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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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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호석 작성일15-04-23 12: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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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5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진1

 

 

제855부대 작전실에 있는 두 종류의 축소모형물

 

<사진 1>은 2015년 3월 19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인데, 사람들은 이 기념사진이 매우 특별한 사진임을 첫 눈에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총사령관이나 합참의장은 그만두고 사단장만 되어도 휘하 장병들이 그 앞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최고사령관이 휘하 장병들과 격의 없이 어깨를 겯고 기념사진을 찍었으니, 어찌 특별한 사진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친근한 모습은 조선의 최고영도자에 대한 기존인식을 뛰어넘는 실로 파격적인 모습이다. 이 파격적인 기념사진은 조선에서 최고사령관과 전투비행사들이 상명하복의 관계 이전에 혈육의 정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록영화의 제목을 왜 ‘사랑과 믿음’이라고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념사진을 다시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복정장을 입은 야전지휘관의 어깨를 자신의 왼팔로 감싼 모습에 시선이 멎게 된다. 그 야전지휘관은 누구이며, 가죽옷을 입은 다른 비행사들은 누구인가? 무슨 사연이 있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들과 함께 그런 파격적인 기념사진을 찍은 것일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어깨를 겯고 가장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찍은 그 기념사진에 나오는 군인들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비행훈련을 진행한 제855부대의 지휘관들이다. 기념사진에 나온 군복정장차림의 야전지휘관은 그 부대의 김광혁 사단장이고, 비행사복을 입은 다른 지휘관 네 사람은 그 부대의 연대장들이다. 그 다섯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시찰한 제855부대의 야전지휘관들인 것이다. 김광혁 사단장은 2014년 5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에서 미그-21 추격기를 직접 몰고 다른 부대의 비행지휘성원들과 함께 비행술과 폭격술을 겨루었다.


김광혁 소장이 사단장으로 근무하는 제855군부대는 지난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은 정예부대다. 베트남전쟁 중에 미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은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방어하기 위해 수도 외곽에서 공중방어임무를 수행한 수많은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 가운데는 제855부대 소속 추격기 비행사들도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에서 미그-17 추격기를 몰고 미공군과 격전을 벌인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6년 동안 그 연인원이 840명에 이르렀다. 당시 베트남전선에 지원군으로 파병된 조선인민군 추격기 비행사들은 하노이 상공을 침범하는 미해군 함재기와 미공군 전투기 및 폭격기 등 100여 대를 빨찌산식 비행술로 격추하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예컨대, 1969년 5월 28일 미그-17 추격기 8대를 몰고 출격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미공군 F-105 전폭기 12대를 한꺼번에 격추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베트남전선에서 F-105 전폭기가 그처럼 너무 많이 격추당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낙심한 미공군은 그 기종을 베트남전선에서 아예 퇴출시키고 최신형 F-4 전폭기로 대체하는 긴급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전공을 쌓은 하노이상공방어전에 대해서는 2010년 3월 1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미국이 공중전에서 패한 두 전쟁’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958

 

▲ 사진2     © 자주시보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나오는 <사진 2>는 지난날 하노이상공방어전에서 전공을 쌓은 제855부대의 작전실에 모인 비행사들이 전투비행술을 배우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사단장의 왼쪽에 서 있는 비행사 두 사람이 추격기 축소모형물을 각자 한 개 씩 손에 들고 있는 이 사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광혁 사단장이 지시봉으로 가리키는, 푸른색이 칠해진 특이한 물체다. 그 특이한 물체는 촬영각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 3>에서 정체를 드러내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미해군 소속 니미츠급(Nimitz-class) 핵추진 항공모함을 축소한 모형물이다. 항공군 사단장이 비행사들에게 전투비행술을 교육하는 자리에 추격기 축소모형물 두 대와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보이는 것은,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추격기 두 대로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전투비행술은 많은 추격기들이 사면팔방에서 몰려드는 군집전술(swarming tactics)로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단 두 대의 추격기로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군이 노후기종이라고 얕보는 조선인민군 추격기 두 대가 세계 최강이라는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한다는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반상식으로 믿기 어렵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위의 사진은 전쟁소설의 한 대목을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 실전연습을 촬영한 장면인 것이다.

 

▲ 사진3     © 자주시보


다시 <사진 3>을 유심히 살피면,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한 가운데 놓여있는 대형탁자 전체에 커다란 판유리가 깔려있고, 그 판유리 밑에 펼쳐진 대형작전지도가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대형작전지도는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의 공격대상지역이 표시된 작전지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대형작전지도는 지난 시기 미국군이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할 때마다 항공모함을 들이밀곤 했던 동해, 서해, 남해의 어느 해안지형이 표시된 작전지도가 아니라, 낯설게 보이는 어떤 반도지형이 표시된 작전지도다. 한미연합군의 해군기지들 가운데 미해군 항공모함이 드나드는 곳은 부산해군기지밖에 없는데, 그곳의 지형은 대형작전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길게 뻗은 반도지형이 아니다. 항공모함이 드나들 수 있는 반도지형의 해군기지는 한반도 어느 곳에도 없다. 

 

▲ 사진4     © 자주시보


그러면 제855부대의 작전지도에 반도지형으로 표시된 그 지역은 어디일까? <사진 4>는 일본 혼슈(本州) 중부의 간또(關東)지방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미우라반도(三浦半島)의 지형을 단순하게 표시한 약도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인데, 그 약도에 나타난 지형은 놀랍게도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놓인 제855부대 작전지도의 반도지형과 같다. 이러한 정황은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이 미우라반도의 지형을 눈에 익히면서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1차 공격목표는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일본 미우라반도와 미해군 항공모함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 것일까? 일본 도쿄(東京)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미우라반도는 도쿄만으로 드나드는 항로에 위치한 전략요충지인데, 바로 그 반도의 한 쪽에 미해군 제7함대가 주둔하는 요코스카(橫須賀)해군기지가 있다.  


요코스카해군기지에 집결한 미해군 제7함대의 무력은 실로 방대하다. 이를테면, 제7함대 지휘함(command ship)인 배수량 19,000t급  블루리지호(USS Blue Ridge), 제5항모타격단 기함(flag ship)인 배수량 104,200t급 초대형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가 거기에 배치되었다. 조지워싱턴호는 앞으로 3년 동안 70억 달러를 들여 원자로 핵연료를 교체하고 전반적인 정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얼마 전 미국 본토 버지니아주에 있는 뉴포트뉴스조선소(Newport News Shipbuilding)로 갔고, 배수량 101,400t급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USS Ronald Reagan)가 조지워싱턴호를 대신하여 요코스카해군기지에 배치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요코스카해군기지에는 배수량 9,800t급 미사일순양함들인 앤티텀호(USS Antietam)와 샤일로호(USS Shiloh)가 배치되었고, 제15구축함대도 배치되었다. 제15구축함대는 배수량 8,900t급 미사일구축함인 커티스윌버호(USS Curtis Wilbur)를 포함하여 같은 급의 미사일구축함 10척으로 편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해상무력이 집결된 군사전략거점이 요코스카해군기지다. 전시에 조선을 공격할 미해군 주력부대가 집결한 군사전략거점은 일본의 요코스카해군기지이고, 전시에 조선을 공격할 미공군 주력부대가 집결한 군사전략거점은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다.

 

▲ 사진5     © 자주시보


<사진 5>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추격기 축소모형물을 손에 들고 활주로에서 도보비행연습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인데, 활주로에 놓아둔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보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앞둔 요즘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추격기 두 대로 미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를 들이치는 항모공격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미공군 조종사들이 자기들의 전투행동기준을 가지고 조선인민군의 항모공격비행술을 평한다면, 무모하다 못해 황당하다는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조선인민군 추격기 두 대가 항공모함을 공격한다는 말은 미해군 제7함대 사령관 로벗 토머스(Robert L. Thomas) 제독의 귀에 농담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무슨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라, 미해군 제7함대 항모타격단을 수장시킬 항모공격비행술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연습하는 항모공격비행술은 무징후공중매복비행, 초저공무전파비행, 불시도약습격비행을 특징으로 하는 기상천외한 비행술이므로 미국군의 전투행동기준을 가지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결코 그럴 리는 없지만, 만일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한국군 공군조종사들이나 일본항공자위대 조종사들처럼 미국군의 전투교리를 따라배우고, 미국산 전투기를 타면서, 미공군 조종사들의 비행술을 모방한 유사비행술을 연습해왔다면, 실전에서 이길 수 없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실전에서 미공군 조종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까닭은, 그들이 미국군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체전법을 배웠고, 미공군 조종사들에게 생소한 ‘노후기종’을 조종하면서, 미공군 조종사들이 알지 못하는 빨찌산식 비행술을 연마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실전에서 자기의 빨찌산식 비행술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 예상하려면, 1982년 6월부터 1985년 6월까지 지속된 레바논전쟁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이스라엘군을 제압한 실전경험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당시 시리아군 전투기들은 이스라엘이 강점한 자국 영토 골란고원을 탈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출격하였지만, 그곳에 도사린 이스라엘군의 강력한 방공레이더망에 번번이 걸려들어 실패했고,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에 맞아 계속 격추당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지 못해 고심하던 시리아는 조선에게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지원요청을 받고 시리아에 급파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 4명은 미그-21 추격기 4대를 몰고 돌입하는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이스라엘군 방공망을 번개처럼 뚫고 들어가 골란고원의 방공레이더기지를 단 한 차례의 기습공격으로 단숨에 파괴해버렸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한 미그-21 추격기는 한 대도 피격되지 않은 완승이었다.

 

▲ 사진6     © 자주시보

 

 

전면전 결심하고 공격명령 내린 반타격사령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이 미해군 항모타격단부터 선제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은 <사진 6>이 말해주는 사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5년 3월 3일 조선중앙텔레비죤 ‘20시 보도’에 방영된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부대 영내에 건립된 위훈비를 촬영한 것이다. 원수별이 새겨진 최고사령관기를 표상한 붉은 기폭 아래 도약비행을 하는 미그-23 추격기 한 대가 화강석에 부각되었고, 그 아래 비석에 14라는 숫자를 크게 새겼고, 위훈을 전하는 비문이 보인다. 이 위훈비는 제447부대 전투비행사 14명의 위훈을 전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조선의 언론보도가 전해준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09년 4월 5일 조선은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를 쏘아올렸는데, 그 위성을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2호를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세운 날부터 발사한 날까지 12일 동안 조선인민군과 미일동맹군 및 한미연합군 사이에 일촉즉발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조선은 국제관례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위성발사라고 했지만 미국은 이를 장거리미사일발사라고 주장하면서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일본과 한국을 동원한 위성요격연합작전을 준비함으로써 정세가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9년 3월 23일 일본 나가사끼(長崎)현 북부 사세보(佐世保)해군기지를 출항한 미해군 이지스구축함 두 척이 동해에 진입하였고, 같은 날 요코스카해군기지를 출항한 미해군 이지스순양함 한 척은 일본 북서부 아오모리(靑森)현 앞바다에 출현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국군도 이지스구축함 한 척을 동해에 보내 미일연합함대에 합류시켰다. 2009년 3월 27일 하마다 야스까즈(浜田靖一) 당시 일본 방위상은 조선의 위성운반로켓이 일본에 피해를 줄 경우 요격하라는 명령을 일본자위대에 내렸는데, 그 명령에 따라 일본항공자위대는 요격미사일부대를 일본 수도권 5개 지역에 긴급배치하였고, 일본해상자위대는 이지스구축함 두 척을 동해에, 이지스구축함 한 척을 일본 근해 태평양에 각각 배치하였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원된 그런 적대행위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09년 4월 2일에 발표한 ‘중대보도’에서 “우리 혁명무력은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평화적 위성에 대한 사소한 <요격>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지체 없이 정의의 보복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조선인민군은 전투태세에 돌입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미그-23 추격기 비행대대가 함경북도 청진시 인근에 있는 어랑비행장에 전진배치되었고, <산케이신붕> 2009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위성발사를 하루 앞둔 2009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전투함대가 일본 아키타(秋田)현 해안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동해 해상에 전진배치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의 언론매체들이 제각기 보도한 조선인민군의 위와 같은 전투태세는 외부에 공개된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기도에 맞선 조선인민군의 전투태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는 2012년 1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서 밝혀졌다. 그 기록영화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에 인공지구위성을 요격하겠다던 적들의 책동에 반타격을 가한 것이 우리 김 대장(김정은 제1위원장을 뜻함-옮긴이)”인데, “그가 반타격사령관으로서 륙해공군을 지휘하였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공식직함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는데, 반타격사령관으로서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기도에 맞서 조선인민군 전군을 지휘하였던 것이다.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적들이 요격으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을 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말한 ‘진짜 전쟁’이란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싸우는 전면전을 뜻한다. 그 기록영화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적들이 덤벼든다면 원쑤들의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가차 없이 짓뭉개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하시였다”고 한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해에 전진배치한 연합함대가 조선의 위성운반로켓을 향해 요격미사일을 쏘는 순간, 조선인민군 육해공군은 즉각 동시다발 전면공격을 개시하라는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조선인민군에 내린 전투명령이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공격하라는 명령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함선집단은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해에 배치한 연합함대를 뜻하고, 요격체계는 일본자위대가 자국의 수도권 5개 지역에 긴급배치한 요격미사일부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받은 명령은 동해에 전진배치된 연합함대와 일본 수도권에 긴급배치된 요격미사일부대를 동시에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런 공격명령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 사진7     © 자주시보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동해 상공에서 공중매복한 14명의 추격기 비행사들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부대 영내에 건립된 위훈비는 2009년 4월 5일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공격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추격기를 몰고 동해 상공으로 출격한 전투비행사들의 위훈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5년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 위훈비에 새겨진 숫자 14는 2009년 4월 5일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위험 속에 광명성-2호가 발사되어 초긴장한 상황이 조성된 시각,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고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결사전에 나선 제447부대 미그-23 추격기 비행사 14명을 뜻한다. 그 비행사 14명의 비장한 출격에 대해 말해주는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 중에서 몇 장면을 여기 옮겨 싣는다.


<사진 7>은 김정은 당시 반타격사령관이 결사전에 출격하기 위해 조종석에 오른 미그-23 추격기 비행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기록영화에 따르면,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14명의 비행사들에게 “당에서 동무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에 그들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 사진8     © 자주시보


<사진 8>은 14명의 비행사들이 미그-23 추격기를 몰고 출격한 2009년 4월 5일에 남긴 결의편지들 가운데 김철 비행사가 쓴 결의편지를 촬영한 것이다. 결사의 각오와 신념으로 쓴 결의편지임을 알 수 있다.

 

▲ 사진9     © 자주시보


<사진 9>는 결사전에 자원한 비행사 14명이 출격하기 직전 활주로 위에 펼쳐든 최고사령관기 앞에서 맹세문에 서명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10     © 자주시보


<사진 10>은 결사전에 자원한 14명의 비행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정영남 비행사의 어린 딸 정원경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쓴 사랑의 편지다. 그 어린 딸은 편지의 마지막 줄에 “혹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난 절대로 울지 않을래요. 그 놈들을 기어이 복수할래요”라고 썼다. 그 날 14명의 비행사들은 사랑하는 아내들과 아이들이 써준, 어쩌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눈물 어린 편지를 각자 가슴에 품고 추격기 조종간을 잡았던 것이다.  


조선인민군 추격기가 미일동맹군을 공격하려면 조선에서 일본까지 최단거리에 있는 강원도 원산의 발진기지에서 이륙하여 동해를 가로지르며 장거리작전항로를 날아가야 한다. 미그-23 추격기가 왕복하는 항속거리는 2,300km이며, 원산의 발진기지에서 미해군 제7함대가 주둔하는 요코스카해군기지까지 왕복항로는 2,330km다. 미그-23 추격기는 요코스카해군기지까지 날아가 공격할 수는 있지만, 공격을 마친 뒤에 발진기지로 복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그-23 추격기가 민첩기동비행으로 돌진하여 적진을 기습타격하려면 기체중량을 되도록 가볍게 해야 하므로 보조연료통도 달 수 없다. 그러므로 왕복 2,000km가 넘는 장거리작전항로에 오른 조선인민군 추격기는 복귀비행에 필요한 항공유를 싣지 못한다. 그와 달리, 장거리작전항로를 비행하는 미공군 전투기들은 비행도중 공중급유기와 만나 항공유를 보충하면서 날아간다. 그러나 그런 공중급유는 공격징후를 노출하는 행동이므로, 오직 무징후불시기동-선제기습타격만 생각하며 최후결전을 준비해온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공중급유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사진11     © 자주시보
▲ 사진12     ©자주시보


<사진 11>에 촬영된 “돌아올 연유 대신 폭탄을!”이라고 쓴 전투구호와 <사진 12>에 촬영된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는 전투구호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어떤 사상과 신념을 지녔는지 말해준다. 최고사령관의 출격명령을 받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결사전의 항로에 나서는 것이다. 결사전을 벌이는 ‘붉은 매’가 폭탄과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고 항공유마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비행사는 기체에서 비상탈출하여 목숨을 건질 수도 있지만, 그들은 적진에 돌입하는 육탄자폭비행으로 최후를 맞는 것이다.  


광명성-2호가 대지를 박차고 우주로 솟구치던 2009년 4월 5일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출격한 14명의 미그-23 추격기 비행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인민군의 전쟁준비태세를 보고 기가 꺾인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은 광명성-2호가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고,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가슴에 품고 출격하여 동해 상공의 공중매복구역에서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매복하고 있었던 미그-23 추격기 비행사들은 기수를 돌려 발진기지로 복귀하였다.


그런데 14명 비행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그 비행사의 이름은 정철주다. 그 날 13명의 다른 비행사들과 함께 고난도의 초저공무전파비행을 하던 정철주 비행사는 자신이 조종하던 미그-23 추격기와 함께 동해에 추락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돌아오지 못한 정철주 비행사는 그의 아내가 두 살 난 아들을 안고 써내려간 사랑의 편지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전투비행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13명 비행사들과 그의 아내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정철주 비행사의 아내는 2014년 4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평양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에 참석하였다. 그 대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철주 비행사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였고, 13명 비행사들에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존함을 새긴 손목시계를 수여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 식수절을 맞은 지난 3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447부대를 또 다시 찾아가서 위훈비를 돌아보고 비행사들과 함께 위훈비 주변에 나무를 심으면서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없는 일당백 영웅정신, 희생정신, 자폭정신을 탄생시”키고 “정철주 영웅을 비롯한 14명 육탄자폭용사들을 배출한 이곳 군부대가 앞으로 항공군에서 21세기의 첫 근위부대가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 사진13     © 자주시보

 

 

다시 돌아오지 않은 ‘붉은 매’


‘붉은 매’들은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방공망을 뚫고 돌진하여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을 기습타격하라는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비행사들의 전투구호를 촬영한 <사진 13>이 그들의 그런 심정을 말해준다. 이 사진에 나오는 ‘근위 김지상영웅비행부대’는 조선인민군 제2항공 및 반항공사단 근위  제56김지상영웅비행련대다.

 

▲ 사진14     © 자주시보


붉은 별과 212호라고 새긴 붉은 글씨가 선명한 미그-21 추격기 한 대가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창공을 나는 <사진 14>는 근위 제56김지상영웅비행련대 1대대 중대장이었던 차영일 비행사의 마지막 비행을 촬영한 사진이다. 차영일 비행사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초저공비행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순직하였다.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차영일 비행사는 지난 1월 30일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하여 고난도비행을 하던 중 기체가 해수면에 부딪히는 사고로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관해서는 2015년 2월 9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 연습한 북의 항모격침결사대’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http://jajuminbo.net/sub_read.html?uid=19323&section=sc38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차영일 비행사의 아내에게 순직한 남편의 마지막 비행모습을 촬영한 그 사진이 담긴 친필서한과 귀한 선물들을 보내주며 위로하였다. “아들 차영웅이를 아버지처럼 당과 혁명에 충직한 훌륭한 사람이 되게 잘 키웁시다”고 쓴 절절한 심정이 담긴 친필서한은 “비록 짧았어도 영원히 빛날 비행사의 값높은 한생에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붉은 매’ 차영일 비행사에게는 애국렬사증이 수여되었다.


전쟁에 나가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용사들은 다른 나라 군대에도 있지만, 육탄자폭으로 최후를 마친 전쟁영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창설 이후 지금까지 75명의 공화국영웅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육탄자폭으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영웅비행사들이다.

 

▲ 사진15     © 자주시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뛰어난 비행술만으로는 육탄자폭결사전에 나설 수 없으며, 마지막 순간에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불타는 애국심과 강인한 사상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결사의 신념을 지닌 수많은 ‘붉은 매’들이 75명 육탄자폭영웅들의 뒤를 이어 오늘도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15>에서 보는 것처럼, ‘붉은 매’들은 해수면을 스칠듯한 초저공항로 위에 끝없는 비행운을 새기며 날고 있다. ✍

 

[출처: 자주시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4-23 12:41:15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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