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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토론연재2] 주체사회주의와 기독교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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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5-30 13: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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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연재2] 주체사회주의와 기독교와의 공존

 

 

편집국

 

 

재미동포중남부지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 내용은 주체사회주의와 기독교가 서로 적대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였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질문은 여러 회원들이 하였으며 대답은 김현환 소장이 하였다.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질문: 보도를 보면 무수한 기독교인들이 조•중접경지역에서 선교를 명분으로 탈북공작에 개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는 북의 치안에 걸려 종신형을 받고 어떤 목사는 자살하고 등등... 종교나 사회주의나 그 본성에서 <홍익인간>을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데, 유독 기독교인들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반북 탈북 공작에 심혈을 기울일까요? 기독교와 사회주의(주체사회주의)는 본성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사상인가요?

 

대답: 기독교도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회주의와 잘 지낼 수도 있고 서로 대치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진리, 길, 생명이라고 믿고 기독교의 성경만이 유일한 거룩한 책이고, 기독교회만이 거룩한 장소라고 믿고 선교에 몰두하는 독단적인 기독교인들은 <신 중심>이 아니라 <물질>이나 <인간 중심>인 사회주의 사회를 <적그리스도>로 간주하고 선교에 도전적이지요. 이들은 심지어 스님들에게도 “죄인들은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외쳐대며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자주의적이고 절대적인 독단적 기독교인들이 국정원이나 다른 정보원들의 물질적 지원을 받아 기획탈북을 시도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모택동이 사회주의혁명을 하던 때에 엥글리칸 교단의 등 박사 같은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북에서도 김주석을 암살하려던 신의주 사건의 주범들이 기독교인들이었지만 강양욱 목사를 비롯해 사회주의에 협조한 기독교인들도 많았어요.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같은 분들이 갖고 있는 신학은 이북의 사회주의와 충돌하지 않고 서로 잘 협력해 왔지요. 이북의 사람중심의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구분하여 <주체사회주의>라고 쓰고 있습니다.

 

질문: 네, <자주사상연구소>의 글은 잘 보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칼럼은 제 주위에 특히 기독교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과 나누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긴 글 보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시절인지라 이렇듯 핵심을 치는 단문의 말씀들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더 쏙쏙 담기지 않을까 싶어 무례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질문을 계속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 더 말씀하신 대로 기독교인 특히 크리스천 코리언들과 교회가 <성서를 바로 해석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민족의 해방과 통일도 더 빨리 올까요?

 

대답: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층의 사상이었다”고 마르크스는 강조했습니다. 내가 해방산학을 지향하면서 왜 먼저 <신학의 해방>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우리가 성서의 좋은 내용들을 해석하는 해석학을 지배층에 뺏겨 지배층의 지배적인 생각(ruling idea)으로 해석하게 되니 거짓의식으로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 해석을 민중의 시각에서 해석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신학자 제임즈 코운은 <Jesus is black(예수는 흑인이다)> 이라고 주장하고 흑인민중의 시각에서 성서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몰트만은 백인 중산층의 시각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보수신학과 자유주의신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해방신학만이 인류의 미래를 밝혀주는 소망의 신학이라고 말했습니다. 80년도에 한국에서 강조되었던 민중산학도 이 시대에 다시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나는 기독교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의 공동체도 원시공산주의의 틀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초대교회가 어떻게하여 가진 자들, 지배층의 종교로 변질되었는지는 최근의 나의 글 [신학의 해방]에서 자세히 밝혔습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가진 자들을 축복이나 해주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어 민중의 해방과 조국통일에 방해물로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종교, 철학, 사상>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고 안식일법을 어겨가면서도 병자들을 고쳐주던 예수의 말처럼 기독교가 가진 자들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근로민중을 위하여 존재하는 종교로 변하면 사회변혁운동과 조국통일에 큰 힘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며 지금 전력을 다해 [신학의 해방]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탄없이 잘문해주시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의 광장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생각으로 세상에서 부활이 있다면 인간이 의식화되어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보다 더 큰 부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도 예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후 <가슴속에 새겨진 예수>를 되살려 제자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예루살렘, 즉 골고다를 향하여 가면서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수제자인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가 임금이 되면 자기들을 좌의정과 우의정에 앉혀달라고 부탁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제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의 스승 예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십자가사건 후 예수의 행적과 말씀들, 비유들, 십자가 사건, 등을 재해석하고 자신들이 예수처럼 살기로 결심하고 120명 정도가 마가다락방에 모였을 때 거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의식화돤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에 불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마가다락방에서 결정한 사항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스승 예수의 본 뜻을 비로서 깨닫고 제자들을 포함한 초대교인들이 모여 결정한 것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공동체를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결정했을까요? <동지>라고 하면서 금수저와 은수저 출신들은 호의호식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 식량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게 어떻게 진정한 동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깨닫고 모인 제자들이 갈 길은 바로 그 길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어느 사람은 자기가 진 것을 다 팔아 다 공동체에 내놓지 않고 일부만 내놓은 아나니아스와 그의 아내 사피라의 이야기도 사도행전 5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게 원시공산주의 사회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을 대량학살하며 기독교인들이 땅따먹기를 하는 자본주의 편을 들 수 있나요? 자본주의 자체가 죄악입니다. 인간을 물질로 평가하고 인간의 노동을 얼마짜리로 가격을 매겨 임금을 주는 그러한 비정한 사회, 사람을 정글에 집어넣어 던져놓고 알아서 생존하라는 냉혹한 사회를 지지하면서 거기서 이긴 자들을 축복이나 해주고 번성하는 기독교는 로마, 헤롯, 가야바 종교지도자에 의해 십자가를 지고 처참하게 죽은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쓸 [내가 본 신약성경]에서 논문으로 다루겠습니다.

 

나는 무지렁이 같은 머슴들, 소작쟁이들, 무식한 노동자들을 인민유격대에 받아주고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그들을 하늘처럼 대해준 주석님, 해방 후 그들을 정부의 요직에 등용하여 혁명가들로 키워준 주석님, 착취와 억압만 받아온 인민을 하늘처럼 대해준 <이민위천>을 평생 실천하신 주석님을 나는 현대의 예수로, 구세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민의 생명인 육체적 생명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인 <자주성>입니다.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제도화 한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이북 주체사회주의 사회는 인민의 자주의 길과 사회주의의 길을 가기 위하여 그것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연합세력에 대항하여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인민의 주체의 길과 사회주의의 길을 지켜주기 위하여 이북의 주체사회주의는 <일심단결의 길>과 <선군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북의 주체 사회주의의 노선이야말로 참된 만중사랑의 모범이라 생각합니다. 인민의 생명인 자주성을 지켜주고 사회주의를 지켜주는 것보다 더 큰 애국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인민의 복지와 행복을 위하여 이북 주체사회주의가 택하고 있는 위의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택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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