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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 2] 다시 가본 평양, 재미동포 이산가족들 틈에서 본 평양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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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흥노 작성일15-10-29 13:1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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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본 평양 1부

 

 재미동포 이산가족들 틈에서 본 평양 1-2

 

 

 

이흥노(재미동포전국연합회 논설위원)

 

 

 <다시 가본 평양>이라는 제목의 글은, 1부에서 재미동포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에 대한 이야기, 2부에서 당 창건 70돌 행사 참관기, 그리고 3부에서 중국 쪽의 북중 국경도시를 돌아본 이야기로 나누어 실기로 한다.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에 호텔 안에 있는 몇 개의 술집 중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술집에 몇 사람이 모였다. 나는 플로리다에서 온 홍흥섭씨(81세)와 뉴욕에서 온 김태희씨와 자리를 같이 했다. 몸이 불편한 홍씨는 뉴욕에서 심양까지 김씨의 부축을 받았고, 심양에서 평양까지는 나의 부축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다. 지금도 뉴욕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김씨는 가족상봉차 평양을 자주 찾는 이산가족이다. 그는 삼촌과 조카들이 평양에서 멀지 않은 지방에 산다고 한다.

 

지팡이에 매달려 간신히 플로리다에서 뉴욕 공항에 도착한 홍씨는 두 번이나 넘어졌다고 한다. 홍씨의 건강상태가 더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65년만에 만나는 동생과의 상봉일자가 잡히면서라고 한다. 상봉일자가 가까워질 수록 꿈에도 그리던 동생과의 상봉이 일장춘몽으로 끝날까 고민이 더 심해지고, 건강이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씨는 남달리 효성스런 딸들이 여비를 마련해 줬다고 말한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평양을 향해 집을 나서는 아비를 딸들이 몹시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평양에 도착하기 직전에 가슴이 뛴다고 해서 진통제를 들게 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돼서 가족상봉날 아침에 또 진통제를 들게 했다. 가족 면회가 끝난 다음에 만난 홍씨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고 만면에 웃음꽃이 확 피었다.

 

혹시나 하고 염려하던 우리는 홍씨의 밝은 표정을 보고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맥주와 소주를 동시에 주문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맥주병을 따려고 병을 들었다. <대동강맥주>라고 쓰여 있다. "이크, 이거 왠일이야"하고 맥주병을 식탁에 떨어뜨렸다. 모두들 맥주병을 들고는 "이거, 진짜네, 대동강맥주네"라고 한다. 나는 조용히 뉴욕의 김씨에게 "대동강맥주를 마셔도 <종북>이 되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짓궂은 김씨가 "아! 맛있다"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금세 "지금 말한 것 취소"라고 한다. 그리고는 "아! 대동강맥주 맛없다"라고 한다. 옆 식탁에 앉은 사람이 "보기만 해도, 만지기만 해도, 마시기만 해도, 죄다. <종북>이 아니면 <친북>이다. 내가 다 뒤집어쓸테니 <대동강맥주>를 전부 이리 보내라우."라고 한다. 그러자 옆에 앉은 사람이 "술맛 떨어진다"며 건배주를 권한다.

 

우리는 서로 <종북>이라며 폭소를 하며 술잔을 돌렸다. 드디어 술이 좀 거나해지자 플로리다 홍씨의 말문이 열렸다. 지팡이가 안보이니 왠일이냐고 홍씨에게 묻자, 그는 "이젠 필요 없어."라고 소리를 친다. 남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것을 본 홍씨는 "아니, 평양에서 저렇게 놀아도 아무 탈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망설이다가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홍씨는 세상물정에 좀 어둡네요"라고 하자 벌떡 일어난다. 절뚝거리며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걷던 홍씨가 신이 나서 아리랑을 목청껐 불러덴다. 춤도 춘다. 평생의 꿈이 소원성취 됐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며 술잔을 기울인다. <친선병원> 덕에 건강도 되찾았다며 또 춤을 춘다. 명태요리와 버섯요리가 옛날 평양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다며 연신 입으로 들어간다. 보는 사람들도 흐뭇하다.

 

 

단군능 참배 소감

 

 

 오늘이 10월 3일, 개천절이다. 날씨도 포근하고 청명한 날이다. 평양 교외에 있는 단군능을 참배하기 위해 달리는 차창밖은 가을의 풍치를 어김없이 알려주고 있다.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을 띠운 들판에는 가을추수가 한창이다. 탐스런 김장배추와 먹음직스런 무는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군다. 끝없이 펼쳐진 사과밭을 보노라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윽고 단군능에 도착하니 많은 시민과 해외동포들이 줄지어 서있다.

 

단군능 위원들의 소개에 이어 참가자들을 대표해 이들이 단군에게 차례를 지낸다. 북쪽은 단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오래 해왔던 모양이다. 학자들의 줄기찬 연구 성과로 마침내 단군이 실화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한다. 단군의 뼈까지 발견해서 단군이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됐다니 수긍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 내겐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남쪽에서는 단군 할아버지란 하나의 신화로 여길 정도라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으니 말이다.

 

단군릉은 꼭 에집트의 피라믿을 연상케 한다.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웅장하다. 혀가 절로 나올 정도로 거대하다. 육중한 돌을 깎아 높은 피라믿을 쌓았으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실이 아니고선 저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옛 청소년 시절, 김정은 위원장이 개건된 단군릉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찾았을 때에 "옛 우리 민족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참배객들을 위해 생수도 준비돼 있다. 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이런 친절한 봉사까지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후에 만난 나의 평양 가족들이 단군능 참배 소식을 전하는 평양 중앙TV에 나의 얼굴이 멋지게 등장해서 아주 반가웠다는 말을 한다. 

 

 

한 재미동포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사연

 

 

 12명의 재미 이산가족들은 제각기 무슨 볼일이 있어 어디론가 가고 나와 플로리다 출신인 홍흥섭 (81세)씨가 유일하게 나와 단군능을 참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평양이 고향인 홍씨는 대동강다리를 지날 때마다 대동강에 얽힌 이야기를 혼자서 중얼거린다. 하늘에 새까맣게 떠있던 미군 폭격기가 수 많은 피난민 대열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하는 바람에 피난민 대열에 끼어 있던 홍씨가 가슴 부위에 큰 부상을 당해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달구지에 실려 어디론가 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이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됐고 자신은 서울 변두리의 한 골목에 버려져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홍씨는 자기가 폭격으로 부상당했던 대동강변의 폭격지점을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봐야 한다고 우긴다. 17살 나이에 부상당했던 대동강변 바로 그 지점을 끝내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을 찾고보니 쌓이고 쌓인 원한은 풀리질 않고 오히려 더 분개해지고 증오가 발작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온몸에 불탄 상처를 내게 보여주며 미군이 저주스럽다며 치를 떤다. 피난민의 신세로 서울에 도착한 그는 하도 배가 고파 미군기지 근방에 쌓인 쓰래기장을 뒤지는데, 코 큰 미군이 목을 조이고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영어도 못하니 이젠 영낙없이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군대에 입대해서 당장 배고픔을 달래고 동시에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특수부대인 유격대에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훈련이 끝나고 북파되면 고향의 부모곁으로 달려가 식구들과 오손도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종전은 그의 부푼 꿈을 박살내고 말았다. 65년이 지나서야 살아남은 동생들과 감격의 상봉은 했지만, 꿈에도 그리던 부모는 이 세상을 이미 떠나고 말았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쳤다고 한다. 홍씨는 내게 조용히 묻는다. "소문에 의하면 북의 가족에게 돈을 주면 절반은 뺏긴다고 하는데, 정말일까?"라고 한다. 주려고 갖고온 돈의 절반만 가족들에게 줬다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홍씨 친동생에게 물어 보세요, 가족 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라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홍씨는 주려던 돈을 다 가족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오늘은 홍씨 동생들이 형이자 오빠를 만나고자 호텔로 찾아왔다. 우리 숙소인 창광호텔에도 냉면이 있으나 더 맛있다는 고려호텔로 갔다. 이야기는 여기서도 계속됐다. 홍씨의 아버지는 미군 폭격에 부상을 당해 사경을 해매다가 구사일생 살아났으나 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남동생은 기술 책임자로 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했으나 몇 해 더 일했다고 한다. 갸륵한 성품을 보니 홍씨도 그럴 사람이라 여겨졌다. 나는 홍씨 삼남매를 바라보며 "고난의 행군으로 배를 몹시 골았을 두 남매는 아주 건강한데, 배불리 먹었을 미국 홍씨의 건강이 오히려 걱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10-29 13:24:4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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