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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미국> 2. 전쟁의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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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동기 작성일15-06-23 12:1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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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미국> 2. 전쟁의 나라 미국

 

 

2015년 6월 22일글쓴이 : 곽동기 상임연구원

 

 
 

[연재서문]

 

우리사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우리를 지켜주러 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북-미 관계개선을 거부하고 대북압박을 지속합니다. 한반도 평화보다 군사적 긴장이 미국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독재정권의 편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뿌리내리게 한 산파였으며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찰떡공조를 과시했습니다. 대북정책을 두고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불편했던 미국은 다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망국세력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까? 바로 미국이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께서는 한국보수를 보면 혀를 끌끌 차면서도 미국 행정부의 정책결정만은 객관적, 내지는 합리적이라고 믿곤 합니다. 우리 생활 전반에 미국식 사고방식이 만연해 미국식 자유와 미국식 인권이 보편적 가치이며 미국식 정치가 그나마 나은 정치라는 착각에 빠져든 것입니다.

 

미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사회연구소는 우리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쳐왔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2. 전쟁의 나라 미국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국가의 산업과 자본을 키워가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속성입니다.

 

전쟁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규모 무력을 동원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법입니다. 전쟁은 승전국이 자유무역이 아니라 무력으로 패전국의 경제력을 잠식하므로 무역보다 이윤이 훨씬 높습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전쟁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전쟁을 멈추지 않으며 산업과 자본을 끊임없이 살찌워 왔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수행한 크고 작은 전쟁은 모두 200여 차례가 넘는데 이것은 1년에 평균 1번 가까운 전쟁을 수행한 꼴입니다. 200여 차례의 전쟁기록은 아마도 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전쟁 횟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미국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인디언의 피로 세운 아메리카

 

미국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부터 인디언들과 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브라질, 멕시코 등 오늘날의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인디오’라 불리는 몽골계 원주민들과 이들의 백인 혼혈족인 ‘메스티소’족이 국민 구성의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유독 미국에서는 그 광활한 영토에서 생존하고 있는 인디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북미대륙에는 대략 1000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 영토 내에서 생존하고 있는 인디언은 고작 25만 명에 불과합니다. 단순 비교하더라도 지난 18세기, 19세기에 약 1000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미국 군대에 의해서 쫓기고 살해되고 집을 잃고 헤매다가 병들어 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은 것입니다. 

 

 

 

 

미 20달러 지폐에 인쇄된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학살로 유명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출신이었는데, 1814년의 호스슈 벤드 전투에서 근 800명에 달하는 인디언 크릭 부족을 모조리 학살하였습니다. 잭슨은 죽인 인디언의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삼았으며 특히 여자를 살려두면 인디언의 인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 여자와 소녀들을 철저히 죽일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인디언 토벌로 경력을 다진 잭슨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830년 5월 26일,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에 서명하는데요, 이는 미국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들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입니다.

 

인디언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특히 체로키 인디언 족은 15,000명의 부족 가운데 4,000명이 이동과정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부릅니다.

 

잭슨 정부는 이주를 반대한 인디언을 철저히 토벌하였습니다. 미국 남동부에서는 1832년에 “블랙 호크 전쟁”이 있었고 1836년에는 “제2차 크리크 전쟁”, 1835년부터 7년간 “제2차 세미놀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합니다.

 

생소한 미시시피 강 서부에서 인디언들이 살아갈 길은 막막하였습니다. 끝없는 이주와 토벌의 과정에서 그렇게 북미대륙의 인디언들은 눈물을 뿌리며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북미대륙의 인디언들이 20달러 지폐에 찍힌 잭슨 대통령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2) 산업화로 본격화된 전쟁노선

 

미국은 산업화의 요구도 전쟁으로 해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보다 훨씬 빠른 시일에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미국의 산업화를 촉진시킨 전쟁은 바로 남북전쟁(1861-1865)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은 북부 산업자본과 남부 농업자본이 벌인 전쟁입니다. 미국은 북부가 승리하면서 남부 흑인노예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편입시키며 제조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켜가게 됩니다.

 

1863년에 노예해방선언으로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을 두고 노예해방전쟁이라고 미화하지만, 남북전쟁의 빌미는 노예해방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링컨이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노예해방선언은 1863년에 발표되었는데, 남북전쟁은 그보다 2년이 앞선 1861년에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대의 면화수출국이었다고 합니다. 직물소재의 거의 유일한 원료였던 면화는 미국에서 생산되었습니다. 미국은 유럽대륙이 소비하는 면화의 대부분을 공급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대적으로 사냥해서 노예로 부렸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는 대규모 흑인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8%를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어쨌거나 그 당시 노예사냥꾼들에 끌려 대서양을 건넌 흑인노예들의 후손들입니다.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스포츠 스타나 윌 스미스 같은 영화배우들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그런데 186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 북부의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신흥 자본가들은 미국 남부의 면화농장에 끌려와 인간의 초보적 인권이 무시당한 채 무차별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아프리카계 흑인노예들을 자기네 공장의 노동자로 이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당연히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전면화되었고 남부 11개주가 미합중국 연방을 탈퇴하고 결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초기에는 전세가 남부군에 유리하였습니다. 링컨은 결국 남북전쟁의 불리한 전세를 극복하고자 전쟁에서 이기면 노예 신분을 해방시켜 준다는 노예해방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 입대시킬 청년이 모자란 북부군은 노예해방선언을 통해 흑인들을 병력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흑인 노예들을 농장에서 공장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지,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불쌍히 여긴 전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흑인노예는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흑인의 인권은 무자비하게 짓밟혔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주의는 여전하였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최초의 흑인야구선수가 등장한 것이 1947년입니다. 그 때에도 재키 로빈슨이 야구장에 들어서자 야유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흑인들의 목숨 건 인권운동을 통해 표면적으로라도 신장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인종문제, 인종에 따른 인권유린 행위는 미국의 대표적 사회문제로 남아있습니다.

 

3) 전쟁으로 패권을 구축하다

 

전쟁은 또한 미국의 영토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은 건국 당시에는 대서양 연안의 13개주로 출발하였지만 캐나다와의 전쟁(1812)으로 북부국경을 확정지었으며 멕시코와의 전쟁(1846)을 통해 오늘날의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등의 광활한 서부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팽창할 만큼 팽창하자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은 신미양요(1871)를 일으켜 조선으로까지 침략해 들어왔으며 스페인과의 전쟁(1898)으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장악하였습니다. 미국은 필리핀 지배를 위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1905)을 맺기도 했습니다. 미 육군장관이었던 태프트는 이후 미국 대통령에도 당선됩니다.

 

미국의 전쟁은 20세기 초반에 있은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국가들의 군수기지로 기능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습니다.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전쟁특수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전쟁은 그 특성상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자됩니다.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앞을 다투어 전쟁특수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미국의 성장을 떠받치는 산업은 점차로 군수공업화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미국은 한시라도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시작되었지만,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며 유럽에 대한 무역에 집중한 채, 사태를 관망하였습니다.

 

“미국외교사”에 따르면, 전쟁초기에 미국은 오히려 영국과 사이가 틀어질 뻔 했다고 합니다. 전쟁 초기, 미국은 유럽 모든 국가로의 상품수송과 금융거래에 관심이 있었지만 영국이 독일의 해상을 봉쇄하고 교역을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교역은 독일보다 영국과 프랑스가 훨씬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미국의 중립무역은 독일에게 불리해져 갔습니다. 미국은 1915년 후반부터는 연합국 진영에 탄약도 수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은 1917년 2월부터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재개하였습니다. 윌슨 행정부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지만, 미국이 참전한 시기는 1917년부터입니다.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채,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재부를 쌓아올렸습니다. 1차 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산업생산능력은 영국을 앞질렀으며, 20세기 초반에는 전 유럽대륙에 맞먹을 만큼의 생산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또 다시 본토에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력이 완전히 파괴된 유럽대륙을 맞이합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은 영국을 꺾고 세계 자본주의 진영의 유일패권국으로 등장하였으며 군사패권, 경제패권과 더불어 정치사회문화적 패권을 구축하였습니다.

 

4)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의 전쟁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전쟁으로 빠져든 이 비극적인 전쟁에서 미국은 홀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고 그를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세계 자본주의 진영을 좌우하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으로 붕괴 직전에 다다른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막대한 채권과 원조로 되살렸으며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과 자립경제 건설 시도를 집요하게 방해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히틀러가 유럽대륙을 휩쓸던 전쟁 초기에, 미국은 적극개입하지 않으면서 무기만 열심히 팔았습니다. 그러자 일본이 1941년 12월에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단행하였고, 이후 연합군 진영이 확고히 유리해지자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미국이 유럽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하지만, 당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독일-소련 전쟁의 동부전선은 외면하였습니다. 미국은 독일이 아직 막강하던 1942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전차전을 도와주는 정도였습니다. 1943년에는 이탈리아에 상륙해 무솔리니와 싸웠으며,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퇴각하던 1944년에야 노르망디에 상륙하며 서부전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은 전체 군사력의 70% 이상을 소련과의 전쟁에 집중시켰습니다. 

 

 

 

 

히틀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습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은 50만명의 독일군 정예병을 비롯한 대략 85만명의 히틀러측 군대가 궤멸 당했습니다. 1944년에 반격을 가한 스탈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45만명의 독일군 사상자를 내고 25만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 전투에서 스탈린은 나치의 중앙집단군을 붕괴시켰습니다.

태평양전쟁도 주 무대는 과달카날, 이오지마 등의 태평양 섬이 아니라 중-일전쟁 이후 내전상태에 빠져든 중국대륙이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의 섬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지만 일본군의 정예병력이라던 100만 관동군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상황에서도 중국 만주에 주둔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주된 역할은 독일과 일본을 격퇴시키는 것 보다 오히려 연합국 측에 군수물자를 판매,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1940)한 뒤 유일하게 독일-이탈리아 연합군대에 맞서게 된 영국은 막대한 군수물자를 미국에서 빌려오는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커다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영국자본을 완전히 꺾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2차 대전 기간 동안 모든 참전국들은 국토가 폐허가 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미국만큼은 본토에 포탄 한 발 떨어지는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생산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의 미국은 전 세계 재화의 40% 이상을 독점적으로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의 독점. 이것은 미국이 전후 세계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장악하게 된 두 기둥이었습니다.

 

5) 전쟁으로 세계를 접수한 미국자본

 

미국이 영국을 밀어내고 자본주의 진영의 종주국에 등극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1940년, 전쟁수행 1년 만에 영국 국고의 금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이제 <무기대여법>을 통해 외상으로 무기를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초기에 판매한 무기를 제외하고 무기대여법으로 미국이 영국에 빌려 준 무기만 따지더라도 당시 금액으로 3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쟁은 무려 6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군수산업이 발달한 미국이라 해도 이렇게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할 수는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일반생산시설에서도 군수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산업 전반에 걸쳐 일반화되었습니다. 일례로 IBM의 경우는 1940년 4600만 달러의 판매규모에서 전쟁덕분에 1945년에는 1억 4000만 달러로 수직상승하였습니다. 미국의 모든 생산설비의 총 가치는 1939년에서 1945년의 6년 사이에 400억 달러에서 660억 달러로 총 65%가량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은 총계 1600만 명에 달하던 군인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영국군’ 및 ‘소련군’ 등의 연합국 병사들까지 무장시키기 위하여 소총과 기관총 등의 각종 총기류 약 600만 정, 97800여대의 각종 항공기들, 10만 여대의 탱크 및 장갑차량, 항공모함 141척 및 구축함 349척 포함 약 7만 1000여척의 각종 함선들, 탄약류 약 410억 발 등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은 1850억 달러 이상을 전쟁물자 생산에 투자하게 되고, 이러한 수준으로 방위산업과 군비가 확대되기에 이르면서 1939년에 국민총생산의 1.5%에 불과하던 국방비 지출규모가 전쟁이 절정에 달하였던 1944년에는 국민총생산의 4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1939년 당시 17%에 달하던 미국의 실업률은 1944년에는 1.2%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1944년 7월, 미국은 브레튼 우즈에서 연합국 통화금융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협정에서 미국의 달러화는 국제통화의 지위가 부여되어 영국의 파운드화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에 고정시킨 것입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받게 하여 달러에 대한 가격 변동률을 1% 이내에서 유지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달러의 독점적 지배권을 보장한 것입니다.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는 이와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출범도 합의하였습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달러의 통화운용에는 무한정의 자유를 주고 세계 모든 통화는 달러를 따라가도록 설정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경제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통화에 있어서의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세계 각국이 자기의 경제주권을 미국에 내어놓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본토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 기초한 바 미국경제는 2차 세계대전 후에도 고속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세계 자본주의 시장을 석권하여 주요경제부문에서 독점적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건국 당시 인디언 토벌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경쟁세력을 꺾어나갔으며 결국 1945년, 자본주의 진영의 군사 경제패권을 거머쥐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디언을 소멸하고, 수백만 흑인노예를 부렸으며,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서 무기판매에 열중하였습니다. <끝>

 

[우리사회연구소]

 

 관계기사

► <제국주의 미국> 1. 미국의 생성과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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