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해방 8] 인본주의적 자유종교운동의 하나의 예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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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신학의 해방 8] 인본주의적 자유종교운동의 하나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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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5-12 16:3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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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8]

 

 

인본주의적 자유종교운동의 한 예

 

---유니태리안 유니버설리즘---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나는 어려서부터 문자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독단적 기독교에 몰두하여 새벽기도도 열심히 다녔고 전도도 열심히 하였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전도도 해보았다. 이 교회 저 교회의 부흥회도 찾아다니며 은혜를 더 많이 받으려고 노력도 해보았다.

 

내가 30여 년의 긴 과정을 거쳐 독단적이고 문자주의적인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에서 해방된 후 1983년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단(Unitarian Universalist Association)의 목사가 되면서부터는 나의 모든 관심은 <선교>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이후부터의 나의 관심은 나의 활동을 <와서 그리고 보라>는 것이었다. 와서 보고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면 배울 것은 배우고 <함께 성장하자>는 것이 나의 선교의 태도가 되었다.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한 로스엔젤레스 제일유니테리안교회(The First Unitarian Church In Los Angeles)에서는 매주 수요일이면 수석목사인 즈월링 목사, 부목사인 나와 교육목사, 인턴목사, 사회정의구현회 회원들이 로스엔젤레스 거리에 있는 <연방 이민국빌딩> 앞에 나가 시위를 하였다. 그때그때 외치는 구호와 들고 선 선전 내용은 달랐다. 예를 들면, <미국은 쿠바와 니카라과에서 손을 떼라>, <더 이상 새로운 무기를 만들지 말라>, <택시노조를 지지한다>, <게이와 레스비안의 권리를 인정하라> 등이었다. 로스엔젤레스 제일유니테리안 교회의 수석 목사인 즈월링 목사는 가끔 새로운 무기를 전시해 놓은 장소에 사회정의구현회 회원들과 참석하여 일부러 법을 어기고 무기를 전시한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체포되어 구금되곤 하였다. 그러면 교인들이 경찰서로 찾아가 <우리 목사를 석방하라>고 외쳐대었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목사와 교인들에게는 이런 활동도 종교활동 중 하나였다.

 

또한, 사회정의를 위하여 세계 각처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엘에이시를 방문하면 그들을 교회로 초청하여 설교를 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목사들의 큰 업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의 생존 시 그를 비롯하여 세계의 석학들이 UCLA에 학회 일로 방문할 경우 그들을 교섭하여 우리 교회에서 일요일에 설교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5월 1일 노동절에는 노조 회장이나 마르크스주의를 전공하는 교수를 초청하여 설교를 듣곤 했다. 또한, 콜롬비아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는 그룹에 들어가 3년간 같이 먹고 살면서 활동하다 돌아온 블레이스 본페인 신부를 초청하여 콜롬비아의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설교하는 날에는 엘에이 시의 관심 있는 일반시민들과 진보적인 인사들과 그룹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교회가 유엔과 같다. 예배가 끝나면 교회 내의 각처에서 인권운동가들, 반전평화운동가들, 여성해방 운동가들, 무기 반대 운동가들, 게이 레즈비언 옹호자들, 등이 조그마한 테이블을 갖다 놓고 자기들의 조직을 소개하는 내용과 그들의 활동계획을 알리는 팸플릿을 전달한다. 이것도 우리의 종교활동 중 하나였다.

 

소련이 망하기 전인 어느 일요일 아침 즈월링 목사는 [러시아인들이 쳐내려 온다, 러시아인들이 쳐내려 온다]는 설교를 하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이 설교가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목사들의 설교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여 이 설교가 각처의 유명한 신문에 소개되었다. 마치 [이북이 쳐내려 온다, 이북이 쳐내려 온다]고 하면서 이남의 독재자들이 독재를 정당화했듯이 미국에서도 [소련이 쳐내려 온다]고 하면서 진보운동을 탄압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협박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는 미국정치를 비판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화 활동도 우리의 종교활동 중 하나였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이상(human ideals)인 평화, 정의, 민주주의, 자주, 평등, 화해, 사랑, 진리를 위하여 행해지는 모든 활동을 질적인 차원에서 지극히 종교적이고 영적이라(very religious, or spiritual in quality)고 죤 듀이처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로스엔젤레스 제일유니테리안교회에서 설교 되는 설교, 혹 연설을 듣고 감동되어 눈시울을 적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보고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에 참석한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영적인 것>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하고 독단적인 종교의 도그마에서 해방한 사람들이 많았다.내가 1983년 이 교회의 부목사가 되면서 교회와 맺은 계약서의 첫 조항에는

 

"이 교회에서 어떤 설교를 하든지 문제 삼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참으로 멋진 교회가 아닌가! 성경의 해석이 조금 다르다고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싸움질을 하며 서로 이단이라고 몰아내는 데 로스엔젤레스 제일유니테리안 교회에서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던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여러 번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나는 이 교회에서 시무하는 동안 기독교 성경을 봉독하고 설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교회의 특이한 것은 누가 설교를 하든지 반드시 질의 응답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반드시 대중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일반 대중들이 그것을 가치로 인정하는 <보편성>을 띠어야 하고 <영구성>을 띠어야 진리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절대적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에서 <질의 응답 시간>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미국이나 이남의 기독교회에서 예배 후 설교에 대하여 질의 응답을 하는 교회가 있는가?

 

이처럼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의 종교활동은 사회정치적으로 교인들을 깨우쳐 사회정치적 현실을 올바로 보게 하는 것이다. 자기 종교의 교리를 절대화하여 단지 선교활동에 교인들을 동원하여 교회 성장에나 힘쓰거나 교인들을 <죄인>이라고 몰아 죄를 씻고 천당에 가기 위해서는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부담을 주어 헌금이나 많이 거두어들여 교회건물이나 크게 짓는 것이 종교활동이 아니다. 또한, 어느 지역에 전쟁이 일어나면 구호물자나 들고 들어가 선교나 하려는 선교지상주의 교회는 전리품이나 도둑질하는 도둑놈들과 무엇이 다른가?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의 선교활동은 그들의 이웃 중 고통받는 사람들과 세계의 나라 중 고통받는 나라들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의 종교활동은 미리 전쟁을 막는 일이다. 전쟁은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다 파괴해버린다. 전쟁이 일어난 후에 구호물자를 들고 들어가 선교하는 것이 종교활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교도들이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지옥에 갈 죄인들이니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선교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좋다는 식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독단적 근본주의 기독교인인 부시 대통령이 평화스럽게 잘 사는 이라크 민중들을 전쟁으로 몰아 수없이 죽이고 파괴하고 약탈하고 나서 하는 소리가 <그들을 민주화하기 위하여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2차대전 후 남은 낡은 무기들을 소모하기 위하여 저질러진 죄악 중의 죄악인 6.25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코리아에 구호물자를 들고 들어가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는데 가장 성공한 예가 있으니까, 코리아의 예처럼 세계 각처에서도 그런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본심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악의 근원인 전쟁을 미리 막는 일이 종교의 활동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폭탄을 퍼부어 선량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고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자들이 기독교회에 나가 헌금을 많이내고 장로가 된다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종교는 죄악의 근원인 전쟁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들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종교가 병 주고 약 주는 일에 앞장서서는 안된다. 사회봉사에 앞장서고 조국통일에 앞장서며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위하여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이남교회의 주된 종교활동이 되어야 기독교도 민중의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될 것이며 기독교 자체도 발전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매주 일요일 로스엔젤레스 제일유니테리안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교인들과 함께 암송하던 [신앙고백]을 외우곤 한다.

 

우리는 항상 깨어 바른 통찰과

올바른 역사인식과 창조적 정신으로 이웃과 인류에 봉사하며

사랑과 화해와 정의가 곳곳에 넘치도록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교리이며

진리탐구가 성만찬이며

봉사가 기도이다.

우리는 함께 평화스럽게 살며

자유스럽게 지식을 찾고

공동으로 인류에게 봉사할 것을 서로 언약한다.

 

그러면 새로운 인본주의 자유종교운동의 하나의 예로서 내가 목사가 되어 활동해온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이란 어떤 종교이며 언제 생겨나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Unitarian Universalism)은 모든 개인의 존엄성과 이성적인 사고를 존중하는 종교이다. 따라서 유니태리안 유니버설리즘은 어떤 성스러운 한 권의 책이나 어떤 한 구세주를 믿도록 강요하거나, 어떤 한 교회당만을 성스럽게 믿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은 이러한 것보다도 우리 인간들이 어떤 종교의 교리나, 도그마, 정치적 이념, 사상, 성별 종족을 넘어서서 진리를 찾는 일에 모두 연합할 것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회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인본주의자들의 옆자리에 앉아 있고, 불교인들이 힌두교도들과 같이 앉아 있으며, 무신론주의자들이 신비주의자들의 옆에 앉아 있고, 사회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 서로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있다. 이들은 모두 “나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추상적인 <신의 개념>을 정립한다거나 그 신께 봉사한다거나, <천당>이나 <니르바나> 같은 내세를 준비하는 데서 <종교심>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료 인간들을 구체적으로 돕기 위한 인간의 자유스런 <합리적 사고>와 <자유스런 개인의 양심>을 믿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종교란 <신학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인간실존의 근본적인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은,

1.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포함하는 사회정의를 믿으며,

2. 사람들의 선함을 믿으며,

3. 내세가 아닌 현세를 믿으며,

4.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교리가 아닌 진리를 믿으며,

5. 모든 인간의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활동하는 장소로서의 교회를 믿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거기에는 항상 인류가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생을 영위할 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존신앙과 정치권력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던 예언자들이 있었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위대한 인류의 전통에서 그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신구약 성서에도 크게 두 종류의 종교가 있었다. 하나는 기존정치, 사회, 경제구조에 기생하며 그 질서의 유지를 도우며 생계를 유지해온 <궁궐종교>, 혹 <사제종교>가 그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기존정치, 사회, 경제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패를 지적하고 가난하고 억눌림 받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해온 <선지자의 종교>, <광야의 종교>가 그 다른 하나이다.

 

전자가 구약성서의 <다윗의 언약신학>과 관계가 있다면, 후자는 광야에서 생겨난 <모세의 언약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자가 인류를 구할 메시아 상을 <다윗왕의 혈통>에서 찾았다면, 후자는 <천민> 가운데서, 즉 <민중 속>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전자가 예수의 <다윗혈통>을 강조하고 있다면, 후자는 그 당시 가장 천대받고 멸시받던 <갈릴리 나사렛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전자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예수의 역사적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자가 예수를 <숭배의 대상>으로 예배하는 반면, 후자는 예수의 구체적인 <윤리적 행위>를 따라 각자 맡겨진 인간의 소망과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갈래의 종교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는 사람도 있다.

 

<제사장의 종교>, <바리새의 종교>는 민중의 이기적 도생주의, 보신주의를 내세에의 환상으로 영구히 타락시키고, 그들의 한과 분노를 감상적인 <자선주의>로 길들여 거세해 버린다. 민중을 걸인화하는 <구호물자의 신>은 결국 <억압자의 신>인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에 <예언자의 종교>, <사랑의 종교>는 광야에서 일어나, 억압받고 소외되고 비인간화된 민중의 가슴 속에서 잠자는 모든 인간적인 것, 모든 하늘의 것을 폭풍처럼 뒤흔들어 일깨워낸다. 그것은 <부활의 신비- 혁명>이다. 그것은 민중들로 하여금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신의 존엄성에 눈뜨게 하여, 그들의 좌절과 자학을 <종말론적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민중의 이기적, 개체보존적, 환상적인 도생주의를 연대적, 집단적, 현실적인 도생주의로, 만인의 인간다운 삶과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환한다. 그것은 민중의 한과 분노를 그 자학적인 발산으로부터 해방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강인하고 격렬하고 우렁찬 아우성으로, 나아가서 필요한 경우에는 그 결정적이고, 조직적인 폭발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혁명적 종교>이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은 바로 위에 언급한 <예언자의 종교>의 대열에 서서 억압받고 소외되고 착취만 받아온 근로민중의 잠재능력을 일깨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신앙적 토대 위에 선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종교는 세계의 여러 민족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전통, 그리고 정치, 사회, 경제구조를 우선으로 연구하고 존중하여 각 민족과 민중들이 자주 독립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따라서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은 처음부터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민족들의 가치를 서로 존중하고 나누며 서로 배워 전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문화적 제국주의>의 형태를 띤 <선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목사인 잭 멘델존이 쓴 [유리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들을 만나보세요]라는 소책자 10 페지에 다음과 같이 이 같은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선교적인 마음>이 없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지구 상에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고의적인 선택으로 금지했다. 사실상 우리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듯이 그들도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은 각 나라, 각 민족의 독특한 역사적 전통종교를 존중하고, 각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도록 돕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언자적, 역사적, 민중종교인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 역사를 간단히 더듬어보자. 모든 예언적, 역사적 종교가 그러했듯이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도 정치적, 종교적 박해 속에 성장 발전해온 종교이다.

 

유니테리안(Unitarian)이란 트리니테리안(Trinitarian)에 상대되는 말이다. 라틴어로 유니(uni)란 하나란 뜻이고, 트리(tri)란 셋이란 뜻이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하나님은 세 격(Three Persons), 즉 성부, 성자, 성신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세 개의 격이 한 하나님을 이루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 교리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고 하여 <성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앞 장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원래 초대기독교인들은 가난하고 억눌림 받던 하층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차차 상인들, 정치인들, 그리고 2세기부터는 로마의 황족들도 상당수가 기독교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AD 300년경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틴도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AD 325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틴은 소아시아의 니케아에 모든 주교를 모아 예수가 신인가, 반인 반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등등 예수의 본성을 논하게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애국자인 아리우스(Arius) 주교는 예수가 <신보다 못한 자(less than God)>라고 주장했고, 한편, 아사나시우스(Athanasius) 주교는 예수가 <바로 신 중의 신(God of Very God)>이라고 주장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두 파로 갈라져 며칠간 격렬한 토론을 거친 뒤 결국 아사나시우스파가 승리하여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인간 예수는 결국 <완전한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와 그 지지파들은 추방되었다. 결국, 콘스탄틴 로마 황제가 아사나시우스와 그 파들을 뒤에서 후원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사회 정치적 심리요인이 들어있었다. 결국, 삼위일체를 만들게 된 것은 인간이 예수의 생애처럼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억눌림 받는 민중들의 복지를 위해 사는 것은 힘들고 지배층에는 도전적이니까 예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아 단지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예배나 보게 하려고 시도하게 되니 황당한 삼위일체론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 교리는 <역사적인 그리스도>를 단지 일개의 <개념상의 그리스도>, 혹 <하나의 원칙>으로 바꾸어버렸다. 이러한 개념상의 그리스도론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이디어나 도그마에 대해 깊은 심사숙고나 하는 끝없는 <명상의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기독교는 표면상으로는 확대되어간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발육 불가능의 위축된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앞 장에서 이미 상세하게 강조하였다.

 

루터와 칼빈이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을 시도했으나 그들의 시도는 단지 구교인 가톨릭교회의 현상적 부패상과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잘못을 시정했을 뿐 기독교 교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자체모순을 전혀 바로잡지 않았고 가톨릭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이들의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형태의 변형에 불과했던 것이지 기독교 교리 자체의 개혁도 아니었고, 더구나 사회, 정치, 문화적인 혁명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성불가침의 교리인 <삼위일체설> 자체와 <유아세례>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니테리안의 시조가 되는 마이클 서비터스(Michael Servetus 1511~1553 AD)였다. 그는 19살에 [삼위일체론의 오류]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신은 셋이 아니라 오로지 한 분이며,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고, 성령이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현존하는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삽시간에 유럽 전체에 퍼져나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는 1553년에 또 하나의 책을 썼는데 그 속에서 그는 예수는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이며, 은혜, 구속, 기도보다는 역사적 예수처럼 능동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도덕적 지침이라고 주장했다. 서비터스는 제네바에서 신정을 베풀고 있던 존 칼빈에 붙잡혀 1953년 제네바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이단자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 종교개혁 당시 소위 말하는 신교에서도 종교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서비터스가 사망한 뒤 이탈리아 사람인 파우스터스 소시너스(Faustus Socinus 1539~1604)가 폴란드에서 서비터스가 주장한 유니테리안 이교를 전파하였다. 소시너스는 <삼위일체>, <원죄설>, <예수의 신성>, <귀신의 존재>, <영원한 형벌>에 관한 교리들을 부인했다. 그는 구원이란 예수의 미덕을 모방하여 사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성경도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광신적 구교도와 신교도들은 소시너스를 강물에 던져넣기도 했고, 얼굴에 더러운 진흙을 던지고 입에 오물을 집어넣곤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으로 60년 만에 폴란드에는 300여 개의 소시너스 교회당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뒤 1605년에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소시너스 교회당은 문이 닫히고 소시너스를 따르던 신도들은 모두 폴란드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한편, 지금의 루마니아 땅인 트랜실베니아에서는 프란시스 데이비드(Francis David 1510~1579)에 의해서 최초의 유니테리안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유니테리안>이란 용어는 이교적인 자유종교운동가들을 비꼬아 묘사하기 위하여 신 구교의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해 트랜실베니아에서 생겨난 것이다. 프란시스 데이비드는 서비터스와 소시너스와 마찬가지로 신은 하나이고 예수는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종교 분야에서 <합리적 진리탐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데이비드의 노력으로 트랜실베니아의 젊은 왕 존은 1568년에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칙령을 내렸다. 그러나 존 왕이 죽고 칼빈주의자인 새 왕이 등장하게 되자 데이비드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결국 1579년에 옥사했다. 이와 같은 수난을 겪으면서 유니테리안 자유종교운동은 동유럽, 트랜실베니아,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유니테리안 종교를 받아들인 사람은 과학자(1774년에 산소를 발견한 자)이고, 저술가이며, 목사였던 조세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였다. 그는 성경을 자세히 연구한 후 신 구교의 교리인 <삼위일체론>, <구속론>, <원죄론>, 등이 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철학적 사고에 의해 꾸며진 황당무게한 것임을 지적하고 유니테리안주의를 설교했다. 그러자 1791년 7월 영국 교계 지도자들이 이끄는 폭도들이 프리스틀리의 집, 서재, 그리고 실험실, 교회, 등에 불을 지르고 파괴해버렸다. 그는 할 수 없이 1794년에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도착하여 펜실베니아주에 최초의 유니테리안 교회를 세웠다.

 

물론, 프리스틀리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신대륙에서도 <자유종교운동>이 청교도 내에서 발전되어 왔다. 그 자유종교운동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칼빈주의의 <원죄론>을 반대하고 인간의 선함과 자유의지를 믿었으며,

둘째, 삼위일체론을 반대하고 하나님이 하나임을 믿었고,

셋째, 성경을 해석하는데 감성뿐 아니라 <이성>도 사용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청교도 내의 자유종교운동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종교운동이 여기저기서 발전되어 갔으나 신대륙에서는 아직도 <칼빈주의 암흑시대>가 계속되었다. 1753년 조나단 메이휴(Joanthan Mayhew 1720~1766)가 보스턴에서 처음으로 삼위일체론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가 동료 목사들과 대중들로부터 크게 욕을 보았다. 그러다가 1819년 윌리엄 엘러리 챈닝(William Ellery Channing 1780~1842)이 메릴랜드 볼티모어 시에서 행한 [유니테리안 기독교]라는 설교가 도화선이 되어 뉴잉글랜드 지역은 교회가 두 파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챈닝은 이 설교에서 <삼위일체론>의 모순을 지적하고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 받고 믿지 않는 대다수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편협된 구원론은 <사랑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인간의 선함을 믿었으며 선을 행할 위대한 능력이 있음을 믿었고, 종교적 신앙을 개발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적, 신체적 자유>가 절대로 필요함을 역설했다. 챈닝은 미국 유니테리안주의의 신학적 토대를 세운 예언자였다.

 

그다음으로, 미국 유니테리안주의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유니테리안 윤리관을 제공해준 씨오도르 파커(Theodore Parker 1810~1860)였다. 그는 대부분의 기독교 교리와 도그마들이 일시적이고 하찮은 것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의 신성과 그가 행한 기적들을 부인했으며, 오로지 인간의 <경험>과 <직관력>을 중시했다. 그는 <인간이 바로 신>이기 때문에 노예제도로부터 해방해야 하며, 인종차별과 빈곤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노예폐지론자로서 흑인 노예들을 해방하는 일에 온갖 노력을 다했던 사람이다. 파커는 우리 나라에서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가르치며 농민들의 인간 존엄성을 위해 투쟁한 최제우 선생과 흡사한 사람이었다. 이와 같은 유니테리안 예언자들을 통하여 1825년에 “미국 유니테리안 연합체”가 탄생했고, 19세기 후반기와 20세기 전반기에 이룩된 여러 과학적 발견들과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자유종교운동가들은 이제 더는 <신 중심의 신앙>에 머물지 않고 <인간 중심의 종교적 휴머니즘>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2년~33년 겨울 교육철학자 죤 듀이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시카고 인본주의자들이 모여 [인본주의 선언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 세계를 통하여 종교적 신앙에 관한 근본적인 변화를 널리 인정할 때가 왔다. 전통적인 종교적 태도를 단지 일부 수정하던 때는 지났다. 과학과 경제의 변화는 낡은 신앙을 붕괴시켜 버렸다. 전 세계의 종교들은 오늘날 거대하게 증가하여온 지식과 경험으로 야기된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적응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오늘날 인간활동에서 가장 긴요한 운동은 모두 솔직하고 명백한 인본주의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들은 <종교적 인본주의>를 좀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하여 몇 가지 증언을 선언하기로 했다고 쓰고 있다. 그들은 <종교>란 말을 20세기의 인간의 삶의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무의미한 <교리>나 <도그마>와 일치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가 항상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우주에 대한 넓은 이해와 과학적 업적, 그리고 종족, 색깔, 성별에 관계없이 인류의 <형제애>에 대한 깊은 이해는 새로운 종교에 관한 정신적 지침을 요구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과감하고 솔직한 <인본주의 종교>는 과거의 도그마와 교리 위주의 형식적인 종교와 손을 끊고 현실적이고 타당한 사회목표와 개인의 삶의 만족을 위한 목적을 제공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본주의적 종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우주를 창조된 것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1. 그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끊임없는 과정의 결과로 세상에 나타난 것으로 믿는다.

 

2. 그들은 전통적인 몸과 마음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거절하고 있다.

 

3. 그들은 인간의 종교적 문화와 문명은 인류학과 역사가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유산과의 상호관계로 점차 발전되어온 산물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어떤 특수한 문화권 속에 태어난 개인은 주로 그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4. 이들은 인간 가치의 어떠한 초자연적이고 우주적인 보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이들 역시 이 우주 속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미발견물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서가 아니라 <과학정신>과 <지성적탐구>에 의해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 이들은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과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도 없다고 주장한다.

 

6. 이들은 예배와 기도에 대한 종래의 낡은 태도를 버리고 인간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공동의 헌신 속에서 강한 <종교심>을 발견한다. 이들은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소망에 어떤 기대도 하고 있지 않다.

 

7. 이들 인본주의적 종교인들은 개인의 이익추구에 바탕을 둔 비인간적인 경제구조를 타파하고 공평한 경제분배가 가능한 <집단경제 체제>를 확립시키기 위하여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8. 그들은 기성 기독교회가 삶을 부인하는 대신에 삶을 긍정하고, 삶의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며, 극소수자들의 이익추구에 헌신하지 않고 모든 인류의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들은 여기에서 새로운 신조를 창조해내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 발전적 사고방식을 종교생활에 표현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들 인본주의 자유종교운동가들은 대부분이 유니테리안 진보주의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1961년 유니버설리스트 교단과 연합하여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연합체”(Unitarian Universalist Association)>를 탄생시켰는데 이 교파는 현재 북미주에 1,000여 교회가 있으며 보스턴에 본부를 두고 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의 역사는 여러 예언자와 철학자들, 예술가들, 사회변혁운동가들과 또한 상상가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각자 과거의 예언자들이 가졌던 것과 똑같은 비전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위에 지적한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과는 다르게 기독교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독선적인 <문화적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우리 코리안 민족문화와 충돌해 왔다. 기독교는 오직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절대화하며 다른 종교를 배척해 왔다. 코리아 반도의 한울타리, 더 나아가 세계의 한울타리 아래에서 인류는 누구나 동등하고 차이가 없다고 믿은 코리안들이 예수만 믿어야 구원을 받고, 성경만이 진리가 들어있는 유일한 책이고, 기독교회만이 거룩한 곳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즉 서학을 반대하고 동학을 옹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71년 10월 8~10일 3일 동안 뉴욕에서 [인류의 희망과 미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을 때 독일 튀빙겐대학의 교수인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나를 비롯한 여기 모인 모든 참석자가 부유한 나라 출신의 백인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결국 백인들의 소망과 미래를 논하고 있군요…. 우리 백인 부르조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우리들의 신학적 출발이 우리 이웃들의 구체적인 제도적 억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 부유한 중산층의 신학자들은 모두 색맹들이요, 우리 사회제도에 매인 죄수들입니다…. 내게 <자유주의 신학>은 더는 흥미가 없습니다. 단지 미국의 흑인신학자 제임스 코운과 남미 신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해방신학>만이 진정한 인간의 미래를 밝혀주는 유일한 신학입니다. 우리 부유한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제도를 변혁시키지 못하는 한 인간의 미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개인 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사회 속에서 온 마을 온 나라 문제를 서로 걱정하며 공동으로 해결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그리고 <이원론>이 아닌 <천지인 합일 정신>을 강조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소유한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언제부터 서구 자본주의의 개인 이기주의에 물들어 개인 이익만 추구하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전 <사회의 구원>이 아닌 <개인 구원>만을 추구하는 종교적 이기주의에 빠지고 말았단 말인가? 기독교 신앙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지극히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띤 독단적 종교의 신은 우리 코리안들에겐 용납될 수 없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유신론자, 무신론자, 사회주의자들, 불가지론자, 인본주의자들, 모두가 모여 위에서 길게 다룬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과 몰트만이 강조한 <비인간적인 사회제도>를 변혁시키기 위하여 서로 자극하고 서로 격려하며 인류멸망을 막고 더욱 인간다운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는 그런 광장으로서의 교회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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