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타승한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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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8-29 13:5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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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타승한 사랑의 힘
1938년 12월초부터 1939년 3월말까지 몽강현 남패자에서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행군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이때가 항일무장투쟁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기였다고 김일성주석은 회고하였다. 그 당시의 정세로는 대부대를 이끌고 조국으로 진출할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혁명 앞에 닥쳐온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대담하게 국내진출을 위해 압록강연안에로의 행군을 단행했다. 유격대원들은 밀영 같은데 들어가 숨어 있으면 한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도 있고 역량을 보존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현상유지는 가능하나 혁명 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고난의 행군>을 해서라도 조국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 혜산사건>으로 해서 수많은 지하조직원들이 잡혀가게 되자 국내 혁명운동은 시련을 겪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런 선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 명망있는 혁명가들조차도 신심을 잃고 백두산쪽만 바라보는 지경이되었다. 적들의 선전이 허위라고 알리고 인민혁명군이 살아있다고 선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국내에 들어가서 총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다. 총소리만 내면 지하조직도 많이 내올 수 있었다.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조국으로 가자, 희생도 있을 수 있고 우여곡절도 있을 수 있다, 총검의 숲을 헤치고 가야 할 노정인데 어찌 간난신고가 없겠는가, 그렇더라도 발자국을 크게 찍어보자, 국내를 한번 들었다 놓자는 것이 그 당시의 김일성주석의 심정이었다. 이것이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 동기라고 그는 쓰고 있다.
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엄혹한 자연과의 투쟁, 극심한 식량난과 피로와의 투쟁,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간악한 적들과의 투쟁이 하나로 엉켜진 것이었다고 김주석은 언급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심각한 투쟁이 동반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초보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 나아가서는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한 투쟁이 바로 고난의 행군의 기본내용이었다. 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진 시련과 난관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이 고난의 행군 때 적들의 전술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쉬지도 못하게 하고 먹지도 못하게 하고 자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이런 전술을 가지고 적들은 토벌대들을 수백명씩 막 들이밀었는데 하루 20번이상 전투를 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때 조선인민혁명군은 음식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산나물이나 풀뿌리, 나무껍질, 누룩, 쌀겨, 술찌꺼기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거친 음식을 많이 먹는데다가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하다보니 소화기관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김주석은 지적했다.
이때 대원들은 행군을 하면서도 잠을 자고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걸으면서 잠도 자고 꿈도 꾸었겠는가.
인민혁명군들은 죽을 고비를 수도없이 넘겼다. 사생결단을 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경우가 수도없이 많았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을 때 너죽고 나죽고 결판을 내자, 죽으면 한번 죽지 두번 죽겠는가 하는 배짱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대담하게 밀어붙이면 극복못할 난관이란 없다고 김주석은 믿었다. 동서남북 어디에나 다 토벌대로 둘러쌓인 적도 많았다. 적들에 둘러쌓여 조선인민혁명군들은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고지에서 며칠 밤을 지내기도 했다고 김주석은 회고했다.
100여일동안이나 사지에서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오중흡의 7연대와 무송쪽에서 활동하던 8연대와 독립대대가 사령부대를 찾아와 마침내 북대정자에 다 모이게 되었다. 대열을 점검해보니 몽강현 남패자에서 헤어질 때의 인원수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남패자를 떠났던 대원들의 거의 전부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때의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김주석은 감격하며 회고하였다. 항일전쟁기간에 이별도 많이 해보고 상봉도 많이 해보았지만 아마 그때의 그 상봉만큼 감격적인 상봉은 없었다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북대정자는 온통 축전마당처럼 흥성거렸다. 고생고생하다가 만난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웃기도 하고 딩굴기도 하면서 회포를 나누었다.
동지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려면 서로 헤여져 있어도 보아야 한다. 피를 나눈 동지들이 서로 이별도 하고 상봉도 하는 과정에 동지애는 더 공고해지고 열렬해지는 법이다. 이런 <동지애>는 어떤 풍파가 닥쳐와도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고 김주석은 믿었다.
< 고난의 행군>은 부대의 이동을 위한 단순한 행군이 아니라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의 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옹근 하나의 전역과 맞먹는 “규모가 큰 군사작전”이었다고 김주석은 평했다. 이 고난의 행군 과정에 대오는 군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은 다 겪었고 인간으로서 체험하게 되는 온갖 시련도 다 맛보았다고 김주석은 감회깊게 회고했다.
이 <고난의 행군>을 통하여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조국의 아들, 인민의 아들들이며 자기 민족과 민족해방위업에 가장 충실한 혁명투사들임을 다시 한번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고 김주석은 평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자신들의 인격을 높은 경지에서 연마하였다. 이 행군과정에 형성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아름다운 영상은 조선인민이 후손만대를 두고 따라 배워야 할 “공산주의적 인간의 훌륭한 전형”으로 되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자기 지도자의 두리에 튼튼히 뭉쳐 적들을 타승한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한 것, 이것이 바로 고난의 행군이 거둔 중요한 성과이며 항일혁명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라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고난의 행군에 참가한 사람들은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모두 다 “영웅들”이다. 모든 대원들이 만난을 이겨내고 불사신으로 살아남아 승리자로 된데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그 요인들 가운데서 몇가지만 간추려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혁명적 낙관주의정신”이다. 이런 정신적 요인들이 대원들로 하여금 만난을 이겨내게 했다. 조선인민혁명군들은 그처럼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도 항상 낙심하거나 비관에 빠지지 않고 승리할 앞날을 그려보며 모든 난관을 이겨냈다. 그들은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만일 그때 그들이 당면한 난관에만 집착하여 맥을 놓았거나 혁명승리에 대한 전망을 암담한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그처럼 엄청난 시련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눈구덩이 속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둘째로, 혁명대열이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마감할 수 있은 다음 요인으로는 “혁명적 동지애”를 들수 있다. 행군이 끝나갈 무렵 오중흡부대와 만났을 때 대원들은 김주석을 붙잡고 막 울었다. 김주석도 그들을 보자 마구 눈물이 쏟아졌다. 육친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너무 반가와서 가슴이 뻐근했다. 김주석은 그때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그 귀중한 전우들과 다시는 절대로 헤여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세상에 “전우애”보다 더 열렬하고 생명력이 강한 사랑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우들사이에 오가는 “도덕의리”보다 더 숭고한 도덕의리는 없을 것이다. “혁명적 동지애”야말로 항일혁명 전 노정을 관통해온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다. 그때 대원들은 자기 전우를 위해 살이 필요하다면 살이라도 떼어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를 깡그리 바쳐서라도 혁명동지를 위해주는 것, 그것이 “혁명적 동지애”이다. 대원들이 한사람도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지 않고 불사신처럼 살아남을 수 있은 비결은 거기에 있었다. “사랑의 힘이 죽음을 타승하게 한 것이다.” <동지애>로 뭉친 집단, 동지애에 기초하여 하나로 굳게 단결된 대오는 필승불패한다는 것을 조선인민혁명군들은 그때 다시 한번 절실히 체험하였다.
세째로, 고난의 행군을 성과적으로 끝마칠 수 있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은 유격대원에 대한 인민들의 사랑과 지원이었다. 고난의 행군과정에 고마운 인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난의 행군에 인민군대만 참가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 행군에는 인민들도 참가하였다. 쌀이나 소금이나 신발이나 천과 같은 후방물자를 지고 사선을 헤치며 인민혁명군대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대오와 함께 모두가 고난의 행군에 참가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유격대원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마다 구원자, 방조자, 동행자로 나선 것은 언제나 인민이었다. 이들은 이런 인민이 있는 한 고난의 행군도 승리적으로 결속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힘을 가다듬었다.
네째로, <고난의 행군>이 승리한 행군으로 될수 있은 것은 또한 부닥치는 정황에 맞는 영활한 유격전법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한데 있었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시대에도 어려운 환경에서 사회주의건설을 하고 있다. 조선혁명은 의연히 고난의 행군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날에는 수십만의 일본군이 조선인민군을 포위하고 추격하였지만 오늘은 그와는 대비도 할수 없이 막강하고 포악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핵무기를 비롯한 최첨단의 무기를 가지고 조선을 압살하려 계속 군사연습을 하고 있으며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조선은 사실 전쟁시기나 다름없는 전시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조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항일혁명선열들이 고난의 행군과정에 발휘하였던 <백두의 혁명정신>을 그대로 실생활에 철저히 구현하는 것 뿐이다. 항일전쟁시기 뿐 아니라 새 조국 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후복구건설시기에도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낙관주의 정신”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룩하였다. 지금 조선에서는 인민대중들이 겨울이나 여름이나 가리지 않고 <백두의 혁명정신>을 배우기 위하여 <백두산 대학>으로 달려가고 있다. 전쟁은 무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백두산 대학 출신의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대중을 상대로 감히 전쟁을 일으킬 군대는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외국군대가 감히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고 하면 사전에 전쟁을 못하게 막을 것이고 그래도 만약 전쟁을 일으킨다면 조선은 그 외국군대를 타승할 것이며 그 나라의 본토까지 죽탕쳐버릴 것이다. 그러니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잠자는 호랑이를 감히 건드리지 말라.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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