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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문 가는 길 멀고 험해도 우린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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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일 작성일15-01-03 03:1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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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문 가는 멀고 험해도 우린 떠나야 한다!

 

김상일(전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1929 여름의 동만 땅의 낭만과 슬픔

 

  가도 가도 수수밭 길 간간이 고랑을 메운 콩잎이 가는 바람에 너슬대기도 한다. 밭 구석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넓고 넓은 남만 외길 300리 수수밭 길 따라 김성주와 차광수 두 젊은이들이 늦여름 뜨거운 해빛 내려 쪼이는 길을 걷고 있다. 밋미스름히 언덕진 수수밭 머리로 올라선 김성주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김성주 청년이 좀 쉬어 갈가 하니 차광수가 “일없소, 오늘 중으로 기어이 한촌에 대야 하지 않겠소”하고 대답한다.

 

  두 청년이 오늘 중 한촌에 들어 가야할 이유는 한촌에 살고 있는 최봉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두 청년이 가는 길의 목적지는 한촌이 아니고 왕청문이다. 1929년 왕청문에서 열리는 국민부가 주최하는 ‘남만 청총’에 참가하기 위해서 가는 길에 한촌에 사는 최봉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두 청년이 최봉이 머무는 집에 도착했을 때에 이미 최봉은 왕청문을 떠난 뒤였다. 최봉의 어머니와 최봉의 약혼녀만 만났다. 최봉의 어머니는 아들 자랑을 하면서 아들 친구 들이 왔다니 아들 같이 반기면서 며느리 될 수연이를 시켜 음식을 장만케 한다. 예나 지금 이나 이런 풍경은 변함없는 남북민 모두 우리들의 애틋 하고 공감 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최봉은 영원히 집에 돌아 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와 그를 기다리는 수연이의 한 맺힌 삶은 이 땅의 진보가 가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최봉은 이미 왕청으로 떠나고 없었으며 최봉은 기다리는 약혼녀의 애타는 기다림을 마다한 채 1929년 가을 왕청문 피모 지구 산골짜기에서 우익 국민부의 백색 테러에 의해 5명의 다름 청년들과 함께 희생이 되고 만다.

 

왕청문 사건이란?

 

  왕청문은 길림성 홍경현의 작은 농촌 부락이다. 부락 중심에는 국민부의 거물 들이 모여 살았으며 독립 인재 양성 목적으로 세운 화흥 중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29년 가을 우익 국민부 우두머리 현묵관과 고이허가 애국 청년 운동가들 6명 최봉, 리태희, 리몽렬, 리광선, 조희연을 등 스물 한 두 살 밖에 안 되는 청년들을 피목 지구 산골에서 살해 한다. 몽둥이로 뒷머리를 쳐 잔인하게 쳐 죽인다. 이를 ‘왕청문 사건’이라 한다. 일제라는 적을 코앞에 두고 같은 피를 가진 애국애족 청년 6명을 몰살한 사건, 우익들의 백색 테러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2015년 새 해 아침에 이 백색 테러 사건을 황선 신은미에 대한 익산 테러 사건을 상기하면서 글을 쓴다. 익산 우익 집단의 원조는 왕청문 사건이 원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남만청총대회’는 국민부가 남만청총과 동만청총을 통합함으로서 조선청년 동맹을 무어내어 만주 일대에 있는 모든 조선청년단체들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 하기 위해 소집한 대회였다. 예나 지금이나 목숨을 내 걸고 민족주의 운동에 한 몸 내 던지려는 청년 지식인들은 좌파 진보들 청 년들이 주류 였다.

 

  이것이 회의를 소집한 현묵관과 고이허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기들이 생각할 때에는 밥상 차려 놓고 보니 손님들은 거의 모두 좌파 청년들뿐이었고 자기들은 들러리서는 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지금 만약에 애국애족 하자고 청년 단체 회의를 소집한다고 할 때에도 제 발로, 그것도 물집 터진 발에 성냥 딱총 불질러 가며 걸어 올 청년들은 소위 저들이 ‘종북’이라고 하는 좌파 청년들 뿐일 것이다. 차광수의 발은 물집 성승이고 김성주의 온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 시 바쁘게 왕청문에 도착해야 한다. 국민부가 하는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이다. 서로 사상이 달라도 외세를 이기자면 전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대동단결 해야 한다는 오직 한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앞에서 민족 대단결한 다는 것이 죄가 되어

 

  김일성 주석은 그의 회고록에서 그 때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민족주의 교양을 해도 나오는 것은 공산주의자들 뿐이였다. 간판은 민족주의인데 내용은 공산주의였다”(1권 334쪽) 다시 말해서 김일성 주석은 백산청년대표의 자격으로 차광수와 왕청문 남만청총 대회에 참가하러 와 보니 결국 그들의 성공적인 대회 자체가 국민부의 역린 같이 보였다.

 

  비록 국민부가 소집한 대회이기는 하지만 도착한 첫날부터 김성주는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해 민족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을 성사 시키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여간 애를 쓰지 않았다. 대회의 결의안도 공산주의란 이념적인 색채를 제거하고 민족주의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작성하였다.

 

  김성주 청년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광수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고이허를 찾아 갔다. 고이허는 민족주의 진영 가운데서도 소문난 이론가 였다. 고이허는 1929년 여름 삼원포 일대에서 있었던 엠엘파와 백산청년 동맹을 동일시 하면서 타협을 거부하였다. 사실 엠엘파들은 ‘몽치단’이란 이름으로 김성주의 반제청년 동맹까지 습격하는 망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다시 말해 동일한 피해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이허는 김성주의 제안을 거부하고 이미 체포한 6명 청년들의 소재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극우와 극좌의 협공 속에서 지낸 날들

 

  1930년대 동만 일대에서 김일성 항일투쟁 운동은 극좌파와 극우파 모두에게서 협공을 받고 있었다. 특히 전자의 경우가 5.30 폭동으로, 후자의 경우가 왕청문 사건으로 이어진다. 김일성 혁명은 지금도 이런 오해 속에서 진행 중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진보 운동이 겪는 암초와 소용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좌에는 암초가 우에는 소용돌이가 있는 협곡을 지나가는 율리시즈의 배와 같은 것이 우리 진보 좌파의 현주소이다. 억지로 종북으로 몰고 가는 저 극우와 극좌의 소용돌이를 빠져 나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2014년 겨울 통합 진보당 해산과 신은미 백색 테러 사건을 보면서 1929년 왕청문 사건을 연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일성 주석은 이런 비극을 자기 당대의 일어난 사건 가운데 중국의 노동자 농민들을 학살한 장개석의 졸도들의 만행에 비유하고 있다.(회고록 1권 342) 그가 오늘 살아 다른 비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의 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구속을 두고 말 할 것이다.

 

  “왕청문 사건이 있은 다음 나는 가슴이 아파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하였다. 나라를 찾아보자고 혁명의 길에 뛰어 들었는데 같은 민족한테 피해를 당하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였다”(회고록 1권 343)

 

  어찌 왕청문 피목 산골자기에서 죽은 최봉 등 6명의 청년들의 한 뿐이랴? 이 땅에 보수 우익들의 애국애족 일념으로 나선 묻 청년 지식인들을 감옥에 처넣고 고문 학살을 하고 있는 역사는 아직 까지도 진행형이다. 한솔 밥을 먹던 동지들마저도 종북의 덜미 속에 밀어 넣는 이 상황이 무엇 하나 다르랴?

 

원통한 최후 순간

 

  최봉등 6명의 청년들은 최후의 순간에 “우리는 로력자 대중의 입장에서 자신의 희생을 이미 각오한 바 있다. 그러나 너희들 손에 죽기는 너무 원통하다”고 하면서 최후를 마쳤다. 국민부는 이들 청년들을 살해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가족들 까지 찾아다니면서 학살을 서슴치 않았다. 국민부는 김성주를 묵게 한 집 주인의 여인 오신애 마저 살해를 하고 말았다. 물론 주 표적은 김성주였다. 김성주는 동지들의 희생을 피하기 위해 왕청문의 철수를 명할 수 밖에 없었고 남만 청총 대회는 무산 되고 말았다. 이렇게 좌우 합작이란 항상 우익들의 테러로 무산 되는 역사를 반복한다.

 

  신은미 선생은 “나의 모든 것이 파탄 나고 말았다”고 했다. 보수 우익들의 광기와 백색 테러는 종편이라는 어마 어마한 무기를 들고 지금 백주를 활보하고 있다. 이들도 애국애족과 국가안보를 짓거리고 있다. 그러나 오직 한 몸 내던져 저 일제와 미제와 싸울 인재 풀은 항상 좌파 진보 뿐이라는 데 저들의 고민이 있다.

 

  김일성 주석은 ㅌ.ㄷ를 결성하던 첫 날부터 항상 민족주의자들과의 공동 투쟁을 모색해 왔었다. 안창호를 보수 개량주의자로 비판은 하면서도 그가 체포당했을 때에 주저 없이 그의 석방을 위해 투쟁한 인물도 김성주 청년과 그의 사람들 이었다.

 

테러한 테러 당하고 만다.

 

  현묵관도 그 후 장사에서 테러 분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 자신도 테러의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그의 딸 현숙자가 북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당력사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그의 다른 자녀들이 지금 북에서 대우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북은 남에서 대화 제의가 올 때 마다 언제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반겨하고 있다. “오늘 국토가 분렬 되어있고 외세의 간섭이 심한 조건에서 민족단합이 첫째가는 생명이라는 것을 절감할 때 마다 나는 왕청문의 비극을 생각하군 한다” (1권344)고 김일성 주석을 회고 하고 있다.

 

  오늘도 남한 정부는 북핵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한.일 내지, 한.미.일 공조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못 난 송아지에 왜 이렇게 엉덩이에서 뿔만 돋는 것인지. 신년 아침 가장 기분 상하게 하는 보도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보도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이다.

 

우리민족을둘로갈라놓고장장 70년간민족분렬의고통을들씌워온기본장본인인미국은시대착오적인대조선적대시정책과무분별한침략책동에매달리지말고대담하게정책전환을하여야할것입니다.


  북과남은자기의사상과제도를절대시하면서체제대결을추구하지말며우리민족끼리리념에따라민족의대단합,대단결을이룩하여조국통일문제를민족공동의리익에맞게순조롭게풀어나가야합니다.


  자기의사상과제도를상대방에게강요하려하여서는언제가도조국통일문제를평화적으로해결할수없으며대결과전쟁밖에가져올것이없습니다.


  우리는인민대중중심의우리식사회주의제도가가장우월하지만결코그것을남조선에강요하지않으며강요한적도없습니다.


  남조선당국은북남사이의불신과갈등을부추기는《제도통일》을추구하지말아야하며상대방의체제를모독하고여기저기찾아다니며동족을모해하는불순한청탁놀음을그만두어야합니다.


  북과남은이미합의한대로조국통일문제를사상과제도를초월하여민족공동의리익에맞게풀어나가야합니다.


  북남사이의대화와협상,교류와접촉을활발히하여끊어진민족적뉴대와혈맥을잇고북남관계에서의대전환,대변혁을가져와야합니다.


  북과남이싸우지말고힘을합쳐통일의새로운길을열어나가는것은겨레의한결같은소망입니다. 북과남은더이상무의미한언쟁과별치않은문제로시간과정력을헛되이하지말아야하며북남관계의력사를새롭게써나가야합니다.


  우리민족의뜻과힘을합친다면못해낼일이없습니다. 북과남은이미통일의길에서 7.4공동성명과력사적인 6.15공동선언,10.4선언과같은통일헌장,통일대강을마련하여민족의통일의지와기개를온세상에과시하였습니다.

 

 

왕청문 사건과 2015 신년사
 

  이 신년사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1930년 대 항일 유격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룩된 정신이다. 차광수와 김성주 청년들이 국민부가 소집한 남만총청 대회를 성공시키려 그 머나먼 길을 달려 갈 때부터 이어 온 정신이다.

 

  용광로 같이 애국정신에 불타는 청년들 여섯을 잃어 가면서 까지도 보수 우익들을 껴안으려는 정신의 계승이다. 그래서 믿어도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지독한 보수우익 보다는 외세가 더 무서운 적이라고 북의 지도자들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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