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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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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3-11-22 14: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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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나는 이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서 2, 전문대학에서 2년 선생을 하였다. 미국에 와서도 5년간 시카고 하이드 팤에서 공부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러 가지로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다.

 

내가 남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경험해 보면 학생들이 어느 중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느냐가 학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전문대학에서 가르쳐 보니 역시 어느 고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느냐가 학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집안 배경과 어떤 종교를 믿고 자랐느냐도 학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같은 결론이다. 나는 이남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기독교 신앙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사회과학적인 세계관을 형성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대학과 대학원을 6년간 이남에서 다녔지만 <사회주의><>자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이었기에 사회주의에 대한 책이나 이북에 대한 책을 들고 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도서관에서도 그러한 책을 본 일이 없었다. 지금 이남에 범람하고 있는 [자본론]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적인 책들은 그 당시 대부분 금서였다. 그 당시 어렴풋이 형성된 나의 세계관과 역사관이라는 것은 기독교적이었다.

 

이남의 역사교육이라는 것은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주로 역사적인 인물들과 연대, 그리고 부분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외워 시험을 보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한심한 교육이었다. 이남의 역사교육이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역사관>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나 어떤 사회과학적인 세계관과 역사관이 형성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반공을 국시로 삼는 이남의 유신통치하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 학생이 가지는 이북에 대한 지식이란 그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이북이란 상종해서는 안 될 악귀들의 집단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 나는 5년간 시카고대학이 있는 하이드 팤에 살면서 여러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특별히 시카고대학의 극동연구소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이남에서뿐 아니라 이북에서 출판된 책들과 잡지들, 그리고 소련과 동유럽에서 출판된 책들과 잡지들도 많이 있었다. 미국에서 출판되는 신문들과 잡지들도 있었다. 나는 미국의 엘에이에서 출판되는 <신한민보>, 뉴욕에서 출판되는 <해외 한민보>, 그리고 캐나다에서 출판되는 <뉴코리아 타임즈>, 등의 신문을 매주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이북에 관한 책들도 조금씩 읽었으나 그 당시 나의 안목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할 수 없었고 이북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읽어는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 나는 아직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해 이해할 만한 사회과학적인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9년 매코믹 신학대학원 3학년 졸업반 때 나는 15명의 신학대학원학생들(교수 1명 포함))과 함께 중동을 한 달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중동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성지(Holy Land)에 대한 관점이 전혀 다르게 변화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 나라들과의 관계,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관계,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연합세력들이 어떻게 시온주의자들(Zionists)과 결탁하여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인 아라팟을 만나 대화하면서 콧물, 눈물 다 흘리면서 감동을 하고는 중동의 근본문제가 바로 시온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 정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에서 여러 세미나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하고 이스라엘에 들어가 1주일 있는 동안 나는 성경에 나오는 소위 <성지>라는 곳을 방문할 마음을 접어버렸다. 단지 예수의 무덤과 그 위에 세워진 교회당들만을 보았다. 나는 주로 그곳 이슬람과 동양 정교 교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중동여행 세미나 한 달간을 보내고 돌아와 나에게 중동에서의 성지란 바로 유대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가운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 후 나는 남의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약탈하고, 고문하고, 탄압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정책이 결국 중동을 비롯한 온 세계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경험과 연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민족문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강제로 고향에서 쫓겨나 여기저기서 비참한 피난민 생활을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문제나 외세에 의해 분단된 후 60년 동안 1천만 이산가족들이 아직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한을 품고 사는 코리안들이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민족문제라는 것이 결국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정책의 문제였다. 결국, 남이나 북이나 직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는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나라와 민족을 해방하느냐 하는 민족해방 문제였다. 이때부터 나의 성지는 남북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이 되었다. 민족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기 위한 모든 활동이 나의 모든 학문의 초점, 신학의 초점, 연구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중동여행을 하고 돌아온 그해 1979년 신학교 졸업반 때마침 우루과이 신학자 서군도 신부가 하이드 팤을 방문하여 [신앙과 이념들](Faith and Ideologies)이라는 강좌를 가르쳤다. 나는 서군도 신부가 더듬더듬 대는 영어로 강의하는 위의 강좌를 들으면서 비로소 <사회주의>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남미의 <해방신학>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기독교 신앙과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당연히 자본주의 사상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믿어 왔는데 오히려 사회주의 사상이 기독교에 더 가깝다고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은 믿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현지의 기득권자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인 제국주의자들이 이들 깨어난 남미 기독교인들을 위험시하고 탄압하자 카밀로 토레스 신부를 비롯한 남미의 기독교인들이 게릴라가 되어 산속으로 들어가 투쟁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침략자들과 그 동조자들과의 투쟁 한가운데서 나온 신학이 바로 <해방신학>이었다. 나는 이러한 해방신학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극도로 진보화되었다. 나는 신학의 해방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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