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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 3] 다시 가본 평양 재미동포 이산가족들 틈에서 본 평양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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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5-10-30 13:1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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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본 평양 1부

 

재미동포 이산가족들 틈에서 본 평양 1-3

 

 

 

이흥노(재미동포전국연합회 논설위원)

 

 

 <다시 가본 평양>이라는 제목의 글은, 1부에서 재미동포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에 대한 이야기, 2부에서 당 창건 70돌 행사 참관기, 그리고 3부에서 중국 쪽의 북중 국경도시를 돌아본 이야기로 나누어 실기로 한다.

 


 

 

재수 좋은 미주동포: 평양 거리에서 돈을 줍다니

 

 

 오늘도 어김없이 호텔방을 같이 쓰는 안 선생과 같이 아침산책을 나섰다. 호텔 옆 도로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아주 붐빈다. 때로는 멀리도 가보고, 골목을 누비기도 하고, 호기심이 있는 간판이 있으면 창너머로 안을 들여다 보곤 했다. 산책이긴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빨리 걸어간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갑자기 안 선생이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집어올린다. 나는 북의 지폐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봐, 그건 내가 먼저 본 것이니 나를 주게"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선생은 "내가 주섰으니 내것이야"란다. 돈에 흙이 묻어 돈으로 보이질 않고 낙엽으로 보인다. 펼치니 100원 짜리다. 즉시 안 선생은 그 돈을 지켜보던 나이가 든 어른에게 주고 만다. 나는 "왜 나의 허락도 없이 줬느냐?"고 하자 "그래야 우리 둘이 재수가 더 있다"고 대답한다. 역시 외교관 출신의 제치있는 대답이다. 나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아무튼 두 사람이 평양의 맑고 신선한 아침 거리를 활보한 것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평양 거리에서 돈을 줍는 행운이란 아무나 갖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이것은 행운인 동시에 기적이 아닐까. 인생 최대의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안 선생은 다른 재미 이산가족들과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아 다른 재미동포들의 부려움을 샀다.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언제 어디서나 가족을 만나 즐길 수 있었다. 그의 처가집 가족들 중에는 광복에 공헌한 사람도 있고, 조국에 공헌을 크게 한 애국자들이 여럿 되니 보통 가문이 아니다. 처가집 식구들과 같이 모란봉 공원 산책을 가자는 처남의 제안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온 안씨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하기야 잠을 계속 설치고 피로가 겹쳐 걸음을 제대로 못걸을 정도니 그럴만도 하다.

 

오늘은 다른 재미 동포들과 어울려 <친선병원>엘 갔다. 각국 대사관이 몰려 있는 외교관 거리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병원이다. 나는 팔을 앞으로는 올릴 수 있으나 뒤로 제칠 수 없어 남의 도움 없이는 자기 옷을 입을 수 없는 팔을 달고 다녔다. 만사를 제쳐놓고 미국에서도 고치지 못한 팔을 고치자는 욕심이 발작한다. 우선 병원 접수처에 등록을 하고 대기시간에 짬이 나서 간호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21세의 예쁜 간호원은 간호대학을 나와 <친선병원>에 배치된지 오래지 않다고 한다. 원래 희망은 인민군 의무대에 입대하는 것이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3일간 나를 치료한 의사는 모두 여의사들인데 침과 물리치료를 했다. 병실 침대에 누워서 가장 먼저 우려가 되는 것은 담당 의사들이 정말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하는 것일까였다. 3일간 물리치료, 침, 금당주사 (보약으로 최근 발명한 폭발적 인기) 등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의 정성, 의술, 보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일 차도가 있음을 느꼈다. 두 주일 후, 평양을 떠나는 아침엔 완치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돌아와 즉시 지팡이를 부러뜨리고 나보다 먼저 평양을 떠나간 플로리다의 홍흡섭씨에게 전화를 하고 그의 건강상태를 물었다. 홍씨는 나와 같이 <친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그는 나 보다 먼저 완쾌됐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했다. 이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하다. 이것을 기적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 기적일까!

 

 

기록을 깨고 이발을 한다

 

 

서울에서는 자주 이발소엘 가곤 했지만, 미국 생활 45년에 한 번도 이발소에 간 일이 없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실로 나는 혼자 가위질을 하고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을 수 있는 재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 곱슬머리에다 머리칼이 남달리 곱고 부드러워 쉽게 머리칼이 정돈된다. 그러나 평양 이발소는 어떤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호텔 구내 이발소에 들어간다. 현재의 머리 상태에서 살짝 믿만 돌리면 된다고 했다. 알았다는 대답 외에는 전혀 말이 없다. 아무리 이발에 자신이 있어도 정확히 머리칼을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는 묻는 게 상식인데, 좀 걱정이 된다.

 

기계가 아니라 가위질을 한다. 걱정이 가시질 않아 우선 "몇 년이나 이발을 하셨나요?"라 물었다. "벌써 10년이 넘었습네다"라고 한다. 일단 안심이 된다. 웬걸, 가위질 소리가 기막힌 장단을 맟춰 쉬지 않고 계속된다. 벌써 가위질 소리만 들어도 전문가라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 40대 중반의 여성 이발사는 체구가 서구형 정도인데, 보통 멋쟁이가 아니다. 좀처럼 나는 여자가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에게는 말을 먼저 걸지는 않는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여기는 주로 외국에서 온 손님들일텐데, 이제는 척 보면 어느나라 출신인가를 금세 알 수 있지요?"라고 물었다. "이 호텔의  손님은 대부분 중국사람과 재중동포이고 평양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는 대답이다. "그럼 나는 어데서 왔다고 생각합니까?"라고 하니 말씨가 좀 달라서 미국 아니면 일본인가라 생각했다"고 한다. 10분도 안돼서 머리까지 감고 이발은 끝났다. 너무 빨라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가 아니고선 이렇게 빨리 맘에 들게 이발을 할 수 없을테지라며 인사를 하고 이발소를 나왔다. 무엇 보다 평양에서 이발을 했다는 게 자랑꺼리고, 또 평양에서 한 이발이 만족스럽다는 게 더 큰 자랑이다.

 

호텔 구내에 있는 사우나, 안마, 이발, 수영 등 다체로운 시설에 신뢰가 갔다. 오늘은 맘먹고 안마를 하기로 했다. 이 호텔의 안마가 평양에서 제일 값이 저렴하고 잘한다는 소문이 나있기에 작심한 것이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급하고 요란하게 난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보다며 헐래벌떡 옷을 입는다. 머리에는 두 가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아마 지팡이를 짚고 온 플로리다 홍씨가 넘어져 다쳤거나 아니면 여러날 잠을 못자 비틀거리는 나의 방친구 안 선생이 다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호텔 밖으로 뛰쳐나가니 자동차에 무조건 타란다. 지금 장기수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위해 가는 길이라고 한다. 

 

 

김동기 장기수 선생과의 재회

 

 

오늘은 <노인절>이다. 우리 재미 동포들이 노인들을 위한 특별공연에 초대됐다. 관중들의 대부분이 노년인데 특별히 여성들이 더 많았다. 공연에 출현한 사람들도 노년층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관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해서 사방을 둘러봤다. 북송 장기수들이 그들의 부인들과 줄을 지어 입장한다. 대열을 지어 입장하는 김동기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나를 금세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비전향장기수들을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한다. 공연이 끝나고 김동기 선생님에게 곧 만나도록 합시다라는 말을 하고 해어졌다.

 

이틀 후 나는 나성과 시카고에서 처음 평양을 방문하는 재미동포 목사님들과 같이 김동기 선생댁을 찾았다. 김 선생님이 자신의 아파트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웃에 산다는 다른 장기수 선생들 두 분도 자리를 함께 했다. 맥주와 안주 그리고 오색떡이 식탁 위에 올라있다. 나는 떡보라서 맥주 보다 먼저 떡이 입으로 들어간다. 급히 먹는 떡이라 목에 걸려 말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일행들이 먼저 말을 시작하고 질문도 한다. 남쪽에서 34년이나 옥살이를 한 김동기 (83세) 선생은 북송 후에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이다. 국내외 정세와 통일 전술 전략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해외로 부터도 인터뷰 요청이 그치질 않을 정도란다. 3번째 뵙는 김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감방 대화술"이다. 감방 간에 서로 대화, 소통하기 위해서 주로 놐크식 (물체를 두드려 소리를 내는 것)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는 것이다.

 

자리를 같이 한 비전향 장기수 모두 권오헌 양심수 후원회 명예회장이 자기들에게 쏟든 정성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들은 "권 회장은 인권과 결혼한 분"이라는 말도 한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남쪽에 남은 2차 송환 대상자들이다. 고령으로 많이 세상을 떠나고 있으니 남은 생존 장기수들의 조속한 송환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입만 벌리면 <인권타령>을 하는 서울 정권이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이들을 당장 북의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념의 사나이, 의지의 사나이"로 불리는 귀환 비전향 장기수들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남쪽에 남아있는 생존 비전향장기수들도 조속히 귀환돼 행복한 여생을 자신의 고향에서 보내도록 즉각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로 <8.25합의> 정신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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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 2] 다시 가본 평양 1부, 재미동포 이산가족들 틈에서 본 평양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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