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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나의 스승 선우학원 선생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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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5-05-14 15: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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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나의 스승 선우학원 선생님을 생각하며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존경하는 선우학원 선생님이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운명하시기 며칠 전 나와 아내가 방문했을 때 환희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선생님께서 일생 연구해 오신 주체사상을 올바로 소개하는데 저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더욱 뇌리에 선명한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내가 선우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79년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매코믹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시카고대학 사회과학부에 입학하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보수문자주의 신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자유주의 신학에서 진보적인 해방신학으로 사상적 변천을 겪으면서 그 솔직한 심정을 여러 우리말 신문에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엘에이에서 발행되는 <신한민보>, 뉴욕에서 발행되는 <해외한민보>, 캐나다에서 발행되는 <뉴코리아타임즈>에 나의 여러 글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글들을 선우 선생님도 다 읽으신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글들을 읽은 신한민보의 김운하 사장과 해외한민보의 서정균 사장이 4.19 때나 5.18 때나 나를 기회 있을 때마다 뉴욕과 엘에이에 불러 강연을 시켰습니다. 특히 1979년 뉴욕에서 선우 선생과 서정균 선생을 비롯한 민족운동 인사들이 주동이 되어 <민족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때 유롭에서도 여러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거기서 나도 [코리아니즘(Koreanism)]에 대하여 논문을 발표한 기억이 납니다. 이 회의에서 나는 처음으로 선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1980년 어느 날 선우 선생님은 나에게 일본에서 개최되는 <민족통일 심포지움>에 강사 중 하나로 참석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매년 선우 선생님과 함께 통일심포지움에 참석하여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금 그 논문들을 읽으면 엉성하기 끝이 없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참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발표하였습니다. 그 덕에 미국정보원 둘이 시카고 대학 학생기숙사를 찾아왔던  황당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선우 선생님이 아주 큰 학자이신데 왜 그가 미국에서 그 흔한 박사학위를 못 받고 동구권인 체코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지 이제야 이해됩니다.

 

선우 선생님과 최익환 박사, 김동수 박사, 등의 학자들과 어느 날 일본 동경에서 심포지움을 끝내고 조선대학을 방문하기 위하여 호텔 근처에 있는 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책을 보는 척 하고 있으니 조선대학의 교수인 김 박사라는 분이 선우 선생과 인사를 하고 우리들을 안내하여 기차를 타고 조선대학을 방문했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조선대학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한덕수 의장님과 학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교내의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고 교내구경도 잘 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 선우 선생님과 총련본부도 방문하고 한통련본부도 방문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선우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나의 의식수준에 맞게 나를 벌겋게 만든 분입니다. 그는 나의 사상의 스승이시었습니다. 그는 우리 후배들을 대할 때 결코 무리가 없으시었습니다. 우리의 의식수준에 맞게 알아서 깨달아 가기를 꾸준하게 뒤에서 밀어주시면서 기다리셨습니다.

 

내가 선우 선생님께 지금도 미안한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선우 선생님과 내가 함께 <주체사상연구소>를 만들어 발표회도 몇 차례 가졌는데 그 연구소를 계속 발전시키지 못하고 지내다가 오래 동안 활동이 없게 되자 내가 다른 분들과 <재미자주사상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주체사상연구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선우 선생님을 만났을 때 주체사상을 계속 재미동포들에게 잘 알리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선우 선생님을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는 것은 1986년도에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를 만들 때의 일입니다. 그 때는 이미 선우 선생님이 연로하셨기에 양은식 박사를 회장으로 모셨고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선우 선생님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통협의 고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주셨습니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결성되어 지금까지 근 20년 동안 선우 선생님은 고문으로서 물심양면으로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선우 선생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내 개인적으로 훌륭한 스승이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능히 100세까지는 사시면서 통일의 서광을 보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이제 가시고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민족운동권에 남겨준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인 <재미동포전국연합회>와 우리 민족과 조국이 존재하는 한 영생하실 것입니다.

 

나의 스승이신 선우학원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4 16:39:19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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