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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이후 북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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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호석 작성일14-08-11 09:5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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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이후 북의 마지막 선택
 

한호석의 개벽예감 <12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편집자 주: 눈에 보이기에는 평화로운 한반도이지만 한호석 소장의 이 글만 봐도 북미대결전이 격화되어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당국자는 북과 미국의 대결에 한반도의 운명을 맡겨놓고 있지만 말고 지금이라도 북과 직접 만나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다소 충격적인 주장이 많이 들어있지만 정북 당국에 6.15, 10.4 선언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길을 하루빨리 모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 <사진 1>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고 밝혔다. 가오리처럼 생긴 이 폭격기는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에 동원된다. 미국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폭격기들을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남측 국민들은 심각한 상황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 자주민보


 

 미국은 왜 느닷없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전진배치하였을까?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서태평양의 미국령 괌(Guam)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ir Force Base)에 전진배치했다고 밝혔다. 미국 본토 미주리주에 있는 와이트먼공군기지(Whiteman Air Force Base)에 고정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된 것이다. <사진 1>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는 말은 격납고에 들어가 출격명령을 대기하는 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중타격연습을 계속 실시한다는 뜻이다. 2009년 3월 12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 공식매체인 <태평양공군(PAF)>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훌륭히 준비하기 위해 마치 실전상황처럼 작전(연습)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난 8월 7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세계항공보(Global Aviation Report)>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숙달훈련(familization training)’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무엇을 숙달한다는 뜻인가?


한 번 이륙하면 6시간마다 한 차례씩 공중급유를 받으며 11,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심층관통핵타격(deep-penetrating nuclear strike)에 동원되는 폭격기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공중에서 투하되어 지하 61m까지 파고들어가 폭발하는, 무게가 14t이나 나가는 지하관통폭탄 GBU-57A/B 두 발을 실을 수 있고, 340킬로톤급 폭발력을 지닌 B-61핵폭탄 또는 1.2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B-83핵폭탄을 실을 수 있다. 1.2메가톤급 핵폭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파괴한 핵폭탄보다 75배나 더 강한 폭발력을 가졌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번에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는 심층관통핵타격을 숙달하는 연습을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선제핵타격연습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적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공중침투할 수 있는 스텔스기능을 갖춘 것만 보더라도, 그 전략폭격기가 전쟁징후를 포착한 즉시 선제핵타격을 개시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최근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지난 8월 7일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여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곳은 한반도다.


요즈음 친러시아세력과 친서방세력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사태에 대비하여 중무장한 러시아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집결한 공격징후가 보이는데도, 미국은 그에 대처하여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서유럽에 전진배치하지 않았고, 순양함 한 척을 흑해에 전진배치하였을 뿐이다. 오늘 우크라이나 상황과 한반도 상황을 비교하면,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한반도에서 인식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이 보기에 조선인민군의 군사동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가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어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한 때는 2009년 1월 중순이었는데, 당시에도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한 것이다. 2009년 1월 중순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까닭은, 그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2009년 5월 25일에 밝혀졌는데, 북이 그날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북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넉 달 전에 그 실험이 실시될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2008년 10월 9일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ABC> 텔레비전 방송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당국이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있는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무렵 두 주간 동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대형케이블선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08년 10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09년 1월 중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가 앤더슨공군기지에 두 번째로 전진배치된 때는 2013년 1월이다. 당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었다. 또한 2013년 3월 28일에는 와이트먼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10,400km를 비행하여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폭격연습장까지 날아가 핵타격연습을 실시하고 와이트먼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처럼 2013년에는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의 서태평양 전진배치와 대륙간장거리이동을 석 달 간격으로 연거푸 감행할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였다. 


북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준비는 이미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의 <합동통신(AP)> 2012년 4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당시 4월 초에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토사운반광차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12년 4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13년 1월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8월 7일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도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동향과 관련된 것일까? 지난 4월 21일 오전 9시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시켰다. 이튿날 남측 국방부는 북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들이 말한 여러 가지 활동이란 각종 계측장비를 현장에 설치하고, 계측장비와 통제소 사이에 통신선을 연결하고, 굴착한 갱도를 되메우는 움직임 등이다. 당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언제든지 결정만 하면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명령만 내리면 조선인민군은 언제든지 제4차 지하핵실험을 즉각 실시할 모든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지난 4월 21일부터 북의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하고 있는데, 미국이 그로부터 약 3개월 반이 지난 뒤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2009년 1월이나 2013년 1월과는 달리, 이번에는 북의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를 포착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7월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한,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난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6호를 동원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세 차례 실시하였는데, 미국은 그 연습을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실시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관해서는 지난 7월 2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927)에서 논한 바 있다.


둘째, 북이 ‘운명적인 7월’이라고 했던 지난달 20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이미 1월의 중대제안과 공개서한을 통하여 그리고 6월의 특별제안과 7월의 공화국정부성명을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나라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다.”


이 인용문은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 정세를 한 마디로 말해준다. 인용문을 남측 서술방식으로 바꿔 다시 적어보면, 북은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건만, 미국과 남측 정부는 북의 그런 노력을 선의로 대하기는커녕 항모타격단을 비롯한 방대한 무력을 동원한 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니 2014년 8월 이후 북에게는 마지막 선택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2014년 8월 이후 어느 시점에 북이 단행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최후의 선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위의 인용문에 나온 ‘최후의 선택’이라는 말은 ‘최후 결전’을 뜻한다. 북에서 말하는 ‘최후 결전’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언급한 ‘판가리결전’ 또는 ‘조국통일대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서 인용한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문에 들어있는 “이제 (북에)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라는 문장은 2014년 8월 이후 북에 남은 것은 ‘조국통일대전’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전 이후 분단10주기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 표명한 북의 최고영도자들

 

2013년 10월 24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런민대 교수는 기밀해제된 중국 외교부 문서인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의 담화기록’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1965년 당시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한반도 분단문제-옮긴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선은 조만간 전쟁을 할 것이며 이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전쟁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 군대를 파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텅쉰핑런(騰迅評論)>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에 따르면, 1965년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던 양융(楊勇)에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한 번 더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짐을 후대에게 물려주면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 반드시 더 잘한다는 법도 없다. 경험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질테니 당신들과 함께 싸워보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의 인용문은 ‘조국통일대전’이 한반도 분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중국측에 표명하였음을 말해준다. 1965년은 분단 20년이 되던 해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65년 4월 27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미그-17 두 대가 동해 상공에 나타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격하였는데, 기습공격을 받고 기체손상을 당한 그 정찰기는 일본 요코다공군기지로 간신히 대피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69년 4월 14일 북의 전투기들은 동해상공에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대공미사일 한 발로 격추하였고 거기에 타고 있던 미국군 31명이 몰살당했다. 1968년 1월 21일에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고, 이틀 뒤에는 조선인민군 해군이 동해에서 대북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첩보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면서 승조원 83명 전원을 생포하였고,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기간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전 부대가 경상북도 울진과 삼척에 각각 기습상륙하여 교전을 벌였으며, 1969년 3월에는 조선인민군 최전방 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주한미국군 7명이 죽었고, 11월에는 주한미국군 4명이 또 죽었다.


조선인민군이 1965년부터 1969년 사이에 그처럼 집중공격을 가해 미국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힌 것은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중국측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베트남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북의 집중공격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선인민군은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사진 2>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던 1965년 당시 미국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대지미사일 어네스트 존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미사일에 전술핵탄두가 탑재된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 자주민보


만일 당시 북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하였더라면, 미국은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였을지 모른다. 미국의 핵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2005년 9월 28일 미국과학자연맹 전략안보블로그(FAS Strategic Security Blog)에 발표한 자료 ‘남코리아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사(A History of U.S. Nuclear Weapons in South Korea)’에 따르면, 1967년에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핵탄 950발 가운데는 지대지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각각 탑재하는 핵탄두는 말할 것도 없고, 핵지뢰도 있었고, 203mm포와 280mm포에서 발사하는 핵포탄도 있었다. <사진 2>


그런데 각종 핵탄 950발로 무장한 주한미국군은 당시 핵탄 한 발도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이 자기들에게 근 5년 동안 집중공격을 퍼부었는데도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은 비핵국가였던 북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북에게 포 한 발 쏘지 못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재래식 무기밖에 없었던 북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서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이 각종 핵탄 950발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비해놓고 대북핵공격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북이 몰랐기 때문에,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분단 30년이 되던 197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다. 1975년 5월 6일 베이징 주재 동독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14년 만에 중국 방문길에 오른 김일성 주석은 4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지도부의 환영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적들이 무모하게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전쟁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줄 것이며 침략자들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조국의 통일입니다.”


분단 40년이 되던 1985년에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지를 말해주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북이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였던 198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을 실현해야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분단 50년이 되던 1995년에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김영환 국가정보대학원 교수가 ‘대국민 안보보고서’라는 제목의 논문을 2009년 1월 인터넷에 공개하여 남측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는데, 현역 군인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그의 글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4월 인민무력부 작전지휘관들에게 “우리 인민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공격을 개시, 순식간에 남조선을 점령해 아침에 깬 인민들이 남조선점령상태를 확인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분단 60년이 되던 2005년에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2003년 1월 일본 언론매체가 입수하여 번역, 게재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무력으로 적들을 소멸하고 남조선을 단숨에 타고 앉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며 이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무력통일관입니다”고 말하면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음을 알려주었다.

 

▲ <사진 3>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지난해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언은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민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사진 3> 2013년 8월 9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펴내는 <우리민족끼리>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최대의 절박한 과제이며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필생의 념원이고 유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8일 남측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으니,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계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그 유업을 실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은 아직 핵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북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핵위협을 받았던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강력한 핵무력을 보유하고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하는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는 더욱 강렬한 것으로 생각된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표명에 관해 보고한 때로부터 사흘 뒤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 후보자는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방위태세로 볼 때 (그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 날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가운데 누가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합참의장 후보자에게 질의했는지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그 시나리오는 북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3일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 서술된 나의 추론이다. 그 글이 <자주민보>에 실린 날로부터 14일이 지난 3월 30일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특별성명’에서 “우리의 조국통일대전은 3일 대전도 아니며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 없이 단숨에 남조선 전지역과 제주도까지 타고 앉는 벼락같은 속전속결전”이라고 지적하면서 내가 추론하였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사실상 부인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과 한국군의 사상정신상태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사흘 만에 끝날 것인가 아니면 하루 만에 끝날 것인가 하는 전쟁속결속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그처럼 상상을 초월한 초고속으로 ‘조국통일대전’을 끝낼 수 있는가 하는 그들의 전쟁준비태세에 대해서도 응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이 사흘까지 가지 않고 그 이전에 급속히 끝나게 될 것이라는 북의 공식언명은 전쟁기간이 짧을수록 그만큼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발언인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할 때 그들에게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는 적군와해공작이다. 위에 인용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결정적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군의 내부문건이다.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현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더 커져가고 있습니다”고 지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상대측을 사상심리적으로 와해시키는 일이 커다란 힘이 된다”고 인정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는 조선인민군이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투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곧이어 적군와해공작을 전개함으로써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을 초고속으로 결속하려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은 한국군의 사상무장이 허술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상무장이 든든한 군대에게는 와해공작이 먹혀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

 

▲ <사진 4> 최근 남측 언론매체들이 날마다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각종 군부대 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한국군에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자명해진다.     © 자주민보


한국군의 사상무장은 잘 되어 있을까? 얼마 전 일어난 육군 제22사단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과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에는 사상무장은커녕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지난 8월 6일 한국군 육군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에서 일어난 폭행 및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는 1,100건이고, 징계건수는 6,095건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수치는 이번에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빙산의 일각’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지난 4월 7일 육군 제28사단에서 폭행치사사건이 일어나자 군당국이 4월 한 달 동안 전체 부대를 대상으로 가혹행위에 관한 긴급조사를 실시하여 3,900여 명의 가혹행위 가담자를 적발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3,900명의 가혹행위 가담자가 적발되었는데, 한 해 동안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가 1,100건밖에 되지 않고, 징계건수가 6,09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폭력으로 통제되는 한국군은 전쟁이 터지면 아군끼리 서로 총을 겨눌 것이라고 우려한 <문화일보> 2014년 8월 8일부 보도기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14년 8월 6일 국군의무사령부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3년 동안 19개 군병원들에서 정신질환을 치료한 경험을 보면, 한국군 정신질환자는 19,066명이고, 정신질환진료는 66,481건이나 되었다. 2013년 9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장애에 걸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군인의 비율이 13.9%에 이른다. 2011년 9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에서 자살사건이 증가하는 바람에 2011년 7월부터 9월 22일까지 인성검사를 실시했는데, 그 검사를 받은 중사와 상사 60,038명, 위관급 장교 29,130명을 포함해 모두 89,168명의 피검사자들 가운데 10.2%에 이르는 9,131명이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하거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8월 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군검찰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검찰이 의법처리한 군인범죄는 7,530건이나 되었는데, 교통법위반범죄, 폭력범죄, 성범죄, 추행범죄, 사기 및 공갈범죄, 절도 및 강도범죄, 횡령 및 배임범죄, 기밀누설범죄, 탈영, 마약, 도박 등으로 다종다양했다.


이처럼 폭력과 학대가 만연되고, 정신질환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범죄율이 높은 군대가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조선인민군은 전군이 전우애로 똘똘 뭉쳐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했다는데,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졌으니 그런 사실을 아는 남측 국민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군이 스스로 와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지경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적군와해공작은 적군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군조직을 와해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과 장거리남진갱도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이 중시하는 적군와해공작은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에서 일차적으로 승리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기습타격이란 전략군이 초정밀전술유도탄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거점들을 파괴하고,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기습타격에 동원할 타격수단들 가운데 하나인,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인 초정밀전술유도탄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96)’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제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에 대해 논할 차례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불시점령을 위해 지상과 지하, 해상과 수중 그리고 공중에서 입체적으로 침투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한 지하침투다. 이에 관한 정보는 지난 7월 15일 서울에서 출판된 책 ‘여적의 장군들’에 서술되었다. 한국군 공군과 합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10년 1월에 예편한 예비역 소장인 저자는 그 책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꺼내놓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수맥이나 광맥을 찾는 전문가와 함께 청와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그 일대에 지하갱도가 벌집처럼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가 탐침한 청와대 주변의 지하갱도를 보면, 청와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최소 84개, 삼청동 총리공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6개, 청와대 주변도로 밑에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3~6개, 경복궁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연결통로가 5개 이상이다. 또한 그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이 방어하는 서부전선 최북단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지하갱도가 최소 36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 책에서 밝혔다. 

 

▲ <사진 5> 1975년 3월 19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근동면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를 촬영한 사진이다. 토사와 버럭을 운반하는 광차가 오간 궤도가 보이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관이 바닥에 놓인 것도 보인다. 너비가 2.1m이고, 높이가 3m이며 지하 50-160m에 굴설된 이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이므로 길이는 3.5km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 이 남진갱도를 차단하는 작업에 투입된 한국군 7명이 조선인민군이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하였다. 최전방에 침투하는 단거리남진갱도는 이제껏 네 개 발견되었으나, 서울을 비롯한 남측 후방에 깊숙이 침투하는 장거리남진갱도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자주민보


또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붕괴를 막기 위해 격실형태로 굴설된 남진갱도들은 대체로 깊이 10m 정도에 뚫렸는데, 그 가운데는 언제든지 갱도출구를 파내고 즉각 지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표면 가까이 2m에 뚫린 곳도 있다고 한다. <사진 5>


그가 탐침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기지 일대 땅속에도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이고, 미국군과 한국군의 지하전쟁지휘소들이 있는 청계산과 관악산에도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서울 중심부까지 60km에 이르는 장거리남진갱도를 굴설하는 경우 5t 화물차 140,000대가 실어 나를 엄청난 토사와 버럭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대규모 굴설작업이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위와 같은 주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국방부 대변인이 알지 못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군정조직 하마스(Hamas)가 가자지구에 지하갱도를 수백 개나 굴설하였다는 사실이다. 하마스가 2000년대 초반부터 불과 10여 년 동안 초보적인 굴착기술로 건설한 지하갱도가 수백 개 되는데, 조선인민군이 1953년 8월부터 60년 동안 고도의 굴착기술로 건설한 남진갱도가 얼마나 길고 얼마나 많은지 추정하기도 힘들다.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와 장거리남진갱도로 구분되는데, 단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기지들을 불시에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고, 장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기 위한 시설이다. 


1990년대에 남측 국방장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제보가 들어오면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맡았던 윤여길 공학박사가 2013년 5월 17일 <뉴스한국> 취재기자와 진행한 대담에 따르면, 3개조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공병대 군인 24명이 하루에 지하갱도를 20m 정도 굴설할 수 있다고 하는데, 1953년 8월부터 오늘까지 60년 동안 그런 굴설속도로 남진갱도를 계속 파들어갔다면 그 길이는 438km에 이르게 되어 남측 어느 지역 땅속이라도 통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폭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는 경우 그 폭탄이 벽에 부딪쳐 튕겨나가도록 지하갱도입구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고도의 기술을 북이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미국 과학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산악지대가 없고 거의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힘든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하마스가 굴설한 지하갱도를 정찰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스라엘군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녔는데도 겨우 23개밖에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아주 쉬운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조선인민군이 고도의 기술과 위장술을 동원하여 굴설한 남진갱도를 탐사작업에 열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군이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남측 국방부 탐지과는 북의 남진갱도가 22~24개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남측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 네 개는 모두 단거리남진갱도들이다. 

 

▲ <사진 6> 이 사진에 나온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특수군이 아니라 정찰병인 것으로 보인다.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해 남측으로 침투할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한국군 복장을 입고 위장할 것이다. 한국군 복장을 입은 조선인민군 특수군 병력 200,000명이 갱도출구 400개를 열고 불시에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 자주민보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조선인민군 저격병여단에서 군사복무를 할 때 지하갱도적응훈련을 받았다는 탈북자의 회고담을 인용한 <뉴스한국>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땅속에 여러 갈래로 뚫린 남진갱도를 통해 침투한 ‘폭풍군단’이라 부르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1개 여단 6,000~8,000명이 갱도출구를 파내고 지상으로 나와 곳곳에서 동시에 출동하면 서울은 순식간에 점령당할 수 있고, 24시간 안에 충청남도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 5>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 중에 윤여길 공학박사가 언급한 추산법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출구를 각각 20개씩 낸 장거리남진갱도를 20개 굴설하였다고 가정하는 경우 모두 400개의 갱도출구가 있는 것이고, 그 갱도출구들에서 병력이 500명만 지상으로 나와도 30분이면 200,000명이 남측 각지에서 갱도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견한 것처럼, 조선인민군 20만 대병력이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서 불시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나게 될 것이다. 다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지키고 있는 최전방에서는 피를 흘리는 격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윤여길 공학박사는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에서 “북한이 3일 만에 (남측 전역을) 점령한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를 남겼던 것이다. 그가 남긴 충고를 새겨들으면, 2014년 8월 이후 마지막 선택만 남은 북에게 분단 70년이 되는 운명적인 2015년이 차츰 다가오는 현실이 눈에 보인다. 

 

[출처: 자주민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8-11 09:58:1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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