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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10] 내가 본 구약성경(2), 민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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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6-05-26 17:0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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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해방

 

편집국

 

 

김현환 박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1980년부터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변혁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으며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많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여 김현환 박사는 체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저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기독교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1987년도에 완성하여 공개하였다. 김현환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학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설하였으며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는 29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정세와 오늘의 현실에 맞게 저서 내용을 다시 수정보완하였다. 서문에도 언급하였듯이 그는 저서 <신학의 해방>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변혁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신학의 해방>을 연재한다.

 


 

[신학의 해방 10]

내가 본 구약성경(2)

 

 

 

민족이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 역사의 신 <야웨>의 음성, 즉 <역사의 음성>에 책임 있게 응답한 모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동족들과 잡다한 노예들을 이끌고 이집트 땅을 벗어나 광야로 도망쳐 나오게 되었다. 출애굽기 12:37에 의하면, 출애굽한 인원수는 장정, 즉 군대에 입대할 나이인 20세 이상인 남성만 60만이나 된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모두 합치면 2백만 이상에 달하는 대군중이었다고 한다. 한 역사가가 지적하기를 이 2백만의 대집단이 한 줄로 나란히 늘어서게 되면 이집트에서 시내산까지 왕복하는 거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마 이 거대한 집단이 출애굽, 즉 엑소도스했다는 것은 훨씬 뒤에 있었던 <인구조사>에서 나타난 숫자에 근거하여 나중 출애굽기를 쓸 때 과장된 숫자였을 것이라고 일부 구약햑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출애굽기 1:15~20에 잘 표현된 바와 같이 이집트에 살고 있던 전 이스라엘 여인들이 아이를 낳을 때 기껏해야 단 2명의 산파면 족했다는 것으로 보아 출애굽할 당시의 이스라엘인들은 소수의 집단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 집단은 이스라엘인들뿐 아니라, <혼합된 군중>으로 여러 잡다한 노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출애굽기 12:38). 이 집단 속에는 이집트인으로서 강제노동에 동원된 자들도 섞여 있었으며 그 밖의 잡다한 종족들이 섞여 있어서(레위기 24장 10절, 민수기 11장 4절), 사실상 이 단계에서는 엑소도스하여 허겁지겁 광야로 나온 무리를 가리켜 <이스라엘인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이 잡다한 종족으로 구성된 집단은 사막에서 <공통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 결혼도 하고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라는 <공동의식>을 갖게 되었고 <공통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역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가는 초보 단계에 불과했다.

 

사실상, 모세가 이집트 왕 <바로>에게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3일 길을 여행하여 사막에서 그들의 신 <야웨>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지 처음부터 출애굽하여 사막에 정착할 의도나 가나안을 정복할 의도는 없었다(출애굽기 5:3, 7:16, 26, etc.). 원래 이스라엘인들이 도주해갈 목적지는 모세가 과거에 머물렀던 호렙산, 즉 시내산이었지 가나안이 아니었다. 단지 소수의 오합지졸이 이미 강한 농경문화를 이루고 큰 성을 쌓고 살고 있던 요단강변의 가나안족들을 정복하기에는 너무나 약했다. 이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 자손들도 늘어나고 강한 힘을 키운 훨씬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출애굽 할 당시의 이스라엘인들과 강제노동에 동원된 여러 종족은 단지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보다는 광야에서의 <자유>를 찾아 도망 나왔을 뿐이었다. 사막에서의 자유란 말이야 쉽지만 사실상 사막에서는 물도, 음식도 구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거친 자연환경에다가 이미 오아시스 주위에 자리를 잡고 살던 사나운 사막 원주민들은 이스라엘인들을 환대할 리가 만무했다. 이 중 <아말렉족들>과의 전투는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출애굽기 17: 8~16). 성서에 솔직히 표현된 대로 단지 <노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공통의 소망으로 모세를 따라 광야로 도망 나온 오합지졸들은 <한 민족(a people)>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공통의 이상>, <정체성>, <공통의 생활방식>에 대한 헌신, 그리고 공통의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의 광야에서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신인 <야웨>를 신봉하는 <야웨신앙>은 성장 발전해 갔으며 그에 따라 <공통의 이상>을 갖게 되었고 자연히 <공통의식>도 발전되어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 갔다.

 

 

시내산에서의 언약

 

사막의 사나운 원주민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물과 식량의 결핍, 그리고 동족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모세는 순례자들을 이끌고 마침내 시내산 주위의 오아시스에 이르게 되었다. 잠시나마 오아시스 주변에 안착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공통으로 겪었던 사막의 경험들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간은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면 깊이 사고하며 창조하는 존재이다. 여기 시내광야에서 그들은 그들이 사막에서 겪었던 생활경험을 토대로 더 깊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야웨와 그들이 맺은 <언약관계>를 <율법>과 <제도>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시내광야에서 이룩한 언약(Sinai Covenant)은 이스라엘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형성하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따라서 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 즉 출애굽기 19장 1절에서 시작하여 전 레위기서와 민수기 1장 1절에서 10장 10절에 이르기까지 시내광야에서 경험한 여러 사건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 언약은 광야로 나온 오합지졸들이 <한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이었다.

 

또한 <하나의 민족>이 형성되려면 법만으로는 부족하고 전 민족 성원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하나의 이상>, 즉 <하나의 사상>이 필요한데 이들 이스라엘인은 미디안광야에서 모세가 믿기 시작한 <야웨신앙>을 그들의 종교로 확립해갔다. 자유를 찾아 광야로 나온 오합지졸 중에는 이집트신 <다곤>을 믿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종족에 따라 여러 신(gods)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인들도 처음에 모세가 <야웨신>을 소개했을 때 “야웨가 누구냐?”고 물었다.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야웨신을 믿으라고 선교사들이 말했을 때 삼신 상제님, 부처님, 산신령, 등을 믿던 코리안들이 “야웨가 누구냐?”고 질문했던 것과 같다. 초기 미디안광야의 산신이었던 <야웨>도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인들에 처음 소개된 이래 오랜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 <민족의 신>으로 발전해갔다.

 

<야웨>가 이와 같은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 발전되어 간 데는 그만한 깊은 실제적 이유가 있었다. 즉, 광야에서 늘 다른 유목민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자기 집단을 보존하기 위하여서는 여러 족속이 믿던 <잡다한 신들>을 믿으며 분열되었다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거친 사막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분열은 파멸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종교의식을 비롯한 <사상의식>이란 마치 차의 운전대와 같아서 <사상의식>을 통일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이 분열하게 된다. 이 사상의식을 심어주는 데 종교는 큰 역할을 해왔다. 이스라엘인들은 거친 사막에서 그들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여러 잡다한 개인의 신을 버리고 이스라엘 전 민족의 뜻을 대변하는 하나의 신 야웨, 즉 <엑소도스의 신>을 믿도록 강요되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타난 십계명 중 첫 계명에서 가장 중요하고 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의 상징인 스스로 존재하는 자 <야웨신> 이외에 다른 개인의 신을 제멋대로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는 다른 신을 모시지 말라…… 나 야웨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신이니라” (출애굽기 20:3~5).

 

여러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전 이스라엘 민족의 뜻을 대변하는 야웨를 떠나 개인 신을 섬기는 것을 성서는 <우상(ido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출애굽기 20:4).

 

이스라엘의 역사가 명백히 증명하듯이 그들의 <민족적 신 야웨>를 떠나 이방 종교에 도취했을 때, 즉 <사대사상>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떠나 이스라엘인들과 야웨가 맺은 <시내 언약(Sinai Covenant)>으로 되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이스라엘의 개괄적인 역사를 서술해 보자.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와 더불어 약 40년간 광야를 헤매었으며 모세가 죽자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새로운 지도방침에 따라 BC 1250~1200년에 가나안을 정복하게 되었고, BC 1020~1000년경에 처음으로 왕국을 이루고 <사울>이 초대 왕이 되었다. BC 1000년에서 922년에 이르는 80년 동안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통치 밑에 <통일왕국>을 이루어 태평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죽자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져 분단된 왕조를 이루어 서로 대치상태에 있다가 마침내 북조왕국 이스라엘은 BC 722~721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패하여 포로생활을 했고, 남조 왕국 유다도 BC 588~587년에 바벨론 제국에 패하여 포로생활을 했다. 그 후 팔레스타인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이때 비로소 이스라엘 포로들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자유가 부여되었다 (BC 520~515). 팔레스타인에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허물어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야웨신앙>을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다시 BC 336~323년에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를 받게 되어 그리스 문화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로마의 폼페이가 BC 63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니 팔레스타인은 다시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예수가 태어나 활동한 것은 로마의 식민지치하에서였다.

 

그 후도 팔레스타인은 트루만 터키, 대영제국, 등에 계속 지배를 받아오다가 <시오니즘>이 부활하여 각처의 유대인들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도망 나온 오합지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된 것은 이와 같은 계속된 수난의 역사를 통하여였다. 이러한 계속된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오면서 이스라엘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지게 되었으며 이 흩어진 이스라엘인들(Diaspora)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들의 <야웨신앙>의 전당인 <회당>을 짓고, 그들의 학교를 짓고, 그들의 절기를 지키며 그들의 <하나의 민족적 이상이며 역사>인 [모세5경]을 계속 교육해 왔다.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사는 다이아스포라 이스라엘인들은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 제국>을 이루어 세계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계속적인 수난의 역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역사에서 본 바와 같이 <민족>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온 인간의 가장 공고한 <사회적 집단>이고 <기본 생활단위>이며 <자주적 운명의 공동체>이다. <속박의 집>, 이집트에서 자유를 찾아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 민족의 생명은 <자주성>이다. <자주성>은 그 어떤 예속과 구속도 반대하고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회적 인간은 바로 자주성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기에 동물과 구별되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여 자기의 자주적 요구를 실현해 나가는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된다. <자주성>이 사회적 인간의 생명이라면 사람들의 가장 공고한 운명의 공동체이며 생활단위인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의 생명도 역시 <자주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주적 운명공동체>이며 가장 공고한 <생활단위>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말해주듯, 민족이 자주적 운명의 공동체로서 존립하고 발전하려면 이집트로 상징되는 외세로부터 그 어떤 압력과 간섭, 지배를 허용하지 말고 지혜롭고 용감하게 대응해야 하며, 안으로부터 온갖 사대와 외세의존을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고 자기의 요구를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족은 자주적인 운명의 공동체, 공고한 생활 단위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몰락하고 만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코리아의 민족의 발전역사, 민족분단의 역사도 역시 잘 보여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자주성>을 떠나서는 민족의 영토완정을 보장하는 문제, 민족의 혈통과 언어를 순결하게 이어나가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민족적 자주성>의 실현은 민족의 모든 구성원의 자주성을 위한 선결조건, 근본요인으로 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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