세기 1:1~2:4a), 위에 지적한 다윗왕과 솔로몬왕때 활동한(B.C. 950년경) 야웨작가(J작가)는 주로 인간의 <지상환경>, 즉 지구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야웨작가는 “야웨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셨다.”로 간단히 끝내고 즉시로 지상의 환경을 언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땅에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아 나무, 풀, 그리고 땅을 경작할 인간도 없었는데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올라 온 땅을 적시자 야웨 하나님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게 했다는 것이다. B.C. 550년경에 활동한 사제작가(P작가)의 창조이야기에 의하면 하나님(Elohim, Jahweh가 아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고나서  마지막 날에  남녀인간을 동시에 창조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야웨작가에 의하면 남자가 식물, 동물, 그리고 여자보다도 먼저 창조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창세기 2장 7절). 영어성경에는 Elohim(일반적 신)인 경우 “God”으로 번역되어 있고, Jahweh(Yahweh, 여호와)는 영어로 the “Lord God”으로 번역되어 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 (2:7~3:24)

 

고대인들은 “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매력을 느끼는가?”, “왜 사회적 예법은 옷을 입는 것을 요구하는가?”, “왜 아이를 낳을 때 진통을 겪어야 하며, 남자는 힘든 일을 해야 하는가?”, “왜 뱀은 인간에게 미움을 받을까?” 등등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돌아가며 교환했던 것 같다. 차차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인기 있는 전통으로 고정되어 전 근동지방에 유행했던 것 같다. 천재적인 야웨작가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이용하여 “어째서 인간이 타락하여 그들이 의도했던 삶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되었는가?”하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다루었다.

 

야웨작가에 의하면 인간(‘adam)은 흙(‘adamah)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구(earth)는 인간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토양을 경작하는 자>로서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의 호흡(breath), 즉 혼(Spirit)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혼을 지닌 인격체인 야웨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동료 인간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그 실존의 <근본적 원천>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모임 가운데는 너와 나, 즉 서로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혼의 인격체>, 즉 <의미의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의 인격체>를 <알라>라고 부르든 <부처>라 부르든, 혹은 <야웨>니, <엘로힘>이라 부르든지 간에 우리는 지금 나와 너, 즉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그 의미의 인격체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야웨작가의 관점이었다.

 

또한, 야웨작가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떠나 한 순간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경작하여 보존하여야 하며, 인간과 인간이 서로 친교를 맺으면서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뜻을 대변해주는 그 <혼의 인격체>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인간들 각자의 깊은 실존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가야만 하는 자유밖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땅을 경작하지 않으면 인간은 굶어죽으며, 땅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오염시키면 병들어 죽게 되며, 인간이 인간과의 친교를 갖지 못하면 정신병자나 고립된 식물인간이 되어버리며, 인간이 인간과 아무리 많은 사교를 맺으며 살더라도 그곳에 의미, 즉 야웨가 인간에게 불어넣은 <혼>이 없으면 그러한 만남은 결국 무미건조한 사교로 끝난다는 것이 야웨작가의 일관된 관점이었다. 그러기에 인간의 뜻을 대변해주는 <의미의 인격체, 야웨>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야웨작가의 생각이었다. 야웨작가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다. 따라서 야웨작가가 생각한 <죄>란 바로 이러한 자연과, 동료 인간, 그리고 <혼의 인격체, 야웨>와의 끊임없는 관계를 깨는 <의지의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인격체와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너와 나, 즉 우리의 만남인 <의미의 공동체>에서 떠나는 순간은 바로 <에덴의 동쪽>에서 고립되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야웨작가가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 말하려고 의도한 내용이었다.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은 아담이 <땅을 가는 자>, 즉 농부가 된 역사 과정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그 배경이 <농경적>인데 이것은 야웨작가가 살던 B.C. 950년경의 이스라엘인들이 이미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창세기 4:1절~24절)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아마도 농경민들과 유목민들과의 <적대관계>를 표현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일부 구약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야웨 하나님께서 <땅을 가는 자> 카인이 바친 농산물 제사는 받지 않고 오히려 유목민인 아벨이 바친 첫 배의 가축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적대관계를 표현한 것이었다. 강가나 오아시스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한 자들은 결국 거친 산이나 광야로 도망나가 가축을 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며, 이들은 언제인가는 쫓겨난 젖과 꿀이 흐르는 강가의 농토(에덴동산)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야웨하나님은 이집트의 종들인 이스라엘백성을 해방한 자이며 광야에서 40년간 목축을 하며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의 <텐트>에 거하며 그들과 생활을 같이 한 신이었다. 다시 말하면, 야웨하나님은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에덴동산, 즉 가나안에 거주하는 지배 귀족층들의 안보의 신, 즉 순환적인 자연신 <바알>이 아니라, 에덴동산, 즉 나일강변의 이집트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유목민들이 갈구하는 <해방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런 유량자들이 드리는 피의 제사, 즉 <피의 호소>를 야웨는 받으신다는 뜻이다.

 

노아의 홍수(6:5~10:32)

 

야웨작가는 그 당시 유행하여 널리 구두로 퍼져 있던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를 이용하여 야웨하나님은 역사의 심판자임을 알리려고 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홍수가 나서 한 지역 전체가 물에 매몰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타지역과 교통이 빠르지 못하던 옛날에 홍수가 나서 근동의 어느 마을이 몽땅 물로 가득찼던 잘 알려진 이야기를 야웨작가는 적절히 이용하여 야웨는 그의 뜻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역사의 무대에서 직접 활동한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노아의 자손 셈, 함, 그리고 야벹의 이야기 중 가나안의 조상 <함>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그 당시 종살이를 하던 함족들을 계속 종으로 부려먹기 위해 지배층인 셈과 야벹족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족장들의 이야기(12:1~50:26)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는 근동에 존재했던 족장들의 이야기로서 여러 해를 거쳐오면서 되풀이하여 재창조되었다고 일부 구약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Hebron) 가까이에 있는 사당과 관계가 있고, 이삭은 베엘세바(Beer-Sheba)에 있는 사당과 관계가 있으며, 야곱은 베델(Bethel)에 있는 <하나님의 집(Houe of God) >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 세 장소는 이스라엘인에게 정복된 가나안인들의 성지(Shrine)로서 이 세 인물에 관한 이야기들은 아마 그 근원이 가나안일 것이라고 일부 구약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야웨작가가 활동하던 당시(B.C. 950년경)에는 이미 이들 세 인물에 관한 전통적 이야기들은 잘 조화된 이야기들로 엮어져 혈통과 관계가 있는 <부자관계>로 연결된 단일가족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이고, 이삭은 야곱의 아버지이며, 야곱은 요셉의 아벼지로 연결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처럼 역어졌던 것이다.

 

야웨작가는 이제 족장들의 종교는 더이상 가나안 사당에 모셔진 <가나안 신들>의 예배가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야웨의 예배>라는 것이다. 야웨작가에 의하면 각 족장들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한 야웨의 약속, 즉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위대한 민족>이 되리라는 약속을 새롭게 한 것은 <야웨 하나님>이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야웨작가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이제 다윗 왕국의 <민족주의>를 고무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역사적  삶의 이야기, 즉 <엑소도스>로 넘어갈 준비가 완료됐던 것이다.

 

겨우 80년간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밑에 <통일된 왕국>의 맛을 본 이스라엘백성들은 야웨작가의 거시적인 비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왕이 죽자 나라는 둘로 갈라져 북에는 이스라엘지파의 용사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되었고, 남에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윗과 솔로몬 왕조를 계승하여 <유다 왕국>이 존속되니 그 분단의 비극은 깊이를 더해갔던 것이다. 이 분단된 왕국의 가련하고 암담한 역사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민족적 이상>인 <야웨신앙>을 불러 일으켜 분단된 조국을 <하나의 이상>인 <야웨신앙>으로 통일하려는 운동을 지도한 자들이 바로 <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의< 혼의 소리>는 하늘에 사무쳤던 것이다. 다음 장들에서는 예언자들의 혼의 소리를 소개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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