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2회) > 회원마당

본문 바로가기
회원마당

[연재]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2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5-03-20 16:41 댓글0건

본문

 

[연재]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2회)

 

 

편집국

2015-03-20

 

 

최근 김현환 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논문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은 길이 관계로 3편으로 나누어 게재하고 있다.

 

이 논문은 주체사상이 사람중심의 철학이기 때문에 인간관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찰방식에서도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와 사물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철학이 주체철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김 소장은 최근에 이남의 일부 철학자들이 주체사상의 인간관에 대하여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답하면서 주체사상의 독특한 인간론을 해설하고 있다.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2회)

 

 

김현환(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개인적 인간관과 집단적 인간관

 

일부 학자들은 주체사상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주의적 인간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체사상에서 <인간>을 말할 때 우선 <집단으로서의 인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도 역시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특성, 즉 사람들의 사회적 집단의 특성이다. 인간의 사회적 집단은 동물의 무리와는 달리 3가지 근본적인 특성이 있다.

 

첫째로, 동물의 무리는 외부의 환경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적 집단은 외부환경에 종속되어 살아가게 되면 그것은 동물의 무리로 전환되고 만다. 인간집단의 근본적인 특성은 외부환경을 지배하는 데 있다. 그래서 자연을 자기에게 점차 복종시켜 나가는 것이 인간집단의 특성이다. 인간이 외부환경을 지배하지 못하고 외부환경에 종속되어 있다면 인간은 사회적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고 동물의 무리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외부세계를 지배하는 자주적 특성인 <자주성>은 인간집단의 근본적 특성으로 된다.

 

둘째로, 동물은 외부환경을 개조, 개변시키지 못하고 자연이 제공하는 기성의 재료를 그대로 섭취하면서 생존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반드시 외부환경을 개조, 개변시켜야 한다. 인간집단이 외부환경을 개조, 개변하지 못하면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집단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외부환경을 개조, 개변하는 창조적 특성, 즉 <창조성>은 인간집단의 두 번째 특성으로 된다.

 

셋째로, 동물의 무리는 생물학적으로 생존하려는 본능에 맞게끔 자기의 행동을 하지만, 인간의 사회적 집단은 사회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요구에 맞게끔 자기의 활동을 규정해 나간다. 인간집단을 이루는 개인들이 자기의 생물학적 본능에 맞게 자기의 활동을 규정해 나간다면 인간의 사회적 집단은 형성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기의 활동을 규정하는 의식적 특성, 즉 <의식성>은 인간집단의 세 번째 특성으로 된다.

 

인간의 사회적 집단이 바로 이러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개인은 집단의 성원으로 되어야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고 그것들을 자신 속에 체현하게 된다. 따라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발전에서 개인보다 집단이 더 우위에 놓이게 된다. 물론 집단은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것만큼 매개 개인들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져야 집단 전체의 생활력이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집단은 매 개인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높이는 데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개인들은 자기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발전시켜 사회적 집단을 강화해야만 사회적 존재로서 살며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사회적 집단의 위력과 통일 단결에 이바지하는 조건에서만 자기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과 관련하여 고찰할 수 있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이다. 이러한 집단과 개인 본래의 관계는 사회주의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이북 사회주의사회에서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애호되고 있는데, 이 구호는 바로 인간집단의 근본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회적 집단은 개인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 교양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주의식을 고취하고, 창조적 능력을 키워주고, 올바른 사상의식을 갖도록 노력한다. 또한, 개인은 집단의 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이고 목적 의식적으로 활동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개인주의적 인간관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체사상의 집단주의적 인간관에서는 결코 개인이 무시되지 않는다. 왜냐면 집단과 개인의 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연관관계에 있고, 집단은 개인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발전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은 자기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집단의 통일과 단결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은 결코 단순히 집단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개인의 독자성, 자주성이 최대로 보장되고, 개인의 창발성, 창조성이 최대로 발양되어야 집단의 위력도 강화되고, 집단의 생활력도 증대되며, 그로인해 집단자체도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집단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결코 대립관계나 모순관계에 있지 않고 완전한 통일관계에 있다. 이것이 원래 인간사회의 고유한 원리이다. 이러한 고유한 원리를 구현하는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한 원리가 왜곡된 사회가 바로 착취사회이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주의사회의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순전히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추상적 속성과 과학적 속성

 

일부 학자들은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추상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관념론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오해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는 데서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과의 관계를 잘 못 인식하는 데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주체사상에서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일반적 개념을 쓰고 있고, 이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과학적으로 추상해서 규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과학적 추상은 언제나 구체적인 내용과 결합되어 있다. 구체적인 내용에 기초해서 과학적으로 추상한 속성이 바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다.

 

이 인간의 본질적 속성들은 매개 사회제도마다 역사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자기의 고유한 구체적, 역사적 내용을 갖고 있다. 노예, 농노,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민중의 자주성의 내용이 다 각각 고유한 구체적, 역사적 내용을 갖고 있다. 노예의 경우에, 자주성의 내용을 이루는 주되는 것은 노예적인 착취와 인신적인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농노의 경우에는 봉건적인 압박과 신분적인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민중의 경우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온갖 착취와 압박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매개 사회제도마다 민중을 이루는 계급과 계층들의 자주성의 내용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노예나, 농노나, 근로민중이 가지는 자주성의 구체적 내용 가운데서 일관하고 있는 공통적인 것, 일반적인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예속과 구속을 반대하고 자유롭게 살며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속성이다. 그래서 그것을 일반화하여 <자주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성>이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성질이다. 이 성질은 노예, 농노,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민중, 그리고 사회주의사회의 근로민중에게 있는 자주성의 구체적인 내용 가운데서 공통한 일반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추상한 개념이다. 이 자주성의 개념은 과학적으로 추상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구체적, 역사적 내용과 결합되어 있고, 구체적, 역사적 내용 속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주성을 <추상적 속성>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일부 학자들은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마치 포이에르바흐의 <유적 본질>을 이루는 “이성”, “심정”, “의지”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구체적인 사회관계와 역사적 행동 밖에서 고찰한 그 무엇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서 인간에 대한 일반적 규정을 내릴 때,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다시 말하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속성이다. 따라서 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구체적인 사회관계와 역사적 행동 밖에 존재하는 속성이 아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포이에르바흐의 <유적 본질>과 같은 개념으로 될 수 없다.

 

인간론의 계급적 성격

 

일부 학자들은 주체사상의 인간론은 <계급성>을 상실한 <비계급적 인간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주체사상의 인간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다. 어떤 철학이나 다 <인간>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사용하는 철학의 경우에도 그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철학에 따라 다 각기 다르다. 그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각 철학의 바로 <계급적 입장과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존주의는 <인간>을 “불안과 죽음으로 가는 존재”로 본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실존>이란 바로 불안, 공포, 절망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이다. 그러면 실존주의가 인간을 이렇게 규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실존주의가 바로 파국과 멸망에 직면한 현대 자본가계급을 비롯한 지배층을 일반화해서 <인간>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토마스주의나 신토마스주의와 같은 종교철학에서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종교적 동물>, 혹은 <신앙심을 가진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종교 신자를 일반화해서 <인간>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쓰는 경우에도 그 <인간>을 일반화하는 소재를 어디에서 찾는가에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일반적 규정 자체도 달라진다.

 

주체사상의 경우에는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근본특성>을 일반화하여 <인간>에 대한 규정이 내려지고 있다. 앞에서 다룬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바로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에게 고유한 특성이다. 자연과 사회를 지배해 나가는 투쟁을 계속 벌여 나가는 역사의 주체가 바로 근로민중이다. 근로민중은 또한 언제나 낡은 것을 반대하고 새것을 지향하며 새것을 창조하는 투쟁을 줄기차게 벌여 나가고 있다. 근로민중은 또한 자기의 생물학적인, 육체적인 욕망보다도 사회적인 요구를 더 중시하고,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집단의 이해관계를 더 중시하면서 거기에 맞게 자기의 행동을 규정한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근로민중이 어떻게 되든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개인 본위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고 육체적 욕망을 마음대로 충족시키려는 욕구에 따라서 자기의 행동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이 내세우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을 일반화하여 창조한 개념이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자주성을 유린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는 계급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민중의 자주성을 적대한다. 또한,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이 창조성을 전면적으로 발휘하느냐, 발휘하지 못하느냐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율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한에서만 노동자들의 창조성 발휘에 이해관계를 갖는다. 자본가계급의 목적은 고율이윤의 획득이지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발전, 창조적 발전이 아니다. 의식성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자본가계급은 결코 사회 전체를 위한 요구에 맞게 자기의 활동을 규제하는 계급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계급만의 이익과 치부를 위해서 자기의 행동을 거기에 맞게 규정하는 계급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철두철미 개인주의적이지만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은 집단주의적이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이 “인간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라고 규정한 것은 <참다운 인간>, <참다운 사회적 인간>의 특징을 염두에 둔 정식화이다.

 

물론 사회적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마땅히 그러한 존재로 되어야 한다. 원래 사회적 인간은 그 본연의 자세로 볼 때 마땅히 사회 속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인간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보면, 착취계급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인간의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사실상,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개인이 집단의 성원으로 됨으로써만, 또한 구체적인 사회적 제도 속에서 역사의 진보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 즉 근로민중의 성원으로 됨으로써만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이 개인들에게 교육과 교양을 하는 통로가 기본통로이지만 매 개인들은 다 자기의 생활처지, 생활경로, 교제관계, 등등이 다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매 개인들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수준은 차이가 있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아직 지배층의 지배논리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고, 아직 거기에서 탈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이 <자주의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예사회에서 노예들이 노예노동에 묵묵히 순종하는 한에서는 노예의 처지를 개변하기 위한 <자주의식>을 가질 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노예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예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노예들도 점차 실제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자주의식을 키워나갔다. 사실상, 착취사회는 노예들에게 자주의식을 키워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럴 경우 착취사회는 멸망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사회에서는 <노예의식>, <굴종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기본교육이고 교양이다. 그러므로 노예들이 거기로부터 탈피하여 건전한 변혁사상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일정한 역사적 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진적 변혁조직, 선진적 당이 대중들에 대한 교육과 교양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개인들의 <자주의식>을 키워주는 문제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원래 인간은 가장 발전된 존재로서 마땅히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져야 하는 존재인데 사회제도의 특성에 따라 자주의식이 마비되고 말살되는 경우가 생긴다. 착취사회제도의 사회적 조건 자체가 인간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그것을 말살시키도록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는 그 자체가 사람들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발양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주의식을 가지는 것은 착취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러나 매 개인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는 데서 결코 사회적 제도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 개인의 노력, 의식적인 투쟁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동일한 사회제도 아래에서도 자주의식을 가지는 속도가 더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으며, 자주의식의 수준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의식적인 투쟁의 결과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도 획득된다. 따라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들의 주동적 역할이 매주 중요하다. (계속)

 

연재

►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1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3-20 16:45:52 새 소식에서 복사 됨]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5월 7일(목)
[논평] 문재인정부는 역사의 범죄자를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
[Reminiscences]3. An Echo of Cheers for Independence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주체사상의 진수, 사상적 알맹이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5월 16일(토)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5월 24일(일)
최근게시물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6월 6일(토)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6월 5일(금)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2권 제 6 장 7. 소사하의 가을
[Reminiscences]Chapter 4 10. Unforgettable Men\\and Women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6월 6일(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대변인담화
주체성과 민족성을 확고히 고수하고 빛내이시며
곡창지대 황해남도에 최대규모 자연흐름식물길/《나라의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
[담화]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당의 리상은 일군들의 투쟁목표
주체의 인민관, 인민철학이 구현된 사회주의나라
[사설] 당창건 75돐을 맞는 올해에 정면돌파전으로 혁명적대진군의 보폭을 크게 내짚자
Copyright ⓒ 2000-2020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