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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3권 제 8 장 7. 영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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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6-18 16: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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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3권 제 8 장 7. 영생의 꽃

  

   


  

7. 영생의 꽃  

 

 1933년이였다.

 

 

왕우구혁명조직에서는 상급의 조치에 따라 북동아동단학교 학생들인 김금순(김금녀)이와 김옥순이를 소왕청에 파견하였다.

 

 

두 소녀는 연길지방인민들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던 재능있는 유희대원들이였다. 그들은 조직으로부터 혁명군중이 많이 집결되여있는 왕청일대에 가서 근거지인민들에게 노래와 춤을 보급하라는 과업을 받고 마촌에 왔다. 그 당시 동만지방의 혁명조직들은 인재들을 자주 선발하여 조선혁명의 책원지로 된 소왕청으로 끊임없이 보내주었다. 지금 우리 인민들이 평양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는것처럼 동만지방의 인민들도 소왕청을 위해서라면 어떤 형태의 지원이든지 다하였다.

 

 

마촌에 도착한 두 소녀는 나를 만나려고 동행한 북동아동단학교 관리원의 안내를 받아가며 곧장 군부로 찾아왔다. 만나고보니 그들은 10살안팎의 애어린 소녀들이였다. 우리는 처음에 그들을 자매간이라고만 짐작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남남이였다. 그저 이름이 어슷비슷하였을뿐이다.

 

 

동행한 북동아동단학교 관리원은 내앞에 두 소녀를 차례로 내세우고 그들의 경력과 집안래력을 재미나게 소개해주었다. 그 소개가 대단히 인상적이였다. 관리원이 김옥순의 경력을 말할 때 김옥순자신은 눈물을 흘리였다. 나도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번 하였다. 그가 걸어온 13살이라는 짧은 인생이 너무나도 큰 비극으로 얼룩져있었던것이다.

 

 

김옥순은 9살때 벌써 20살이 넘는 지주의 아들과 혼약을 맺었다. 그것은 본인도 모르고 부모들도 모르게 사기적인 방법으로 맺어진 혼약이였다. 20살이 넘으면 남자도 로총각이라고 그런 자식을 둔 부모들은 등이 달아서 중매군을 내세워 신부감을 물색하던 세월이였다. 총각이 20살이 넘도록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있다가 부정한 방법으로 그것도 녀자의 아버지에게 술을 몇사발씩 퍼먹이고 만취된 다음 손을 끌어당겨 문서장에 도장을 찍는 식으로 혼약을 성급하게 날조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 총각은 분명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장가를 가기 힘든 부실한 청년이였거나 병신이였던것 같다.

 

 

그 문서장에 의하면 김옥순은 15살이 되는 해에 신랑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문서장에 그런 강도적인 조항이 씌여있는것도 모르고 이틀동안이나 빈사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하였다. 술에 만취되였던 그는 집에 실려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였는데 주머니에서 자기의 지장이 찍힌 약혼문서와 출처불명의 돈 80원을 발견하고는 통곡하였다. 그 80원은 딸을 지주집에 시집보내게 되는 대가로 신부될 측이 신랑될 측에게서 받는 선사금이였다.

 

 

그 사실을 알고 옥순이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딸의 운명을 한장의 문서장으로 결정해버린 그의 아버지 김재만자신은 얼마후 80원의 선사금으로 초가집을 사고 터밭을 사고 소와 돼지를 사서 묵묵히 생계를 꾸려나갔다. 강약이 부동이라고 항변했대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 이왕이면 주머니에 굴러들어온 돈을 밑천삼아 화를 복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태도였다. 딸이 자기의 장래를 생각하며 쿨쩍거릴 때마다 김재만은 이런 말로 그를 달래였다.

 

 

《얘야, 울지 말아라. 그 80원이 그래두 다 망하게 된 우리 집을 살렸다. 어쨌든 굶어죽기보다야 낫지 않겠니. 너 하나의 혼약으로 다 죽게 된 부모형제들을 살렸다고 생각하면 슬픈 마음도 가라앉을게다.》

 

 

무식하고 순박한 그는 혁명을 리해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누구든지 부지런하게 손발을 놀리면 가난을 이겨낼수 있고 지어는 백만장자까지 될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천진란만하였다. 그러다보니 자기를 착취하는 지주들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지였다. 그 지주는 드문히 옥순이네 집에 먹을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김재만은 세상에 자기네 지주처럼 고마운 지주는 없다고까지 여기게 되였다. 한번은 옥순이가 학교마당에 가서 지하공작원의 연설을 들은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재만은 딸을 외양간에 묶어놓고 온몸에 굴뱀이 질 때까지 사정없이 매를 때렸다. 딸이 혁명에 발을 잠그게 될가봐 겁났던것이다.

 

 

김재만이 계급적으로 늦게나마 각성된것은 다섯차례에 걸치는 적의 《토벌》에 마을이 재더미가 된 다음부터였다. 옥순이네도 그 《토벌》에 집과 역축을 죄다 잃고 말았다. 가까운 이웃들가운데는 불에 타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옥순아, 이제는 놈들이 망하든지 우리가 망하든지 사생결단을 해야겠다. 아버지는 세상을 너무도 몰랐다. 이제는 너희들이 혁명을 해서 저 악귀같은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딸을 왕우구유격구역으로 떠밀어보내던 날 밤 김재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후 김옥순은 송림동에 있는 김금순이네 집에 거처를 정하고 금순이와 함께 북동아동단학교에도 다니고 구유희대, 현유희대에 망라되여 군중계몽활동도 하였다.

 

 

조선의 아이들은 옥순이처럼 부모들의 곁에서 응석이나 부리고 투정질을 할 어린 나이에 벌써 민생고를 타개하기 위한 멍에를 걸머지고 생활전선에서 허덕이였다. 세월의 난파는 성년, 미성년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어린이도 몰라보는 세상, 아이들에게도 어른들과 똑같은 등짐을 걸머지우는 악착한 세상에 항거하여 우리의 소년들은 투쟁에 궐기하였다. 간도지방의 조선소년들은 도처에서 아동단, 소년선봉대, 소년탐험대와 같은 혁명조직들을 뭇고 조직된 력량으로 싸움의 마당에 뛰여들었다. 혁명적조직생활을 통해 교양되고 단련된 우리의 모든 소년소녀들은 항일혁명을 움직이는 하나의 당당한 치차가 되고 나사못이 되였다.

 

 

김옥순, 김금순이도 그 치차중의 한 치차였고 그 나사못중의 한 나사못이였다.

 

 

나는 김옥순의 경력을 듣고 측은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의 청초한 모습속에 비껴있는 한가닥의 불행은 조선의 수백만 어린이들이 당하고있던 불행의 축도였다.

 

 

하지만 혁명을 하겠다고 어린 나이에 벌써 집을 떠나 유격근거지로 찾아들어온 그 결의와 기개야말로 얼마나 장하고 떳떳한가. 오늘은 또 소왕청을 지원하려고 왕우구-다홍왜-요영구-마촌로정을 따라 수백리길을 걸어왔으니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른들이나 신고다니는 지하족을 발에 걸치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막대기로 덤불길을 헤치며 허위단심 소왕청으로 찾아온 두 소녀가 내 눈에는 몹시도 기특하고 대견스러워보이였다.

 

 

《누가 너희들을 소왕청으로 보내더냐?》

 

 

나는 저 지하족을 운동화나 고무신으로 바꾸어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두 소녀에게 물었다.

 

 

《윤병도선생님이 보냈습니다.》

 

 

두 소녀는 치마말기에 두손을 가져다붙이고 몸가짐을 가다듬으며 기운차게 대답하였다. 눈빛도 별처럼 초롱초롱했지만 목소리도 정신이 번쩍 들게 또랑또랑하였다.

 

 

나는 기분이 매우 흡족해졌다. 아이들과의 친교는 사실 나의 생활에서 하나의 큰 락이였다. 아이들의 웃음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고통과 고뇌를 씻어주는 하나의 강력한 세척제라고 말할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동심속에 잠겨보라. 그러면 그대는 생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것들로 하여 인류의 생활이 더 아름답고 다채로와진다는것과 그들의 눈망울에 차넘치는 리상을 꽃피워주고 지켜주는것이 성스러운 사명임을 가슴이 부풀도록 깨닫게 될것이다.

 

 

나는 얼굴과 종다리에 긁힌 자리가 여러군데 나있는 금순이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와 이런 질문을 하였다.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했다. 큰 령이랑 많았겠는데 넘기가 힘들지 않더냐?》

 

 

《발이 부르터서 혼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데리구온 아저씨가 왕우구로 되돌아가라고 할가봐 힘들지 않은체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들 곁에 있으면 더 좋지 않니.》

 

 

《좋기야 좋지요뭐. 그런데 언제 어른이 되겠나요. 어른이 되자면 고생을 많이 해봐야 한다구 아동단지도원선생님두 말씀해주셨는데… 난 고생을 많이 해서 빨리 어른이 되구싶어요.》

 

 

《어른이 그렇게 빨리 되여선 뭘하니?》

 

 

《조선을 독립해야지요. 김대장아저씨, 무슨 일이 있어두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주세요.》

 

 

나는 금순이의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나이는 비록 어리였지만 조선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그의 각오는 사상적으로 매우 조숙한것이였다.

 

 

《응, 그건 걱정말아라. 간도에서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재간둥이들이 굴러들어왔는데 왜 돌려보낸단 말이냐. 이제부터는 우리하고 같이 왕청에 있자. 여기서 아동단생활을 하는게 괜찮아.》

 

 

금순이는 그 말을 듣자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손벽을 마주쳤다.

 

 

나는 현과 구의 공청지도일군들에게 두 소녀를 마촌아동단학교에 편입시키고 아동단조직생활을 계속할수 있도록 해줄것과 부모의 슬하를 떠나 생소한 고장에 온 그들이 마음놓고 침식을 할수 있는 무던한 집들에 숙소를 정해줄것을 부탁하였다.

 

 

왕청의 군대와 인민은 마촌아동단학교 운동장에서 그해 5.1절을 크게 쇠였다. 5.1절행사에는 왕청지구의 군대들이 다 모이였다. 왕우구에서 온 두 소녀는 그날 달리기와 높이뛰기에서 각각 1등을 하여 왕청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금순이는 나이에 비해 몹시 체소했다.

 

 

그가 유희대의 선두에서 배낭을 메고 발을 재게 놀리며 달랑달랑 걸어갈 때면 그 순결하고 재롱스러운 모습앞에서 누구나 다 웃음을 짓군 하였다.

 

 

나자신도 그의 모습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나는 원래 생활을 비관적으로 감수하는 사람들보다도 락천적으로 감수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였다. 우리가 산에서 풀뿌리를 우려먹으며 어려운 무장투쟁을 하던 그 시기에는 한명의 락천가가 몇십문의 대포와 맞먹는 힘을 내였다. 금순이는 그 당시 당, 공청, 아동단의 3대동맹에서 제일 어린 세대를 대표하는 뛰여난 투사였고 락천가였다.

 

 

금순이를 만난 며칠후 나는 지휘부에 마촌아동단학교 아이들을 불러 그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였다.

 

 

원래 아동단원들은 배낭속에 한주일분의 식량을 상시적으로 휴대하고 다니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날 배낭검열을 당한 아동단원들속에는 학교에서 내준 미시가루를 먹어버린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금순이만은 한숟갈도 다치지 않고 한주일분을 그대로 고스란히 간수하고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먹어버렸는데 우리 막내가 참 용케 참아냈구나. 금순이가 제일이다!》

 

 

나는 배낭검열을 끝내자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며 금순이를 크게 칭찬하였다.

 

 

금순이는 수집은듯이 웃기만 하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나두 미시가루주머니를 몇번이나 꺼냈다 넣었다 했는지 몰라요. 먹구싶은걸 겨우 참았지요뭐.》

 

 

《어떻게 참았느냐?》

 

 

《다른 애들이 미시가루를 먹을 때 난 눈을 꼭 감구있었어요. 그래두 먹구싶으면 밖으로 나가지요. 밖에 나가두 먹구싶으면 우물에 가서 물을 한드레박 마시고 오군 했습니다. 그럼 미시가루를 먹은것만치나 배가 불렀거던요.》

 

 

나는 금순이의 류창한 대답을 듣고 다시한번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눈물겨운 동심속에는 유격구인민들이 당하고있는 경제적궁핍이 그대로 집약되여있었으며 그런 궁핍속에서도 억척스레 혁명을 개척해나가는 어린 불사조들의 넋이 격조높이 고동치고있었다.

 

 

그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10고뿌의 미시가루와 강낭떡을 나누어주고 배낭속에 성냥도 넣어주었다. 며칠후에는 새 솜옷과 솜이불에 신발, 공책, 연필까지 합치여 두달구지나 되는 필수품들을 아동단학교에 보내주었다. 싸움이 잦은 때여서 우리에게는 적들을 치고 로획한 전리품의 예비가 적지 않았다. 먹을것과 입을것이 귀한 때였으나 우리는 그 예비의 많은 몫을 늘 아동단학교에 돌리군 하였다.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라는것이 지금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의 움직일수 없는 원칙으로 되고있지만 남의 나라 땅에서 곁방살이를 하던 그 어려운 때에도 우리는 이 원칙의 요구에 따라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줄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결해주었다. 아이들이 먹고 입고 쓰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부대를 출동시켜 전투까지도 서슴없이 조직하군 하였다.

 

 

우리는 아동단앞에 《조선의 독립과 전세계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그들을 애국주의사상,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사상으로 교양하였다.

 

 

아동단원들은 군중계몽, 연예활동, 보초근무, 통신련락, 적정탐지, 무기탈취, 유격구방위를 위한 투쟁에서 실로 어른들에게 못지 않은 위훈을 세웠다. 적의 《토벌》에 불타버린 귀틀집들을 다시 일떠세울 때에도 우리는 일터에서 언제나 아이들을 볼수 있었으며 근거지를 사수하는 방위전의 불바다속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혁명군의 참호에 주먹밥을 들고 뛰여오던 어린 수리개들과 맞다들수 있었다. 농사철이면 그들이 밭에 가서 김도 매고 가을걷이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산과실을 따다가 유격대병실에 보내주기도 하였다.

 

 

언제인가 나는 뾰족산 중앙보초대에서 전방보초근무를 서고있는 아동단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목격한 일이 있다. 허리에 묵직한 작탄을 한개씩 찬 그들은 1.5m정도의 길이를 가진 장대끝에 쇠붙이를 붙인 창을 들고 보초를 서고있었다.

 

 

보초교대는 한시간에 한번 한다고 하였다. 성냥가치 두개를 합친것만 한 크기의 향에 불을 붙여 그것이 절반가량 타면 교대를 하군 하였다. 향이 전부 타는 시간이 두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 독특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아이들이 한번은 겹으로 된 조선바지저고리와 대님, 회색 양단조끼, 승마바지, 구두, 장화, 검정고무신을 일식으로 갖추어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우리가 아동단학교에 전리품들을 여러번 보내준데 대한 보답이였다. 우리는 그 당시 일본침략군의 수송대를 치고 로획한 조선사과도 아동단원들에게 모조리 선물하였다. 유격근거지 아이들가운데는 이국땅에서 태여나 조선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조국의 사과조차 구경하지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하였다. 유격대원들이 로획한 조국의 사과를 상자채로 가져다주었을 때 아동단원들이 얼마나 감격했고 얼마나 절절한 감사의 정에 사무쳐있었는가에 대하여 그 일화의 산 증견자이고 직접적인 체험자인 김옥순은 자주 뜨겁게 회고하였다.

 

 

박길송아동국장은 어느날 아동단학교에 찾아가 이런 말을 꺼냈다.

 

 

《얘들아, 김대장선생님께서 우리를 친자식처럼 끔찍이 사랑해주시는데 우리는 지금 사랑을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못하고있다. 김대장선생님에게 우리의 성의를 조금이라도 표시해야겠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말들 해보아라.》

 

 

아동국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금순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옷을 해드리자요. 대장선생님은 글쎄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계신다지 않아요.》

 

 

박길송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금순이가 방금 좋은 옷을 해드리자구 했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아이들은 일제히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좋다면 됐다. 나도 금순이처럼 두툼한 옷을 해드리자고 생각했다. 천을 구해다가 부녀회원들에게 부탁하든가 재봉대에 부탁해서 멋들어지게 옷을 만들자꾸나. 그런데 너희들이 알아야 할것은 천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는것이다.》

 

 

《버섯을 뜯어다가 말려서 팔면 돼요. 버섯값이 비싸다구 했어요. 돈만 있으면 천이야 못 구하겠나요.》

 

 

금순이가 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참새처럼 조잘거렸다.

 

 

《옳아요! 옳아요! 버섯을 뜯어다가 지주들에게 팔자요!》

 

 

다른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부터 아동단원들은 박길송과 함께 광주리를 들고 산으로 돌아다니였다.

 

 

나는 그들이 버섯을 따들고 대렬합창을 하며 리수구골안을 지나가는것을 여러번 보면서도 그 버섯광주리속에 무슨 비밀이 담겨있는지 간파하지 못하였다. 그저 저 애들이 병원에 있는 전상자들에게 입맛이 당기는 부식물을 마련해주려고 끔찍이도 애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을뿐이다. 그런데 그 버섯이 돈으로 되고 옷으로 되여서 어느새 내앞에 나타난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계시는 대장선생님께서 입으시라고 저희들은 옷 한벌을 지어가지고 왔습니다. 사양마시고 꼭 받아주십시오.》

 

 

금순이가 아동단경례를 맵시있게 붙이고나서 나에게 하는 말이였다.

 

 

그때 내가 정말 홑옷을 입고 겨울을 지내군 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 옷을 받고나니 어째서인지 속으로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옷을 받아들자 이런 말로 아이들을 달래였다.

 

 

《얘들아, 나는 비록 홑옷을 입고 지내지만 혈기왕성한 사람이다. 너희들의 성의는 평생 잊지 않겠다. 그러나 이 옷은 소왕청에서 년세가 제일 높은 할아버지에게 드리려고 하니 섭섭해들 말아라.》

 

 

아이들은 울상이 되여 원망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내가 옷을 받지 않는다고 못내 서운해하였다. 내가 두세번 타일러서야 애들은 마지못해 웃음을 지었다.

 

 

군중집회가 끝난 다음 금순이는 내곁에 다가와 군복소매를 살그머니 만져보면서 귀속말로 이렇게 걱정하였다.

 

 

《천이 얇아서 바람이 쌩쌩 날아들겠네.》

 

 

지금도 엄동설한이 되면 소왕청에서 금순이가 하던 그 말이 이따금씩 귀전에서 감돌군 한다.

 

 

처음에 왕청사람들은 그를 《깜장금순이》라고 불렀다. 눈동자가 새까맣다고 유격구인민들이 그런 별명을 지어붙이였다. 조금후에는 《마촌콩새》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겨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였다. 콩새처럼 몸집이 작고 귀염상스러운 어린이라는 뜻에서 길주, 명천 지방출신녀성들이 달아놓은 애칭이였다.

 

 

사람들이 《깜장금순이!》 하고 불러도 금순이는 《예!》 하였고 《마촌콩새!》하고 불러도 《예!》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하루에 별명을 열번이상 들어도 절대로 노여움을 타는 성미가 아니였다.

 

 

금순이가 무대에서 탑프춤을 추는 날은 왕청사람들의 명절이였다. 그는 옥순이와 함께 늘 이 춤을 추군 하였는데 아동단유희대의 공연종목가운데서는 늘 이 종목이 제일 많은 박수갈채를 받군 하였다. 그가 발을 재게 놀리며 다리와 다리사이로 수건을 뽑는 동작을 되풀이할 때마다 관객들은 발을 구르며 환성을 올리였다.

 

 

나는 왕청에 있을 때 아침마다 백마를 타고 마촌골안을 돌아다니며 유격구의 실태를 료해하고 새로운 구상을 하군 하였다. 아침산보는 나에게 있어서 어길수 없는 일과였다. 내가 백마를 타고 왕청골안을 돌아다닐 때면 유격대나팔수 송갑룡과 전령병 조왈남이 나와 동행하였다. 나는 아침산보를 할 때마다 길가에서 꼭꼭 아동단원들의 가창대대렬과 맞다들군 하였는데 그 대렬을 볼 때의 기분이란 참으로 흐뭇하고 상쾌한것이였다.

 

 

량볼이 사과알처럼 붉은 아이들의 건강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을 마상에서 굽어볼 때에 느끼는 대견스러운 심정을 어떻게 하면 방불하게 그려낼수 있겠는지. 나는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에도 아동단원들이 보고싶어서 아침산보를 중단하지 않았다. 혹시 그 애들이 눈비를 무릅쓰고 산보를 나왔다가 로상에서 나를 만나지 못하면 얼마나 허전해할가 하는 생각을 하군 했다. 아이들도 나와 꼭같은 심정을 가지고 궂은날이나 마른날이나 할것없이 산보길을 한번도 비우지 않았다.

 

 

가창행진을 할 때의 선창은 노상 금순이가 떼군 하였다. 수십가지의 음성이 뒤섞여 울리는 조잡한 합창속에서도 우리는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금순이의 류다른 목소리를 쉽게 가늠해내군 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어째서인지 오늘 하루도 유격구에서 만사가 다 잘되여나가겠구나 하는 미신에 가까운 안정감이 마음속에 깃들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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