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해방 2] 진리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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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환 작성일16-03-23 13:3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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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영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불트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실존>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존을 통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적인 인간의 경험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면 그의 메시지는 말하자면 외국어로 전달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체적인 상황에 전념하고 있는 역사적인 인간에게 자신을 제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인간의 공동체가 지닌 삶의 상황과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지만 기독교인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 행하는 행동을 측량할 수 있는 <이미 확립된 표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구체적인 공동체에 사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존적 문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종교적 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신앙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아간다. 우리 인간은 우선 우리가 신임하고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신앙함으로 가치체계를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그의 가치는 가장 가까운 애정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대개의 경우 부모들의 가치를 그대로 갖게 된다. 유아세례를 받고 난 후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기독교인인 어린이가 있다고 하자. 한 신학자가 그의 신학적 관점으로 그 어린애의 신앙적 특성을 조사한다고 하자. 아마 그 신학자는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 어린애가 믿고 있는 것은 크리스도도 아니며 하나님도 아니라 바로 부모에 대한 신앙뿐이기 때문이다. 그 어린애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부모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체계를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그의 부모가 그 가치체계의 이름을 <불교>라고 부르던가<유교> 혹은<모슬람교>라고 불렀다면 그 어린애도 똑 같이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불렀을 것이다.
사춘기에 이르면 아이들에게 새로운 위기가 닥쳐온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이때쯤이면 자기 자신의 개성을 키우게 되고 가정 내의 인물에서 가정 밖의 두드러진 인물들, 예를 들면 친구, 선생, 영화배우, 가수, 교회목사, 운동선수, 등을 더 좋아하게 된다. 지금까지 부모들의 가치만 절대적으로 옳은 줄로 믿어왔는데 급작스럽게 그 가치체계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그들의 인생을 안내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선택하는데 가정에서 탈피하여 더 넓은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사춘기 단계에서도 역시 아이들은 역사적 인물들의<행복한 이미지>에 의존한다. 그들은 그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전 생애가 아주 완전하게 구성된 것처럼 간주하고 그 지지자들의 단점마저도 인생에 있어서 만족스러운 것인 양 느낀다. 여선선생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어느 초등학생이 여선생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놀라 사모하는 마음을 버렸다는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들이 역사적 상황을 상대화시켜보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인물들도 결코 의식적으로 그 궁극적인 결과까지도 생각하며 그들의 신앙이나 이데올로기를 산 것은 아니다. 이 사춘기 단계에서 보는 <크리스도의 이미지>라는 것도 단지 아름답게 색칠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영상에 불과하다. 많은 문자주의적이고 절대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이 이 단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완숙한 신앙의 단계
단지 완숙한 신앙의 단계에서만 그리스도의 역사적 상황을 상대화할 수 있다. 신앙의 절대성만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상황을 창조적으로 분석하고 신앙을 상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가 신앙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개념, 혹은 하나님의 계시와 역사 속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들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존재한다. 이 둘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필요한데 이것을 편의상 <이데올로기>로 부르자고 앞의 서론에서 지적하였다. 각각의 이데올로기는 그때그때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해야 할 역사적 기능이 있다.
신앙(Faith) --> 계시(Divine rev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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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void) -->이념(ideology)으로 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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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공동체에서 취해야 할 역사 속에서의 선택(Option in history in the concrete community)
그러면 요한복음 16장 12절부터15절에 나타난 예수의 작별인사를 예로 들어 신앙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완숙된 신앙>을 논해보자. 예수는 적들에게 잡히기 전에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할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지금은 너무 부담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면 너희를 모두 진리의 길로 인도하리라. 그는 그가 듣는 것은 무엇이나 다 말할 것이며 장차 다가올 일도 너희에게 선포하리라.”
이 짧은 작별인사에서 예수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지만”, 다른 방법에 따라 제자들에게 알려질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이미 예수가 말한 것에 대해 더 잘 이해할 것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가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예수는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이 어떠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직면할 구체적인 역사적 문제들은 제자들 자신들이 예수 없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승이었던 예수는 앞으로 <진리의 영>에 의해 대치될 것이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러나 이 <진리의 영>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계시자는 아니다. 그는 녹음기의 테이프 속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진리의 영>은 단지 <제2의 교육과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가리켜<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미 제자들은 3년간 예수와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닥칠 새로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대처해나갈 지혜, 즉 <제2의 교육과정> 혹은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배웠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교육과정>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전통적 신학의 주장과 다르다. 전통신학에서는 <하나남의 계시>는 예수의 가르침의 목격자인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함께 닫힌 저장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 직면한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배워 저축한 정보보다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얻어가는 과정에 놓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선생은 학생들 바로 앞에서 떠나갔으나 내면적인 교육과정은 제자들에게 계속되었다. 예수의 작별인사에 나타난 그의 약속은 바로 <진리의 영>은 육체를 가진 선생은 아니나, 선생 없는 교육과정은 새로운 현실을 직면하게 될 제자들에게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전혀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제자들의 한 교육과정이 끝나면 다음 과정에 맞는 적당한 수단을 통하여 교육과정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와 같은 수단은 다름 아닌 구체적인 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분적 진리>, 즉 편의상 여기서 부르는<이데올로기들>이다. 그러나 계시적인 교육과정의 역동적인 결과인 <진리의 영>은 여러 교육과정을 통하여 부분적 진리를 <완전한 진리>로 안내할 것이다.
바울이 가졌던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에 의하면 신앙이란 이론적인 문제나 혹은 실제적인 문제를 푸는 결정적인 해결책으로서 어떤 일련의 계시된 내용에 지적인 신봉을 하는 것도 아니며 크리스도의 은혜로 자신의 구원에 확신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오히려 신앙이란 완숙에 이르는 교육과정을 자유스럽게 받아들이고 잠정적이고 상대적인 역사적 깊이 속에 뛰어들기 위하여 그 선생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로마서 8:19~23, 갈라디아 4:1 이하)라고 바울은 지적하였다. 바울의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 바울이 사망한 후<진리의 영>, 즉 <제2의 교육과정>의 도움을 받아 바울의 서신마저 모방하여 써서 여러 교회에 돌렸다. 이것을<제2의 바울 서신들>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바울의 서신으로 알려졌던 신약성서에 나오는 13개의 서신들 중 바울이 진짜로 쓴 것은 5~6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바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현재의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 문제는 바울서신들의 해설에서 다시 다루겠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처음에 선생의 도움으로 어떤 수학공식을 완전히 파악한 학생은 선생의 도움 없이도 그 공식의 원리를 여러 곳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수분해에도, 미분, 적분에도 다 이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명한 발견을 스스로 이룩하여 노벨과학상도 타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나는 이남에서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미국 신학교육에 크게 실망하였다. 위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내게 주입되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계시 위주의 신앙생활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왜 교회 설교가 나에게 무의미한 것임을 알았다. 2천 년 전에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내가 구체적으로 처한 공동체 속에서 선택해야 할 역사적 상황 사이의 공백을 메꾸어주는 부분적 진리인 이데올로기를 얻지 못한 것이다. 신앙과 내가 구체적으로 처한 역사적 상황과 연결해주는 다리, 즉 이데올로기를 찾아 헤맨 것이 지난 수십 년간의 미국생활이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이남의 교회와 학교를 생각해보았다. 이남교회에서 왜 이데올로기, 즉 신앙과 역사적 상황을 연결해주는 다리를 가르치지 않으며 왜 학교에서 <역사관>을 가르치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다. 왜 코리아의 전 사회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주입식 세뇌교육>만을 시켜왔는지 알게 되자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여기에 이남 사회의 전 비극적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다.
신앙은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할 문제
미국신학교에서 나 자신이 가장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학생인 나 자신에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의 기대는 신학교가 <나>라는 인간을 멋지게 끌고 가며 흡족한 은혜의 바다로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미국 신학교에서 도대체 누가 학생이고 누가 교수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내가 택해야 할 강좌도 모두 나 스스로 택해야 하였다. 나의 지도교수는 단지 좋은 제안만 해줄 뿐이었다. 내가 다닌 신학교에서는 전혀 필수과목이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택하고 싶은 강좌를 꼭 내가 등록한 장로교 신학교인 매코믹신학교에서만 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카고대학이 있는 하이드 팍에는 내가 등록한 매코믹신학교 외에도 시카고대학의 신학과를 포함하여, 루터란신학교, 가톨릭신학교 2개,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스트 교단 신학교, 등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강좌를 위 신학교 어디에서 택해도 되었다.
더구나 당황한 것은 교수나 학생들의 신앙은 각자 개인이 찾아갈 문제이지 교단이나 학교가 혹은 교수가 강요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신학생들은 누구나 자유스럽게 자신의 신앙적 문제점을 고백했다. 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으며 교수나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종래에 내가 고백하던 전통적 신앙이라는 개념은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처음 택한 강좌는 신약의 공관복음을 다루는 <예수>란 강좌였는데 날이 갈수록 나를 포함한 모든 신입생을 당황하게 만들었다.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신약성경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A와 D, 두 교수가 번갈아가며 강의를 하였고 강의를 하지 않는 교수는 강의를 듣고 자기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우리 신학생들은 두 교수의 강의와 답변을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절대적으로, 문자주의적으로 믿었던 신앙을 자연스럽게 상대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예수가 5천 명을 먹인<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A 교수는 예수가 초자연적인 신의 아들이기에 당연히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여 빵 5개와 물고기2마리로 5천 명(그 당시는 여자와 아이들은 수로 치지 않음)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는 강의를 하자, D 교수는 그 강의를 듣고 답변에서 이 기적은 예수의 초자연성보다는 청중들의<나눔>을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D 교수에 의하면 예수의 말을 듣기 위하여 모인 청중들이 이미 자기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왔는데도 점심시간에 아무도 내놓지 않으려 할 때 어린 남자애가 자기가 가진 전부인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를 다 내놓자 거기 모인 청중들도 자기가 싸온 것들을 모두 내놓고 서로 나누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우리 신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전통적 성서해석에서 자연스럽게 해방하기 시작하였다.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성서의 이야기도 해석자에 따라 다르게 해설할 수도 있다고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남에서 신학생들이 경영하는 술집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 오히려 형식주의에 매인 이남의 기독교인들은 술과 담배를 하면 아무리 그들이 내면적으로 신앙심이 깊어도 신앙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신학교 교수들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강의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5~6개의 다른 교파의 신학교와 시카고대학의 신학과가 있는 시카고 하이드 팍에 살고 있는 신학생들은 기숙사 지하에서 <Free B>라는 술집을 경영하였다. 거기서 신학생들과 교수들과 나눈 대화는 내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신학생들이 경영하는 술집을 코리안 크리스찬들은 상상인들 하였겠는가? 그곳은 진짜 신학교였다. <예수>란 강좌를 택하고 신학교를 집어치우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있던3학년 학생들의 경험담은 우리 신입생들의 안내자였다.
술을 마시며 신학을 논하던 학생기숙사 지하에 있는 그 신학생 술집, 그곳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은 곳이었다. 허물없이 술집에서 나눈 교수들 자신의 독특한 신앙관, 학생들의 색다른 신앙관은 결국 나 자신의 <역사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했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결국 내가 배운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론>이었다. 결국 <내 신앙>은 내가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의 신앙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더라도 하나의 자극제는 될지 모르나 나 자신의 신앙은 내 스스로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정립할 문제이다. <신앙의 완숙한 단계>가 무엇인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예수는 단지 <주는 자>이며, <절대적 계시자>, <위에서 내려온 초자연적 존재>란 일방적 이미지가 이제는<역사적 존재>, <나누는 자>로서 우리와 똑같이 <상대적인 계시자>로서 역사 속에서 활동하다가 <진리의 영>을 남긴<민주적인 스승>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예수>란 강좌에서 우리가 교재로 사용한 대조표시가 있는 공관복음서에는 마태(AD 75년경 써짐), 마가(AD 60~65년경 써짐), 누가(AD 75년경 써짐) 복음서가 시대의 차이로 어떻게 똑같은 내용이 변질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으며 어느 부분은 고대의 사본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표시까지 나와 있다(예, 마가복음 16장 9절~20절은 고대 사본에는 생략되어 있다고 주를 달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내가 잘 아는 한 분은 실리콘 벨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호텔을 경영했는데 이남에서 출장 오는 사람들이 호텔에 들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교회에 나가느냐고 묻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마가복음 16장 9절~20절의 밑에 붙어있는 <주>를 읽어주며 이 부분이 고대의 어느 사본에는 생략되어 있다고 여기 <주>에 쓰여있는데 어떻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고 묻곤 했다. 상당수의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는 당황하고 놀랐다고 한다. 마가복음 16장 1절~8절에서는 예수의 <빈 무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9절~20절에는 <부활 이야기>가 쓰여있다. 어느 고대사본에는 부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까 부활 이야기는 원래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누군가가 써서 마가복음 마지막 9절~20절에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지금 펴보면 마가복음 16장 9절~20절의 밑에 주가 달려 있는데 거기에 분명히<어느 고대사본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또한, 누가 성서를 많은 재료 중에서 구약39권과 신약 27권으로 결정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마카비즈(Maccabees), 등 아포크리파(Apocrypha)의 여러 책은 왜 성서에 첨가하지 않았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에는 Apocrypha서들이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상 연대기 순으로 성서가 창세기부터 나열되어 있는지, 신약에서 4복음서가 바울서신보다 과연 먼저 써진 것인지 모두 알아보아야 한다. 성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책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자기들의 신앙의 눈으로 수집하고 편집하여 만들어 놓은 책인가? 예수의 전기를 기록한 책 중에 제일 일찍 써진 책으로 알려진 <도마서>는 왜 복음서에서 빠졌는가? 그리고 마가복음서가AD 60~65년경에 써졌다면 예수의 사망(AD 30경) 후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인데 구두로 30년 동안 예수의 사건이 전달되면서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변질하여 왔을까? 지금처럼 기자들이 녹음기와 사진기를 들고 예수의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을 기록한 것도 아닌데. 이러한 질문들은 진리를 찾는 분들이라면 아주 합리적이고 당연히 제기해야 할 문제들이다.
중요한 것은 성서의 메시지이지 <일점일획도 실수가 없다는> 식으로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나는 이 사실을3년간 미국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공개적으로 배웠다. 문제는 이러한 진실을 신학교에서 배우고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영적주의에 파묻혀 교회 성장에만 힘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민족해방>을 강조하는 <엑소도스사건>과 절대주의적인 종교로부터 해방하는 문제를 지적한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 등을 별로 설교에서 다루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진리를 밝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 예수의 말, 행동을 상대화할 수 있는 단계가 바로 <완숙한 신앙단계>이다. 이러한 완숙한 신앙의 눈으로 나는 왜 이남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신앙>만을 강조하고 코리아가 직면한 구체적인 역사적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그들을 연결하는 다리, 즉 이데올로기에 관해 무관심해 왔는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코리아라는 구체적인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진리의 영>, 즉 <제2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분석을 통하여 나는 기독교 신앙을 구체적인 코리아의 역사적 상황에 이용하는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깨닫기 시작하였다.대다수의 이남의 기독교인들이 절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앙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과 그 추종자들은 기독교의 신앙과 구체적인 코리아의 역사적 상황을 연결하는 이데올로기들을 만들어왔다. <반공>, <반북>, <종북>이 바로 그 좋은 두드러진 예이다. 이 반공, 반북, 종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이남의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동족인 이북을 하나님도 믿지 않는 <적크리스도>라고 악마화하는데 이용되었다.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마구 파괴시켜 버렸으며, 예수는 이미 창세 전에 있던 신성불가침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왔다는<하향식 크리스도론>은 미국의 하양식 식민지배와 독재자들의 하양식 지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해 왔다. 이남 기독교는 단지 절대신앙과 문자주의 산앙에 매달려 하늘에서 계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제국주의 세력들과 역대의 이남의 독재자들은 신앙과 구체적인 코리아 반도의 역사적 문제들을 연결해주는 이데올로기들을 창조하여 이남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기 좋은 식민지 신민들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한편, 문자주의적인 절대신앙에 파묻힌 이남의 기독교인들은 지배자들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들을 분석할 능력이 없었고 <진리의 영>, 즉<제2의 교육과정>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예수만을 설교해 왔다. 이남교회는 아직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진리(신앙)를 연결하는 상대적 진리(신앙), 즉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했다. 이것을 이남 교회가 갖게 되면 신식민화도 독재정권도 불가능하므로 제국주의세력과 이남의 독재자들은 문자주의적이고 영적인 절대신앙을 강조하는 교회들만 뒤에서 후원하여 번성시켜왔다. 이러한 기독교는 계속 제국주의세력과 역대의 이남의 독재자들에 의해 이용당해 왔다. 기독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절대성, 몽매 무지한 문자주의 때문이었다.
만약 이남의 기독교회가 출애급기에 나오는 <엑소도스 사건>, 즉 이집트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이스라엘종족의 <민족해방>을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성서도 그런 관점에서 해설하면서 이남 기독교인들의 <자주성>을 강조했다면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서 있다>는 예수의 말을 강조하여 안식일(사상, 종교, 철학)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인간중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강조했더라면 문자주의적이고 절대적인 신앙에서 벗어 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조 유대와 북조 이스라엘로 나라가 분열되었을 때 통일을 강조하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아무도 통과하지 않던 사마리아 땅을 일부러 지나가다가 수가성에 이르러 여성과 대화하며 물을 청하는 예수를 강조하여 <민족단결>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었다면 이남 기독교가 통일에 많은 이바지했을 것이다.
우리 코리안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역사적 상황을 상대화하지 않고 채색된 안경을 끼고 예수를 인간이 나갈 최고의 이미지로 보는 사춘기의 청년들이 갖는 절대적 신앙의 단계를 탈피해야 한다. 예수가 작별인사에서 제자들에게 부탁한 바와 같이<진리의 영>의 인도 아래 배워 익힌 <제2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깨어나야 한다. 성서의 계시적 진리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실제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들 사이에 공백을 채워주는 부분적 지식, 즉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실천함으로써 완숙된 진리, 완숙된 신앙에 도달해야 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3-23 13:30:2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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