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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87] 반병신과 옹근병신 한국 정치병을 어떻게 고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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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태영 작성일16-06-20 18: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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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87] 재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반병신, 반기문의 대권야욕과 반병신 박근혜 정권

          새나라당과 <분열하는 더민주당>은 옹근병신 정당

        반병신과 옹근병신 한국 정치병을 어떻게 고칠가?

         우리민족끼리 화해하고 자주자립하는 길밖에 없다

 

 

유태영(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2016넌은 <병신년>이다. 정치적인 특성에 의하여 올해는 그야말로 진짜 <병신년>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방식은 정신나간 <병신년>의 통치행태이며 이로 인하여 나라를 완전히 망쳐놓고 있다.

 

병신년 박근혜의 정신나간 통치행태는 경제적 파괴와 손실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자살자 최대의 나라가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인격적 모자람과 부적절함과 어리석고 반민족-반통일적인 정책들로 인하여 병신년의 특이한 본질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병신 반기문>이 한국 정치권에 홍길동처럼 등장함으로 인하여 한국의 정치는 웃음거리를 연출하고 있으며 <병신 육갑 떤다>라는 속담이 오히려 실화가 되어 사회적 혼란 속에서 비극과 희극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1. 반병신-반기문은 누구인가?

 

 

1930-50년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반씨 가문>에는  25개의 가구들이 있을 뿐이었으며 진짜 반씨는 <희성>이라고 했다.  

 

미연합장로교 은퇴 목사인 <반병ㅅ> 목사는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데 반씨 가문에서 유일한 < 기독교-장로교 목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반병ㅅ> 목사님은 유능한 초청 강사로 가는 곳마다 특징이 있는데 <나는 반병신 목사이다>라고 겸손한 말을 하여 청중을 웃기고 있었다. <희성>의 반 목사는 스스로 <반병신 목사>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반기문이 유엔 제8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을 때에 자칭 <반병신 목사>는 뉴욕 UN 본부에 있는 반기문 가정을 친히 방문하여 반씨 가문에서 자랑스럽게 <용이 났다>라고 축하를 하면서 감사하는 기도를 했다.

 

2006년까지 제7대 UN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 코피 아난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다음의 제8대UN 사무총장으로 한국인 반기문으로 정해놓고 부시 대통령, 라이스 국무장관, 미국의 UN 대사 볼튼 등 3인들이 내막적으로 합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한 미 대사였던 버시바우 전 대사는 겅력히 주장하기를 <반기문은 미국의 유익을 위하여 충성할 사람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나라들이 반기문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주미 대사를 지낸 홍석현과 젊은 정치인 김민석이 UN 사무총장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반기문을 노무현 대통령은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노무현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홍석현과 김민석을 배제하고 노무현 정권 하에서 현직 외무부 장관이었던 반기문을 UN의 제8대 사무총장으로 천거했던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신임하고 제8대UN사무총장으로 만든 반기문은 도대체 누구인가?  반기문이 한국에 끼친 영향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면서 무순으로 ㄱㄴㄷ으로 기록한다.

 

ㄱ. 반기문은 1944년생으로 충천북도 음성에서 태어났다. 반기문이 서울대학 학생이었던 시절에 <박정희 타도 민주화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열열히 전개되고 있 었다. 하지만 반기문은 학생운동에 참가한 기록이 전혀 없으며 오직 출세의 욕망으로 학업의 탄탄대로만을 걸었다.

 

반기문은1970년에 서울대학 졸업 후에 박정희 정권 하에서 외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반기문은 1972-76년에 주인도 대사관에서 하급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주인도 대사 노신영과 외무부 장관 이범석 등과 가까운 관계의 인연을 맺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 신임을 얻었다. 반기문은 1983년에 외교부 직원으로 특혜를 받아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연수생”이 되고 있으면서 비밀 정보활동을 행한 것이 모두 다 폭로됐다. 반기문은 귀국 후에 1985년에는 전두환 정권 하에서 총리의 전 비서관을 지냈다.

 

반기문은 <노태우 정권> 하에서1987-1990넌에 외무부 미주 국장, 1992 년에는 주미대시관 정무공사를 역임했다.

 

반기문은 <김영삼 정권> 하에서 1994넌에 발생한 제1차 북핵위기에 미국의 압잡이 노릇을 잘하여 미국의 신임을 얻었으며 <북미 제네바체결>에 참여했다. 반기문은 역시 김영삼 정권 하에서1995년에 외교정책실장, 1996년에 외교안보수석 그리고1998년에는 외무부의 대사 등 고위직 등을 두루 맡는 친미종속주의 정 권 하에서 성공적인 정치인이 됐다.

 

그런데 반기문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2001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왜냐하면 2001년에 한러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탄도탄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반기문은 외교부 차관에서 촤천되어 잠시 물러났다.

 

 

하지만 반기문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되살아나 불사조의 출세의 길을 달려갔다. 

 

이명박근혜는 김대중-노무현에 대하여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반기문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외교보좌관과 외교통상부 장관이었으며 김선일 피납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반기문은 책임을 회피하고 옳바른 처리를 하지 않았다.

 

어쨌던 반기문은 노무현 정권의 <불청객-비바람>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제16대 대통령으로서 10.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업적을 남겨 놓았음에도 불행하게 자살했다. 어쨌던 우리 모두가 궁금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자살에 대하여 반기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반기문의 출세 제1주의에는 그것이 <박정희 쌔끼이건, 김대중 새끼이건, 노무현 새끼이건 나와  무슨 이해가 있건 없건 아무 관계가 없다 >이다. 

 

반기문은 <출세의 길>만을 달려가는 것이 오직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ㄴ. 반기문은1983-1985년에 외무부 직원으로 전두환 정권의 특혜를 받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생이었다. 그런데 반기문은 그 당시 미국에 망명중에 있던 <김대중의 동향>을 파악하고 일일히 전두환 정권에게 보고한 시실이 폭로됐다.

 

특히1985년 1월 7일에 하버드 대학의 유명 교수들과 법조계 인사 135명이 김대중의 무사귀국을 전두환 정권에게 요청하는 연서를 보낼 것이라는 정보를 반기문은 사전에 입수하고 이 중요한 정보를 전두환 정권에게 급속히 통보했다.

 

반기문은 참사관 신분으로 연수생이었다. 하지만 반기문은 망명중인 김대중에 대한 동향보고와 미국의 학계와 정치인들의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입수한 정보를 일일히 한국에 보고했다. 반기문운 미국의 비밀 정보를 전두환 정권에 일일이 보고하는 충성스럽고 아부아첨하는 외무부 공무원이었다.

 

ㄷ. 반기문에 대하여 또 특기할 두어 개가 있는데 한 가지는 반기문이 김영삼 정권 하에서 특사로 중국에서 북한의 <황장엽>을 한국으로 유도해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로 반기문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외교부장이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베트남에서 탈북자들을 대량으로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 때 당시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하여 <평화협정체결>을 심도 있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교부장 반기문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역설하기를 <평화협정체결은 북한의 기만술이다>라고 주장헸다.

 

ㄹ. 성완종의 말에 떨고 있는 반기문 친인척들의 비리가 상당수 흘러나왔다.

 

성완종 리스트 파동 당시 반기문의 친동생 및 조카와 관된된 이야기가 상당수 흘러나왔다. 그런데 검찰은 반기문 친인척과 관련된 범죄행위를 묵과했으며 언론들도 역시 추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고 말 것이다.

 

반기문의 동생 반기상이 경남기업의 고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의혹이다. 성완종이 생존해 있을 때 반기문 일가친척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분명하다. 반기문의 조카인 반주연은 베트남랜드마크 72 매각에 관련하여 위조문건을 작성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성완종의 경남기업애 큰 손해를 끼쳤다.

 

성완종은 생존시에 분명히 말했다. <내가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것도, 동생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충청포름에서 연관된 것도 모두 다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큰 문제의 요인이 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에 반기문은 <충청포름>에 적극 참가했는데 충청출신 기업인들과 언론인들이 주축이 되어 정치와 경제계의 인맥을 넓혀 왔다. 반기문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주장의 진원지는 바로 성완종이였다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반기문은 성완종의 자살에 대하여 일절 말이 없으며 오히려 딴판이었다.

 

반기문에게는 튼튼한 <혈연, 지방연, 학연, 수십 개의 반기문 테마주, 충청포름, 백소회, 제주포럼> 등 UN사무총장 배후에 막강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꼼짝 못하고 반기문의 대망론, 차기 후임자로 모시려고 하는 이유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대망론>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반기문이UN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일본의 막강한 정치력에 매수되었던가? 이유야 어쨋던, 반기문은 박근혜에게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 용단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분명히 말을 했다.

 

반기문이 진짜 <반병신>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발언을 박근혜에게 감히 공공연하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반기문은 아파하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비극적 역사를 헤집고 오히려 엉뚱하게 박근혜의 반민족적인 <한일협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축하를 했다.

 

 

2. 반기문 UN사무총장에 대한 세계적 규탄의 이모저모

 

 

반기문은 미국이 다루기 매우 쉬운 허수아비 UN사무총장이었다.

 

반기문이UN사무총장이 된 배후에는 부시 대통령, 라이스 국무총리, 미국 UN 볼튼 대사 그리고 주한 미국대사였던 버시바우 등의 일치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추천에 의하여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이 된 것은 다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디.

 

뉴욕 타임즈는 반기문을 사정없이 비평하여 <그냥 꽂아놓은 막대기>로 악평을 했으며 포린 폴리시까지도 반기문에 대하여 <무능해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라고 혹평을 했다.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적 유명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UN을 무의미한 단체로 만들어 놓았다-UN을 쇠퇴의 길로 이끈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악평들을 했다.

 

세계 앞에서 한국을 망쳐놓은 반기문인데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위태로운 자기자신의 말기현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반기문을 구세주로 추겨세우고 있다. 그것은 반기문의 끝없는 야욕과 박근혜의 위기대책이 서로 상부상조하여 한국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반기문을 영웅으로 추겨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친미종속정치로 인히여 마비된 사고방식에 의한 기형적 현상일 뿐이다. 한국과 판이하게 달리 세계적 국제사회에서는 반기문에 대하여 혹평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반기문은 UN의 70년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이라고 혹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에 대한 이러한 혹평에 대하여 이모저모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ㄱ. UN사무총장의 임기가 겨우 6개월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반기문에 대하여 아프리카 북서부 서사하라지역의 분쟁과 관련하여 혹평과 항의를 거세게 하고 있다. 100만 명 군중들이 <반기문의 친미정책>을 반대하여 <서사하라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서UN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에 반기문을 실패한 UN사무총장이라고 평가했다. 반기문은 강대국에 - 특히 미국에게 맞서는 것을 가장 싫어하면서 국제적 정의에 대하여 활기가 없는 최악의 사무총장이라고 평가했다.

 

반기문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처리를 잘못하고, 형식적 절차에만 집착하고, 현안에 대한 빠른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UN의 논란이 되는 “점령” 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실수를 한다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 5개국들은 반기문의 무능력에 대하여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런 무능한UN 사무총장은 또 다시 절대로 안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ㄷ. 6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비참한 분쟁의 이유와 원인은 분명하다. 그것은 미국이 반미주의 정권인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고 미국이 원하는 친미적인 <종미주의 종속정권>을 세우려는 야욕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여 끝까지 항쟁하는 ISIS를 소탕하기 위하여 미국은 6년 동안 시리아에 무차별 폭격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무죄한 시리아 민중들이 미국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매일매일 수없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UN사무총장 반기문은 미국과 시리아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여 분쟁을 화해로 유도해야 하는 UN사무총장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

 

반기문은 6년간이나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분쟁에 대하여UN이 아니라 2N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슨말인가 하면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주장하기를 <미국이 시리아를 폭격 해도 된다>라고 미국을 무조건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은 미국이 시리아 민중을 죽이는 <백지위임장>을 발행하여 줌으로써 미국과 함깨 공범자가 되고 있다.

 

ㄹ. 반기문의 행적은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Haiti)에서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티는 2008년에 큰 태퐁과 2010년1월에 큰 지진으로 나라가 전면적으로 비참한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아이티에 대한 침략자이며 특히 UN은 2005-2006년에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아이티에 주둔하여 직접적 살인과 인권침해의 불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10에 발생한 대규묘 지진으로 상상을 초월한 파괴를 당했는데 사망자 수는 20만 명이며 100만 명의 이재민과 재산피해는 국가적 위기에 이르고 있다.

 

반기문은 외향으로 아이티의 재난을 구제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척했으며 한국의 언론들은 반기문의 아이티 구제활동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선전 보도를 했다.

 

하지만 아이티의 재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UN은 딴판이다. 무슨말인가하면 미국은 UN의 이름으로 아이티의 재난과 혼란을 이용하여 다국적대기업들이 대규모로 들어와서 왕창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이티의 재난이 UN과 미국에게는 천혜의 축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눈과 귀에 잘 알려진 미국의 다국적 대기업 갭(GAP) 과 리바이스 (Levis) 등은 모두다 제3세계 나라들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발생한 <저임금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자본주의 기업인들이 아이티의 천재지변을 이용하여 터무니없는 정치와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깃에 대하여 반기문UN사무총장이 협력하고 침묵하고 있는 아이티 드런데현장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100만 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자본가들의 사유재산 토지에서 천막살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토지의 소유주 자본가들은 용병을 이용하여 천막들을 추방하고 있다. 그러면 이 100만 명 이재민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죽으라는 말인가?

 

*이 사유재산 토지에 있는 100만 명 이재민 천막캠프에는 물 공급이 제대로 없으며 간이위생시설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에 대한 폭행을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티 대폭풍피해와 대지진으로 파괴된 나라에 한국의 대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반기문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청치계는 분명히 판단한다.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는 무력한 나라에 강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드는 곳에 한국이 끼어드는 것은 반기문의 또 하나의 반병신의 병태였다.

 

 

이 글을 끝 맺으며,

 

UN에서는 반기문의 10년 임기의 마지막 행보에 대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이것과는 100%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박근혜는 반기문의 이데올로기와 UN에서의 마지막 행보에 대하여 내심 <1순위 후보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가 반기문을 <1순위 후보자>로 여기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반기문이UN에서 박정희가 창안한 <새마을 운동>을 맹열히 선전한 공훈에 매료되어 박근혜는 무조건적으로 반기문을 내심 <1순위 후보자>로 일찌감치 점찍어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가 2015년 9월에UN 총회에 참석하러 뉴욕에 왔을 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반기문을 7차레나 만나 정담을 나누웠다. 그런데 둘이 나눈 정담의 내용은 극비로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친미주의와 반통일주의 정치체제를 박근혜와 반기문 둘은 영원토록 보존하자고 굳

게 결속한 반병신들의 긴밀한 만남과 밀담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반기문의 대권행보에 대하여 새누리당 정치권과 제도권 언론들의 시나리오가 매우 요란스럽다. <친박계-비박계-충청+TK-안철수 >의 빈번한 옥신각신하는 현상들이 출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모두 다 <불보듯 뻔한 연극>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6-20 18:41:15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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