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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문 가는 길, 슬픈 인연 “끝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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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일 작성일15-01-29 19:5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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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문 가는 길, 슬픈 인연 “끝이 아니길”

 
 
 
 
 
 
김상일(전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성주와 차광수는 백산청총 대표로 남만 청총에 참가하러 갔지만 현묵관과 고인호 일당들이 황당하고도 무모하게 자행한 학살로 6명의 동지들을 잃은 채 발걸음을 허탈하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들의 돌아오는 길 역시 왕청문 가는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이 가던 길 만큼 어렵고 마음고생은 더 심한 혁명의 한 여정이였다세상에는 많은 인연도 있지만 한촌에 살고 있는 수연과 최봉의 인연만큼 슬픈 인연도 없을 것이다.

 

성주와 광수의 마음 고통은 고유수로 돌아오는 길에 왕청문 가던 길에 들린 한촌을 반드시 다시 경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한촌은 왕청문 갈 때에 최봉이 있는 줄 알고 방문했던 마을이 아니던가최봉의 애인 수연이와 그 녀의 어머니가 아직 최봉의 죽음 소식을 모르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데 어떻게 이 슬픈 소식을 전한 단 말인가차마 못할 아니 죄진 마음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그렇다고 그냥 지나 칠 수도 없는 한촌이렇게 한촌은 왕청문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슬픔 가운데 가장 큰 슬픔은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이라 한다이는 인간의 네가지 고 苦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하는 고일 것이다. ‘고아,’ ‘과부,’ ‘홀 애비’ 등 이름이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를 두고는 그 슬픔이 너무 커 신마저도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한다김성주와 차광수는 지금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는 두 여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을 전하려 갈 수도 안 갈 수 도 없는 고민에 빠졌다.

 

실로 이 번 왕청문에서 겪은 일들은 몇 십 년의 것을 하루아침에 겪은 것 같았다앞 서 걷고 있던 차광수가 길이 한촌 앞으로 나 있을 건 뭐람하고 혼자서 중얼 거리자 김성주는 한 숨만 내 쉬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한촌이 아니요” “그렇소그런데 그 집에 들러서 어떻게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겠소?”

 

두 사람은 모두 꿈속을 걷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이대로 깨지 않을 꿈이고 싶었다현실이 아니길 믿고 싶었다왕청문 가는 길에 수연이 집을 들렸을 때에 최봉의 방에는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책상에는 잉크병이 하나 놓여 무언가 글을 쓰다 잠간 방을 비운 것 같았다그러나 최봉은 영원히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무슨 조국광복이요 민족운동이요 하고 나발 불던 보수 우익 국민부 인간 백정들의 손에 피모산 골짜기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죽으면서 언젠가 죽을 각오를 했지만 너희들 손에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한다얼마나 이 땅의 보수 우익들은 피 끓는 겨레 청년들을 집어 삼켜야 성이 찰 것인가국민부는 서북청년단이란 이름으로 지금 다시 생겨나고 있지 않는가?

 

수연이는 최봉이 덕에 야학에도 다니며 처음으로 글을 익히고 책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소박한 꿈이 다 물거품 같이 사라졌다수연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미래를 동시에 잃었다남한 사회에서도 1960년 대 서울에서 내려간 야학 선생과 시골 처녀들 사이에 생긴 애틋한 사랑을 그린 가요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동백아가씨’ ‘동숙의 노래’ 그리고 흑산도 아가씨’ 같은 것들이 모두 산업화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양극 사이에 살던 청춘 남녀들이 이룰 수 없는 그래서 불행하게 이별하는 노래들이다예나 지금이나 남이나 북이나 우리 현대사에 그것도 혁명의 와중에 이런 참혹하고 불행한 남녀 간의 사랑도 있었다. 1930년 대 남만과 동만 일대에도 조선족 마을이 만들어 지고 젊은 혁명아들이 마을 마다 들어와 정치 사업을 하게 되었고 젊음이란 이유 때문에 서로 사랑도 하게 되었다최봉과 수연의 인연도 이에서 예외는 아니다.

 

수연 어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모처럼 좋은 신랑감을 만났다고 그렇게 자랑 자랑 했는데 그 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차광수는 최봉을 두고 혁명도 잘하고 호박도 따고” 하면서 놀려 말하던 것이 어제 같은 데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천지가 뒤 바뀌다니최봉의 죽음 소식을 전달할 역할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김성주와 차광수는 맡게 되었다글을 쓰는 필자는 이들 혁명아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없어서 2000년 대 남한 사회에서 유행하던 슬픈인연과 끝이 아니길의 노랫말을 몇 번이고 읽었다.

 

휘어듬히 누워 넘어 간 고개를 넘어서니 한촌이 나타났다마을 앞에는 마침 비가 내려 시내물이 출출히 흐르고 시냇가에는 수양버들이 드리워 있었다수연이네 집이 지척으로 내려 보인다마당에는 하얀 천들이 빨래 줄에 널려 있었다두 말 할 것 없이 결혼을 앞두고 두 모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 장면이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김성주가 풀을 휘어잡으면서 쉬어 갑시다” 하고쉬고 싶어서 쉬는 것이 아닌 발걸음이 차마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풀밭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두 사람은 너무도 억울해서 서로 얼굴을 돌려 눈물을 흘렸다차라리 최봉이 구름이 되어 와서라도 굽어보고 바람이 되어서라도 와서 불어 주기를 바랐다최봉의 죽음은 억울해도 너무 억울해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일제의 손도 아닌 국민부의 손에 그렇게도 참혹하게 죽다니.

 

김성주는 오두막집을 내려다보는 척 하면서 눈물을 닦았다그는 앞으로 이런 청춘 남녀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되고 눈물을 수도 없이 흘리게 된다이렇게 혁명은 지도자의 눈물이 뿌린 씨앗의 결실이다온성의 마동희 부부 최창걸의 부부등 혁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은 수많은 이 땅의 청춘의 아픔 앞에 오열한다혁명은 길고 청춘은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왕청문 가던 길에 한촌에 들렸을 때에 수연이 어머니가 자랑삼아 보여주던 그 은가락지가 눈앞에 아련 거리고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 결혼식 장면도 눈앞에 나타났다 지워지곤 한다아니 애써 지우고 싶었다누가 이들에게 하늘의 융단 길을 깔아 백년가약을 맺게 할 것인가.

 

잠깐 앉아 있었다고 했는데 해가 어느 듯 기울었다버드나무 숲도 마을을 가리기 시작한다그런데 웬 일인지 수연이네 집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김성주와 차광수는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하면서 울음이 터져도 할 얘기는 하고 가자고 용기를 내어 일어섰다마당에 들어서니 강아지가 반갑다고 꼬리를 친다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강아지가 알아본다.

 

 

김성주가 마루에 걸터앉아 개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사이에 차광수가 토담 너머 이웃집을 다녀왔다이웃집 말이 두 모녀가 잔치 때 쓰려고 50리 쯤 떨어진 곳에 국수를 누르려 메밀을 사러 갔다고 한다참으로 듣기에도 가슴 아픈 슬픈 인연’ 이다.

 

세월은 다르고 공간은 달라도 얼마 전 나미가 불렀던 슬픈 인연을 수연에게 바치고 싶다.

 

 

슬픈 인연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다시 올꺼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꺼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너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다시 올꺼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꺼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너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 려나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너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김성주와 차광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로 얼굴도 쳐다 볼 수 없었다김성주는 최봉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한없는 죄책감에라도 ?기는 듯이 빗자루를 들어 마당을 쓸었다최봉이 돌아 와 했어야 할 일들을 대신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이 마당을 앞으로 누가 쓸어 줄까수연이가 얼마나 최봉을 생각하며 이 마당에 나와 눈물을 흘릴까이 슬픈 인연을 어떻게 다시 환한 얼굴로 맺어 줄 수 있을까?

 

 

김성주는 기울어진 양철 굴뚝도 바로 잡아 넣고 차광수를 돌아보며 떠나자고 했다강가로 나오니 여울물 소리가 마치 두 모녀의 울음소리 같이 들렸다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무언가 죄를 짓고 떠나는 것 같소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물이 점점 불어나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건너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왕청문 가는 길이 끝이 아니길’ 두 사람은 함께 두 손 모아 빌었다필자는 다시 이 젊은이들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어 윤도현의 서울1945’의 주제가를 읽는다여운형계의 류수영과 한정은의 이룰 수 없이 이별하던 장면에서 부른 그 노래를시대는 달라도 소위 좌익이라고 딱지 붙은 청춘의 노래 말이다.

 

 

끝이 아니길

 

 

내게로 오는 길을 몰라서

그대의 눈이 잠시 멀어서

그래서 조금 늦게 닿는 거라고

내 맘은 믿고 기다립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내 가슴은

그대 아닌 누굴 담은 적 없고

그 모진 시련도 그대 있었기에

힘들어도 살아왔었는데

보여요 그대 날 떠나려는게

눈물을 참는 그대 슬픈 뒷 모습이

마지막 내 전분 그대뿐인데

그대를 사랑했단 말도 못했네요

 

아무리 밀어내고 아무리 상처 줘도

내 가슴은 아픈 줄도 모르고

눈물로 남겨진 생을 산다 해도

돌아올 그 날만 난 기다립니다.

보여요 그대 날 떠나려는게

눈물을 참는 그대 슬픈 뒷모습이

마지막 내 전분 그대뿐인데

그대를 사랑했단 말도 못했네요

추억들이 밟혀서 잊어낼 수 있나요

말을 해봐요

 

마지막 내 전분 그대뿐인데

그대를 사랑했단 말도 못했죠.

 

이 땅에 피뿌린 겨레 청년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른다우리가 가는 길이 끝이 아니길. ‘왕청문 가는 길을 저들은 종북의 길이라 딱지 붙이지만 이들의 가슴 속에는 겨레 사랑 일편단심 하나뿐이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1-29 19:54:11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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