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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고 못사는 기준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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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10-30 12:5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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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고 못사는 기준이 무엇인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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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친한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스럼 없는 토론이 진행되었다.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열렬한 기독교 신자들이니까 자연히 기독교 신앙에 관한 여러  질문들이 목사인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내가 1970년대에 시카고에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배운 <자유주의 신학>과 <해방신학>에 대해 솔직하게 소개하면서 보수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절대주의, 교조주의, 문자주의 기독교 교리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이북을 <적그리스도>로 악마화시키며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 부부들이 이북에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북이 태극기부대기독교인들처럼 이북 사회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적개심을 가지고 삐라를 북으로 날리고 인공기를 불태우는 그러한 광신적 기독교인들을 반대하는 것이지 그들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우호적인 기독교인들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해주었다. 이남기독교가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고 나는 성서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설명해 주었다. 이북의 헌법에 분명히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으며 우리가 이북을 방문할 때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대화는 계속되었다. 이들 부부들은 나에게 이북이 아무리 <자력갱생>을 실천하며 잘살아보려고 노력해도 못사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날카롭게 질문하였다. 나는 <잘산다, 못산다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그들에게 물었다. 만약 이북이 오로지 경제적으로만 잘살려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던가, 기생관광같은 것을 시행하여 관광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렸다면 아마 벌써 경제대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이북은 <부익부 빈익빈>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고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사회주의 기본태를 손상시키지 않는 사회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다 보니 겉으로 보면 못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그들에게 해설해주었다.

나는 최근에 나온 이북의 [로동신문] 10월23일자에 길게 다룬 <덕과 정>이라는 정론을 생각해 보며 이북 주체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잘사는 사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왜 미국과 이남과 같이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나라들에서 집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며 왜 극단적인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것일까? 반면 그렇게 못산다고 생각하는 이북에서는 집없이 거리를 헤매는 거지가 하나도 없으며 자살하는 자들이 없을까? 왜 그렇게 잘 산다는 미국에서 밤만되면 무서워 거리를 걸어다닐 수가 없는 반면 이북에서는 밤늦게 걸어다녀도 안전한가?  북에서 말하는 잘산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북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기회있을 때마다 인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고 위 정론은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문명한 물질 문화생활을 누리게 하고 그들을 도덕적으로 세련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이 우리 혁명의 목표이다. 온 나라에 덕과 정이 차 넘치고 나라가 덕과 정으로 화목하고 전진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 대 가정, 사회주의 화원이다.”

이북의 사회주의사회의 특징이 인민들 사이에 바로 덕과 정이 넘쳐나고 덕과 정으로 화목하게 일심단결된 대가정이라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이북에서는 물질생활의 풍요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한것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덕과 정>이라는 것이다. 덕과 정은 “삶의 향기이고 행복의 기초”라고 위 정론은 지적하고 있다.

지금 미국이나 이남 사회에서 좋은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겉으로 보면 화려하게 보여도 사람들 사이에 덕과 정이 없다보니 찬 기운이 감돌고 서로 반목질시하고 무한한 경쟁의식을 느끼며 불행하게 살아가야한다. 그러다 보니 자살율도 높아지고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것이다. 반면 이북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제국주의의 지독한 제재로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못해도 사람들 사이에 덕과 정이 흘러넘치니 모두 행복하게 서로 돕고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위의 정론은 사회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덕과 정이 만발하는 화원이라면 자본주의는 덕과 정이 사멸되어가는 황량한 사막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인생관을 자양분으로 하여 덕과 정이 끝없이 만발한다면 저 하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서슴없이 해치는 약육강식의 생존방식은 그 자체가 덕과 정을 배제하고 있다.”

위 정론은 계속하여 지금 현재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행한 일들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 한 해 동안에 수만 명의 자살자들이 산생되고 집단자살이 하나의 풍조로 만연되어 자살대책백서까지 채택되는 삶의 불모지, 부모들이 제 손으로 집을 불태우고 죽은 자식들의 몸값으로 보험료를 타먹으며 어린 아들을 텔레비전 탁 서랍에 밀어 넣어 죽여 버리는 끔찍한 행태들은 인간증오를 생리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진정한 덕과 정에 대해 논해볼 여지조차 없음을 뚜렷이 실증해준다. 지금 지구의 도처에서는 날로 우심해지는 경영위기와 실업위기, 물위기와 식량위기 등을 두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허나 그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커다란 공포와 위구심을 느껴야 할 것은 바로 인간을 타락시키고 인류의 미래를 병들게 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위기>이다.”

한편, 이북의 주체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지속적인 제재압박 속에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덕과 정>을 버리고 남의 괴로움과 아픔을 강 건너 불보 듯 하며 일신의 향락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을 절대로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위 정론은 강조하고 있다. 이북에서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친 혁명선배들을 존대할 줄 모르고 가정과 사회의 아름다운 윤리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온갖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전혀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위 정론은 지적하고 있다.

위의 정론은 “총과 돈보다 정이 더 강하며,” “금전이 분열의 터전이라면 덕과 정은 단결의 비옥한 토양”이라고 강조했다. 덕과 정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간은 “야수”로 변하될 수 있고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인민들의 단결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 정론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북의 주체사회주의 사회에 흘러넘치는 덕과 정으로 하여 이북의 단결은 공고하고 이북의 단결된 힘은 그 어떤 힘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북 사회의 일심단결의 생명선인 덕과 정으로 화목하고 전진하는 <사회주의 대가정>을 목숨처럼 지키고 더욱 빛내어 나가겠다는 것이 이북 인민들의 결심이다. 이러한 고상한 정신 도덕적 풍모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북이 과연 못사는 나라일까?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9-10-30 12:53:15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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