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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 박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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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4-04-24 13:0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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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업자

NK투데이는 4월 6일 세계적인 인공고관절 전문의이자 통일운동가인 오인동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인동 박사는 90년대부터 매년 북한을 방문하면서 생생한 북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많은 관계로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1부. 남북관계, 통일관련 부분


1. 선생님께서는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남북연합방 통일을 주장하셨는데 기존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나, 고려연방제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통일방안하면 북쪽에서 남쪽에 먼저 제안했잖습니까? 그 당시에는 북에서 아무래도 경제적 상황이 좋아서 고려연방제라는 것을 먼저 얘기했죠. 민족도 하나 국가도 하나, 1민족 1국가인데 대신 지방 자치정부를 두고 내치권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 소위 말해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라고요. 그러다가 남녘에서 보통 얘기하는 완전통일은 후대에 맡기자 이런 것이었고. 


그러다가 남녘에서 경제사정도 좋아지고 또 이런 제안에 대해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소위 민족공동체방안인데 그게 소위 3단계 방안이잖아요. 첫 번째 단계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 교류하고 협력하고 이런 기간을 갖자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라가 둘이다, 북에는 하나라고 그러는데, 두 국가. 체제도 다르니깐 두 체제. 정부도 똑같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그대로 유지해가면서 그 다음 단계, 소위 3단계에 가서 1국가 1정부의 통일국가를 하자 이렇게 되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소위 고리(Corea)공화국 통일방안이라는 것 또는 코레아 통일방안이라는 것은 이렇게 신뢰를 쌓기 위해서 교류, 협력, 왕래하는 기간을 제도화하자.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교류, 협력, 왕래해 왔는데 제도화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무슨 단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안 들어가기도 하는 거야. 그래서 그러지 말고 그걸 제도화하자. 제도화 하는데 대신 북에서는 연방을 주장하고 용어상으로 남에서는 연합을 주장하는데 실제적으로 소위 남에서 말하는 연합제와 북에서 말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는 것이 6.15 선언이라고요. 사실 같은 얘기에요. 


연합방단계는 물론 두 나라 두 정부가 자치권, 외교권을 가지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경제공동체 같은 것을 운영하고 남북평화체제를 다듬어가다가 그 다음 단계에 가서는 소위 말해서 연방단계인데, 연방단계에서는 외교와 군사권을 하나로 하고 자치권, 지역정부 따로 하자는 이것이죠. 그렇게 가다가 통일헌장을 만들어서 고리공화국, 완전한 통일로 가자는 얘기죠. 


그래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은 한 번에 해놓고 후대에 맡기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합리적이지 못하고. 또 남녘에서 만든 것은 1단계라는 것이 제도화되지 않아서 도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줬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다 뒤집어졌잖아요. 그런데 그걸 또 해가지고서는 시간만 지나가기 때문에 저는 연합방을 제안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연합만 주장하고 북쪽에서는 연방만 주장하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요. 북에서도 말은 연방이라고 했지만 소위 용어상으로 영어로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 그러니깐 국제적으로 연합이라는 개념을 썼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쓴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연합방>에서 북의 관료하나가 나한테 자기네가 왜 연방인데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을 써서 연합처럼 표현했는지 설명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근데 그걸 여기에서 그렇게까지 얘기할 거 없고. 이렇게 남과 북의 통일방안이 차이가 있고 제가 절충해서 만들어 낸 것이 소위 고리공화국 통일방안이 된 것이죠.


2. 남북연합방을 통해 1인당 소득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최근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하는 <통일대박론>과 비교해보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5~6년 동안 남녘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이 식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늘 생각하는 게 뭐냐면 경제문제가 마음속에 들어있고 누구든지 잘 먹고, 잘 놀고, 편히 일하는 세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통일의 단계에 들어가면 그러한 경제발전을 이룩해서 민생, 복지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쓴 말은 경제 대박이었지 통일대박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경제공동체를 운영을 해서 10년 정도 하면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2배정도 된다는 것, 국내총생산량도 1조 달러 정도 되는데, 그것이 2배 이상 된다는 것, 그래서 연합방이 트여서 10년 정도 하면 북의 1인당 소득도 남의 반 정도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국내총생산량도 그렇고. 그렇게만 된다면 남과 북이 통일은 안했지만, 연합방 체제 내에서도 경제적으로도 세계 5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액수라고요. 왜냐하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보다 우리가 높아요.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통일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굉장히 뜨거웠는데, 바깥세상에서는 반응이 굉장히 차가웠습니다. 우리가 전파를 잘 못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데 대통령이 어떻게 하다가 제 이야기를 들었는지, 다른 데서 들었는지 통일대박이라는 것을 끌고 나오니까, 남녘의 대통령제라는 게 제왕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통일담론으로 갑자기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통일대박 그러니까 그것이 흡수통일이냐,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일으켜 줬다는 데 대해서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에요. 그래서 그 분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믿고 싶기는 아주 좋은 의도에서 했다고 보고 싶고, 우리가 그쪽으로 가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고 방법도 제시하면 돼. 


그런데 이번에 말한 통일대박론에서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앞으로 나오게 될지 모르지만 이럴 때 제가 주장해온 연합방 경제공동체 청사진을 따르면 민족사 최고 경제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 그에 대한 확신이 서면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연합방 평화체제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의도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의도가 혹시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통일의 길을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가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지 않아가지고는 전 정부처럼 다시 실패한 정부가 될 거에요. 우리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고 그렇게 되도록 시민이나 국민들에게 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겠죠.


3. Korea-2000를 결성하고 통일정책건의서를 남·북 통일 정책 관계자들에게 제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Korea-2000에서 제출한 통일정책건의서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며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지금이 벌써 2014년 아닙니까? Korea-2000을 결성했을 때는 1997년이라고요. 1997년은 북으로 말하면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3년상을 치르고, 김정일 총비서가 추대되었던 해고, 남에서는 그 가을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김대중 총재가 후보로 나왔을 때였어요. 이제는 통일의 여명이 밝을 것 같다는 희망, 통일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Korea-2000이라는 재미동포 통일연구회를 만들어서 남북 두 지도자에게 드리는 통일정책건의서라는 것을 작성했어요. 수개월동안 구체적으로 토의하고 결론을 냈는데, 자세한 내용은 2010년 출간한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밖에서 본 한반도>라는 책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요새 같지 않지요. 통일을 상상도 못해보고 남북공동선언도 상상을 못하던 때라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떠한 통일 전제조건을 가지고 어떠한 원칙 하에서 또는 서로가 어떠한 자세에서 남북이 대화해야 한다, 대화하려면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져야 되고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이러이러한 일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자세하게 쓴 것이 통일정책건의사입니다. 


12월 말이 되어서 남녘에서는 김대중 야당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래서 서울로 1월에 와서 임동원 아태총장에게 전하고 또 북으로 가는 정책건의서도 한 부 드리고, 그 다음날 북으로 가서 김정일 총비서에게 이걸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임 총장 만나서 이틀 동안 자세히 설명하고 이 정부가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설명도 했습니다. 


북에 가서는 당시 대남 사업담당 김용순 비서를 만났으면 한다고 요구를 해 놓고 갔더니 최승철이라는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이 나왔는데, 나중에 6.15대회에 북녘대표로 나왔던 분이에요. 그 사람에게 정책건의서를 전했습니다. 북에 줬던 것은 좀 달랐어요. 남에 준 것도 북에 전했고, 비밀이 하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김용순 비서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김용순 비서에게 정책건의서를 올릴 테니 걱정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 박동근 교수와 논의도 하고 토의도 하고 남북통일의 근본 문제에 대한 논문집을 드리고 고려호텔에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면서 이야기했던 적도 있어요. 그리고 돌아왔죠. 


그래서 그것이 성과가 있었냐? 임동원 총장님도 동감하시면서 이걸 참고로 해서 저희들 생각도 함께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물론 당시에 저희들이 해서 6.15가 생긴 것은 아니죠. 다 그런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의 제안도 하나의 참고가 되었죠. 하지만 6.15의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죠. 우리가 제의가 많이 수용돼서 6.15가 나왔다. 우리가 제기하는 대로 이후 정부도 계속 했다면 지금은 통일이 됐겠죠.


4. 선생님께서는 남·북·미의 정부 관료들을 다 만나보셨을 텐데 선생님 의견을 얼마나 수용하던가요? 남·북·미 정부 관료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북쪽에 가면 원래 집체주의고 위계가 서 있는데 관료들을 만나면 직책이 높을수록 대단히 겸손합니다. 해외동포를 대하는 자세 때문에, 통일을 생각하고 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게다가 내가 무슨 사회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니고 무슨 관료는 물론 아니고 저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열심히 들어요. 그리고 자기네 주장을 이야기 한 적이 별로 없어요. 대화를 내가 주도하는 편이고, 자기네들은 치열하게 단계별로 토론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발 김정일 총비서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했더니,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한다고 그러지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제가 만난 관료들은 6.15민족공동위원회 안경호 북측위원장, 이창덕 위원장, 양철식 위원장 같은 사람입니다. 


남쪽에서도 통일 지향하는 사람들은 진보성향 사람이고 이야기가 잘 됩니다. 내 딴에는 제3자다, 재외동포다 그리고 남과 북에게 이쪽 자세도 이야기하고 저쪽 자세도 이야기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 겨레가 이렇게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아주 마음껏 이야기해요. 꺼릴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미국인데 미국이야말로 우리나라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입니다. 미-소가 분단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가운데 틀어 앉아 모든 것을 영위하는 것은 미국사람이죠. 


미국 관료들, 말하자면 예컨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웬디 셔먼이라고 페리 프로세서 대사 노릇을 하던 여자분은 만나 뵌 분들이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만나 뵙지 못하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한 번 전달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희망을 가지고 미국이 해야 할 한반도 정책, “미국은 이런 나라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전했는데, 전하기 전에 면담을 요청했어요, 아주 공식적으로. 그러나 그 면담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답신을 받아봤어요. 특히 오바마 대통령에게 받아 본 답신은 예의적인 것이죠.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해야 것을 알려줘서 고맙다, 이야말로 미국이 계속 노력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런 식의 예의적인 편지에요. 


그런 것 때문에 상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한반도 전문가도 많이 만나보고 직접 면담하고 자유롭게 1시간씩, 2시간씩 이야기해 보고 국무부에도 찾아가서 6자회담 대사라든지 로버트 킹 인권대사, 그 당시 6자회담 대사는 성김, 지금 주한미대사인데 그런 분하고 다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뭐 국회의사당에서 지금 국무장관하는 존 케리가 상원 외교위원장일 때 그 사람 주선으로다 한반도 평화체제 토론을 사회도 해 봤어요. 한사람은 공화당 한반도 전문위원, 한사람은 민주당 한반도 전문위원을 놓고. 


그런데 결국 달라지는 것이 없어요. 물론 제 노력이 부족하고, 우리 6.15위원들이 같이 노력하고 그랬는데. 뭐 아닌 게 아니라 마틴 루터 킹처럼 링컨 메모리얼에 10만 정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론이 바뀌겠죠. 그러다보니깐 “이래가지고 될 일인가?” 해서 결국 남북이 해결해야 일이 아닌가, 우리가 풀어야 될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인동 박사 인터뷰 2부. 북한 의료 현황 관련

낭만업자

2부. 북한 의료 현황 관련



1. 북한 의료 수준이 많이 열악하다고 하셨는데 다년간에 걸쳐 방북하시면서 변화를 발견하셨나요?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의료부문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남녘기준이나 미국 기준으로 대비해서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려워요. 우선 의료는 완전 무상의료입니다. 해서 보험이라는 개념도 없고, 국가가 보험이기 때문에 누구나 공정하게 혜택을 받고 있고 예방의학을 몹시 중요시해요. 의료계 인사들이 가정 방문을 할 정도로 예방의학을 중점으로 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리고 제가 의료계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제 전공분야만 봐서 좀 어렵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또 남녘이 그 전에 어려웠던 시기에 했던 대로 기재나 도구나 이런 것에서 경제문제 때문에 굉장히 열악한 것이 사실이죠. 


수술도구 같은 것을 어떤 때는 한꺼번에 모아서 소독합니다. 수술을 하루에 여러 차례 하려면 수술 도구를 매번 소독해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수술이 지연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일반 약품이나 이런 것은 마찬가지로 힘들고 적고. 그래서 인도적인 면에서 무엇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필요한 나라거든요.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다니면서 보니깐 달라지는 게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어요. 경제가 그만큼 괜찮아 가고 있고. 


1992년 처음 북을 방문했을 때 제가 고안한 인공 고관절기와 수술방법을 다 전해줬어요. 그 당시에는 북에서 그런 걸 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2006년 서울에서 6.15대회가 있었을 때 최창식 보건상이 내려와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가 선생님이 92년 오셨고 우리가 고난의 행군시절을 지났기 때문에 도무지 선생님이 가져다주신 인공 관절기를 가지고 뭘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2002년 들어와서 우리대로에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실패했습니다.” 


인공관절기가 상당히 특수한 플라스틱 제품을 써야 해요. 경제 제재가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그런 품목을 수입하기가 힘들고 아마 좋지 못한 기재를 썼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같이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다 보니깐 그 분이 아쉬운 이야기를 해서 “당신 나 언제 초청 해 봤냐”고 했다가 나중에 마음에 걸려서 그 다음부터 실제로 인공 관절기 갖다 주고, 수술하면서 전수했습니다. 


보니까 그 사람들도 우리가 미국에서 공부한 것처럼 똑같이 전부 동유럽 가서 독일이나 헝가리나, 체코 이런대 가서 수련을 받고 왔어요. 근래는 중국에 가서 받고, 그래서 지식은 있어요, 자료나 물자가 따르지 못해서 결국은 바깥세상에서 받고 있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죠. 그야 세계 어느 나라나 그렇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남녘자체도 그런 시절을 지내오고. 


하지만 전기사정도 좋아지고 수술방 기재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날이 달라지는 것 같고,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인공 관절기 하나가 5~6천 달러씩 해요. 그걸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체 제작을 하려는 걸 도와줘서 시제품을 만들었어요. 인공 고관절과 무릎관절. 이제 자기들이 생산한 걸로 쓰기 시작하는데 굉장히 제한되어 있어요. 왜 그러냐면 사람마다 크기가 다양해야 하는데 그 크기를 다 만들 수 없으니깐 예컨대 소, 중, 대 이런 식으로 만들거든요. 미국도 70년대 똑같이 그랬어요. 그러다가 요새는 mm단위로 만들지요. 다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2. 북한 의약품이 많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의약품 생산과 보급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의약품, 특히 약품은 굉장히 필요하죠. 항생제, 비타민제, 여러 가지 특수한 약들 그런 것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많이 지원해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고 보람된 일이죠. 특히 결핵문제 있잖습니까? 미국사람들이 도와주는 것보다는 남녘동포 사회에서 일어나야죠.


3. 선생님 책을 보면 북한 의사들과 인공고관절수술을 함께 집도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북한 의료인들의 실력이나 열정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앞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분들이 인공관절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재작년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다. 핵도 있고 첨단과학 기술이 있는데 못할게 어디있냐. 기계 깎는 CNC 기술도 세계적인데, 인공관절을 잘 만들어보자.” 


그 이야기를 왜 하냐면 남녘에서도 그렇게 과학이 발전되고 풍부하고 그런데 인공관절기 생산을 못해요.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시장경제의 원칙에 의해서 만들어 파는데 타산이 안 맞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들 남과 합작을 해서 열심히 연구해서 교류협력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자료를 합해서 인공관절기를 잘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하면 남쪽에서도 쓰고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전체에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당연히 가격경쟁면에서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것까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우리가 경제공동체만 운영해도 좋은 일이 많을 꺼에요 가슴이 벅차지요.

오인동 박사 인터뷰 3부. 북한 사회와 문화 관련

낭만업자

3부. 북한 사회와 문화 관련



1. 가장 최근 방북은 2013년 9월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 숙소나 식당, 편의시설들을 이용하셨을 텐데 자세히 묘사해주시기 바랍니다.


북에는 보통 가을에 가요. 수술할 조건도 그때가 좋고 여름이나 추울 때는 전력문제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분들은 어려운 시절에 오셔서 일하는 것보다는 편할 때 와서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근데 저는 거기 가면 늘 평양의학대학 병원 바로 앞에 있는 고려호텔로 숙소로 정합니다. 외과의사들은 아침을 잘 안 먹어요. 우유한잔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수술하고, 수술하고 나면 가운 입은 채로 냉면이나 국수, 오리고기 좋아한다고 하니 어디서 오리고기를 구해 왔는데 그래서 그냥 수술방 옆에 있는 진료실에서 같이 먹고 했습니다. 발가벗고 어깨 비비면서 먹는 셈이죠.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어디서 편의시설을 이용할 틈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많이 봤다는 아리랑도 보지 못했고, 제가 수술 이외 시간이 있다면 북에 다행히도 학자들이나 제가 역사학으로 꼬레아 같은 연구도 했고,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에 대한 연구를 토론한다든지 6.15위원회나 통일 관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해서 저녁때는 그런 일을 많이 합니다. 


관광 같은 것은 92년 좋은 시절에 갔을 때 금강산도 가보고 묘향산도 가보고 북이 여유가 있어서 전부 공짜로 대접을 받았죠. 지금은 순전히 제 돈 들이고 가서 호텔비, 숙식비, 병원에서 진찰하면 어디 갈일도 없고, 초대소에서 그분들이 초대해서 식사하면서 토론하고. 


요새 거기 편의시설 많아요. 어지러울 정도로 해놨는데 사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일반 생활을 깊이 알아보려고 애 쓰는 신은미, 정태일 선생님한테 들어보면 될 거에요. 


2. 5.1경기장, 금수산태양궁전, 평양 지하철, 인민대학습당 등 북한의 대표적인 건축물에 대한 소개도 보았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건축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토지 활용도 경제성을 따져서 살림집 아파트를 짓는다 해도 전부다 성냥갑식 아파트 아닙니까? 근데 거기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서 전부 토지가 국유기 때문에 건축물 하는데도 건축미학적으로 참 아름다워요. 꼭 그렇게 네모난 집뿐 아니라 원형도 타원도 있고 층계식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외관상으로 굉장히 아름다움이 있고, 길도 무척 넓고 완전한 도시 계획에 따라서 마음대로. 다시 말하자면 건축 면에 여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별히 기념비적 건축물이 많잖습니까? 예컨대 인민대학습당 같은 것은 지붕의 곡선과 기와 이런 걸 우리나라 건축미를 살려가지고 했는데 동양 최대의 건축물이에요. 그리고 그 앞에 김일성 광장이라고 있잖습니까? 근데 외국에 돌아다녀보면 광장이라는 개념이 유럽의 개념인데 왕실이나 기관 앞에 있는데 북은 도시 중앙에 인민들의 배움의 집이 있다는 것도 좋은 특이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필요상 그랬겠지만 극장문화가 상당히 발달해서 참 아름다워요. 대부분 초현대식 건물보다는 근대적인 회색의 석조건물이 많고. 그리고 그 외에 탑도 많고 주체사상탑이니 개선문이니 많잖습니까? 김일성 생가라든지, 금수산태양궁전 같은 것 해 놓은 것 보면 지나칠 정도로 해 놨다고 하는데 그 쪽 체제상 그렇게 하는데 우리가 뭐랄 수 없고 가서 보고 즐겁고 여유 있고 그런 점에서 좋았다고 봅니다.


3. 북한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지요?


가고 싶은 곳 많죠. 가보니깐 우리 의사선생님들이 묘향산이나 한번 가자고 하더라고요. 아니 바빠 죽겠는데 기름도 없는데 우리가 왜 묘향산 가냐고. 그래서 룡악산이라고 가까운데 가자해서 갔는데 안내원한테 욕먹었어요. 선생님들 덕에 묘향산에 갈 보려는데 못 가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 에피소드도 있고. 마전 같은데 그렇게 좋다고 그래요. 동해안 해수욕이라고 하는데, 칠보산도 가보고 싶고. 그리고 주민들이 사는 인근에 있는 산에는 나무가 없지만 심산에는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언제고 가 볼 날을 고대해 봅니다. 


4. 조선혁명박물관에서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는 기록영화를 보면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진심을 느꼈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아코디언의 기막힌 연주를 보면서도 질리게 되었다가도 자신의 선입견을 돌아보기도 했다고 하셨는데요. 북한의 집단주의 문화와 서구사회의 자유주의 문화는 어떻게 다르다고 보십니까?


다르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이것이 북의 모토에요. 들어보면 그런 사회에서는 적절한 것이고 단시일 내에 뭔가 이루고자 하면 이룰 수 있겠더라고요. 


98년이니깐 김일성 주석 돌아가시고 나서 4년 후인데 그걸 보여주는 안내원이 없어져서 이상하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래서 저게 정말 자발적인가? 지금 4년이 지나는데 왜 저러고 있나. 또 그것과 연계해보면 김정일 총비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난 후에 장례식 길에 미끌어질까봐 옷을 벗어서 길에 깔아주고 그냥 울부짖는 것을 보면 우리 상식으로 이해 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렇게 통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이해 못하겠으면 이해하려는 쪽으로 해야 하는데,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이 그저 부정을 해가지고서 419혁명으로 쫓겨나서 미국으로다 도망을 가는데 그 앞에 나와서 우는 사람은 누구며, 박정희 유신 정권이 부하한테 사살당하고 했을 때도 무슨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건설 이런 것 때문에 감격하고 슬퍼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말이에요. 사실 유교사회인 우리 남과 북에서 말이에요. 


그런 점으로 보면 그쪽 형태가 우리 남녘과 다르지만 그걸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거기야말로 집단주의이기 때문에 남녘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그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고 지내고 개도되어 왔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는 충분히 심신에서 우러난다고 본다고요. 


거기에서는 김정일 장군이라고 하지요. “장군은 무슨 장군이요 군인도 아닌데” 했는데 하나의 명칭 아닙니까? 그가 쪽잠을 자면서 주먹밥을 먹으면서 전국을 순회하고 인민들과 같이 한다고 하면서도 강성대국을 위해서 핵미사일까지도 완성해 놓고 돌아가신 분이라고 숭상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절절히 눈물 흘리는 것을 저건 완전히 미쳤다고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통일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 고난의 행군을 해오면서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면서 가자라고 허리띠 조이고 여기까지 올라 온 것 아니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걸 부정하는 건 잘못이다고 반성을 했습니다. 


또 예술단들 만경대나 이런데 애들이 너무나 앙징스럽고 귀여운데 어떻게 그렇게 훈련이 잘 되었는지 기계적으로 잘 해서 처음에는 아니 애가 실수도 하고 삐딱하게 좋은데, 오히려 내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지 아느냐? 김연아가 그 죽을 고생을 하면서 시합하는데 걔는 삐딱해야 잘 하는 거냐 말이야. 그러니 보니깐 신은미 씨 이야기가 리틀엔젤스 하면서 매를 맞아가면서 얼마나 했는지 아느냐 말이야. 그래서 리틀엔젤스 명성이 올라갔고. 그래서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아~ 그렇지, 사람이란 생각하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안내원한테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얘기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특히 아리랑 같은 거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혹사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혹사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은 커다란 값어치로 보고 덕목으로 보고 헌신적으로 세계에서 한번 있을 수 없는 예술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그것으로 평가해줘야죠. 그리고 시절이 달라지고 해서 그렇게 안 해도 다른 방법으로 예술성을 표출한다든지 그런 시대가 오면 또 그건 그런대로 괜찮아요. 


그래서 남녘이든 북녘이든 항상 잘 됐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에 그 나라에 맞는 행동을 두고 바깥 사람이 너무 삐뚤어진 시각이라든지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본 것 자체가 분단 국가에서 좋지 않다는 거, 이런 이야길 하고 싶죠. 아프리카나 어디 다른 나라를 보는 눈과 달리 북이라면 너무나 적대적으로 보기에 더욱 이런 이야기 한다고요. 그러지 말고 역지사지의 정을 가지고 대해 보자고요.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느껴요. 그래서 “이야 한번 멋지게 살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 넓은 땅 거기에 남녘의 반 밖에 안 되는 인구가 사는 데 많은 사람들 거기에 가서 산다고 할지도 몰라요.


5. 올해도 방북 계획이 있는지요?


제가 봄하고 가을에 한 번씩 가거든요. 이제 봄에는 남녘에 와 있는데, 북녘에도 한 번 가야죠. 의사선생님, 환자들이 많이 기다려요. 이제는 아주 당연히 오는 걸로 생각합니다. 내가 잘났어보다는 수술을 해 줄 수 있으니깐. 그래서 날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처: NK투데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4-24 13:03:4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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