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인생의 <궁극적 의미>, <궁극적 목적>을 찾아 헤매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 자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가 없다. 우리는 부모님들의 세계관과 우리가 자란 마을의 사상도덕적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는 농사를 짓던 부모님밑에서 4살때까지 황해도에 살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강화도를 거쳐 김포땅에 자리를 잡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약 50채 정도의 집들이 들어선 마을의 언덕위에 장로교 교회당이 있었다. 나는 8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다. 이 기독교의 가르침이 나에게 <신중심의 세계관>을 형성시켜주었다. 만약 내가 자란 마을에 불교의 절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불교에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날 때부터 힌두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 종교의 가르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자란 역사적 배경은 우리가 세계(자연, 사회, 인간)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계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이미 한번 형성된 세계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세계관을 스스로 객관화하여 평가하고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다. 특히 이미 신념화된 종교적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인간은 한번 산 삶을 되돌아가 다시 살 수가 없다.
나는 8살 때 기독교인이 되어 22년간 기독교의 <신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다. 그때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이세상과 저 영원한 세상, 천당과 지옥,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이데아의 세계와 덧없는 현실세계, 육체와 영혼, 선과 악, 등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믿고 살았다. 그당시 나는 성경을 문자그대로 믿었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인격신>이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1975년 나이 30이 되어서야 미국 시카고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3년간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성령으로 써졌다는 기독교의 성경도 결국 2,000년전 그 당시의 제한된 세계관을 가졌던 인간들에 의하여 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세계는 하늘, 땅, 지하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이 죽으면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천당이 있는 하늘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지옥이 있는 지하로 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지구중심의 비과학적인 세계관 속에서 써진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수도 없는 교파들이 주장하는 교리위주로 해석하면 안되며 문자그대로 믿어서는 더욱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3년간의 체계적인 신학공부를 통하여 비로소 기독교만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절대주의적인 독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해방할 수 있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지배하던 최고가치로서의 기독교 신으로부터 해방하였다.
그러나 독단적인 신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하여 남는 것은 무엇인가? 허무주의 밖에 없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그 후에 몰아치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힘의 의지>를 지닌 초인(극복자)을 제시했듯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 최고의 가치로서의 신이 살아진 사람들의 허무감을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해방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나는 다행이 신학교 졸업반 때(1979년) 우르과이 신학자 서군도 신부에게서 <해방신학>을 배웠다. 그것을 연구하는 과정에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접하게 되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통하여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지만 인간이 처한 사회의 구체적인 생산력과 생산관계 속에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관념론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적 세계관>과 <유물사관>을 통해 기독교의 신중심의 예속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기독교의 구속사관을 비롯한 관념론적 역사관도 극복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나로하여금 <물질경제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주체적 세계관을 연구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나는 80년대에 유럽에서 개최되었던 <북과 해외학자들과의 대화>에 참석하여 조선의 주체사상 학자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주체사상을 연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김정일위원장님의 생애와 사상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내가 찾던 참된 <주체의 세계관>을 확립하게 되었고 마침내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찾게 되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여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도달한 과학이론의 총화나 집대성보다 더 높은 혁명사상의 최고봉이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시대적 지도사상인 <김일성주의>를 처음으로 체계화한 김정일위원장님을 알게된 것은 나의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김정일위원장님은 나처럼 에돌아 인생을 살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주체적인 사회과학적 세계관>을 갖고 살았다. 그는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주석님을 스승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철학사상들과 진보적인 사회주의 사상마저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체적 관점>으로 비판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에게는 김일성주석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의 한가운데서 이룩해 놓은 <주체사상>이라는 <자주적 잣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였다. 그는 그 잣대로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보았고 그리고 선행 노동계급의 진보적 혁명사상과 이념들도 철저하게 주체적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조선혁명의 이익>이라는 잣대로 평가하였다. 김정일위원장님이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주체적 세계관>을 갖고 자연과 사회현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김정일위원장님은1960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면서 김일성주석님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사업에 착수하셨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오래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빨치산투쟁 한가운데서 사색하고 또 사색하시다가 마침내 결론내리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김위원장님은 아주 중대하게 보셨다. 김위원장님은 김주석님의 이 사색의 결정체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지위) 모든 것을 결정한다(역할)>는 생각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 즉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를 처음으로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과학적인 해답을 준 새로운 < 철학적 원리>라고 보셨다. <철학의 근본문제>란 세계관을 세우는 데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출발적인 문제이다. 종래에는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아 왔다. 이 문제는 물질의 일차성, 존재의 일차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원리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었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유물론적으로 밝혀진 조건에서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었다. 그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이다. <철학적 원리>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계관>의 기초에 놓여 있는 근본이치를 말한다. <철학적 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사상의 <철학적 세계관>이 결정되며 사상의 <혁명성>, <과학성>이 좌우된다.
김주석님께서 처음으로 제시하신 이 <철학적 원리>는 <신>과 <물질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주는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라고 김위원장님은 보셨다. 김위원장님은 신이나 물질경제 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혁명사상만이 사람이 사는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명확히 밝히고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을 위한 가장 정확한 투쟁방법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으로 된다고 결론내리셨다.
또한, 김정일위원장님은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다. 김정일위원장님께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고 과학적으로 해명해주셨기 때문에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밝힐 수 있는 이론적 기초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처럼 김정일위원장님께서 사람의 <본질적 속성>과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줌으로써 인류의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인간문제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주고 사람의 <운명개척>의 앞길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주체사상이 정립될 수 있었다. 주체사상이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할 것을 요구함으로 이것이 바로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데서 견지하여야 할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여주고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한다는 것은 신과 물질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첫 자리에 놓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 즉 사물현상을 보고 대하며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것이 사람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사람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토대하여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역할>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독창적인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사람중심의 세계관>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주체적 세계관>은 우리 시대의 가장 올바른 세계관이다. 역사가 전진함에 따라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그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투쟁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와서 인민대중은 세계의 참다운 주인으로 등장하였으며 그들의 투쟁에 의하여 세계는 더욱 더 인민대중에게 복무하는 세계로 전변되고 있다.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이 비상히 강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주체적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더욱 힘있게 확증해주고 있다.
김정일위원장님의 탄생 80돌을 맞아 나는 신중심의 숙명론적이고 노예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나를 해방하여 인간중심의 <주체적 세계관>을 확립하게 해주신 김정일위원장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