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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3권 제 7 장 4. 국제당파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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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6-10 20: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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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3권 제 7 장 4. 국제당파견원

  

   


  

4. 국제당파견원  

 

 우리가 유격근거지에서 좌경과의 투쟁을 한창 벌리고있던 1933년 4월경에 동장영은 다부산자차림을 한 중년손님 한사람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차림새와 행동거지가 퍼그나 점잖고 세련된 중년의 그 사나이는 나를 보자 멀리서부터 미소를 짓고 인사의 표식으로 머리우에 한쪽손을 들어올렸다 내리였다. 내가 알고있는 구면손님일것이라고 잘못 판단할만큼 다가오는 그 사나이의 눈동자는 반가움으로 가득차있었다.

 

 

악수를 나누고보니 구면은 아니였다. 이상한 일은 난생처음 보는 그 알지 못할 손님이 어째서인지 구면처럼 자꾸 느껴지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그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이 수수께끼같은 손님이 바로 국제당파견원(순시원) 반성위였다. 반이란 성이고 성위는 이름이 아니라 만주성당위원이란 직책을 이르는 략어였다. 위증민을 로위라고 부르듯이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로판이라고 불렀다. 《판》은 《반》의 중국식발음이다. 중국사람들은 나이가 많거나 존경을 받을만 한 사람들의 성앞에 《로》자를 붙이는 좋은 례절을 가지고있었다. 반성위를 본명대로 리기동이라고 부르거나 반경유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성위는 만주지방의 공산주의자들속에 널리 알려진 이름난 혁명가였고 당활동가였다.

 

 

나에게 반성위에 대한 이야기를 맨 처음으로 해준것은 왕윤성이였다. 9.18사변후 반성위가 녕안현당 서기로 공작할 때 왕윤성은 그밑에서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기가 녕안현당에서 선전위원의 직을 가지고 일할수 있은것도 반성위의 요구에 의한것이였다고 하면서 그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고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반성위는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으로서 중국의 무창폭동과 북벌전쟁에도 참가하였고 쏘련에 가서 공부도 한바 있는 능력있는 로간부라는것이였다. 한때는 수녕중심현위 서기로도 활약하였는데 자기자신은 반성위의 인간미와 예리한 통찰력에 매혹된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하였다.

 

 

반성위에 대한 왕윤성의 존경심은 보통정도가 아니였다.

 

 

나는 그때 그의 말을 듣고 우리의 린접에서 반성위와 같은 우수한 혁명가들이 활동하고있는데 대하여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였다.

 

 

그후에는 최성숙, 조동욱이 북만에서 나와 또 반성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최성숙은 자기를 왕청에 가라고 추동한 사람이 반성위였다고 하면서 그의 지도밑에 녕안시가에서 5.1절시위를 하던 때의 일을 재미나게 말해주었다.

 

 

이런 전제가 있어서인지 우리는 자연히 왕윤성과 최성숙에 대한 이야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바치게 되였다.

 

 

《녕안에서 온 최성숙동무가 잘 있습니까?》

 

 

우리의 대화는 반성위의 이런 물음으로 시작되였다.

 

 

아래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반성위의 특출한 장점이라고 하던 최성숙의 말이 되살아오르며 새삼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건강합니다. 북만에서 오자마자 대왕청쏘베트대표로 선출되였더랬습니다. 지금은 소왕청구 부녀부위원으로 선거되여 부녀회사업을 하느라고 바삐 보내고있습니다.》

 

 

《그 동무가 여기 와서도 말을 탑니까?》

 

 

《탄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혁명군에 들어가서 기병이 되겠다는 결심을 품고 승마기술을 배운 동무입니다. 아주 담차고 이악한 처녀이지요.》

 

 

《그러고보면 우리 왕청사람들이 호박을 잡은셈이구만요. 북만에서 놔준것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후회는 무슨 후회입니까. 그의 가족들이 북만에 있지만 나는 그를 보고 동만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털어놓고 말해서 만주지방 혁명투쟁의 중심이야 간도가 아닙니까. 그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혁명을 더 본때있게 하고싶거든 왕청에 가라, 거기엔 인민의 세상으로 된 근거지가 있다, 나는 간도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 나도 거기에 가서 일하고싶다고 말입니다.》

 

 

나는 반성위가 동만지방을 조선혁명의 기본적인 책원지라고 평가하는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유격구들에서 벌어지고있는 좌경망동적인 사태를 목격하게 되면 그가 간도에서의 혁명투쟁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가지겠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 반성위의 정치적리념이나 정책적립장 같은것은 아직 미지수나 다름없었다. 반성위가 정치적시야가 넓고 투쟁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여 그가 무조건 좌경을 반대하는 립장에 선다는 법은 있을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성위에 대한 왕윤성과 최성숙의 평가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들은 반성위가 아래사람들을 대하는데서 절대로 편견을 앞세우지 않는다는것과 주견을 가지고 매사를 공정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는 로숙한 일군이라는데 대하여 여러번 강조하였다. 반성위에 대한 나의 첫인상도 무척 좋았다.

 

 

그날은 그런 정도로 풋인사나 하고 그치였다. 우리는 후날 다시 만나서 본격적인 담화를 나누기로 하고 서로 헤여졌다.

 

 

국제당손님은 시간을 잘못 선택한셈이였으니 나는 부대를 데리고 파도식으로 달려드는 수천명의 《토벌군》무력을 격퇴하기 위하여 전투장으로 당장 나가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였던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부대를 따라 전투장에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허줄한 총이나 한자루 주시오.》

 

 

반성위는 동만에 왔다가 싸움구경도 못하고 돌아가면 국제당파견원으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고 일생 후회를 가지고 살게 될것이니 하루동안의 참군이야 허락하지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그냥 대렬을 따라오려고 하였다.

 

 

《반동지, 총알은 국제당파견원을 가리지 않습니다. 싸움구경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테니 오늘은 로독이나 푸시지요.》

 

 

나는 반성위를 설복시키고나서 싸움터로 나갔다.

 

 

적들은 소왕청유격구를 삼면으로 포위하고 련 3일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우리는 완강한 방어전으로 그 공격을 견제하고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적들은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토벌군》은 그때 관문라자(돌문안)방향과 뾰족산방향에서 봄안개를 리용하여 은밀히 유격구로 기여들었다가 자기편끼리 맞불질을 하는 희비극까지 연출하였다. 이 망원전투가 한동안 소왕청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였다. 반성위도 그 소식을 듣고는 폭소를 터뜨리였다고 하였다.

 

 

반성위의 출현은 왕청사람들에게서 각이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였다.

 

 

쏘베트좌경로선을 국제당의 시정방침으로 보고 국제당의 명령일하에 재채기도 하고 하품도 하는 사람들은 로판이 자기들의 립장을 지지해줄것이며 따라서 그의 출현은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제창하는 사람들에게 우경의 딱지를 붙이고 그들이 다시는 정권형태문제를 가지고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제재를 가하는 좋은 계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쏘베트로선을 좌경이라고 비난하면서 인민혁명정부로선에 의한 새 형태의 정권수립을 부단히 추구해온 사람들은 쏘베트를 반대해온 자기들의 립장이 로판에 의해 거부될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들에게 국제당의 명의로 되는 처벌까지 가해질수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반성위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였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반성위의 출현이 쏘베트로선으로부터 방금 해탈하기 시작한 유격구의 정세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계기로 될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전자가 미리부터 승리의 개가를 올리고있었다면 후자는 마음속으로 패배의 비가를 부르고있었다. 그들이 이런 립장을 취하게 된것은 량자가 다같이 국제당의 권위와 권한을 절대시한데 있었다. 한 당의 파산을 선포할수도 있고 한 인간의 범죄를 심판할수도 있는 국제당은 그들에게 있어서 국제적인 《대법원》과 같이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그들은 국제당이 한 혁명가의 운명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다고 간주하였다.

 

 

반성위의 출현은 유격구를 긴장시키였다. 나도 역시 팽팽하게 긴장된 그 공기를 매 순간마다 감촉했다.

 

 

국제당의 의사와 맞지 않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쏘베트로선에 대치시키고 쏘베트의 시책을 좌경망동이라고 한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반성위가 어떤 립장을 취하겠는가 하는것은 자못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였다.

 

 

나는 좌경의 전횡밑에서 인민이 울고있는 동만땅에 국제당이 파견원을 보내준것은 혁명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쏘베트로선과 인민혁명정부로선이 서로 대치되여 제가끔 자기의 정당성을 론증하는 시점에서 반성위의 출현은 그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고 다른 하나를 부정하게 될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국제당이 우리의 립장을 지지해줄것이라는 담보는 아직 그 누구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국제당과 만주성위를 비롯한 여러 조직들에서 유격근거지의 실정에 맞지 않는 지령들을 련발하는데 대하여 그에게 항의를 들이댈 결심도 서있었고 그와 함께 쏘베트로선집행과 반《민생단》투쟁과정에서 발로되고있는 극좌적인 경향을 바로잡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리론투쟁까지 하리라는 각오도 가지고있었다. 처벌이나 그 무슨 제재조치에 대한 우려 같은것은 념두에도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나는 결판을 낼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 불평을 가진 일부 동무들이 동만의 사태를 수습해달라는 신소편지를 써서 국제당에 보낸것 같았다. 국제당에서 그 편지들을 검토하고 동만지방은 조선사람들이 집결되여있는 곳이니 조선사람인 반성위가 나가서 일을 수습하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후날 반성위자신도 국제당에 그런 신소청원이 제기된것이 사실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소왕청방어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다음 반성위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첫 상봉의 날보다는 얼굴빛이 밝지 못하였다. 겉으로는 미소를 띠고있었으나 속으로는 무거운 시름거리를 안고 그것을 묵새기기 위해 애쓰는듯 한 파견원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가 마침내 정치철학이 복잡하게 교차되는 준엄한 현실생활의 십자로에 들어섰다는것을 간파하였다. 보매 그는 동장영과 무슨 로선상 문제를 가지고 충돌한것 같았다.

 

 

나는 마촌에서 제일 큰 리치백로인네 집에 반성위의 숙소를 정해주고 그집 웃방에서 열흘 남짓하게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성위는 중국말을 아주 잘하였다. 그가 처음부터 중어로 말하는 바람에 나도 자연히 중어로 그와 대화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화는 주로 밤과 새벽시간에 나누었다. 낮에는 내가 부대를 지휘해야 하므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반성위도 낮이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유격구의 실태료해를 하느라 바삐 보냈다.

 

 

객지생활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남의 집 웃방살이라는것이 비록 불편스러운 점은 있지만 손님들사이를 얼마나 친밀하게 해주는지 그리고 그처럼 친밀한 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구수하고 흥미진진한것인지 잘 알것이다. 나와 반성위도 그 열흘사이에 서로 생살이라도 떼줄만치 친근한 사이가 되였다.

 

 

반성위는 나보다 나이가 20여살이나 더 든 투쟁경험이 풍부하고 로숙한 혁명가였지만 틀을 차리거나 년령의 격차로부터 오는 거리감을 조금도 두지 않고 나와 동지  동지로서 허심탄회하게 열정적으로 담화를 하였다.

 

 

처음에는 혁명실천과 관련되는 공식적인 화제를 떠나서 각자의 자서전이 소개되였다. 내가 자기를 소개하고나면 반성위가 자기 경력을 련달아 공개하였다. 그다음은 엇바꾸어가며 그 일생기를 보충하든가 감상을 발표하였는데 밤이 지새는줄도 몰랐다.

 

 

반성위는 내가 20살도 되기 전에 네번이나 붙잡혔으며 감옥생활도 했다는 말을 듣고 사뭇 신기해하였다.

 

 

《그러니 감옥살이를 하는데서는 김동무가 나보다 선배인셈이구만.》

 

 

그는 자기도 할빈에서 감옥밥을 좀 먹었는데 5.1절대시위를 조직한것으로 하여 녕안현당은 풍지박산이 되였다고 하였다. 만주국 관헌들의 무자비한 탄압과 일본군의 《토벌》에 조직들은 다 파괴되고 당원들과 핵심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반성위는 그것을 당대렬이 급격히 확대되고 그 활동이 적극화되는 과정에 자기네 머리를 병들게 한 현훈증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 대신 5.1절시위의 교훈이 김해산, 리광림을 대장으로 하는 녕안유격대창건의 정치적동기로 되였다는것만은 그도 인정하고있었다.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좀 맞고서야 우리 시위가 서투르게 조직된 철늦은 시위였다는걸 깨닫게 되였소. 조직들을 더 깊이 지하에 들여보내고 무장투쟁을 해야 할 때 글쎄 현성거리에서 당원들까지 내세워 시위를 조직하다니…》

 

 

반성위는 그 시위에 대한 말을 꺼낼 때마다 자기자신에게 화를 내군 하였다. 그리고나서는 우리가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여 조직했던 시위투쟁을 연방 격찬하였다. 그는 남들의 업적앞에서 공정하고 대범한 반면에 자기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하여서는 과소평가하든가 지나치게 허무적으로 대하는 그런 류형의 사나이였다.

 

 

《며칠전에 생일 스물한돐을 맞이했다면 내 나이의 절반밖에 안되는데 감옥생활에서도 선배라고 해야겠지만 총적인 인생에서도 김동무는 내 선배라고 해야겠소.》

 

 

반성위가 내 경력을 다 듣고나서 하는 말이였다.

 

 

나는 그가 선배라는 말을 자꾸 하는 바람에 쑥스러운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반동지, 그렇게 자꾸 추어올리는 말씀만 하다가 젊은 사람을 아예 병신으로 만들지 않겠습니까?》

 

 

반성위는 로씨야사람들식으로 두팔을 쩍 벌리고 어깨를 으쓱해보이였다.

 

 

《김동무를 평가하는 그 리면에는 사실상 내자신의 일생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지 못한 사람이요. 나이 43살이면 좋은 시절을 다 보냈다고 말할수 있는데 남들에게 선을 보일만 한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으니 야단이 아니요.》

 

 

《너무 겸손한 말씀입니다. 반동지의 생애에는 남방의 폭양도 있고 북방의 폭설도 있습니다. 웃음도 있고 고민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자기를 허무적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40이 지났다고 해서 어떻게 좋은 시절이 다 갔다고 할수 있습니까?》

 

 

내가 이런 비판을 해도 반성위는 그것을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한다고 생각하였다. 중국 남방에서의 활동은 제껴놓고라도 북만에서 녕안현위와 수녕중심현위의 서기직을 력임하고 녕안유격대조직의 산파역까지 감당해온 그의 공적은 결코 무시할수 없는것이였다. 수녕중심현위란 목릉, 녕안, 동녕, 밀산 등의 현위들을 통합하여 내온 규모가 상당히 큰 현위였다. 한때는 반성위가 국제당과 만주성위사이에서 중간련락기관의 사명을 수행하는 길동국의 지도간부로 영전된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그 소문이 비록 실천적으로 결실을 보았는지 어떻게 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국제당이 그를 소환하여 동만지방사업을 지도검열하는 파견원으로 보낸것만 보아도 그가 신망있는 일군이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우리의 담화는 자기 소개의 경지로부터 호상관심사로 되는 현행정치문제에 대한 실정의 통보와 의견교환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첫번째로 론의한것은 국제당과 국제공산주의운동에 관한 문제였다. 국제당련락소 일군들과의 련계를 가지면서도 그들과 함께 솔직하고 심도있는 담화를 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서 그 론의는 매우 유익한것이였다.

 

 

나는 반성위에게 국제당의 결정을 리행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노력에 대하여 소개한 다음 국제당로선과 지시에 대한 우리의 립장과 태도를 밝히였다.

 

 

《우리는 국제당이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참모부적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다고 간주합니다. 국제당은 지난 기간 전세계공산주의자들을 하나의 국제적인 련합에 집결하여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평화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거대한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우리는 코민테른이 공산주의운동에서 중앙집권적기능을 수행하는 국제적중심이라는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국제당규약과 로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반동지, 이거 버릇없는 태도라고 나무라겠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국제당의 처사를 두고 좀 할 말도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말은 반성위의 얼굴표정을 순간에 긴장시키였다.

 

 

《그 말은 어떤 뜻으로 리해해야 할가? 혹시 무슨 의견이라도 가지고있는게 아니요?》

 

 

《글쎄요. 의견이랄지 불만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오래전부터 국제당을 향해 말하고싶은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좋으니 여기서 속시원히 다 말해봅시다.》

 

 

반성위는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주시하였다.

 

 

나는 오늘이야말로 국제당을 향하여 우리가 하고싶었던 말을 꺼리낌없이 할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종파를 두둔하자는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국제당이 지난날 조선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한데 대하여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종파야 조선공산주의자들속에만 있는것도 아니고 감자도장놀음을 하는거야 인도지나공산당이나 그밖의 당들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내가 말을 끝냈을 때 반성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것은 긴장이 아니라 놀라움 같은것이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반성위에게도 나의 그 말은 예상밖의 급습으로 된것 같았다.

 

 

《나는 국제당파견원으로서가 아니라 김동무와 다름없는 조선공산주의자의 한사람으로서 조선공산당해산을 수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선포한 국제당의 처사를 섭섭하게 생각하고있는데 대하여 동감을 표시하는바이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것이 있소. 조선공산당은 해산됐는데 인도지나공산당이 해산되지 않고 건재하는건 무슨 리유때문인가 하는것이요. 그건 호지명과 같은 뛰여난 인물이 국제당에 인도지나대표로 틀고앉아있었기때문이였소. 그런데 그 당시 조선공산주의운동대렬에는 국제당의 인정을 받을만 한 출중한 인물이 없었고 령도핵심이 없었던것이요.》

 

 

당이 해산되게 된 기본적인 리유의 하나를 지도자와 령도핵심이 없는데서 찾는 반성위의 말은 당해산의 1차적원인을 파쟁에서만 찾아보는데 습관된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국제당의 인정을 받을만 한 세계적인 지도자의 결핍, 그것으로 하여 조선공산당의 해산을 저지시킬수 없었다고 하는것은 사리에 맞는 반성위식의 분석이고 발견이였다.

 

 

우리는 국제당문제와 함께 조선혁명에서 제기되는 실천상문제를 가지고서도 가치있는 토론을 하였다.

 

 

반성위는 특히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당이 자기 존재를 끝마치고 대다수의 당원들이 해외에 망명하여 남의 나라 당에서 곁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좌절상태에 머무르지 말고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의 당을 새롭게 창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조선혁명가이기때문에 이야기하는것은 아니지만 조선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공산당을 창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오. 조선공산당이 해체선언을 받았다고 해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당재건의 가능성을 영영 박탈당한것으로 그 선언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것이요. 조선사람이 자기의 당을 가지는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정정당당한 권리요. 곁방살이도 한두해이지 한정없이 남의 집에 그냥 얹혀살수야 없지 않소.》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기 당을 재건해야 한다는 반성위의 주장은 카륜에서 채택되였던 우리의 당창건방침과 완전히 일치하는것이였다.

 

 

나는 반성위의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옳습니다. 조선사람이 자기 당을 재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것은 조선혁명을 포기하는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집 곁방에서 눈치놀음이나 하며 껄렁껄렁 세월을 보내는 그런 인간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립장을 가지고 우리는 세해전에 이미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상향식방법으로 당을 창건할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내놓고 건설동지사란 명칭을 가진 당조직을 내왔습니다.》

 

 

나는 첫 당조직을 내오게 된 력사적경위와 그것을 결성하고 확대하는 도상에서 직접 체험했던 가지가지 일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반성위는 나의 말을 주의깊이 들어주었다.

 

 

《내가 공상가라면 김동무는 철저한 실천가라고 할수 있겠구만. 어쨌든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것 보시오. 조선공산주의운동선상에는 파벌이 너무 많아서 야단이요. 그러니 파벌을 하는 놈팽이들은 인정하지 말고 반드시 젊은 사람들끼리 새 출발을 해야 하오. 종파를 그냥 두어가지고는 아무것도 할수 없소. 적지 않은 종파군들이 왜놈의 개가 되였소. 개가 안된 놈팽이들가운데도 종파습성이 골수에 사무쳐서 혁명을 하려고는 생각지 않고 헤게모니쟁탈에만 열중하고있는자들이 적지 않소. 파벌과 싸우려면 우리가 반일투쟁을 잘해야 합니다. 투쟁과정에 대렬이 강화되고 핵심이 묶어지면 그것이 곧 당을 창건하는 밑천으로 되는것이요.》

 

 

반성위의 이 말은 나를 몹시 흥분시키였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소리는 아니였다. 종파에 오염되지 않은 새 세대 청년들로 당을 창건해야 한다는것은 우리가 이미부터 주장해온 기본방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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