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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인동 작성일13-09-13 17:3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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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에 강요된 핵과 미사일
<기고> 오인동, ‘나의 꿈 - 남북 연합방’ (3)
오인동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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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4  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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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 /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정형외과 의사

미국에서 인공관절 수술 전문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오인동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나의 꿈 - 남북 연합방’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번 연재에서 그는 경제 문제를 통일과 연계해서 자신의 구상을 펼치고 있다. 남북을 오가며 왕성한 필력을 구사하고 있는 그가 이번 연재에서 펼칠 ‘나의 꿈’은 무엇일까? 이 기고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5회에 걸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나의 꿈 - 남북 연합방’

(1) 남북 경제공동체 청사진
(2) 남북 함께 이루는 경제대박
(3) 우리 겨레에 강요된 핵미사일 
(4) 북미 아니고, 남북 평화체제 먼저
(5) 풍요 자유 평등 자주 통일조국

1953년 정전 뒤 1958년, 북은 중국군을 완전 철수시킨 반면 남에는 6만의 미군이 잔류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핵과 미사일 무기를 남녘에 배치했다. 대남 경제 우위에 선 북은 1960년 ‘북남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남은 응하지 않았다. 그 뒤 되풀이해서 외국군 철수와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1974년, 대북 경제 열세를 따라 잡은 남이 북에 유엔 동시가입과 불가침 협정을 제안했다. 이에 북은 유엔에 두 나라로 가입하는 것은 분단 영구화라며 거부했고. 군사 통수권이 없어 그간 평화협정 제안에 응하지 못한 남은 불가침협정 또한 보장할 수 없기에 대신 남의 군사실권을 행사하는 미국 의회에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미국도 응하지 않았다.

이즈음, 일찍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전쟁에 출병했던 남은 세계최강 미국이 패퇴하는 것을 보며 북에 대항할 자주국방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여 박정희 정부는 핵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에 들켜 중단되었다. 이처럼 핵무기 개발은 한 국가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이 위협받을 때 자위수단으로 추구하게 된다.

1978년, 미국은 남북이 대화하고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제의했으나 북은 남과의 대화는 실효가 없으니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미국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반응이 없자 1984년 북은 미국과는 평화협정, 남과는 불가침조약을 역제의 했다. 남도 미국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 공산권이 붕괴한 세계적 대변화가 일어났다. 남이 유엔 동시가입을 제안하자 북은 남북이 한 의석으로 가입하자 했으나 남은 반대했다. 남북은 1991년 유엔에 따로 가입했고,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은 주한 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을 제기했다. 남북은 그 해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 합의서’를 발표했다. 1991년 12월, 미국은 남녘에서 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핵잠수함은 때마다 남측에 드나들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3만 미군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전쟁 이래 미국은 북을 정치, 경제적으로 봉쇄해 왔는데 공산형제국가들의 붕괴로 구상교역 상대마저 잃어버린 북은 외화난, 에너지난, 식량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여 산업동력 생산을 고려하며 영변 중수로 핵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이에 미국이 핵개발 가능성을 제기하며 위협하자 북은 미국의 팀스피릿 훈련재개와 북미회담 불응에 맞서 1993년 NPT 탈퇴성명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서 1993년-1995년, 북은 중립국감시위원회 대표단과 중국 군사정전위대표단을 철수시켜, 정전회담기구를 무력화했다. 대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고 북과 미군 장성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투행위만 중단된 전쟁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세 속에 지난 20년 동안 북미 평화협정 요구를 무시, 불응해 오던 미국이 북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1994년에 ‘북미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내왔다. 내용은 북이 핵발전 중수로를 동결하면 100만KW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그 건설기간 동안 중유를 제공하고, 경제제재를 완화하며 국교정상화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유럽 공산국들처럼 붕괴를 예상했던 북이 김일성 주석 사망 뒤에도 흔들림이 없자 미국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기 시작했다. 북미기본합의를 관장하는 Korea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보스워스(S. Bosworth) 총장은 이러한 사실을 “기본합의는 서명한지 2주일도 안 돼 고아가 되었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에 북은 1998년 8월, 합의사항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그 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고 2001년 미국에 부시 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에 대한 아랍권의 분노가 9.11테러사태로 터졌다. 이에 부시는 아무 관련도 없는 북을 ‘악의 축’으로 매도했다. 그럼에도 남북관계는 계속 순항하자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중순, 북에 가서 북일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내왔다. 이에 놀란 미국은 곧 10월 초, 켈리(J. Kelly)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서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하고 돌아와서 10여 일 뒤에야 북이 핵개발을 시인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기본합의서를 파기했다. 중수로 동결 8년에 북은 전력은 물론 경제제재 완화도 또 관계정상화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빈손이 되었다.

북미기본합의 협상 팀에 참여했던 국무부의 위트(J. Witt)는 “남겨진 북미합의의 기념물은 콘크리트로 메워진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북은 2003년 NPT에서 탈퇴하고 중수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해 3월, 핵개발을 저지한다며 핵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을 본 북은 핵무장이 나라를 지켜 주리라 확신했던 1970년대의 박정희 정부처럼 본격 핵개발에 나선 모습이었다. 뒤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이 1994년 북미기본합의를 안 지킨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2003년 8월 북 핵개발을 저지한다며 미국은 중국을 앞세워 연관도 없는 일본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 회담을 출범시켰다. 이 또한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자 북은 2005년 2월 핵 보유 선언을 했다. 이에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모색할 2005년 6자 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런데 미국이 북에게 돈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은행 북 계좌를 동결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북은 2006년 7월 인공위성을 발사 하고 10월, 제1차 핵 시험으로 맞섰다. 그 뒤 북 핵 폐기를 위한 2007년 6자 회담 2.13합의, 10.3합의에 따라 북은 2008년 6월, 원자로 불능화 조치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냉각탑을 폭파했다.

집권하면 북과 직접 대화한다던 오바마 정부가 2009년에 출범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북미대화 반대로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섰다. 북은 2009년 4월 두 번째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그 해 5월, 제2차 핵시험을 했다.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 등을 보며 북 붕괴를 예상하는 이명박 정부와 더불어 미국은 북의 요구를 무시하는 정책을 계속했다.

이것이 미국의 핵위협-북의 평화협정 제안-미국의 불응/기피-북의 미사일 개발-미국의 위협-북의 핵개발-북미합의–미국의 파기-핵 시험-유엔안보리 제재의 역사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을 두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씨갈(L.Sigal)은 Tit for Tat(치고 박고, 맞고 되받아 치기)라고 했다. 미국이 합의사항 지연이나 불이행을 하며 타협하다 파기하는 동안에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매해 늘어만 갔다. 이러한 반복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북의 핵개발을 저지한다는 주장이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미국이 북에게 핵 미사일 개발을 은근히 강요해 온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평화협정 체결과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해서 합의했던 많은 사항들을 어긴 쪽이 도대체 누구인가? 약육강식이 국제관계 역학의 상식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남녘 수구언론에선 약속을 어긴 쪽은 북이라고 보도해 왔다. 그런데 이런 합의 사항의 직접 당사자였던 미국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퇴임 뒤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에 골대를 옮긴다(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는 말을 했다. 즉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는 것이다. 북과 미국이 벌려온 평화협정/핵개발 논쟁과 타협의 무대에 전쟁 당사자였고 문제의 핵심 상대인 남한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6자 회담 회원국으로 이런 과정을 함께 논쟁하고 협상하며 지켜본 남한도 이런 실상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었다. 미국의 국익이 남한의 국익이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오바마 정부 국가안보회의 베이더 국장의 저서, <Obama and China's Rise>에 미국의 대북정책은 “궁극적으로는 북 정권 붕괴와 남의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단기, 중기적으로는 근본적 해결 아닌 협상과 대화를 통해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전략적 인내'였다"고 썼다.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들을 미국의 관료들조차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큰 나라 미국의 더 큰 힘이고, 이런 양심적 인사들로 인해 미국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제, 아니 이미 오래 전에 북은 미국의 속뜻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남에서는 이런 미국의 맥락을 아직도 모르는지 아니면 알지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한이 미국의 존경과 응분의 대우를 받으려면 할 말은 해야 한다. 요사이 남녘에서 말하는 북의 도발-제재-타협-보상의 연속이었다는 주장은 결국 자신의 발등에 도끼를 찍는 짓이나 다름없다.

2012년을 강성국가의 문을 여는 해라고 해온 북은 이제 헌법 전문에 핵보유를 명기했다. 그리고 4월 세계 우주전문가들 앞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다시 12월에는 실용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주도로 유엔안보리가 제재결의를 채택하자 북은 2013년 2월, 제3차 핵시험을 했다. 미국은 3-4월에 걸쳐 실행한 대북 한.미 합동 핵전쟁연습에 본국의 스텔스 폭격기까지 동원했다. 이에 북은 핵 대 핵 무력대결을 하며 ‘정전협정 백지화’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무효화 했다. 핵 없는 이라크, 핵 중도 포기한 리비아가 미국의 침공을 당했고 핵 개발하는 이란이 위협을 받고 있다. 정의든 불의든 밀어붙이는 국제관계 역학에 따라 유엔안보리 국가들도 패권 미국의 주도를 따르고 있다. 이것이 현실세계이다.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해 오다 보니 미국은 우리 겨레의 한쪽에 결국 핵무기를 선물했다. 그러나 강요된 선택으로 개발한 북핵은 이번에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하여 미국은 북핵의 폐기나 비핵화를 주장해야 하고, 이에 따라 남은 더 크게 복창한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온 것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이다. 조국의 남과 북은 어서 남북 연합방을 합의하고 난 뒤에 조국의 한쪽에 있는 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겨레의 만년대계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인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겨레의 앞날은 오직 우리 겨레가 결정하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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