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연재] 바닷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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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08 09:5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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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동안 여러차례 북을 방문한 해외동포기업가가 북 방문의 나날에 자신이 실지로 체험한 이야기들로 장편수기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를 집필하였다. <조선의 오늘>사이트에 김성옥 해외동포기업가의 수기를 연재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에 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국
김성옥(해외동포)
진짜부자들의 결혼식
평양을 세번째로 찾았던 어느해 8월 초 어느날 나는 화려한 생화꽃다발을 안고 차에 올랐다.
오랜 기간의 조국방문 과정에 낯을 익히고 사업상 거래 과정에 친숙해진 평양의 동업자로부터 아들 결혼식에 꼭 참가해달라는초청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날 때마다 아들이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연합기업소 책임기사로 사업하고 있는 실력가형인데다 외모와 인품에서도 짝지지 않기 때문에 곱고 마음씨 착한 처녀를 며느리로 맞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그였다.
아들이 과연 어느 정도이기에 하는 은근한 호기심을 품고 있던 나는 그가 결혼식초청장을 내놓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꼭 가겠노라 약속했었다. 조국에서는 결혼식을 어떻게 할가 하는 흥미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은 바빴지만 만사를 제쳐놓고 결혼식장부터 가보기로 작정하였다.
흘러간 처녀시절의 즐거운 한때를 추억하며 흥겨운 기분에 들떠있는 사이에 차는 어느새 대동강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어느 한 건물 앞에 멎어섰다.
식당에 도착한 순간부터 신랑의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장은 상상외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중앙과 시의 책임일꾼들까지 참가하였다는 그의 말을 듣고서 결혼식의 규모를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있었다.
조금 있어 신랑, 신부를 태운 차가 식당에 도착하였다.
미리 준비해 가지고온 꽃다발을 안고 신랑, 신부에게로 다가가던 나는 저도모르게 선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신랑을 기본축으로 하여 사람들이 차에서 신부가 타고 있는 삼륜차를 통채로 안아내리는 것이었다.
내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있는데 신랑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며느린 군사복무시절에 뜻하지 않은 일로 두 다리를 잃은 특류영예군인입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며느리가이 세상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류영예군인! 순간 나는 가정의 외아들이다보니 세상에서 제일 곱고 제일 아름다운 처녀, 이 세상 그 어느 부자에도 비길 수 없는 억대의 재부를 지닌 처녀를 며느리로 맞기로 결심했다고 자랑하던 동업자의 말이 어제런듯 되새겨졌다.
그러나 나의 놀라움은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더욱 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영예군인처녀가 결혼식을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자신의 감사와 함께 신랑, 신부의 첫날 옷감, 결혼식상까지 보내주시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두 가문의 재력과 배경을 과시하는 요란한 결혼식들을 수많이 목격하였지만 한 나라의 국가영도자께서 영예군인처녀의 결혼식을 위해 친히 결혼식상까지 보내주시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놀라웠고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눈앞에 펼쳐진 꿈아닌 현실, 전설아닌 현실이었다. 영도자와 인민의 관계가 어버이와 자식이라는 혈육의 정과 사랑으로 뭉쳐진 이런 사회, 자기보다 사회와 집단,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치는 것을 공민의 신성한 의무로 간직한 이런 인민을 과연 그 누가 정복할수 있을까.
신랑, 신부를 축하하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껏 보지 못한 진짜부자들의 세상을 보았고 뜻깊은 이날을 한생토록 추억하고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제일 행복한 정신적 부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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