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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와 <대처>의 죽음은 영웅과 마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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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태영 작성일13-05-13 01:5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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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8] 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을 파헤친다.

<차베스> <대처>의 죽음은 영웅과 마녀의 죽음

차베스를 <애도하는 눈물>과 대처를 <증오하는 분노>

 

유태영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35일에 서거했다. 차베스는 3년 전에 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계속했으나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 

2019년까지의 4선 승리의 임기를 남겨 놓고 애석하게 떠나감으로 차베스는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영웅적 <혁명의 꿈>을 못다 이루고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하지만 차베스가 남겨놓은 못다 이룬 <혁명의 꿈>21세기 재3세계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차베스의 확실한 정치적 신념은 날 이 갈수록 제3세계에서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한편 지구의 반대편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 영국의 전 총리가 201348일에 오랫동안 뇌졸중과 치매를 앓던 병세가 악화되어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거릿 대처 영국의 전 총리가 뇌졸중과 치매로 사망했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짐으로 많은 런던 시민들이 길거리에 뛰쳐나와 <매기, 매기, 마녀는 죽었다>라고 기뻐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런던에서 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도 역시 많은 군중들이 맥주를 터뜨리면서 <잘 가라 마녀, 마녀는 죽었다>라고 피켓을 들고 춤추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대처 전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면서 1979-1990년에 11년 동안 집권을 했는데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모델로 여겼다고 한다. 마거릿 대처는 한국의 6.25 전쟁에 대하여 언급하여 말하기를 공산주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한국이 싸웠는데, 유럽도 한국처럼 일어나서 공산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악담을 했다고 한다.

차베스의 죽음과 대처의 죽음에 대하여 언론은 복잡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두 가지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무엇인가? <혁명의 역사><침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이다. 차베스가 통치한 역사는 실제로 <혁명의 역사> 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대처가 통치한 역사는 실제로 <침략과 전쟁의 역사> 뿐이었다.

대처는 1982년에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영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리하였다. 30년이 지난 오늘도 영국은 포클랜드 섬에 영국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포클랜드 섬 주변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영국과 아르헨티나와의 영유권 문제로 대립이 보다 더 격렬해 질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처의 <침략적 모델>과 차베스의 <혁명적 이미지>를 비교하여 고찰해 본다.


1. 마거릿 대처는 침략적 인종차별주의자

<죽은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라는 사회적 예의는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인물>에 대해서도 사회적 예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첫 여성 수상으로서 전 세계의 정치문제에 대하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영향을 끼친 <공적인 인물> 장본인이다. 대처는 중동 제1차 걸프전 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전쟁을 시작할 때 대처는 부시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며 후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장본인이다.

대처는 칠레의 친미 독재자 피노체트를 지원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과 8년 동안 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할 때 대처는 친미적 우방국으로서 사담 후세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처는 인도네시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훌륭하고 소중한 친구라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더 큰 가장 최악의 문제는 대처는 인종차별주의자 이었다.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에 대하여 <만델라는 테러리스트>라고 악담을 했다. 대처의 이와 같은 악담에 대하여 영국의 도의적 책임감을 느낀 캐머런 총리는 대처의 악담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잘못된 발언이다>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처는 호주의 이민정책에 관여하여 호주가 남태평양 지역에서 동양계 이민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성 발언을 함으로서 호주의 밥 카 외무장관은 대처에 대하여 <염치없는 인종주의자의 내정간섭>이라고 혹평을 했다.

대처의 악성적인 통치행태를 <대처리즘>이라고 부른다. 대처리즘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행하여 건전한 영국 사회를 오히려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처의 통치행태는 기존의 영국 사회를 파괴하고 오직 <개인과 가정>만을 중요시하는 반사회적 정책을 주장했다. 대처는 <사회공동체>를 부인하고 많은 공공부문을 폐지하고 민영화를 강행함으로 사회적 <복지국가>를 부인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를 도모했다.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타협은 없다>라는 철의 여인의 통치형태를 주장했는데 이러한 통치행태로 인하여 그때 당시 영국의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은 더욱 더 빈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처가 남긴 악담(망언)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반사회적인 악담을 한 것은 1987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하기를 <개인과 가정은 있지만 사회? 그런 것은 영국에 없다>라고 악담을 했다. 이와 같은 대처의 언행은 영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치행태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처는 <사회복지론>을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부유층과 기득권자들만을 보호해주는 악덕정치를 했다. 대처는 <사회복지>를 주장하는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민중의 요구를 오히려 영국 내부의 적으로 단정했다. 대처의 사망을 계기로 하여 대처정권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되고 있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둘로 갈라진 국론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대처의 통치행태의 공과 실에 대하여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되고 있는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 대처의 <반 노조><공기업 민영화>정책은 영국의 빈곤한 시민들이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회복지혜택을 박탈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막강한 귀족사회는 대처를 권좌에서 <철의 여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영국의 민중 힘으로는 대처정권을 무력화 시키는데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으로 대처정권은 약자에게 가혹했다고 하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 대처가 죽기 전 2012년에 마거릿 대처의 삶을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이 개봉됐다. 그런데 대처를 좋아하건 대처를 혐오하건 막론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 대처에 대한 영화가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치매가 끔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처량한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소름끼칠 만큼 영국 정치계에서 폭정을 감행한 <철의 여인>에 대한 화려한 영화가 개봉되어 흥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단력 있는 페미니스트 영웅적 정치인 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처의 영웅적 결단이 사실에 있어서 모두 다 <옳지 않은 결단>들 뿐이었다는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대처정권이 인두세(poll tax)를 가난한 민중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광활한 토를 소유하고 있는 백만장자들에게는 막대한 혜택을 부여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모두 스쳐가고 있다. 대처정권 11년 집권기간에 영국의 20개 대형 영국기업들이 민영화가 되여 기업주들이 단기간에 돈을 벌게 해준 기록도 대처의 전기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대처 정권하에서 7세 이하의 빈곤한 집 아동들에게 우유무료급식을 중단시킨 대처 우유날치기법(Thatcher Milk Snatcher) 사건에 관한 기사도 이 영화에서는 언급이 전혀 없다.

대처정권의 통치기간에 실업자가 360만 명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서민들을 위한 공공주택의 총량을 감소시킨 사실도 대처의 전기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서민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재정을 삭감하고 지방 의회에 지원해 주던 국고 보조금도 삭감함으로써 대처행정부에 대한 지지가 감소되고 있었던 사실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처를 오직 일종의 페미니스트 영웅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영화이다.

. 대처 사망 후 영국의 BBC 방송국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70%가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으며 대처주의에 대한 호감은 30%에 불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정권의 파괴적인 정치행태에 대하여 <대처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말하기를 <대처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여성 정치인 이었다>라고 이율배반적인 극찬을 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개방을 주도한 공로로 199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소련의 반민족적인 고르바초프는 대처와 동시대에 살았던 정치가로서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극찬을 했는데 <대처는 우리 시대의 역사에 남을 지도자이다>라고 말하여 초점이 흐려진 조사를 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소련의 고르바초프보다 한 수 더 떠서 대처에 대하여 보다 더 높은 평가를 했는데 오바마는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말하기를 <전 세계는 위대한 자유 투사를 잃었으며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라고 찬양했다. 아마도 오바마는 영국이 아프리카에 대하여 극악한 비극적인 침략을 감행하였던 죄악 의 역사에 대한 기록들을 White House의 호화로운 생활 중에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프란체스코 로마교황이 대처는 기독교적 공헌을 했다고 말한 것은 큰 실수이었다.

1979년부터 11년간 대처가 여성 총리로서 펼친 영국의 경제정책은 별것이 아니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한 <레이거노믹스>를 그대로 영국에 적용한 것뿐 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국의 <대처리즘>은 미국을 추종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식 <레이거노믹스>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었다.

. 대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영국에 전해지자 애도가 아니라 대처의 죽음을 기뻐하는 민중들의 물결이 전국에 파도치고 있었다. 왜 그런가하면 대처가 집권한지 5년 만에 실업자 수가 150만 명에서 320만 명으로 급증했기 때문 이었다. 영국 국민들의 상당수는 <대처야 말로 영국을 망친 영국의 지도자였다>라고 외치면서 <대처리즘>에 증오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대처의 사망 대하여 영국의 국론이 둘로 분열된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트위트, 유튜브, e매일, TV와 신문들도 엇갈린 부정적 보도를 발표하고 있었다.

<대처의 무덤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먼지를 내리 밟아라>등 기사와 함께 그 외에도 대처에 대한 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처의 사망에 대하여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보다 더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특이했다.

. 대처에 대한 장례식도 영국의 국론의 분열되어 애도와 비난이 교차되고 있었다. 가난한 영국 민중에게 대처는 독일의 히틀러와 같은 지도자였기 때문에 대처의 장례식은 국가적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대처 사망 축하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주장은 대처는 국가의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는 정치를 강행했기 때문에 대처의 장례식도 국가적 행사가 아니라 반드시 순전히 <민영화한 장례식>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켄 로치는 말하기를 대처의 장례식은 물론 민영화해야하고 장례비용도 가장 싼 업체를 선택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처는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정치가로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공장폐쇄, 사회공동체 파괴 등 이런 것들을 대처가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어쨌든 말 많은 대처 장례식은 2013417일에 국장에서 한 단계 아래인 반 공식 장례식으로 치려 졌는데, 의회의 승인이 아니라 단지 영국 왕실의 동의에 의한 장례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처 장례식에 참석하느냐 마느냐 논란으로 복잡했으나 세인트폴 성당에서 치려진 장례식에 결극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처의 장례식 비용에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청원이 3만여 건이나 접수됐으며 북아일랜드 분리 독립세력(IRA)의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여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대처의 장례식은 대처의 죽음을 축하하는 수백만 민중들의 축하 파티와 이와는 정반대 대조적으로 삼엄한 경찰의 경계 속에서 대처의 장례식이 치려진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대처와 가까웠던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는 장례식 초청장을 받고도 고령에 따른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하지만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 문제로 대처와 적대관계 속에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는 아예 초청장을 보내지 조차 않았다고 한다.


2. 우고 차베스는 남미에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자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35 일에 오랜 암 투병 끝에 지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2019년까지의 임기를 남겨 놓고 58세로 끝내 눈을 감았다.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베네수엘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들의 추모의 열기는 베네수엘라 방방곳곳에서 물밀듯이 파도치고 있었다.

차베스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카라카스의 군 박물관 주변에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군중들은 차베스가 잠들어 있는 대리석 석관 주변에서 기도를 하거나 석관을 바라보면서 24시간 떠나지 않고 차베스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같이 광대하고 이같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남미에서 특이한 현상으로 여겨진다고 세계 언론들은 보도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국제 사회에 전해지자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애도 메시지가 잇따라 쇄도해 들어왔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과는 완전한 차이점을 들어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에 대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국가들과 지도자들의 명단을 밝힌다.

. 쿠바 정부는 차베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쿠바 정부는 TV로 낭독한 공식 애도 성명에서 차베스는 쿠바혁명 지도자 카스트로의 사상적 아들이라고 추모 했다.

. 브라질의 호세프 대통령은 추도문에서 차베스는 <위대한 남미인>이며 브라질의 친구를 잃은 큰 손실이라고 했으며 전국적으로 1분간 묵념하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또 브라질 전 대통령인 룰라는 차베스의 사망은 남미의 민중 우리들 모두의 슬픔이라고 추모했다.

.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TV연설에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말하기를 <차베스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 남미 민중의 귀감이 될 것이다>라고 추모했다.

. 이란도 하루를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말하기를<차베스는 현명하고 헌신적인 지도자이며 식민 미 제국주의와 싸운 혁명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차베스 대통령이 인도와 양국관계를 강화한 그의 공적을 찬양했다. 싱 총리는 특히 차베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반제국주의와 투쟁한 차베스의 업적을 기렸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차베스는 미래를 내다보는 스스로 높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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