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바닷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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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07 15:0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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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동안 여러차례나 북을 방문한 해외동포기업가가 북 방문의 나날에 자신이 실지로 체험한 이야기들로 장편수기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를 집필하였다. <조선의 오늘>사이트에 김성옥 해외동포기업가의 수기를 연재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에 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국
바닷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1)
김성옥(해외동포)
처녀는 왜 춤판에 뛰어들지 못하였는가
내가 조국에 체류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그날은 조국해방의 날인 8월 15일이었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도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청춘남녀들은 물론 노인들까지 뛰어들어 춤을 추고 있었다.
호기심에 끌려 춤판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나의 눈앞에는 무도장 가까이에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서있는 한 처녀가 눈에 띄었다.
순박함이 푹 배인 얼굴과 호리한 몸매를 가진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의 처녀였는데 그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순간 나의 눈앞에는 애인을 기다리며 애꿎은 시간만 한탄하던 처녀시절의 한때가 어제런 듯 되새겨져 웃음이 나갔다.
춤판이 다 끝날 때까지 총각이 나타나지 않으면 처녀가 혹시 울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에 나는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사연을 물으니 처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나는 정을 담아 이제 총각이 나타나면 새침해서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말라고, 그래야 총각이 정신을 차린다고 연장자답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여기에 나타날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기도 모른다는 처녀의 말에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 저렇게 안타까와 하다니?!
"그 사람은 늦게라도 꼭 나타날 거예요. 돈가방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다음순간 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돈가방을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의 의문은 모두 풀렸다.
동무들과 함께 무도장 주변의 휴식장에서 시간을 기다리던 처녀는 의자 옆에 떨어져 있는 돈가방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가방을 열어보면 명함장이나 다른 그 무엇인가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고 물으니 처녀는 열어본다는 것 자체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죄 되는 행위라며 돈가방에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처녀의 정상이 하도 딱하여 나는 그 돈가방을 해당 기관에 보내어 찾아가게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터놓았다.
그러자 처녀는 그것은 마지막 방법이고 문제는 한시바삐 돈가방의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며 여전히 초조해하는 것이었다.
춤판이 거의 끝날 무렵 한 청년이 그곳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돈가방 주인이었다. 그가 잃어버렸던 돈가방을 받아들고 정말 고맙다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고 묻기 바쁘게 처녀는 밝은 웃음으로 대답하고 무도장으로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내가 겪은 사실의 전부이다.
자본주의사회 같으면 길가에서 얻은 돈가방을 주인에게 찾아주기는 고사하고 설사 찾아준다고 해도 응당한 사례금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처녀가 돈가방의 주인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것은 결코 사례를 받자고 그런 것도, 사회적 명성을 얻고저 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 한가지 남의 안타까움을 자기일처럼 생각하였던 것이다.
평범한 날의 순간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평생 이 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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