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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들의 현주소/ 교황을 크게 감동시킨 고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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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흥노 작성일15-02-03 19: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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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어린이들의 현주소  

     교황을 크게 감동시킨 고아 소녀

                                        

 

 

이흥노(재미동포전국연합회 논설위원)

 

 

역대 교황의 해외방문 중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크게 감동하고 감동을 준 교황은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서울과 마닐라 방문을 통해 연달아 두 번에 걸쳐 눈물겨운 감동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작년 8월, 교황은 작심하고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오 씨 (유민이 아빠)를 광화문 농성장에서 만났다. 당시 김영오 씨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검을 요구하며 40여 일간의 단식으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교황과 상봉을 한 것이다. 김영오 씨의 소원이 무엇인지 훤히 알고 있는 교황은 교황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는 평가들을 하고 있다. 전원 살릴 수 있었음에도 300명 이상을 수장시킨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해 교황은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김영오 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광경을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다를 바 없이 교황의 서울 이륙과 동시에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훼방 노는 데서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어언 10달이 됐지만, 아직도 9구의 시신이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불순한 목적에 사용하려다 시간만 낭비하고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주장이 영 가시질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소재에 대한 뒷말이 더 기승을 부리고 퍼져나가니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지난 1월 29일 자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실종 여학생 언니, 허서윤 씨가 자신의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여동생 허다윤 양 (단원고)에게 쓴 편지를 공개했다. 언니가 바다 밑에 있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는 교황의 유가족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이 더 깊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음은 언니가 여동생 허다윤 양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내 동생 다윤이에게

 

언니가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도보 행진을 했어. 널 포함

(실종자) 9명이 남은 진도 바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다 힘내고 있는데 왜 국가와 정부는 도와주지 않는지.... 너무 화나. 우리는 너를 꼭 찾아야 사는데.... 보고싶다 다윤아."

 

 두 번째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하게 한 극적 장면이 12세의 고아 소녀를 산토토머스대학 (Univ. of Santo Tomas)에서 만난 것이었다(1/18/15).  400년 전통의 이 유서 깊은 카톨릭대학은 필리핀의 4대 명문대학 중 하나로 나라의 지도자급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청소년들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교황은 청소년들과 격 없이 솔직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12세 고아 소녀가 교황에게 자신의 과거를 울면서 고백한 것이다. 어린 고아 소녀는 거리를 방황하다가 최근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돼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녀는 교황에게 "많은 어린이가 마약과 매춘에 내몰리고 있어요. 신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거죠? 왜 우리를 도와주는 어른들은 거의 없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른스런 소녀의 질문에 교황은 고아 소녀를 끌어 안고 말도 못한 체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결국, 교황은 미리 준비한 연설을 포기하고 대중을 향해 고아 소녀의 질문에 답했다고 한다. 교황은 심각한 어조로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마약을 먹는 아이들, 집이 없는 아이들, 방치되고 착취당하는 아이들, 사회가 노예로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 지 생각하고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고아 소녀의 질문에 대한 쉬운 대답은 없다곤 했지만, 방치되고 있는 청소년의 불행을 앞에 놓고 어떻게 울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해답이라고 생각된다. 12살의 고아소녀가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자기와 같이 불행한 아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주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교황에게 던진 것은 어느 특정한 국가나 사회에 국한된 질문은 물론 아니다. 모든 국제사회가 기필코 풀어내야 할 절실한 과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해서도 안된다.

 

 한 고아 소녀와 교황의 감격스러운 대화에 대한 보도를 접하자 말자 나의 뇌리에 김숙 씨 (재미동포)의 글 (01/03/15)이 불현듯 떠올랐다. <원아들이 받은 아버지 사랑>이라는 제하의 기고에서 김 씨는 최근 새로 건설된 평양 애육원, 보육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 고아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 제안으로 최신 시설과 규모로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평양의 것과 같은 수준으로 모든 전국 고아원들도 개조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어린이들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고 있나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를 김숙 씨는 소개했다. 새해의 신년사를 마치는 즉시 김 위원장이 평양 고아원을 찾은 행보를 봐도 고아들에 대한 다함 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설날 뜻밖에 찾아준 김 위원장에게 고아들이 서로 매달려 "아버지"라 부르며 외쳐대는 원아들을 안고 김 위원장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김숙씨는 강조했다. 새해 첫날 고아들을 찾아 설을 같이 쇠는 아름다운 모습이 반북 대결자들의 말대로 설령 쇼라 하더라도 훌륭한 쇼라 생각된다. 김숙 씨는 "친아버지와 같은 사랑 없이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로 김 위원장의 고아들에 대한 사랑의 척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김숙 씨의 199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국제대회 참가 일화는 독자들과 같이 나누어야 할 가치 있는 이야기라 생각돼 아래에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이 대회에 참가했던 한 남측 대표가 북측 대표에게 "북에서는 주석 님을 어버이라 부르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북측 대표는 "나는 전쟁고아인데 주석 님께서 먹이고 입히고 사랑을 주시어 대학까지 무료로 교육을 받고 이렇게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주석 님이 친 어버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내가 존경하는 박문재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수석부회장이며 조미의학교류위원회 위원장)가 몇 해 전 자신의 이산가족 사연을 들려준 일이 있다. 이 한맻힌 사연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북한의 고아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자료가 돼서 간략하게 아래에 소개하려고 한다. 박 박사의 누나는 서울의 한 여자중학교에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당시 18살이던 그의 누나는 자기의 음악선생을 따라 단신 월북한 고아였다. 바로 이 고아 소녀의 인생 드라마가 한 편의 분단역사인 동시에 전쟁 당시 북측 고아들의 실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평양시는 물론이고 북쪽 전체가 미군 폭격으로 초토화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박문재 박사의 누나도 다른 모든 고아와 같이 해외로 피난길에 나섰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아가 동구라파의 여러 나라로 분산 배치됐는데, 박 박사의 누나는 음악의 나라로 불리는 폴란드로 배치돼 음악공부를 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평양으로 돌아온 박 박사의 누나는 천재적 예술 재능이 인정돼서 일류 가극단의 단원이 됐다. 중국에서도 음악수업을 한 누나는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공연한 바가 있다. 빼어난 용모와 음악적 재능 때문인지 인민군 장성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영광도 가졌다고 한다.

 

누나는 남매간 여러 차례 상봉도 한 행운을 가졌지만, 일찍 작고한 어머니와의 상봉을 못 한 것이 안타깝다고 박 박사는 말한다. 다른 이산가족들도 예외는 아니겠으나, 박 박사의 어머니는 유별나게 해어진 맏딸을 그리며 통곡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도 오매불망 맏딸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는 끝내 모녀의 상봉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박 박사는 어머니의 묘지 옆에 최근 작고한 누나의 유해 일부를 평양으로부터 모셔다가 잠들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들이는 길이라고 박 박사는 말한다. 얼마나 갸륵한 효심이며 우애인지 탄성이 절로 난다.

 

  북쪽에서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고아들에게 심오한 배려와 사랑이 베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평양의 고아들은 박 박사의 누나와 같이 사회 곳곳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믿음직한 일꾼이 됐다. 이미 25년 전에도 내가 평양에 머무는 동안 전쟁고아였다는 고급관리를 만난 것이 생각난다. 1989년 여름, 해외동포 이산가족의 일원으로 나는 아내와 같이 평양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해외 각지에서 모인 해외동포 이산가족들 앞에서 당시 김선옥 여성 부부장은 인사말 첫머리에 "나는 전쟁고아였지만 나라의 크나큰 배려로 동구라파에서 전쟁을 모르고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고아 소녀였던 나에게 베푼 조국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 잠시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당시 김 부부장이 한 말에 대해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소녀 고아가 부부장이라는 어엿한 간부가 됐다는 사실과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서도 전쟁고아들을 챙겨 집단 해외 유학을 보냈다는 사실에 혀를 차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고아들이나 어린이들의 형편은 어떤가를 생각해보자. 최근 인천 어린이집을 필두로 곳곳에서 어린이 폭행사건과 비리들이 꼬리를 물고 까밝혀지고 있다. 이것이 어제오늘에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통상 폭행과 비리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아문제만 보더라도 세계 고아수출 1위에 올라설 정도니 얼마나 고아수출에 정성을 다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을 놓고 어린이 교사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을 한다. 물론 그것도 합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문제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청와대, 국회를 비롯해 온 사회가 부정부패로 악취가 코를 찌르는 요지경 속에서 이린이집만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최근 천도교 박남수 교령의 뼈있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교령은 "최근 일어난 인천어린이집 폭행사건은 보육교사가 아이를 때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세상이 아이를 때린 것이다. ...인간 존엄이 마지막 선까지 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더 무너지면 길이 없다."고 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다.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이미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 지도자는 이미 함량 미달인 것이다. 작년 4월 세월호 침몰로 3백 명 이상 청소년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금쪽같은 7시간 동안 우리의 지도자가 행방불명됐다는 사실....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려연구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으로 재직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마감 (9/28/96)한 려연구 여사는 남쪽도 여러 번 방문한 바가 있어 우리의 기억에도 생생하다. 이화여전 영문학부에 재학 중이던 려연구와 동생 려원구 자매는 아버지인 여운형 선생의 지시에 따라 46년 북행길에 올랐다. 김일성 주석댁에서 머물던 려연구는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다. 학업에 열중하던 중 47년 아버지의 비보를 듣는다. 그리고 전쟁 소식도 들었다. 다른 유학생들과 같이 귀국해 전선으로 나가겠다고 청했으나 학업을 끝내라는 김 주석의 지시로 공부를 마치게 됐다고 한다.

 

 비록 정치철학은 달라도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한 방향이 같아선지 려운형 선생이 사랑하는 두 자매를 김 주석에게 맡기기로 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수 십 번의 암살을 용케 피한 여운형 선생은 미 군정에 의해 멀지 않은 장래에 암살될 것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두 딸을 김 주석에게 보내기로 결심을 굳힌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해방 공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려연구를 소련 유학까지 보냈고 후일 북측 여성 지도자 1호가 됐다는 것은 김 주석의 여운형 선생에 대한 의리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려연구의 여동생인 려원구도 몇 번 남쪽을 방문했으며 2009년까지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타계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라의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그 후과가 얼마나 크고 오래가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특히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어린이들 구타사건도 나라의 수반인 지도자와 절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부정선거나 관권을 동원해 권력을 잡으면 부정부패가 만연되게 마련이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이 파괴되는 게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다. 동시에 황금만능주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지도자를 잘 선택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권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제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들어서지 않는 한 요지경 세상에 사는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2-03 19:08:4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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