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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야훼 악마교와 예수님의 민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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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인숙 작성일16-08-29 17:5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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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야훼 악마교와 예수님의 민중교

 

 

이인숙(재미동포)

 

 

천사의 탈을 쓴 악마로 기독교를 묘사하였으니 기독교인들의 반감이 클 것을 예상한다.그러나 인류 역사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은 그렇게 밖에 내 눈에는 안보인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어도 예수의 탈을 쓴 기독교를 믿지말고, 진짜 예수를 똑바로 믿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전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집들을 블도저로 밀어버리고, 돌 던지는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를 끌어내 닭장차에 실어가고 8세쯤 되어 보이는 팔레스타인아이를 구타하여 피를 흘리고 군화발로 짓밟고 있는 사진등을 보며 너무 분노했다.

그래서 2014년 7월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백린탄을 투하하여 무수히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새까맣게 타져죽고  두개골이 반쪽이 되어 날라가 버린 시체를 아버지가 부여안고 오열하는 사진들에 분노하여 올렸던 글을 다시 올렸었다. (“야훼는 유태인이 만든종족신 악마다” 2016.08.11 한토마   http://c.hani.co.kr/hantoma/3113364 )

 

윤 ㅇㅇ님께서 댓글을 하셨고, 그 댓글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쓰겠다고 답한지 벌써 보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때 댓글에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한 요점을 간단히 요약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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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작성일 2016년8월13일 02시08분

윤OO  선생님께 조만간 대답드리겠습니다.  핵심은,     

구약(유태교) + 신약(예수사상 +바울사상) = 기독교 인데,

유태교 야훼는 정복하고 종을 만들고 말 잘들으면 복을 주고,

바울사상은 이신득의 즉 믿음이 최고라는 것이고,

이 둘을 합하여 개독교의 핵심 사상이 (예수사상은 겉포장 장식용일 뿐이고) 야훼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서 만사형통하라는 것인데 반하여,

정작 예수사상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 - 천하 보다 귀한 그들의 삶 속에 나를 넣고 동일시하며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구약과 바울을 뺀 예수사상 - 이 종교를 유태교 개독교와 달리 <빈교> <민중교> 따위로 부르고 싶습니다.

유태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 처럼, 저의 예수신앙도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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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 바울 그리고 예수 

 

내용에 있어서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유태교는 구약만 가지고 있으며 야훼사상이다.

기독교는 구약의 야훼사상과 신약의 바울사상 그리고 신약의 예수사상을 신앙한다.

야훼는 (이스라엘을) “선민” 하였고, “정복하고 다스리라”  ‘내 말을 잘 지키는 자는 축복해서 잘된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이는 신이다.

바울사상은 ‘이신득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것이다. 영적이고 추상적이다.

 

바울의 사상과 구약의 야훼사상이 결합하여 기복신앙이 되고 이기적이고 대학살과 노예착취 약탈도 당연시 하는 서구기독교 문화를 형성하였다.

즉 경전 자체 안에 폭력성이 내재하여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기득권 이익집단이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예수는 현실세계에 참여하고 내 이웃과 사회에 구체적으로 행하며, 민초들을 억압하는체제와 싸운다.

물론 구약의 야훼도 이스라엘족속 안에서는 빚을 주어도 이자를 받지 말라, 약한 자를도우라등 좋은 선진사상들이 있지만, 핵심기둥은 선택적이고 배타적이고 잔인한 절대군주의 모습이다.

 

바울은 ‘믿는다’ 면 당연히 예수의 가르침을 ‘행한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그의 삶은 존경스러울 만큼 행동이 따르며 철저하였으나,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그가 쓴 글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믿음, 구원, 영생 방향으로 기울어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그의 본 마음과는 달리 ‘구원’ , ‘삶의 궁극적 목적’ 같은 영혼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예수의 언행을 기록한 공관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 기자들도 바울의 영향을 받아 (공관복음보다 바울서신이 먼저 쓰였다) 추상적이고, 예수를 ‘진짜 신이 낳은아들’로서 ‘너의 죄를 대신지고 죽었다’ 를 믿으라는 식으로 기록한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라는 말은 요한의 머리에입력된 바울의 사상이며,  “신성”이라는 덧 씌우기까지 하여 사기꾼 목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는 자기가 야훼의 독생자라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으며, ‘너희죄를 지고 내가 대신 죽는다’ 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공관복음서에서도  기자 자신들의 사상을 뺀 예수의 말과 행동만을 뽑아 성경을 만들어 예수를 믿자는 것이다.

한 예로 야훼와 예수가 어떻게 다른지 보자.

 

애급에서 탈출하여  사막에 있을때  어느 민초가 안식일을 어기고 나무를 했다. 모세가어떻게 해야 할지 야훼에게 직접 물었다. 야훼가 그를 죽이라고 직접 대답한다. (민수기15:32~36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사막의 밤은 춥다. 또 그 불쌍한 민초가 전날 무슨 일로 나무를 못 했을 수도 있다. 나무가 많은 사람들에게 없는 사람과 나눠쓰라고 하든지, 꼭 한마디 하고 싶으면 훈방이나할 일이지 그렇게 죽여야만 할 일인가?

 

침략하여 점령하고 “생명있는 것은 다 죽이라” 며, 잘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의 땅을빼앗고 어린애들까지도 모두 죽이라는 악마가 아닌가?

이 잔악함은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제 3세계에서 강탈과 살륙을 자행하고 노예로  부려먹는 역사의 사상배경이다.

그런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십자가를 구주로 믿으니 나는 깨끗하다’ 라고 ‘이신득의’ - 의기양양한 악마이다.

 

이와 반대로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 이라하며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더 하여 ‘죄사함’ 까지 선언한다.

성전에서 속죄 제사를 지내야만  ‘죄사함’ 을 받을 수 있는 – 종교귀족 사회체제에 대한정면도전이며 부정이다. 누가 나에게 죄를 지면 “70번씩 7번” 즉 무한정 용서하라 하신다.  누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지면 용서를 하고 안하고의 권한은 100% 나에게 있다. 그러나 공적(사회적) 으로 죄를 지은 경우 나에게 그 죄를 용서할 권한은, 그 인구수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두환  박근혜 따위의 죄를 용서할 권한이 나에게는 5천만분의 1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적인 죄에 대해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화있을 진저…” 라며 규탄하고, 잘못된 사회는 부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당시 유태 사회는 죄를 지었기에 병이 들고 불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안식일에 고침을 받은 병자가 누구에게 죄를 지어 병자가 되었단 말인가? 당연히 민초를 억누르는 그런 잘못된 사회폭력에서 해방시켜야 되는 것이다.

 

바울이나 요한이 십자가를 ‘예수가 내 죄를 지고 대신 죽어 나는 깨끗해진 표상’ 으로 말하는데 반하여, 예수는 “네 있는 것을 모두 팔아 없는 자에게 주고,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과 행동을 실천하다가 사형도 고난도 각오하라는 말이다.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당시 십자가는 정치범들에게 주는 로마의 사형제도였다).

그래서 “가는 길이 험난해서 찾는이가 적다” 했다.

예수의 십자가는 민중의 편에서 정의를 외치며 짊어지고 가야하는 – 죽음일 수도 있는그런 것이다.

 

서구 기독교가 인류역사에서 그렇게도 흉악한 범죄를 온 지구에서 자행하고도 뻔뻔스러우리 만큼 당당한 것은, 야훼의 편협된 악마성과 바울이 추상화한 영혼구제 정결함이 근간을 이루고, 예수님이 보여준 바 실현해야 되는 현실성은 장식용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르게 진리의 길을 가려면 당연히 예수님의 언행 삶 만을 뽑아 성경으로 해야되지 않겠는가? 이런 종교를 유대교나 기독교와는 달리 ‘민중교’라 이름 붙이면 어떨까?

야훼신과 예수에 대한 신앙기록은 2천개도 넘는다. 그중에서 인간들이 정경 외경 위경을 가르고 또 그중에서도 인간들이 선택하여 자기들의 성경으로 삼은 것이다.

유태교는 신약이 없는 구약만을, 

카토릭교는 신약과 구약을 믿으며,

개신교는 신약과 토비트 마카베오 바룩 등을 뺀 구약을 믿고 있다.

내가 구약을 빼고 신약에서도 바울서신 등을 빼고 예수의 말과 삶 만을 택하여 성경으로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성경을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다” 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기 모순에 빠져있는것이 아닌가? 

 

 

예수의 실패 : 

 

나는 전에 예수를 “빨갱이” 라고 했다.

(“내가 믿는 빨갱이 예수” 2012.05.25 한토마  http://c.hani.co.kr/hantoma/1936642 )

(“빨갱이로 죽임을 당한 예수” 2014.04.15 한토마 http://c.hani.co.kr/hantoma/2465891 )

(“빨갱이와 빨갱이라 매도하는 자와의 차이” 2000.00.00 한토마http://c.hani.co.kr/hantoma/2284603  )

 

나는 빨갱이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빨갱이가 될 자격이 없다.

내 마음 속에는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이 앞서고, 휘황찬란한 불빛속에서 내멋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60여년 동안 자본주의 물에 뼈속 마음 속 까지 물들여져 있기 때문에 다른 체제 사회는 불편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돈 없이 하루하루 마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세계 기아 난민들을 생각하면,삶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빨갱이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양심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이 자본주의 이념적 기반이 기독교(특히 칼빈신학)라 한다.

내가 나 좋은 대로 내 이익을 위하는데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고 한다.

철저히 개별화 시켜 이익을 창출하는 -  돈이 기본 신분계급인 사회이고,  “자유” 라고멋지게 이름붙인 회칠한 무덤이다.  

 

야곱이 외삼춘의 양을 지키면서 꼼수를 부려 부를 축적해 간다. 서구 기독교인들이 제 3세계를 침략하여 죽이고 파괴하며 자원을 강탈하고 식민지 노예로 삼아 이득을 취한다.그렇게 해서 내가 안위와 호사함을 누리며 부가 쌓이는 것을 보고 축복 받았다고 야훼께감사하며 기뻐한다. 나는 야훼의 선택을 받았고 제 3세계 그들은 야훼의 뜻에 따라 노예같이 죽어도 좋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남의 입속에 들어있는 밥 한톨까지 내가 먹어야겠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 자식들에게 죽 한그릇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이라며 희망이랍시고 말하는 엄마에게 내 밥그릇을 주고 그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누리는 기쁨같은 것은없다.

 

예수님은 내 이웃의 기쁨을 같이 즐거워하고 슬픔을 같이 슬퍼하고 서로 나누며 사랑하는 “우리” 라는 관계 속의 사회를 천국이라 하신다.

이웃은 굶어 죽어 가는데 억만금을 쌓아 놓아야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일욯할 양식” 이 보장되고 그날그날 무엇을 멋을까 무엇을 임을까 걱정할 필요없는 세상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인간들이 살았더라면 이땅은 벌써 천국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의 최대작품 자본주의 사회가 대신하고 예수의 가르침은 철저히 실패하였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은 계속 되어야 한다.

내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는 너무 이기적이기에 실패했다고본다. 

 

내 친구가 어느날 이 질문을 신학자에게 하였다.

그 신학자는 ‘어느 시대에나  권력자들이 종교를 왜곡하고 이용하여 학살 착취를 하였다’고 간단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라면서, ‘인간은 종교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영적존재’ 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신학자의 말이, 신학 철학으로써는 훌륭하시지만, 진실이라는 면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낙제점수라고 생각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동물 :

 

모든 동물들은, 당연히 원시인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생존” 과 “생식”이다.

이 “생존”과 “생식”에 실패한 종은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나 부터 살고 보자는 행동을한 개체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고, 따라서 지금까지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하는 유전인자가 대를 이어오며 동물의 본성으로 형성되었다.

 

인간은 대략 250만년전 부터 진화하여, 대략 100만년전 네안데르탈인이 죽은자를 매장한 것으로 보아 원시적 종교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주구장창 동물과 다름없이 아무런생각없이 살다가 지능이 조금씩 깨어남에 따라 유치하지만 종교적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첫째, 인간이 자살을 할 수 있는 영적존재라고 하는데 종교가 없던 100년,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는 한참 먼, 자연이나 곰을 믿던 시대는 인간이 아닌가?

둘째, 약육강식 그리고 자연의 막강한 힘 앞에 압도된 원시인들의 숭배대상은 자연 또는어떤 동물의 “힘” 이었다. 그 힘이 나를 헤치지 말고 보호 해 달라는 것이다.

야훼라는 종교신앙이 생겨난 것은 5천년도 안되는데  이 야훼신앙도 큰 차원에서 보면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힘을 믿었다는 말은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라는 영적 고상함과는 한참 먼 이야기이다.  영성이라는 것 자체가 ‘고상한’ 사고(생각)의 산물일 뿐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동물의 무조건적인 삶에대한 본능을, 지능이 발달한 동물 - 인간은 그런 삶을 따져 볼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것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그렇게 하는것도 아니므로 인간 사회(관계)의 흐름은 몇몇의 자살 철학 신학과는 상관없이 그대로이어진다.  

높은 이상, 신학, 윤리등 관념 이론은 소수 도 닦는 자들의 추구하는 바이고 그들은 생사도 초월하여 산다고 하겠지만, 대다수 인간들은 생존 싸움의 전사일 뿐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지만, 이것은 동물마다 살아가는방법이 다 다르듯이 어느 한 종의 동물(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현대판 노예 노동자 실업자들 그리고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 이스라엘이 투하한 백린탄에 타져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이, 도를 닦는수도승과 같은 고상한 자살을 생각하고 존재의 의미를 묻고 영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서구인들의 수 보다도 훨씬 더 많다는 현실을 생각하라.

이런 추상적인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분들에게는 자살이 되었건 어쩧건 빨리 죽어서 천국에 영혼이 기쁘게  들어가시라고 권하고 싶다.

 

앞에서 말하였듯이 예수님 사상은 개인적이면서 또한 관계라는 사회성을 가진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 삶을 본 받아 실행한다면, 이 세상에‘칼과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전쟁무기는 찾아볼 수 없이 되었을 것이며, 굶주리고 헐벗고 억압받고 살륙당하는 꼴은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그런 천국이 이루어지기 까지의 과도기에는, 소외된 “작은사람” 들에게는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마약과 같은 신앙심이 필요할 수 도 있다.

우리 주위에는 삶의 밑바닥에서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신다” 라는 신앙심으로 버티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마약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 알지마는, 병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이 마약이다. 이 마약이 없다면 환자들이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데 너무 힘들다.

종교는 마치 화학에서 촉매제 역활이나 물리학의 델타함수와 같다고 친구는 말한다. 수학자들의 정의로 말하자면, 델타함수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즉 존재하지 않는 함수인데, 물리학에서는 규격화등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이 델타함수를 쓰면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게 쉽게 풀리고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종교가 되었던 당신의 삶에 힘을 준다면 믿으세요”  라고 권하며,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종교가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권할 수도 있으나, 그러나 공적으로 책임이 따른다.  바른 인간사회 관계를 깨트리는 유태교 기독교 같은 악마의 종교는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개인임과 동시에 관계라는 사회속에 존재한다.

산속 깊이 홀로 산다면 동물 하나와 다를 바 없다.

선과 악도 없으며 오직 자연만이 진리이다.

그러나 가족 하나만 더 있어도 관계를 형성하며 선과 악이 존재하게 된다.

 

깊은 산속에 혼자 살때는 야훼를 믿건 헛개비를 믿건 영혼을 믿건 상관없이 자기의 삶에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지만, 사회관계 속에 살게 되면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복불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태교의 야훼신앙과 바울의 신학은 해악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성경 자체 내에 폭력성이 내재하고있다:  

 

또 “기득권세력이 종교를 폭력적으로 이용했다”는 그 신학자의 말에 50% 동의 할 수 없는 것은, 동양사상들과 비교하면 유태교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상임을 알 수있다.

 

예를들면, 동양의 ‘홍익인간’ 이나  ‘자연과 더불어’, 또는 ‘자연이 흐르는 대로’ 라는 ‘어울려 하나되는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동양은 민심은 천심이라 하여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민심이 떠나면  천심이 떠나갔음으로 왕권도 정당성이 없다 생각하고 조심한 것에 반하여, 서양은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민심과는 상관없는 높은 보좌의  야훼신이 왕권을 줬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도 기득권자들이 폭력적으로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 처럼 학살과 파괴 강도질을 ‘신의 명에 따라’ 라고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았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면서 선민의식 즉 차별성을 주고, 이 차별성 계급은 노예로부터, “생명있는 것은 다 죽이라”는 존재의 가치 부정까지, 그러면서도 그 강도질을 당연시한  야훼의 말씀이 있다.  

즉 이 폭력성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야훼바울 경전 자체 속에 내재하여 있으며 기득권세력들이 이를 거리낌 없이 이용해 먹을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자작극이라고 논란이 되고 있는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전 미국이 집집 마다 자동차 마다 “God bless America”를 외치며 성조기를 달고, 달지 않은 사람은 테러범으로몰려 곧 몰매 맞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 였다.

매주 백악관에서 예배를 본다는 부시가 아프카니스탄을 치고, “대량살상무기”를  거짓명분으로 내세워 이라크를 처들어가 생지옥을 만들고 중동을 장악했다.

 

99.999%  미국 시민들이 그렇게 “God bless America”를 외치며 전쟁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기득권층의 선전 세뇌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성경 자체에 문제가 있어 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판단한다고 보았다.  

이 야훼의 약탈적 편파 기복사상과 바울의 이신득의 사상이 제 3세계를 침략하고 강탈한 기본 배경사상이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야훼와 바울사상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은 왜 실패했을까?

앞에서 인간은 대략 250만년동안 이기적인 유전자가 형성되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내 이익이 우선이고 쉬운 쪽을 택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여주신 말과  삶은  ‘나를 희생하고, 십자가를 지는 어려운 삶’ 을 살라는 말이다.

이것을 참진리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높은 가치의 실현이라는 자기 만족과 행복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기적 존재인 인간이 몇명이나 그렇게 하겠는가?

당연히 인간들은 쉽고 이익이 되는 야훼와 바울신학을 따르고,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는예수사상은 악마가 천사의 모습으로 보이려고 쓰는 가면으로 이용될 뿐이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 본능이 작동할 필요 없는 사회구조가 예수의 답이다:

 

2천년이나 지났음에도 예수가 원하는 사회가 아직 미완성이라면 단순한 기득권자들의종교 이용만의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즉 만일, 사회구조가 ‘생존’ ‘생식’을 보장하는 체제가 되면 인간이 악할 필요가 없고, 인간의 이기적 성향도 바뀐다.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십자가를 지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어려운 주문보다는 이기적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방법이 더 확실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개인적 삶의  지침으로는 예수님 사상을 따르는 것이 옳고, 공적인삶에 있어서는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을 해야 예수님이 말하던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생존생식에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착하다.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는 자기 이익이 걸린 일에 맞다뜨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등어떻게 처신하는가를 보면 비교적 정확하다 한다.

자본주의 인간들이 사회주의 국가 인간들 보다 사악한 이유는 각개약진으로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각 개인의 변화로 사회가 바꿔지는 것을 말한 것에 반해, 만일 그 사회가 생존권 (무료의식주, 무료의료, 무료교육 등)을 보장한다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하여 이기적일  필요가 없고 그  사회는 천국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빌레그레함 목사가 북부조국을 방문하고, “예수가 와도 할 일이 없는 나라”라고 했다는말이 지나가는 말로 듣기지 않는 이유이다.  

 

몇년전 KBS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방송에서 1등으로 남태평양의 어떤 섬이라고 방영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같이 먹고 같이 모여 상의 하는 사회였다.  TV 커녕 라듸오도 문명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먹는 것도 잡아온 물고기나 동물을 그냥 삶거나 구워먹는 것이었다.  

 

악마는 천국을 파괴하고 지옥을 스팩타클하고 흥미진진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래서 시골의 처녀 총각들이 도시로 라스베가스로 찾아간다.   

자본주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밤새워 경쟁을 하기 때문에 문명이 빠르게 발전한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이 편리함을 줄지 언정, 인간의 행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그 편리함을 위해 돈 벌이 노예로 전락시키고, 자원고갈 오염 인력낭비 인간관계파괴 등폐악이 뒤에 쌓인다.

 

서구 기독교 자본주의 문명이 제 3세계를 침략하고 지금도 중동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으며 지구를 오염 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인민들의 삶이 가장 부유했던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을 지금 누가 어떻게 생지옥을 만들었는지 보라.  (“가다피 시절 리비아에서는”  http://c.hani.co.kr/hantoma/3026264   2016.02.28 Hojeong Nam, FB <한토마> )

악마가 천사를 죽여야하듯 돈귀신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체제 국가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쿠바 우리 북부조국 들이 전쟁 타겟이 된 것은 필연이다.    

 

노비문서 없는 자본주의 노예제도 :

 

또 그 신학자는 “기독교가 인류역사에 자유를 확대시켜온 공헌을 하였다”고 말했다.

10여년전만 해도 나역시 “인류 역사는 신의 섭리하심에 따라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발전되어 왔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사상으로 부터 인권이 확대 발전 되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에 동의 하지 않는다.   

 

예를들면,  이란의 인민들이 뽑은 모사데그가 석유를 국유화하자 미국은 샤 팔레비를구테타로 왕에 세웠다.  잔악한 왕정에 인민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미국 대통령 레건은“샤는 건재하다”라며 샤를 지지하였지만, 그 3일만에 샤 팔레비는 도망가고 민중혁명은성공하였다.  샤는 자기를 반대하는 국민 200만명을 죽여도 좋다고 공공연히 떠든 놈이다.

 

기독교가 오히려 민주정권을 뒤 엎고 독재 왕정을 세운 경우 또는 군부구데타 독재정권을 세우고 지지한 경우가 아주 많다.

 

다른 예를 들면, 기독교 사상때문에 미국의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북부지역의 산업화에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며, 남부지역은 농업사회이어서 여전히 노예노동력이 필요하였고,

북부지역은  유럽의 선진산업 상품들을 무역장벽으로 막고자 하였으나 남부지역은 농산물을 유럽에 팔아야만 했기 때문에 무역장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상반된 이해 관계가 남북전쟁으로 터져 나왔고 남부지역 경제에 중요한 노예를 해방선언함으로서 북부가 유리하고자 하는 복합된 계산이었었다.

즉 노예해방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 기독교 사상 때문이라기 보다는 산업의 발전 즉“경제가 그 사회를 규정한다”는 명제에 따름이 더 타당하다 할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인류에게 봉건시대로 부터 민주주의로, 자유를 확대시켜온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기독교가 오히려 봉건시대를 벗어나 정상적인 역사 발전을 하려던 제3세계를 더욱 철저한 봉건시대로 되돌렸었다는 사실이다. 

 

산업의 발달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약간 뒤져 있었을뿐 제3세계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산업이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도 점차 변화하고 있었으나, 서구의 침략을 받고 기존 몰락해가던 귀족들이 서구와 결탁하여 더욱 강력한 계급을 형성했다. 더욱 철저한 봉건시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것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도 아니다. 

 

투투 주교가 ‘선교사들이 와서 기도하자고 하여, 기도하고 눈을 뜨니 자기들의 손에는 성경책이 있고 자기들의 땅은 백인들의 손에 있었다’ 라고 말했다.  

 

백인 기독교인들은 그저 침략 사기 도적놈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산업이 발달 되면서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중세봉건시대의 혈통에 의한 계급제도가 돈이 많고 적음에 따른 계급 구조로 바뀐다. 

계급사회는 계급만큼 자유가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 있는 만큼 계급이 형성되고돈있는 만큼 자유를 갖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의 계급에 대한 글에서 자유와 계급의 개념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뀌여 졌는지 설명하였다.

( “[제 1부]북한사회의  계급에 대한……” 2016.05.17 한토마 http://c.hani.co.kr/hantoma/3076487 ) 

 

자본주의사회는 돈이 근간이며, 자유는 돈의 자유를 의미한다.

인권이 아니라 금권(돈의 권리)가 확대된 역사이며  Business Friendly 라는 돈의 ‘자유찬가’ 가 아니더라도 자유는 딱 돈있는 만큼 자유롭다.

 

부자는 돈만 지불하면 특별 대우를 받고 갑질하며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여유와 즐거움을누릴 수 있지만, 돈이 없는 일용직 임시직은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노예계급으로, 차라리 중세의 농노들이 더 자유롭고 성주의간섭도 항시 받지는 않았다.

 

이 지구상에 서구기독교인들의 침략으로 죽고 불구자가 되고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가 마치 민주주의라고 거짓을 세뇌 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돈을 냈으니특등석에서 특등 대접을 받고 돈을 내지 않았으니차별(계급)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진수성찬 잔치하는 담장 넘어에서는  어린자식이 배곱아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있어야 엄마의 찢어지는 가슴을 당연시 여긴다.

중세때 귀족혈통을 받았으니 귀족대우를 받고 노예 혈통을 받았으니 노예가 되는 것이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자본주의는 “소비가 미덕”이라하며, 인간의 본성과 탐욕을 자극하며 소비를 위해 생산을 늘려 자원과 노동력을 낭비한다.

당연히 자연파괴 자연훼손이 따른다.

인간 사회를 개별화하며 극도의 이기적 사고를 갖도록 사회구조를 변화시킨다.

옛날의 공동체적인 도덕 윤리도 사라진다.  

내가 전부터 “악마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이 자본주의가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고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8-29 18:07:4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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