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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노는 적극적인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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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4-06-10 00: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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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노는 적극적인 역할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얼마 전 이남에서 활동하는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을 미국 엘에이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대화를 통하여 내가 그동안 주체사상에 대하여 쓴 여러 글이 이남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참으로 기뻤다. 특히 내가 최근에 만난 이들 이남의 철학자들은 주체사상이 강조하고 있는 사람의 <의식>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해설한 나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나와 그 모임에 참석한 다른 재미동포들을 놀라게 하였다. <객관세계의 반영>으로 의식의 본질을 설명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인간과의 관계 즉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밝혀준 주체사상에 대하여 일부 이남의 철학자들도 이제는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로 며칠 전인 2014년 6월 초에 재미동포 이산가족들과 이북을 방문하여 가족들을 상봉하면서 역시 이북의 주체사상 학자들과도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최근 내가 만난 이남의 철학자들과의 대담을 전하면서 주체사상이 정의 내리고 있는 <의식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물론 이 내용들은 이미 내가 쓴 여러 글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이남의 학자들이 이 <의식의 적극적 역할>에 관한 문제를 아주 중요시하기에 여기에 다시 정리하여 소개한다.

   

주체철학이 새롭게 밝힌 인간의 본질적 속성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의식성>이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을 <물질의 반영, 즉 객관세계의 반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의 본질을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서 찾았다. 이 경우 의식의 원천은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 있다. 물론 이 이론은 <의식>을 신비화하고 의식의 물질적 기초를 부정하고, 의식을 절대화하는 <관념론>을 반대하는 데서는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의식>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동물들도 감각, 지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개념과 판단, 추리라는 것을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동물의 감각, 지각은 의식발전의 낮은 단계를 표현할 뿐이다. <의식>이라고 말할 때는 감각으로 출발해서 개념, 판단, 추리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의 본질>을 마땅히 인간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물질>이 아니라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의식의 본질을 논해야 의식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듯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해서  객관세계의 특성에 맞게 활동해야만 행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객관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행동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된다. 그런데 인간은 객관세계의 법칙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세계의 법칙 작용도 자기에게 복종시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객관세계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이 노는 역할의 견지에서 볼 때 <의식>이라는 현상을 단순히 <객관세계를 복사, 모사, 촬영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의식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도록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가 하라는 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객관세계를 자기에게 복무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의식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자면 인간과의 관계 즉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점을 고려하여 주체철학은 다음과 같이 의식성을 규정하고 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두뇌 속에 들어온 형상도 목적 의식적으로 개작하고 변형하여 앞으로 자기의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면서 행동의 목적을 세워 활동한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역시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의식이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은 맞지만 의식의 본질을 거기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의 반영이라는 데서 보다도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인간의 생명의 중심인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초해서 외부세계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의식>이라는 것은 주체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란 인간의 사회적 속성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체철학에서는 의식을 <사물의 본질과 운동법칙을 반영한 의식형태>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주체철학에서는 전자를 <지식>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사상의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주체철학에서는 의식을 <지식으로서의 의식>과 <사상의식으로서의 의식>, 두 가지 의식형태로 구별하여 쓰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 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추동력>으로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사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깨어나 인식론적으로 그들이 이해가 되어야 자연개조 사업과 사회개조 사업에 자진하여 나서게 되며 변혁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도 충분히 발휘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주체철학은 모든 사업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우고 있다.

 

사상의식 중에서도 세계의 주인, 자기운명의 개척자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사상의식이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따라서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끊임없이 성장 발전시키는 일을 앞세워야만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을 성공시킬 수가 있다.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워 계속해서 의식화 작업을 심화시켜야만 사람들의 사상적 통일을 보장할 수 있고 그들의 단결과 협조를 이룩해 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목적 의식적으로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변혁운동에서는 사람들을 계속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의식화시켜 변혁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야만 자연개조사업도 사회변혁운동도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돈, 자본이 지배하는 미국과 같은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상보다는 돈, 자본을 앞세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익숙해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에 맡겨버리다 보니 <사상>이나 <도덕>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지 않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도 사상교육이나 도덕교육은 별로 하지 않고 있다. 이남보다도 미국교육에서는 더 그러한 것 같다. 사상이나 도덕 같은 것들은 교회당이나 종교모임에서 배우라는 것 같다. 서로 경쟁하여 이긴 자들은 자기가 유능하니까 당연히 사회에 잘 적응하여 출세하는 것이고 진자들은 자기가 능력이 부족하여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천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실상 따지고 보면 인간이 동물과 별로 큰 차이 없이 취급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에 동물과 똑같이 맡겨버리는 것이 인간을 다루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알아서 네 힘껏 잘 살아 보라고 생존경쟁에 내던져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이러한 <적자생존의 법칙>에 인간을 맡겨버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누르고 이겨 출세하는 무법자들이 약자들을 지배하며 수탈을 일삼게 되었다. 이러한 무법자들의 수탈과 지배를 제도적으로 못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사상>이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인간관계의 도리를 설명해 놓은 것이 <도덕>이다. 인간이 인간을 수탈하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바꾸려면 사회의 주인인 인간이 변해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취급받고 동물의 생존법칙인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으려면 자연과 사회의 주인인 인간이 깨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변해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연과 사회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며 살고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속성이 바로 <자주성>이며, 인간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 변혁하는 속성을 <창조성>이라고 하고, 위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인간이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 변혁하는 활동을 자체로 규정하는 속성을 <의식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가장 발달한 <뇌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도의 <의식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활동>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의 생활적 요구를 자각하고 행동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을 조절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인간의 의식은 사물의 본질과 운동법칙을 반영하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생활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기능도 한다. 따라서 자연개조에서나 사회개조에서 사람들의 <사상의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은 이처럼 자기의 생활경험을 통하여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사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깨어나 그들이 인식론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자연개조사업과 사회개조사업에 자진하여 나서게 되며 열의와 적극성을 가지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연개조사업에서보다도 사회를 변혁하는 <사회개조 사업>, 즉 <사회변혁운동>에서는 고도의 <인간개조 사업>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의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결국, 사회변혁운동에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물건들(things)도 아니고 동물들(animals)도 아니라 바로 인간(human being)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변혁운동은 <변혁사상>에 의하여 향도 되고 <변혁사상>을 기본 <추동력>으로 하여 발전하는 운동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변혁운동이란 변혁사상으로 의식화된 사람들의 목적 의식적인 활동으로 발전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사상사업을 어떻게 하고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어떻게 준비시키는가 하는 데 따라 사회변혁운동의 성패가 달려 있다.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워 계속 의식화 작업을 심화시켜야 사람들의 사상적 통일을 보장할 수 있고 그들의 단결과 협조를 이룩해 낼 수 있다.

 

사회변혁사상은 시대의 요구와 변혁실천의 경험을 일반화한 데 기초하여 마련되며 그것은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운동 지침으로 된다. 그런데 변혁운동이 진행되는 환경과 조건은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역사는 전진하고 현실은 계속 변화 발전한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하는 현실은 사회변혁에 대한 기성이론으로는 풀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가 변하고 사회변혁운동이 전진하는 데 맞게 변혁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사상사업을 심화시켜야 한다. <신분적 예속>을 <자본의 예속>으로 바꾸어 버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의 논리, 즉 시장경제의 논리, 적자생존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되지만 목적 의식적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변혁운동에서는 사람들을 계속하여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혁사상으로 의식화시켜 변혁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야만 사회변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의식화 작업은 일 회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힘든 과업이다. 이 과업이 너무 힘들어서 지난 시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이 사상사업이 경시되었다. 사회변혁의 주체인 사람들을 교양하는 사상사업을 소홀히 하고 경제건설에만 집중하다 보니 경제건설 자체도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종국에는 적자생존의 법칙인 시장경제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의식화 작업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데다 당장 손에 잡히게 결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은 <사상사업>을 내던져 버리고 <돈>, <자본>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시장경제논리>를 도입하여 <적자생존의 법칙>에 사람들을 내맡기다 보니 사람들 속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조장되었고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우월성에 대한 동경심이 생겨났다. 이처럼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사업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병들게 하고 사회변혁운동의 목적을 변질시키고 파괴하게 되면 결국 강한 경제력과 세계 제2위의 군사력을 가진 소련과 같은 나라도 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이북의 주체사상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자주적이고 창조적이며 목적 의식적인 <사회적 존재>이며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인간의 운명개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데 그중에 어느 요인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인간 운명개척의 방향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활동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주로 <사람 밖>에서 찾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관념론적, 종교적 견해는 인간 밖의 <초자연적 존재>나 <이데아>가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사람의 행동과 활동도 그 신비스러운 <하늘의 존재>나 <절대정신> 같은 이데아가 조절 규제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유물론적 견해는 사람의 행동과 활동에 미치는 결정적 요인을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에서 찾았다. 물론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인 사람도 물질세계 발전의 산물이며 그 속에서 살며 행동하고 활동하기에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직접 사람의 행동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객관적 조건은 사람의 <의식>을 통하여서만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객관적 조건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능동적으로 변경하고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 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추동력>으로 된다. 사상의식 중에서도 세계의 주인, 자기운명의 개척자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사상의식이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끊임없이 성장 발전시키는 일을 앞세워야만 사회변혁운동을 성공하게 할 수가 있다.

 

과거의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 많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이 민주화 투쟁에 헌신하였다. 심지어 감옥에까지 간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은 5.18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이남의 민주화가 안 되는 것은 결국 군통수권을 가진 미국이 이남의 모든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실제로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는 획기적인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민주화 운동가들은 군통수권을 가진 미군이 광주에 이남군인들을 투입해 광주 민주화 투쟁을 진압하게 했으며 무수한 희생자를 내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민주화운동을 한 단계 높은 <반미자주화운동>으로 발전시켰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자 상당수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운동가들이 운동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기를 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미국에서 링컨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신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K 박사는 함석헌 선생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감옥에도 다녀왔지만, 민주화운동이 반미자주화운동으로 발전하자 반발하고 나섰다. 더구나 이남의 민주화가 안 되는 것은 결국 이남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이 분단을 고착화하고 이북에 적대정책을 쓰면서 친미반북세력들을 규합하여 이남의 정권을 잡도록 뒤에서 계속 조절 통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민주화 세력들은 반미자주화운동을 넘어 <조국통일운동>을 벌리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단지 군사독재에 반대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남 땅에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민주화운동을 벌여온 K 교수 같은 많은 민주인사는 겁을 먹고 자주통일운동을 멀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차차 그것을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지금도 K 교수는 열심히 언론을 통하여 미국식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이북을 악마화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상의식>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역사의 반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위 K 교수의 예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세우자는 초보적인 민주화운동은 자기의 <기득권>, 즉 <이해관계>를 유지하고도 가능한데 자주화운동, 통일운동으로 넘어가면 좌익이다, 빨갱이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직장을 유지하기도 힘들게 되니 자주통일운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기득권층에 속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객관적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그래서 자주.민주.통일 운동조직들은 사상사업을 앞세워 회원들과 민중들을 각성시키고 단결시켜 자주민주통일운동에 헌신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운동의 주체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사상사업을 앞세워 운동원들과 민중을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계속 무장시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심단결하는 일, 즉 주체를 강화하는 일 이외에 자주민주통일운동을 성공으로 이끄는 다른 비결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코리아반도에는 다시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박근혜 신유신세세력들이 <한미일군사동맹>을 강화하며 제2의 코리아전쟁을 획책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6.15민족공동선언 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천안함침몰사건을 구실로 완전히 차단되었고 코리아반도에서는 전쟁연습이 매달 시행되고 있다. 지금 총체적인 불법선거로 정권을 쟁탈한 박근혜 신유신정권은 다시 미.일과 합작하여 제2의 코리아전쟁을 계획하고 있다. 박근혜 유신정권은 세월호 참사로 그 반민중적인 본체가 드러나자 북풍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북에서 이상한 동향이 발견되면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이미 코리아반도에서는 정전상태가 다시 <전쟁상태>로 돌입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들은 국가보안법에 걸려 적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심지어 투옥 감금되고 있다.

 

이제 자주.민주.통일세력들은 조용히 전력을 가다듬고 사상사업을 앞세워 운동원들과 민중들을 깨우쳐 다시 자주.민주.통일운동을 재부활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다음 대선에서는 반드시 민주정부를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투표권밖에 없다. 그런데 그 투표권을 잘못 행사했을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신 유신정권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신 유신정권은 수십 년 동안 민중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자주.민주.통일 업적을 단시일 내에 모두 망쳐놓았다. 이제 이남 민중들은 깨어 일어나 자주.민주.통일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운동은 사상사업을 앞세워 운동원들과 민중을 깨우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객관세계를 잘 반영한 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높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객관적 여건이 좋아지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목적 의식적으로 변혁의 주체를 강화해야만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가 있다고 본다. 결국, 사회변혁은 깨어난 사람들, 민중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번 6월에 이북을 방문하여 주체사상 학자들과 나눈 <의식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대화의 요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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