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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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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5-03-19 18:4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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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 (제1회)

 

 

편집국

2015-03-19

 

 

최근 김현환 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논문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은 길이 관계로 3편으로 나누어 게재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주체사상이 사람중심의 철학이기 때문에 인간관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찰방식에서도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와 사물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철학이 주체철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김소장은 최근에 이남의 일부 철학자들이 주체사상의 인간관에 대하여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답하면서 주체사상의 독특한 인간론을 해설하고 있다.

 


 

 

주체사상의 과학적 인간론(제1회)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주체사상은 사람 위주의 철학이니까 당연히 <인간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힌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철학의 근본원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를 주고 있다. 또한, 주체철학은 고찰방식에서도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와 사물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철학이기 때문에 <인간론>이 전반적인 철학체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논문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제6항에 나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명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인간의 본질은 개별적인 개인에게 고유한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모든 사회관계의 총체이다.”

 

이 명제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확립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이 명제를 내세우게 된 것은 포이에르바흐의 인간관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포이에르바흐는 인간을 본질상 <자연적 존재>로 보았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으로 파악했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인간의 <유적 본질(genus, species, kind)>의 내용을 이루는 <이성>, <심정>, <의지>도 사회적으로 제약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인간을 <자연인>으로서의 <유적 존재>로 파악하는 데 머물렀다. 이러한 포이에르바흐의 <인간관>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이 결코 인간이 자연적 유대에 의해서 결합된 <자연인>, <생물학적 존재>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는 데 그 본질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마르크스는 인간이 개인으로서는 결코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고 단지 <사회관계의 총체>, <사회>라는 체계 안에서만 사회적 존재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인간을 본질상 <자연적 존재>, <생물학적 존재>로 본 <생물학적 인간관>을 극복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 명제 속에서 마르크스는 역시 사회관계가 매개 시대의 구체적인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사람의 본질을 <사회관계의 총체>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을 구체적인 사회관계와 역사적 활동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언제나 <구체적인 역사적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이리하여 마르크스의 이 명제는 인간을 사회로부터 고립된 <추상적 개인>으로 본 인간관, 즉 <추상적 인간관>을 극복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이 명제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명제에서 어디까지나 포이에르바흐의 생물학적인 추상적 인간관을 극복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인간이 생물학적 유대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하여 결합된 존재이고, 따라서 일정한 <구체적 역사성>을 띠는 사회적 체계 속에서 사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머물렀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사람과 사회관계의 연관에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고 조건 지어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이 명제 속에서 사람은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존재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유대에 의해서 결합된 생물학적 존재, 자연적 존재라는 데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에 의해서 결합된 <사회적 존재>라는 데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을 해명하는 데서는 큰 의의가 있지만, 인간과 사회관계의 연관을 해석하는 데서는 일면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관계의 연관

 

사람과 사회관계의 연관에는 두 면이 있다.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면, 사회관계에 의존되는 면이 바로 그 한 면이다. 또한, 사람은 자기를 제약하는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해 나가는 다른 면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면>과 사람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면>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면이냐 하는 점이다. 사람과 사회의 존재와 발전의 견지에서 볼 때, 만약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고 의존되기만 한다면 사회관계를 개조하고 지배하여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회의 발전에서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면은 사람이 자기를 제약하는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된다는 면을 무시하는 것은 관념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면을 밝히는 것만이 사람에 대한 과학적 이해이고, 사람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면을 밝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된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위에서 지적한 사람과 사회관계의 연관의 두 면 가운데서 사람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면이 더 본질적이고 주도적인 면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더욱 심화 발전시키는 열쇠로 된다. 그럴 때만이 사람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를 제약하는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해야만 자신과 사회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역사를 전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주체사상은 바로 사람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한다는 면을 사람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중요한 징표로 삼게 된 것이다. 이런 데로부터 주체사상은 사람이 자연과 사회관계를 지배하는 속성을 <자주성>이라 부르고, 사람이 그것들을 개조하는 속성을 <창조성>이라 부르고, 사람이 그것들을 지배하고 개조하는 활동을 자체로 규정하는 속성을 <의식성>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람의 속성에 기초하여 주체사상은 사람이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리하여 주체사상은 사람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런데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 제약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사람 자체의 주동적, 능동적 역할을 물질적인 사회관계와 동떨어져서 추상적으로 강조하는 일부 관념론자들의 경향을 주체사상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 일부 관념론자들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사람의 주동적, 능동적 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주관적인 자의, 사람의 의식 자체의 역할이 자연과 사회관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관념론이다. 이러한 사람에 대한 관념론적인 논리와 주체사상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주체사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된다는 유물론적 이해를 전제로 하고 그 과학성을 시인한 기초위에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기를 제약하는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존재라는 징표를 사람의 본질에 대한 규정에 포함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발전된 과학적 견해를 확립했다. 따라서 사람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존재라고 보는 주체사상의 견해는 관념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간 속성의 발생과 역할

 

일부 학자들은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 자체가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속성, 즉 본원적, 선천적, 생득적 속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해석하는 데서 <발생, 형성의 면>과 <기능, 역할의 면>의 관계를 잘못 인식한 데로부터 나온 결과이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이루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자연적 속성>,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속성>이다. 사회적 속성은 인간이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러니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형성, 발생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들은 인간이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속성이다. 이것들은 결코 생물학적인 유전의 방법으로 획득되는 <자연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생활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회적 속성>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회생활 과정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속성에 규제되어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활동, 즉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기능과 역할의 면에서 보면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고 조절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속성, 성질에 관해서도 단지 <발생, 형성의 견지, 시원의 견지>에서만 사고하고 있다. 지난 시기 철학의 근본문제가 <세계의 시원 문제>였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사고하는 데서 모든 현상, 모든 성질이 어디에 시원을 두고 생겨나는가, 어디에 근원을 두고 발생하는가 하는 견지에서만 주로 사고했다. 물론 인간의 속성, 성질은 사회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사회생활에 근원을 두고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해서 사람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지배되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사회관계를 지배하며 개조하는 존재이다.

 

그러면 왜 인간은 그러한 존재로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이 사회관계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속성으로서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고, 사회관계와 자연을 개조할 수 있는 속성으로서의 <창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것이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사회관계와 자연을 지배하고 개조하는 활동, 즉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해석할 때는 그 <발생, 형성의 면>과 <기능, 역할의 면>을 통일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들이 사회관계에 기초해서 발생하였다는 것으로부터 인간이 사회관계에 의해서 제약되는 존재라는 면만을 보고,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기능과 역할을 보지 않는다면 인간이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고찰할 때도 <발생, 형성의 견지>와 <기능, 역할의 견지>를 통일적으로 보고 사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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