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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청문 가는 길-별이 빛나는 고유수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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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일 작성일15-01-20 14:5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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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청문 가는 길-별이 빛나는 고유수의 밤하늘

 

 

김상일(전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1929 왕청문과 2014 서울의 만행과 대조 하며

 

‘왕 청문 사건’이란 1929년 가을 우익 국민부가 소집한 남만청총 대회에 참석하러 간 최봉 등 모두 스물한 두 살 된 청년 6명을 대회를 소집한 국민부 지도부 현묵관과 고인호 등이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 기록 소설이 ‘은하수’(천세봉)이다. 그리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 1권은 비중 있게 이 사건을 다루어 기록하고 있다. 회고록은 ‘왕 청문의 교훈’이란 제목으로 1권 말미를 이 사건으로 끝내고 있다. 이 사건은 사건 그 자체 이상으로 사건 이후 어떻게 이를 바라 보고 후속 조치와 태도를 취한 것인가에 따라서 큰 교훈을 남겼다.

 

일종의 좌우 청년들이 연합하여 동만과 남만 일대의 청년이 규합하여 조선 청년동맹을 결성하여 일제에 단결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집된 이 총회를 소집을 주최한 국민부 에서 자신의 세가 불리함을 감지하자 좌익청년들을 학살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통합 진보당을 강제 해산시키고 신은미 황선을 강제 추방하거나 구속한 사건은 모두 왕 청문 의 우익 유전인자가 원죄가 되어 그대로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왕 청문의 교훈을 오늘에 어떻게 되새길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여기서 말하는 ‘왕 청문 가는 길’은 혁명의 초기에 발생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김성주, 차광수, 김혁은 남만 왕 청문에서 스무 한 두 살 짜리 끌끌한 동지들을 6명이나 일제도 아닌 같은 동족인 국민부에 의해 잃고 각자 자기 안에서 부글부글 화가 뒤 끓고 있었다. 그리고 왕 청문 사건은 앞으로 전개될 멀고 험한 긴 여정의 이정표와 방향타를 결정 하고 말았다. 왕 청문 사건은 하나의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드디어 김성주가 길림에서 체포 되는 사건에 이어진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긴 여정 혁명의 도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왕 청문 가는 길’이라 한다.

 

왕 청문의 교훈: 김혁, 차광수 그리고 김성주가 선택한 길은

 

  2014년 겨울은 왕청문 사건이 터진지 만 85년이 되는 해이다. 통합 진보당 해체 신은미 강제 출국 그리고 황 선의 구속 기속 등은 이 땅의 보수 반동들이 아직 강한 힘을 가지고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8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 다름없이 방법이나 수법마저 동일하게 마녀 사냥을 자행하고 있다. 국민부의 유전인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 역사 생명체 속에 둥지를 틀고 나갈지 모른다.

 

오늘의 이 시련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그 뿌리는 왕 청문 의 백색 테러로 나타나 지금까지 한 점 변함없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는 것, 그러면 보수 우익들의 집단 히스테리 증 같은 이런 증상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왕청문 가는길의 도상에서 나누고 싶은 대화의 내용이다.

 

백산청총 청년동맹 청년들 가운데 김성주, 차광수, 김혁이 당한 충격과 그것을 받아 마음속에서 삭이는 방법과 과정은 각자 달랐다. 기록 소설 ‘은하수’의 첫 페이지는 김성주와 차광수가 왕청문 가는 길에 들린 한 촌 마을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휴대 전화도 없던 시절 몇 십리 길을 걸어가서야 최봉이 왕청문으로 먼저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 헛걸음을 한 것이다. 그러나 최봉의 애인 수연이와 어머니를 만난 것은 그녀를 혁명의 대오에 불러내는 계기도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김성주와 차광수는 왕청문에서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 롱가와 삼원포를 들려 고유수로 돌아왔다. 그 때에 김혁은 고유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면서 왕청문 소문을 듣고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청년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총을 십여 자루나 모아 놓았다. 고유수에 살고 있는 조학래 그리고 장춘에서 무기상을 하고 있는 최호영에게 까지 사람들을 보내 무기와 총알을 대량 구입해 놓고 있었다.

 

김성주는 전에 김혁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여 그에게 선율로 혁명을 하라고 바이올린을 사 보낸 적이 있었다. 김혁은 시적 재능과 음악에 천재적 자질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혁은 자기에게 김성주가 선율로 혁명을 하라고 했지만 자기가 총을 들고 나선 것엔 찬성을 해 줄 줄을 알았었다. 한 솥에 밥을 먹던 동지 6명을 잃은 마당에 선율이란 넋두리 같은 것이 공염불 같기만 했기 때문이다.

  집총을 들고 왕청문으로 달려가려던 김혁 일행을 김성주와 차광수와 마주 친 곳은 학교 정문 앞이 였다. 롱가에서 두 사람이 돌아오던 길이었다. “김혁 동무를 보고 싶어어 왔소. 그런데 그 목갑총을 뭘하러 차고 다니우?” “왕청문에서 얼마나 고생했수. 우리는 지금 이를 갈고 있소. 왕청문으로 복수를 하러 떠나려던 참이오” “내가 보낸 바이올린은 받았소”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이다.

 

교실 안을 둘러보니 총이 모두 12자루가 준비돼 있었고, 마침 장춘에서 실탄을 구해 온 조학래가 교정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방아쇠만 당기기만 하면 왕청문이 방금이라도 불바다가 되고 국민부 본부는 단숨에 날려 버릴 듯하였다. 이때에 김성주 청년이 내린 선택은? 이 한 순간의 선택이 오늘의 북조선이 지금 까지 내려 받고 지나온 선택이었으리라.

 

김성주가 김혁과 신동호 등 복수의 칼을 가고 있던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왕청문의 혁명당 우두머리들에 대한 분노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조급성만으로는 혁명을 못하오. 무기를 들고 왕청문을 치러 간다는 것은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소. 현묵과과 고인호는 이미 동지들이 뿌린 성토문 만으로도 철저히 매장 되었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의 주력군을 튼튼히 꾸리는 것이요. 동무들, 이번에 여섯명의 동지를 잃었지만 우리를 광범한 지역에 조직들을 새로 결성하며 이미 있던 조직들을 더욱 확대해서 여섯 명이 아니라 6천명, 6만명의 새 사람들을 키워내야 하오. 이것이 왕청문에 대한 복수 이며, 우리 혁명의 승리를 앞당기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오”(‘은하수’ 94쪽)

 

김성주가 이렇게 연설을 끝냈을 때에 구름 한 점 없는 고유수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내려 뿌리기 시작했다. “컴컴한 은행나무 풀 우에 숱한 별들이 떴다. 먼 하늘에 마구 쥐여뿌린 듯한 눈동자들이 깔린 것 같았다. 무언가 애타게 기다린 곡진히 속삭 이는 것 같은 눈동자, 눈동자들, 6천 아니 6만이 되어 쏟아 져 내리는 저 눈동자들...

 

별이 빛나는 밤 이렇게 동만의 가을밤은 깊어 가고 조선의 별은 솟았다. 귀뚜라미 소리 여느 때 보다 더 요란하게 별들과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고유수의 밤하늘에는 6천 6만의 별들이 눈동자들이 쏟아져 내리며 대지 청년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실로 조선 혁명은 만주 벌 눈바람과 저 하늘의 별을 떠나서 말할 수 없었으리라.

 

분노와 복수에 붙타 던 조선의 청년 혁명가들은 너도 나도 주먹을 굳게굳게 부잡고 왕청문 가는 길을 혁명의 새 길로 가슴 속에 닦고 있었다. 온 우주의 흩뿌려진 별들이 오늘 밤 만은 모두 조선의 별들이 되는 듯 했다.

 

조선 혁명은 이미 우주적인

 

작은 교실 문 밖을 그이가 나설 때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이의 말은 어느 설교보다 어느 법설보다 숭고했었다. 이들이 꿈꾸던 혁명은 우주와 한 몸이 되는 선의 경지에 들어서는 경지 그 이상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 수련을 한 것도 아닌 데 “무언지 모를 미래를 응시하는 것 같은 숭엄한 감정이 방안에 하나 가득 차게 했다”

 

마치 예수가 잡히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느 제자가 칼을 들어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르자 그것을 만류한 그날 밤과 같이 이것은 무장 해제가 아닌 숭고의 미가 온 가슴을 미여 들어오는 혁명의 무아지경에 접어 든 것 같았다.

 

이통하는 혁명의 은하수

 

이통하 강을 마치 긴 띠같이 사이에 두고 이쪽 저쪽으로 큰 동네 작은 동네들이 여기저기 널려 앉아 있다. 이것을 통털어서 ‘고유수’라고 한다. 그래서 지도상에 ‘삼원포’만 보인다.

 

오늘밤 동네마다 불빛들이 유난히 환했다. 3백여호의 집들은 웅성웅성 청년들이 모여 왕청문으로 향하는 대열을 정비하는 것만 같았다. 연가라는 지주 녀석은 자기 집을 치는 줄 알고 비단 다부산자에 꼭다리 모자를 스고 가병들을 이끌고 동네를 어실렁 거린다.

 

그러나 김성주는 이날 밤 동네 사람들을 모아 학교 교실에서 회의를 소집했었다. 이 날 결정 사항은 고유수에 6년제 소학교를 4년제로 하고, 그 4년에 6년제 수업을 집중적 으로 가르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신 2년제 고등과를 병설하고 그 고등과에서 조국 광복의 일군들을 속성으로 양성하는 것을 회의에 부쳤다.

 

김혁과 차광수 모두 놀랐다. 이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 김성주의 머리속에서는 ‘교육’ 그것이 차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연설에서 6천6만의 동지들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타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김성주의 학제 개편에 모두 찬성을 하였으며 고등과 설치는 나중에 혁명의 큰 핵을 만들어 낼 정도로 공헌 하였다.

 

회의가 끝 날 무렵에 옆 마을 신창리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제 김성주가 나타 났으니 동네 청년들을 몰아 왕청문을 치러 갈 것이니 속히 동네를 빠져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소동이었다.

 

  김혁은 자기 때문에 일어 난 소란 인 줄을 알고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앞장 서 총과 탄알을 회수하니 마을이 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왕 청문 가는 길은 운동회부터

 

회의는 이어서 동네 분위기를 안정시켰다. 나아가 마을 인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운동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왕청문 가는 길 첫 발걸음은 운동회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젊은 청년들은 김성주의 웅심 깊은 속마음을 샅샅이 읽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고유수의 밤은 깊어 가고, 하늘엔 새 별이 솟아 삼천리 방방곡곡을 곱게도 비추었다. 밤이 더욱 이슥해지자 마을 앞을 가로 질러 흐르는 이통하의 물 가운데 놋양푼같은 큰 달이 둥둥실 떳다. 이통하는 백두산 가는 길에 반드시 들려 가는 길이니 누구라도 이 길과 강을 지날 때에 85년 전 이 땅에 산 조선의 청년들이 가졌던 상념 속에 젖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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