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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간중심의 주체사회주의가 대안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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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4-05-11 17:4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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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의 주체사회주의가 대안이다 

                   

[새연재] 자본주의 사회의 성격 (1)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식민지 이남 사회에서 천민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람이 아니라 돈, 자본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이번 참사로 우리 모두 잘 알게 되었다. 이남 사회는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주의에 빠져버렸다. 돈, 자본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남 사회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돈, 자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구조작업에 돈, 자본 문제가 개입되었다니 어찌 이러한 사회에서 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이러한  세월호 사고가 사람 중심의 주체사회주의 사회인 이북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아마 이북에서는 이러한 세월호 참사가 났다면 모든 국사를 중단하고 최고지도자가 현장에 내려가 총지휘를 하면서 국가의 모든 구조기구를 총동원하고 모든 최고의 잠수사들과 군인들을 포함한 유능한 인재들을 총동원하여 배에 갇힌 사람들부터 구조했을 것이다.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수억만 달러가 들어가도 거기에 개의치 않고 사람들부터 구조했을 것이다. 이북에서는 과거에 홍수가 났을 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헬기를 띄웠으며 외딴 지역에 사는 위급한 환자를 구하기 위하여 헬기를 띄웠던 일이 자주 있었다. 화상을 입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담당 의사를 비롯하여 간호사들이 줄을 서서 자신들의 살을 떼어 주겠다고 아우성치는 사회가 사람 중심의 이북 사회이다. 2 쌍둥이나 3 쌍둥이를 밴 먼 산골이나 어촌의 산모들을 일찍부터 평양산원에 불러 무료로 입원시켜 돌보아 주며 순산할 수 있도록 온갖 조처를 해주는 사회가 사람 중심의 이북 주체사회주의 사회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남 사회의 부분적인 현상적 처방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어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이남 사회가 안고 있는 돈, 자본중심의 천민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로부터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돈, 자본이 중심인 자본주의 사회란 과연 어떤 사회이며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운 사회주의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서로 비교해 가면서 그 차이점들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돈, 자본 중심의 이남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다 싶이 우리 조국 코리아 반도는 지역적으로 둘로 갈라져 있을 뿐 아니라 체제도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둘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남과 북의 사회를 올바로 알려면 서로 다른 두 체제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선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알아보자. 

 

자본주의 사회는 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으로 봉건주의 사회가 멸망함으로써 발생하였다. 역사상의 모든 착취사회와 구별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그것이 인류의 가장 마지막 착취 사회로서 중세기의 종교적 및 정치적 환상에 의하여 은폐되고 있던 착취와 억압을 공개적이고 직접적이고 잔인한 착취와 억압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의 가치>로 전환한 약육강식의 사회라는 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주권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들이 근로 민중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 생산수단을 소유한 착취계급인 자본가들은 온갖 권리와 자유, 향락을 다 누리게 되지만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 민중은 착취와 억압을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자본가가 국내 민중들만이 아니라 해외 침략의 길에 나서 다른 약소국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 나라 민중들을 비인간적으로 탄압하고 가혹하게 착취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러한 모순과 불합리는 현대 제국주의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을 띠고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며 더욱 첨예화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사이의 빈부의 차이가 날로 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이며 극소수 자본가들에게는 살만한 세상이지만 광범한 근로 민중에게는 살기 힘든 사회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선 자본가들이 자기들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비인간적인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물질생활을 기형화해 나가고 있으며 근로 민중들의 사상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자본주의 착취제도에 순종시키기 위하여 반민중적인 사상과 문화 예술, 등을, 퍼뜨리어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빈궁화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계급은 저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을 회유, 기만하고 매수하는 교활한 책동에 매달리는 한편 모든 통치기구를 폭압적으로 만들고 침략과 전쟁정책을 더욱 강화하며 정치생활을 반동화하고   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생활에서의 불평등, 물질생활은 높아지는데 정신문화 생활은 빈궁해지는 데서 오는 불균형, 민중의 장성하는 자주적 요구와 악화하여 가는 정치생활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이 날로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오늘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나라들은 대외적으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신식민주의적 착취와 약탈로 하여 발전도상 나라들의 경제가 침체상태에 이르고 구매력과 지급능력이 약화하였으며 이에 따라 제국주의자들의 시장이 축소되어 국내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자들이 주로는 서로 결탁하고 협력하는 관계에 있지만, 점차 모순과 대립관계도 더욱 격화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번영하는 것 같지만, 위에 지적한 대내외적 모순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변혁의 대중적 지반도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전체 민중과 함께 생산수단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에게 고용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적 착취와 압박에 불만을 품고 자주성을 지향하고 있다.

 

자주성에 대한 민중의 지향은 결코 억누를 수 없으며 그것은 결국 사회주의의  길로 나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움직일 수 없는 법칙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며 개인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인주의 사회이다. 개인주의는 사적 소유가 발생하고 사회가 적대 되는 계급들로 갈라진 첫 계급사회인 노예제 사회에서 생겨났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더욱더 지배적인 사상으로 되었다. 착취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부익부, 빈익빈>을 낳고 사람들 사이에 대립관계를 가져온다.

 

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과 일치하며 집단주의가 사회생활의 기초로 된다. 착취제도가 청산되고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면 개인주의 발생의 사회 계급적 및 물질 경제적 근원은 없어 지지만 개인주의는 낡은 사상 잔재로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정한 기간 남아 있게 된다.

 

개인주의는 개인 이기주의, 출세주의, 영웅주의, 자유방임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주의는 조직과 집단의 이익, 나라와 민중의 이익은 어떻게 되는지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조직을 배반하고 집단을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민중들이 창조한 재부로 개인의 잇속을 채우며 사회와 집단의 변혁성과 조직성, 규율성을 약화한다. 개인주의는 뿌리 깊은 착취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침습하는 자본주의 사상이 발붙일 수 있는 온상으로 된다. 개인주의를 철저히 극복하기 위하여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모든 근로 민중들을 집단주의 정신으로 교양하는 것이다.

 

사람은 개인적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생명과 집단의 생명 가운데서 어느 것을 더 귀중히 여기는 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개인의 생명을 인간의 육체와만 결부시켜 보았으며 그보다 더 귀중한 집단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계급사회에 들어서면서 착취계급들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였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 자유와 평등, 인권옹호의 구호 밑에 이 관점을 더욱 정당화하였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은 개인만을 생명의 담당자로 보는 것만큼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그에 고유한 생명으로, 가장 귀중한 생명으로 여긴다. 여기로부터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일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관점이 나온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은 인간의 육체가 죽으면 생명이 없어지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육체가 살아 있는 기간 일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면 사회정치적 집단의 한 성원으로서 지니게 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며 개인의 육체적 생명을 보존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서만 삶의 보람을 찾게 된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은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의 인생관의 하나로 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자유, 평등의 원리가 지배하며 각자는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주의가 범람하고 악이 판을 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의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며 전체 민중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그것을 더욱 빛내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여 <개인주의적 인생관>이 생겨난다. 개인주의적 인생관은 개인의 생명, 개인의 이익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관점과 태도로서 집단주의적 인생관과 대립한다. 개인주의적 인생관에서는 삶의 본질이 사회 공동의 이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성공과 출세, 부귀와 향락에 있다고 본다. 착취계급의 대변자들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쾌락, 탐욕과 이기적 요구의 충족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적 생명을 사람의 유일한 생명으로 보는 생물학 주의적인 자본주의적 인생관은 돈, 자본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규정하고 개인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한다.

 

착취제도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낳는 사회적 기초로 된다. 사회주의 사회에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이 나올 수 있는 사회 계급적 근원은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낡은 사상잔재로 존재하므로 그것이 새로 발생할 수 있다. 사회와 집단도 모르고 자기 개인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하게 되면 사람들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에 맞는 존엄 있는 생활을 할 수 없다.

 

사람을 순수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존재로 만드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버리고 집단을 위한 생활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집단주의적 인생관을 확립하여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영예를 빛낼 수 있으며 보람찬 삶을 누릴 수 있다.

 

인류역사는 착취사회가 종말을 고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 제국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를 미화하고 그 반동성을 은폐하려고 시도하여도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한다.

 

현시기 자본주의 멸망의 불가피성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은 제국주의자들과 그 사상적 대변자들이 자본주의의 물질적 번영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주장하고 있는 조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 오늘날 내가 사는 미국 같은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더욱더 많은 생산공정이 정보기술에 의한 능률적인 생산공정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에 따라 물질적 부의 생산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마치도 사회발전의 수준이 물질적 부의 생산수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물질적으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사회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과거의 동구와 소련의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물질적 번영에 현혹되어 자본주의를 환상적으로 대하면서 자본주의의 물질생활을 동경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들이 자본주의를 환상적으로 대한 까닭에 근로 민중이 투쟁하여 어렵게 쟁취한 귀중한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복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국주의자들과 반 사회주의자들은 오늘 이북의 주체사회주의를 압살하기 위하여 이북 내부에 자본주의 사상과 생활양식을 불어넣어 이북을 사상 문화적으로 와해시키고 주체사회주의 제도를 붕괴시키려고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패성을 똑똑히 알고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하고 근로 민중들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과감히 벌려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멸망하게 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생활과 정치사상 생활, 문화 도덕적 생활의 불평등과 불균형이 강화됨에 따라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하는 민중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모순이 더욱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면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할 뿐 아니라 풍부한 정신생활을 누리며 정신 문화적으로도 발전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사회의 평등한 주인으로서 서로 결합하여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요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정보산업이 발전하여도 건전하고 평등한 물질생활을 누리며 평등하게 잘 살려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실현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정보기술을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자본가들이 정보기술을 경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탐욕으로부터 출발한다. 제국주의자들은 정보기술을 다른 나라들에 대한 지배와 약탈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보산업의 발전은 빈부의 차이와 실업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치의 병을 해결할 수 없으며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는 과정은 물질생활에서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는 과정이다. 물질생활에서 불평등과 기형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평등하게 잘 살려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억제되고 계급적 모순과 대립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산업이 발전한다고 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모순과 대립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보산업이 아무리 발전되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등하게 잘 살려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실현될 수 없으므로 자주성을 위한 민중의 투쟁이 계속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또한 정치사상 생활이 더욱 반동화하기 때문에 사회의 평등한 주인으로서 서로 결합하여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하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실현되지 못한다. 자본가들은 근로 민중의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 것이 저들의 정치적 지배권을 위태롭게 하므로 근로 민중들의 정치생활 발전을 적극 억제하려고 한다. 자본가 계급은 날로 위태롭게 되어가는 저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을 회유 기만하고 매수하는 교활한 정책에 매달리는 한편 반민중적 통치기구를 더욱 교묘하게 발전시키고 침략과 전쟁책동을 더욱 강화하는 길로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남 사회에서 잘 보여주듯 돈과 물질의 노예로 되어가고 있으며 정치적 생명을 억압당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문화도덕 생활이 더욱더 빈궁화하기 때문에 정신 문화적으로 발전할 것을 요구하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사람들이 부패한 물질생활과 돈의 노예로 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신문화 생활을 풍부히 하는 데는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가들은 근로자들의 정신 문화적 발전을 저해하기 위하여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자본가들은 근로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자본주의적 착취제도에 순종시키기 위하여 반동적이며 반민중적인 사상과 문화,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을 여러 방법으로 퍼뜨리고 있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각종 반동사상과 미신이 유포되어 마약과 같이 사람들의 건전한 정신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몽매하게 만들고 있으며 약육강식의 생활양식이 조장되어 살인, 강도, 어린이 유괴, 성범죄와 같은 사회악이 판을 치고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문화 도덕적 생활이 더욱더 빈궁화하고 있으며 정신 문화적으로 발전하려는 민중의 요구는 더욱 억제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생활의 기형화와 정치사상 생활의 반동화, 문화도덕 생활의 빈궁화가 심화하는 데 따라 자주적으로 살려는 민중의 요구는 더욱 억제되고 민중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모순이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는 파멸의 길로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아무리 모순이 극대화되더라도 스스로 멸망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오직 근로 민중의 변혁투쟁에 의해서만 멸망할 수 있다. 오늘 자본주의 나라들에는 자본주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주체적 역량도 마련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 법칙의 작용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 매장자인 산업노동 계급의 대열이 더욱 장성하고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더욱더 성숙하여 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더욱더 많은 생산공정이 정보기술에 의한 능률적인 생산공정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정신노동, 기술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대열이 빨리 늘어나고 있다. 지능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자본주의 제도에 대하여 반감을 품으며 돈,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주적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곧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공산당, 노동당들의 사회 계급적 지반이 약화하고 혁명에 불리한 조건이 조성된 것이 아니라 혁명의 동력구성이 오히려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코, 맑스주의 변혁이론에서처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무산자인  노동계급만이 변혁의 동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노동계급뿐 아니라  지식인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을 변혁의 주체로 규정하고 주체의 역할을 높이는 것을 변혁승리의 기본요인으로 본 주체의 변혁이론이 가장 정당하고 현실적인 변혁이론이라고 이북의 주체사상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도 자주적으로 살려는 근로 민중의 요구가 억제됨으로써 민중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변혁적 당이 광범한 근로 민중을 사상적으로 교양하고 각성시키며 조직적으로 결속하여 변혁의 주체를 튼튼히 준비시킨다면 반드시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고 민중의 자주적 요구가 실현되는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체사상가들은 보고 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5-12 11:37:1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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