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 [신학의 해방 12] 내가 본 구약성경(4) 궁실 신학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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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08 14:3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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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2]
내가 본 구약성경(4)
궁실 신학의 문제점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왕국의 탄생
가나안을 정복하여 12 종족들이 <종족 동맹>을 이루고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인 사사들(Judges)에 의지하며 평화스럽게 잘 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BC 12세기에 이르러 큰 변혁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 근동지방에 <철기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청동을 <철>로 바꾸어 쓰게 된 이 획기적인 사건은 그 당시 전근동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치는 전반적인 생활양식을 뒤바꾸어 놓았다. 철기시대의 초기에 가나안에 침투한 블레셋인들(Philistines)은 이미 철을 제련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독점을 잘 유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같은 소국들을 제멋대로 통치할 수가 있었다. 사무엘상서 13:19~22에 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칼과 창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한 명도 없었는데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인들이 칼과 창을 철로 만들까 두려워 대장기술을 이스라엘인들에게 전수하지 않고 그들이 독점한 탓이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농부들은 그들의 농기구를 뾰족하게 갈기 위하여 블레셋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블레셋인들이 철기시대에 철의 제련기술을 독점하고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동안은 이스라엘의 장래는 암담하였다.
블레셋인들은 쉽게 이스라엘의 옛 예배장소인 사일로(Shiloh)를 점령하고 그들의 신앙의 상징인 법궤(Ark)를 강탈해감으로 이스라엘인들은 절망 가운데 빠져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단지 사사들(Judges)의 카리스마적인 종교적 지도력에 의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하였다. 이 블레셋인들의 철기 무기는 이스라엘의 <종족동맹>을 붕괴시켰으며 주위의 열강들처럼 <왕국>으로 변모해가도록 큰 자극을 주었다. 이 일은 초대 왕들인 사울,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지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2대 왕 다윗에 이르러 <철기 제련법>을 배워 블레셋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전 가나안 일대를 통합시켜 <통일왕조>를 이루게 되었다. 이리하여 다윗왕과 더불어 종래의 종족동맹에 존재하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은 왕이 통치하는 <중앙집권제>로 변하여 효과 있게 열강들의 침투에 대비할 수 있었다. 현명한 왕 다윗은 사울파인 북쪽 <이스라엘족>과 다윗 자신의 지지파인 남쪽 <유다파>를 통합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수도를 남쪽에 있는 <헤브론>에서 새로이 <예루살렘>으로 옮겨 다윗 자신의 도시로 만들었다. 새 수도인 예루살렘은 <다윗의 도시>로 북 이스라엘족들도 남 유다족들도 모두 거기에 거주하지 않고 있었고 남북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남북을 통치하기가 쉬웠다.
지혜로운 왕 다윗은 백성들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야웨신앙>을 새로이 부활시켜 그의 왕조를 지지하도록 <언약의 법궤>를 사일로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큰 행사를 거행하였다. 예루살렘의 <텐트>에 거하게 된 법궤와 더불어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시, 시온(Zion)>으로 칭송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중심지는 종족동맹의 예배처였던 사일로에서 예루살렘의 <궁실 사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무엘하서 7장에 자세히 기록된 바와 같이 <왕족 신학(Royal Theology)>이 탄생하였다. 이에 의하면 야웨가 다윗과 특별한 언약을 맺고 다윗의 보좌를 대대손손 안전하게 세울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은 모두 <야웨 신>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왕족 신학>은 강조했다.
다윗은 주위 나라들의 화려한 성전들을 본떠서 <법궤>가 거하는 장막을 화려한 <궁실 성전>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막에서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의 상징인 <야웨 신>은 결코 <화려한 집>에 거하지 않고 <텐트 속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나단(Nathan) 선지자는 다윗의 의도를 비판하였다(사무엘하서 7:6).
그러나 제3대 솔로몬 왕은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포에니시아 건축양식에 따라 거대한 성전(Temple)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터는 지금 <바위의 돔>으로 알려진 <오마르 모스크>가 둘러싸고 있는 <거룩한 돌>이 표시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 지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성전은 7년간이나 걸려 완성했는데 그동안 3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병 되어 레바논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이들은 그곳의 삼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해안으로 끌고 가 예루살렘으로 옮겼으며, 8만의 이스라엘인들이 돌을 채석하는 데 동원되었고, 7만의 백성들이 짐꾼으로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강제노동에 동원된 분노에 찬 백성들은 결국 폭발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반란의 지도자는 일터 중의 하나에서 관리로 일하던 솔로몬의 심복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으로 북쪽 이스라엘족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 왕국은 북조왕국 <이스라엘>과 남조왕국 <유다>로 갈라지게 되었다.
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철을 제련하는 기술을 먼저 배워 그 기술을 독점한 것은 야웨 신을 믿던 이스라엘이 아니라 블레셋 나라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지 카리스마적인 사사들의 지도력에나 의존하고 만족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속국이 되었다. 이처럼 시대적 변천에 빨리 응답하지 않고 <야웨의 법궤>나 <높은 지대>인 사일로에 모시고 예배나 드린들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사사였던 카리스마적 종교 지도자였던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다른 열국들처럼 왕국이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철기시대>에 열국들의 침략을 대비하고 효과 있게 민족을 보존하는 일은 사실상 12지파들이 서로 지파의 독립만을 생각하고 분열되어 있는 한 불가능했다. 그렇지 않아도 블레셋은 철로 만든 무기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는 북쪽 이스라엘족의 지지를 받았던 <사울>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족을 “분열시켜 지배하기 위하여” 남쪽 유다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는 것을 묵인했다. 다윗은 그 당시 블레셋의 하수인이었기 때문에 블레셋의 동의 없이 왕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윗은 현명한 정책으로 사울을 물리치고 차차 남북 이스라엘 민족을 통일시키자 블레셋은 다윗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 <철기 제련술>을 배워 블레셋을 쫓아낼 힘을 키웠다.
만약 이때 카리스마적인 종교지도자 사무엘의 보수적인 자세에 동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법궤>나 믿고 있었다면 블레셋의 밥이 되어 오래전에 이스라엘 민족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블레셋인들이 북쪽의 이스라엘 지파와 남쪽의 유다 지파를 갈라 통치하기 쉽게 하려고 남쪽의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도운 것처럼 지금 강대국들은 코리아 반도를 남과 북으로 분리했을 뿐 아니라 동과 서로 분리해 서로 대결상태로 몰아넣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 남북의 코리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을 중심으로 남북이 단합하여 블레셋을 내쫓고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었듯이 남북의 민중이 <우리끼리 힘을 합쳐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슬기를 발휘해야겠다.
위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다윗이 창시한 <왕족 신학>의 발전과정에서 있었던 모순점으로 결국 큰 비극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원래 다윗이 옛 지성소로 알려진 사일로에서 야웨의 <법궤>, 즉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웨와 맺은 거룩한 언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은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묶기 위한 좋은 동기에서였다. 그러나 차차 <왕족 신학>은 타락하여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갔다. 다윗은 야웨의 법궤를 성전에 가두어 두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선지자들의 항의에 부딪혀 부득이 자기 대에는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러 무수한 백성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화려한 성전을 짓고 거기에 법궤를 모시게 했다.
광야에서 형성된 <야웨신앙>에 의하면 끊임없는 역사의 행진 속에서 쉬지 않고 진화 발전하는 역사의 신 야웨는 어느 왕조의 안녕과 복지를 지원해주는 <안보의 신>으로 건물 안에 안주하는 <우상>이 아니었다. 단지 다윗의 왕조가 지탱되기를 바라던 <궁실 신학자들>은 다윗 왕을 카리스마적 종교적 지도자로 부각하기 시작했고, 그가 다스리던 예루살렘을 <야웨의 도시, 시온>으로 추켜올렸다. 이리하여 <다윗의 자손>이면 누구든지 축복을 받으리라는 <종교적 인가>를 창조해 내었던 것이다.
나중에 강대국들에 점령되어 혹독한 식민지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정된 통일왕국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던 다윗 왕조를 갈망하게 되었고 다윗 같은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 그들의 수난의 역사를 구원할 <메시아>가 나오기를 기다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메시아사상>이다. 다윗이 죽은 후 1천 년 후에 왔다는 메시아 예수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고난의 종이었다. 나중에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만들기 위하여 궁실 신학자들이 복음서 곳곳에서 손질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지금 이 시각도 얼마나 많은 왕실 신학자들이 역사의 신 야웨와 그 아들로 승격시킨 메시아 예수를 거대한 교회당 속에 가두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그러나 살아있는 역사의 신 야웨와 인간의 해방을 위해 십자가를 진 고난의 종 그리스도는 지금도 <인간해방>을 위하여 남루한 <텐트>에 거처하며 역사의 한가운데서 활동하고 있다. 다윗이 지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어놓았던 그 성전 터에는 지금 거대한 이슬람 성전인 <오마르 회당>이 지어져 있다. 단지 성전의 한 쪽 벽만이 남아 있어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곳에 많은 시온주의 유대인들이 모여 <통일된 다윗 왕조>가 다시 이스라엘에 세워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무엘하서 7장 1절에서 7절에 <야웨 신>과 <나단 선지자>와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야웨께서 사면의 원수를 다 물리쳐주셨으므로 다윗 왕은 궁에서 마음 놓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왕은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텐트 안에 모셔둔 채 그대로 있소.’ 나단이 왕에게 아뢰었다. ‘야웨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그날 밤 야웨의 말씀이 나단에게 내렸다.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나 야웨의 말이라고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던 때부터 지금까지 천막을 치고 옳겨 다녔고, 집안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겨 보살피게 한 어느 사사에게, ‘어찌하여 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속박의 집>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한 <엑소도스의 신, 야웨>는 건물 속에 들어앉아 있을 시간이 없으며 지금도 속박의 집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여전히 이리저리 텐트 속에서 옮겨 다니고 있다. 피땀 흘려 번 교인들의 돈을 거두어들여 화려하고 거대한 교회당이나 짓고 있는 대형교회들은 해방의 신 야웨와 해방의 메시아 예수를 화려한 교회당에 가두어 두고 조찬기도나 해주며 독재자들과 지배층들의 안보나 챙겨주는 <궁실 신학>에서 어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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