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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새 소식

최한욱 집행위원장 최후 진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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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4-24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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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본 재판의 공정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애써주신 재판장님과 재판부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경의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서울대 법학과 조국 교수의 강연을 인용하면서 최후진술을 시작하려 합니다.

1.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영장기각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실효기각입니다.

최근에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오세철 교수 영장기각 사건이 있었죠. 만약에 이 사건이 30년 전에 일어났더라면 적어도 15년형은 받았을거예요. 관련자들 가운데 사형도 나왔을 겁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실형을 살았을 거고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지만,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란 조직이 상당히 급진적인 조직인데도 영장이 기간된 거죠. 영장기각한 판사가 특별히 과격하거나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법률가의 눈으로 봤을 때 이건 안 된다고 판단한 거예요. 과거 많은 것이 변해서 이런 성과가 있는 거죠.

《조국, ‘진보여, 맨발로 뛰어라’, 작은 책, 2009.1.22》

조국 교수의 지적처럼 ‘사노련’에 대한 영장기각은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볼 때 ‘사노련’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하는 ‘급진적인 조직’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장이 기각되었으니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사건’입니다.

20여년 전에 ‘사노련’과 거의 유사한 명칭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소위 ‘사노맹’사건의 주역이었던 박노해 시인은 48시간 만에 풀려난 오세철 교수와 달리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형기를 마친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에 비로소 석방되었습니다. 거의 유사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박노해 시인은 10여년 만에, 오세철 교수는 48시간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지만 15년과 48시간은 납득하기 어려운 편차입니다. 때문에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사노련에 대한 영장기각은 매우 급진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1991년 5월 31일 이후 국가보안법은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과 오세철 교수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의 판결문 사이에는 이승과 저승의 차이만큼 양립할 수 없는 법률적 심연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물론 유사한 사건이라도 사회적 상황에 따라 법률적 판단이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년과 48시간의 차이는 사회적 통념과 상식의 범위를 지나치게 벗어난 것입니다. 때문에 사노련에 대한 영장기각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실효기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의미 있는 현실규율의 수단이라면 이 같은 해석의 편차는 명백한 오심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심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법부의 용기 있는 판단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사문화된 법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법부는 단지 ‘법률가의 눈’으로 국가보안법의 죽음을 재확인한 것일 뿐입니다.

사노련과 사노맹에 대한 극단적인 법률적 해석의 편차는 국가보안법의 실효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15년과 48시간의 차이는 재판부의 재량권이나 법률해석의 유연성으로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법률 내에서 유사한 사건에 대해 이 같이 큰 적용의 편차가 발생한다면 그 누구도 그 법과 법원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고무줄법’으로 누군가를 처벌한다면 그 어떤 판결도 공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이미 수명을 다 하였습니다. 사노련에 대한 영장기각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48시간은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모든 사건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표준을 초과하는 모든 판결은 국가보안법의 남용이라는 의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2. 국가보안법으로 사회주의자를 구속할 수 없다면 통일운동가는 더욱 구속할 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피고인들은 사노련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 직후 국가정보원에 체포되었습니다. 21세기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압수수색과 체포, 악의적인 선동으로 가득찬 주류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저는 48시간 안에 피고인들이 모두 석방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실천연대의 노선은 사노련만큼 급진적이지도 않고 과격하지도 않으며 지난 8년간 모든 활동을 철저히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벌여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의 지원까지 받으며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단체를 이제 와서 ‘이적단체’로 처벌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얄팍한 상식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피고들은 48시간 만에 모두 구속되었고 그 후 6개월 동안 0.75평 독방에서 자신의 상식을 곱씹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저의 상식을 철회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주의운동이 미군철수운동이나 통일운동보다 급진적이라는 것은 법률적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 수준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으로 사회주의를 구속할 수 없다면 통일운동가는 더욱 구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저는 사회주의에는 관대한 구가보안법이 6.15에는 엄격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48시간이라는 ‘새로운 표준’이 왜 사회주의단체에만 적용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상식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대체적인 상식일 겁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제가 목격한 것은 아직도 상식을 짓누르고 있는 오직 하나의 거대한 ‘이념적인 편견’이었습니다. 북한과 통일운동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마치 불가사리처럼 상식을 삼키고 이성을 비웃으며 양심을 짓밟고 있었습니다.

영장실질심사로부터 구속적부심 그리고 10여 차례의 공판과정에서 저는 오직 하나의 질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과연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지난 6개월 동안 저에게 던져진 사실상 유일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오직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명백하게 그 차이를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통일운동가로써 자신의 양심과 존재를 부정하는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통일운동은 북한과 다름이 아니라 같음을,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둘이 아니라 하나를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통일운동가의 사명은 남과 북의 차이를 극복하고 유사성과 공통성을 확대하여 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운동은 본성적으로 친북적이며 또 친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측의 통일운동가는 친북이 사명이고 북측의 통일운동가는 친남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 제가 한 일은 오직 자신의 친북성을 부정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진정한 의미의 통일운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단지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통일운동가로서 저의 존재를 부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인신의 구속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우리가 무력이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영구적인 분단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 ‘사회주의조선’, ‘선군조선’, ‘주체조선’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상과 이념, 체제와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애정없이 평화저거인 통일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지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북한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이유로,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통일운동을 이적행위로 단죄한다면 대한민국에는 오직 유사통일운동, 즉 분단운동만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과 북은 반목과 대립의 상태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실천연대의 주장은 북한과 유사합니다. 북한과 아무런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면 통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천연대는 북한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실천연대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그대로 묘사합니다. 북한에게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면 통일은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천연대는 북한을 가능한 한 매력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때 비로소 통일의 매력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천연대는 북한을 맹목적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 대다수의 정치인과 정당들, 지식인과 종교인 심지어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지나칠 만큼 그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연대가 감히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북한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이미 시장의 수요를 훨씬 초과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과소비판’이 아니라 ‘과잉비판’이 한국사회의 지적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천연대는 북한에 대한 지식과 담론, 여론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사회와 남북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활동원칙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온건한 방식의 사회운동이며 자유민주적 지향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통일운동을 사회주의운동보다 더 불온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적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인 북한에 대한 거부감은 이제 하나의 종교적 관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체제수호’가 아니라 오직 동족증오의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하려는 것인지 분단체제를 방어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법원이 사노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이유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를 체제 내에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우 리 사회가 충분히 성숙하였고, 둘째 사노련의 활동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새로운 표준’으로 볼 때 실천연대가 ‘이적단체’라는 검찰 측의 주장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는 물론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정치까지 사실상 허용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논의를 금지하고 단지 사회주의와의 공존을 추구하는 통일운동을 이적시 하는 것은 ‘이율배반’아니 ‘일율배반’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적화’는 합법이고 ‘통일’은 불법이라는 전도된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를 체제 내에 흡수할 수 있다면 북한에 대한 논의도 가능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논의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 행위의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북한에 대한 태도와 입장 차이만으로 이적성이 가늠된다면 그것은 냉철한 ‘법률가의 눈’이 아니라 ‘이념적인 편견’일 뿐이며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의 표현일 뿐입니다.

‘새로운 표준’은 사회주의운동 뿐 만 아니라 통일운동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보안법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속>

3. 실천연대는 ‘이적목적성’이 아니라 오직 ‘통일목적성’을 추구할 뿐입니다.

실천연대는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상설 연대체’입니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과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추구하는 민간통일운동단체입니다.

사회 통념상 실천연대의 정치적 주장과 활동 내용은 다소 친북적으로 보일 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정한 통일운동은 친북과 반북의 대립을 넘어 궁극적으로 북한과 하나 되기 위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친해지지 않고 즉 친북하지 않고 하나 될 수 없는 것, 즉 통일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친북운동은 통일운동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측의 통일운동단체가 친북적이라는 평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축구 선수가 공을 두려워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 고무, 선전, 동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국가 변란을 선전, 선동’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단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을 극복하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관계’하기 위한, 즉 북한과 하나 되기 위한 목적의 활동일 뿐입니다.

실천연대는 ‘이적목적성’이 아니라 오직 ‘통일목적성’을 추구할 뿐입니다.

또한 ‘실질적 위험성’의 측면에서도 실천연대의 활동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008년 9월 27일 이전에 실천연대는 어떤 위법행위에도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2006년 선거법 위반 등으로 상임대표들이 기쇠된 바 있지만 200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외제 지난 8년 동안 그 어떤 소송도 없었습니다. 만일 검찰 측의 주장처럼 실천연대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할 만큼 위험한 단체라면 왜 8년 동안이나 그 위험성이 객관적으로 표출되지 않았습니까?  ‘무장투쟁과 전민항쟁을 결합한 폭력적 방식의 체제변혁’까지 추구하는 어마어마한 단체가 그 어떤 불법집회나 폭력행위에도 주도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실천연대의 위험성이 검찰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헛깨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연대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민간통일운동단체일 뿐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검찰이 보증한 것이며 행정안전부-구행정자치부-와 통일부 등 정부기관과 법원이 보증한 것입니다.

이 같은 객관적 보증 때문에 유례없는 이적단체에 대한 공소시효 논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실천연대의 결성시기가 2000년인지 2001년인지는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소시효에 대한 논란이 쟁점이 될 만큼 실천연대에 대한 기소가 철지난 것이라는 점입니다. 실천연대에 대한 공소사실이 대부분 공개- 미군철수공대위와 관련된 북경회담의 구체적인 내용도 이미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것입니다.-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나도록 혹은 근접하도록 검찰이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실천연대의 위험성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단 하나의 진실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공안기관의 나태와 안일, 무능을 입증하는 증거임에는 분명합니다.

실천연대의 ‘실질적 위험성’이 매카시즘적인 과대망상증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는 지난 8년 동안의 시간과 바로 이 순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피고들이 구속된 6개월 동안 실천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했지만 검찰이 주장하는 ‘위험성’은 그 어는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 정부와 공안세력의 ‘위험성’이 드러났을 뿐입니다.

물론 실천연대의 정치적 주장들은 한국 주류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생각이 다르다고 범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법원이 사노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것은 비록 그들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추구할지라도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실질적 행위로 표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천연대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거의 대부분 행위가 아닌 말과 글입니다. 오직 말과 글만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면 피고들은 초인적 능력의 소유자, 초능력자이며 실천연대는 통일운동 단체가 아니라 종교단체일 것입니다.

실천연대의 ‘이적성’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과 통일운동에 대한 ‘이념적인 편견’이 빚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실천연대의 ‘위험성’은 ‘실재적 현산’이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을 비롯한 냉전생활자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창작된 허구에 불과합니다.

4. 실천연대에 ‘북한의 조직적 연계’는 악의적인 짜 맞추기일 뿐입니다

검찰 측은 실천연대의 ‘이적성’을 조작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검찰 측도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미군철수 공대위 결성은 2004년 9월 실천연대 중앙상임위원회 결의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북경회담’ 이전의 일입니다. ‘미군철수 투쟁의 전면화, 대중화, 전국화’라는 개념도 북측에서 ‘지령’한 것이 아니라 2004년 5월 경 실천연대에서 발표한 ‘미군강점 60년인 2005년을 주한미군철수 원년으로 맞이하자’라는 글에서 먼저 밝힌 것입니다. 즉 실천연대의 주장을 북한이 동의한 것입니다. 검찰 식 논리로 표현하면 실천연대의 ‘지령’을 북한이 따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검찰 측은 2005년 4월 ‘심양회담’ 이후 실천연대가 ‘북한의 핵보유를 선전하는 글’이 급증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악의적인 사실왜곡에 불과합니다.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및 증산’을 선언했습니다. 북한의 핵 보유선언 직후부터 실천연대는 이와 관련된 글들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북한의 핵보유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후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와 관련된 글은 2005년 2월에서 4월 사이에 집중 발표되었습니다. 심양회의 이후, 즉 2005년 4월 8일- 엄밀히 말하면 강진구 피고가 ‘북한의 지령을 보고’했다고 검찰 측이 주장하는 2005년 4월 19일-이후 발표된 글보다 그전에 발표된 글이 훨씬 더 많습니다. 따라서 ‘심양회담’과는 아무런 개연성도 없습니다. 아마 검찰 측도 수사과정에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소사실의 90% 이상을 실천연대의 홈페이지에 의존하고 있는 검찰 측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검찰의 행태를 악의적인 짜 맞추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민족민주전선체’와 관련된 입장도 ‘심양회담’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실천연대는 2000년 10월 21일 결성 이후 지속적으로 ‘민족민주전선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2005년 4월 이전에 발표된 글이 수 십 편에 달할 것입니다. 검찰 측이 이적표현물로 기소한 ‘2004년 실천연대 총노선’(공소사실 187쪽)에서도 ‘대중단체들의 대규모 연대연합을 실현’, 즉 ‘민족민주전선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검찰 측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사실들을 악의적으로 짜 맞춰 실천연대의 ‘이적성’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짜 맞추기 기법의 가장 뻔뻔하고 낯 뜨거운 사례가 소위 ‘E-mail 지령’ 입니다.

검찰 측은 ‘silchun615@paran.com’, 즉 실천연대의 대표메일로 수신된 2008년 7.5자 ‘조평통 서기국 상보’와 7.8자 ‘노동신문 사설’이 실천연대의 2008년 ‘7,8월 사업계획서’에 반영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조평통 서기국 상보’는 7.5 경에 이미 ‘통일뉴스’ 등 한국 언론에 전문이 보도되었습니다. 즉, ‘회합·통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베를린의 ‘북한 공작원’에게 E-mail로 ‘지령’ 받을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공개된 정보입니다. 게다가 검찰 측은 어느 대목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비밀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와 관련해 무엇을 입증하고 반박해야 할지 종잡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마치 유령과 ‘회합·통신’한 것 같습니다.

한총련과 실천연대의 핵심간부는 반드시 베를린의 ‘북한공작원’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검찰 측의 밑도 끝도 없는 박테리아 수준의 2단 논법은 대한민국 사법고시의 객관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합니다.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탈북자 장철현은 김용무를 전혀 모른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조선노동당 대외연락부 지도원이었다는 장철현도 모르는 베를린의 북한 공작원을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지 오히려 검찰 측에 되묻고 싶습니다.

북한이 ‘실천연대의 친북투쟁을 독려’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 외에 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검찰 측이 제시한 북한의 실천연대 관련 보도들은 100% ‘스트레이트-기사’, 즉 ‘사실보도’입니다. 그 어떤 가치평가나 주관적 해석도 배제된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일 뿐입니다. 예컨대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살의 전달이지 김연아르 ‘독려’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북한 언론에 보도된 남측의 단체와 인사들은 수 십 여개, 수 백 여명이 넘을 것입니다. 과연 법정에서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문법까지 다퉈야 하는지 씁쓸합니다.

범민련과 한총련과의 관계도 확대해석일 뿐입니다.

검찰 측이 실천연대가 범민련의 ‘조직적 연계’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는 실천연대의 출범선언문 중 단 세 줄입니다. 2001년 실천연대 결성론의 강력한 추종자인 검찰 측이 이 대목에서만 갑자기 2000년 결성론자로 급선회합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검찰의 진술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아무튼 8년 전 작성된 단 세 줄의 문장에서 ‘김양무의 범민련 정신’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문구에서 범민련과의 ‘조직적 연계’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추출해내는 검찰 측의 문학적 상상력에 감탄할 지경입니다. 검찰이 제시한 세 문장은 실천연대의 가입단체인 ‘김양무정신계승사업회’가 참여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습니다.

한총련은 실천연대의 14개 가입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로 실천연대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총련 역시 14개 가입단체 중 하나일 뿐이며 실천연대에서 그에 상응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총련은 실천연대 외에도 한국진보연대, 615공동위원회, 광우병대책회의, 한미FTA범국본 등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실천연대 역시 한총련이 가입한 10여 개 연대 단체 중 하나일 뿐입니다.

‘동무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라는 가사의 동요가 있습니다. 동무는 친구를 뜻하는 순우리말 단어입니다. 그런데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동무라는 말을 북한에서 많이 쓴다는 이유로 이 동요의 가사를 ‘친구야 나오너라’로 바꿔 불렀습니다. 심지어 ‘동무따라 강남간다’는 속담도 ‘친구따라 강남간다’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빚어낸 웃지 못 할 냉전시대의 촌극입니다. 개인의 편견은 한 사람을 머저리로 만들지만 사회적 편견은 한 나라를 머저리로 만듭니다.

검찰 측은 실천연대의 한 ‘조직원’이 다른 ‘조직원’을 “동무”라고 호칭하면서 격려한 ‘댓글’을 ‘행동양식에 있어서 북한 추종’의 증거로 의기양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박할 가치도 없는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최근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현 정부의 공안탄압이 유신시대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안검찰의 의식수준이 유신시대로 퇴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실천연대에 대한 검찰 측의 편견은 ‘동무’라는 단어에 대한 냉전시대의 편견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북한에서 즐겨 사용한다는 이유로 ‘동무’라는 단어를 금지시킨 군사정권의 유치한 사고방식과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적행위’라는 단순한 논리는 본질적으로 뿌리가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과 이념적인 편견을 버리고 오직 ‘법률가의 눈’으로 실천연대의 정치적 주장들과 활동내용을 냉정하게 검토한다면 ‘동무’라는 단어의 본 의미와 같은 순수하고 소박한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내일 쯤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반도 정세는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이미 남북관계는 경색단계에서 빈사상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개성공단 차단 상태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이제 남과 북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의존관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빈사는 이미 세계경제위기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국 경제를 뇌사상태로 빠뜨리게 될 질도 모릅니다.

이 같은 위기를 자초한 것은 현 정부의 맹목적인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이념적인 편견, 시대착오적 대결의식입니다.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초래하고 있는 낡은 냉전의식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이적행위인 것입니다.

지난 3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은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데 반대한다”며 “최종목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고 남북 간 공존하자는 것이므로 강경대응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현 정부의 ‘최종목표’가 ‘남북 간 공존’이라면서 단지 북한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자국민들을 처벌한다면 과연 누가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북한과의 ‘공존’을 원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결코 새 생명이 잉태되지 않습니다.

이번 재판은 북한에 남측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남북관계를 완전히 뇌사상태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도발적 신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이적단체’로 처벌한다면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공존론이 여전히 빈말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평양에 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남북관계를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게 될 것입니다.

과도한 재량권과 폭넓은 해석의 유연성은 국가보안법의 근본적인 결함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 중 하나이지만 역으로 국가보안법의 과도한 적용과 기소권의 남발을 사법부 차원에서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사노맹과 사노련의 사례처럼 같은 법률로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국사회의 변화된 현실과 남북관계의 발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향후 본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이 남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이 공작원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인사들과 만나 유사한 내용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수 천 명 아니 수 만 명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의 대다수 통일운동가들과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하고 평화협정의 체결과 주한미군의 궁극적인 철수를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15 시대의 국가보안법 적용은 보다 신중해야 하며 최소한의 자위적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검찰 측은 피고들과 실천연대에 국가보안법의 최대치를 적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안 관계자들의 생명 유지에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남북관계와 국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4월 1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날 경기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각계 내외빈과 5만 여명의 관중이 지켜보았으며 전국에 생중계 되었습니다. 아마 적어도 2천만 명 이상이 시청했을 것입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연주되었고 박희태 대표를 포함해 모든 관중이 경의를 표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무·찬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도,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공안검사들 조차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 장면에서 국가보안법을 조금이라도 연상했다면 그 사람은 정신과 진단부터 받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것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며 호흡하고 있는 한반도의 객관적 현실입니다. 이같이 살아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국가보안법을 맹목적으로 적용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법률을 최악의 방법으로 악용한 최악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재판부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출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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