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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8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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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동기 작성일16-09-08 12: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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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8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news@minplus.or.kr

 

 

- 71년 전 1945년 9월 8일, 미군정이 들어온 그날

 해방을 가로막은 9월 8일 미군진주

 

 

1945년 9월 8일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미군이 한반도 38선 이남에 들어온 날이다. 미군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이 아니라 ‘강점’에 이은 분단과 비극적인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미군주둔 71년은 곧 분단 71년이기도 하다. 미군의 주둔은 결과적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새 조국 건설’을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고 희망과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인천 앞바다로 올라오고 있다(사진출처 구글 위키백과사전)

 

 

일본경찰 편에 선 미군

 

1945년 9월 8일, 4만5천명에 달하는 미군은 전투기의 엄호 아래 장갑차를 앞세우고 완전무장 상태로 인천에 들어왔다.

 

인천시민들은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냈다는 미군을 환영하러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인천시민들을 가로막은 것은 패망한 일본경찰들이었다. 일본경찰은 ‘경비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인천시민들에게 총탄을 퍼부어 권병권과 이석구 등 2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어째서 해방된 인천 시민이 일본 경찰의 총탄에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을까.

 

미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조선 총독 아베에게 미군이 상륙할 때까지 치안을 계속 유지하고 행정기구를 존속시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일본군과 경찰을 동원해 조선의 정치활동과 집회를 탄압했으며 심지어 시위대에 기관총을 발포하기도 했다.

 

9월 8일, 미군진주과정에서 사망한 유족들은 발포한 일본경찰을 미군정에 고소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경찰의 발포를 두둔했다. 군정재판에서 ‘일본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넘은 인천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미군진주 당일 발생한 총격 사건은 우리민족 앞에 펼쳐질 운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상징이었다.

 

조선을 점령한 미군

 

38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의 역할은 9월 7일,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문 제1호 ‘조선인민에게 고함’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맥아더는 포고문에서 “본인이 지휘하는 승전군은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라고 하여 스스로 점령군이라 칭했으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복종이 요구된다”고 하여 조선의 복종을 강요했다.

 

아울러 포고문 2조에서는 “정부, 공공단체 및 ... (중략)...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모든 기록 및 재산을 보호․보존하여야 한다”며 해방과 더불어 줄행랑 쳤던 총독부 친일파들을 재생시켜 주고 그들의 재산도 보장해주었다.

 

 

▲ 이승만과 맥아더(사진출처 구글 위키백과사전)

 

 

 

 

 

 

 

 

 

 

 

 

 

 

 

 

 

맥아더는 포고문 3조에서 “모든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표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라며 미군의 절대적 지위와 조선의 복종을 명확히 했다.

 

포고문은 당시 38선 이남 조선의 실정과 전혀 맞지 않는 강압 문서였다.

당시 해방 조선에는 이미 독립정부기관이 건설된 상태였다. 1944년 건국동맹을 결성한 몽양 여운형 선생은 8월 15일, 엔도 정무총감과 회담에서 행정권 인수 의사를 밝혔다. 총독부는 여운형이 제시한 조건들을 주저 없이 수락했으며, 여운형 선생은 그날 저녁 건국동맹을 중심으로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조직했다. 8월 17일 조선총독부는 치안유지권, 방송국 등 각 언론기관 등을 건준에 일괄 이양했다.

 

건준은 전국에 걸쳐 지부를 건설하고 후에 인민위원회로 전환했다. 건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인민위원회를 건설한 지역도 많았다. 지방인민위원회는 친일파들을 몰아내며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9월 6일 전국에서 모인 천여 명의 대표들은 서울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창건을 선포했다. 이처럼 당시 우리 민중은 신속하게 일제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자주독립국가기구를 건설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인민위원회 건설로 자주 독립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 민족의 활동을 포고문 제3조의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완전히 부정했다.

 

오히려 미군은 일제 잔재를 소탕하기는커녕 오히려 포고령 제2조에 의해 8.15 이후 줄행랑을 쳤던 친일파들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며, 포고령 제4조를 통해 우리 민족의 피로 얼룩진 민족 반역자와 일본인의 재산까지 보장해 주었다.

 

게다가 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일제 통치기구가 가장 효과적인 운영방법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용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1945년 9월 16일 매일신보에 의하면, 하지는 ‘전 조선 총독이 가지던 직권과 권리를 나 자신, 즉 군정장관 아놀드가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도 주둔군 사령관 하지에게 ‘첫째 조선의 통치방식은 일제의 통치방식을 계승할 것, 둘째 일제의 군사, 경찰, 관료기구를 그대로 넘겨받을 것, 셋째 조선에 대한 분열정책을 최대한 유효하게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

 

 

정부수립 선포식에 참석한 맥아더와 이승만(사진출처 구글 위키백과사전)

 

 

일제 식민통치기구를 그대로 이어받은 미군은 관리들도 일본인, 친일파를 그대로 유임시켰고 나중에 자문역할을 하게 했다. 김성수와 같은 대지주 출신 친일파가 친미파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도 이 때다.

 

미군정은 법률도 일제시대 법률을 그대로 유지했다. 1945년 11월 2일, 미군정은 군정법령 제21호를 통해 ‘종래의 모든 법령 또는 옛 조선정부(총독부)가 발포하고 효력을 가지는 규칙, 명령, 고시 등은 모두 그 효력을 계속 가진다’고 공포했다. 이에 따라 일제시대 정치집회금지법, 선동문서통제령, 치안유지법 등의 식민통치 법령이 그대로 유지됐다.

 

진정한 ‘해방’을 향하여

 

그 때로부터 71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다. 미국은 남북통일보다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남북분단을 악용하여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어부지리를 누리며 우리민족에게 위험천만한 핵전쟁공포를 전가시키고 있다.

 

 

▲ 미군정은 일본경찰이 치안을 예전대로 맡아줄 것을 요구했고 친일파의 득세는 다시 시작됐다. (사진출처 구글 위키백과사전)

 

 

오바마 행정부는 사드(THAAD) 한반도 배치를 요구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남북관계 파탄, 중국의 경제보복을 무릅쓰면서까지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주한미군은 부산항에 탄저균을 포함하는 생화학연구실을 갖추려 하고 있다. 불과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에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되어 논란을 빚었는데 인구가 밀집된 부산광역시에서 생화학연구를 진행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얽매어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1945년 8월 15일은 “분단에 가로막힌 해방”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해방은 통일로 완결된다. 겨레의 염원인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서 벗어나서 대등한 한미관계를 형성할 때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9-08 12:59:4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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