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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MP3]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4권 제10장 3. 공청의 산아들 12,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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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1-20 18:2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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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4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 4 권 제10장 3. 공청의 산아들(제4회) 12-61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 4 권 제10장 3. 공청의 산아들(제5회) 13-61

 

 

 

 

4권 제10장 3. 공청의 산아들

 

 

 

 

라자구공청위원으로 사업하던 박호준은 뛰여난 조직적수완과 능란한 군중공작으로 적구공청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다. 라자구양주소의 소년로동자들을 반일조직에 묶어세우고 파업투쟁이 승리하도록 배우에서 지도한 인물은 다름아닌 박호준이였다. 그러나 그는 공작도중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적들은 그를 체포하자 금시 라자구일대의 비밀조직을 다 알아내기라도 한것처럼 쾌재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였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써도 박호준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어느날 놈들은 반주검이 된 그를 회유해보려고 이렇게 구슬렸다.

 <너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이다. 나이가 아깝다. 너를 믿고 홀로 사는 너의 어머니가 불쌍하지 않은가.

공청조직과 간부들의 이름만 대면 너는 많은 상금을 받고 호강스럽게 살수 있다. 그러니 되지도 않을 혁명에 대한 공상을 말고 살길을 찾는게 어떤가.>

그러자 박호준은 쓴 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하였다.

 <공청조직과 간부의 이름을 부를테니 받아쓰시오. 나를 지도한 간부의 성은 <공>가요, 이름은 <산당>이요.>

적들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적다가 놀라는것을 보고 박호준은 벽을 짚고 일어나 그들을 조롱하였다.

 <나를 키워준 그 위대한 간부의 이름을 너희들이 수첩에 적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제 공산당은 내 원쑤를 갚아 줄것이다.>

박호준은 이렇게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저고리앞자락을 활짝 헤치고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공청원의 불굴의 영상을 눈앞에 그려보라. 그가 어떻게나 떳떳이 걸어갔던지 적군사병들조차 모두 공산주의자들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공포에 질려 수군거리였다.

한 애연가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그의 손에 슬그머니 담배를 쥐여주기까지 했다. 처녀들은 그의 발밑에 꽃묶음들을 내던졌다.

항일혁명이 키워낸 공청의 첫 세대들은 이렇게 신의를 지켜 싸웠고 깨끗이 죽을줄도 알았다.

그때 공청대렬에서 교양육성된 공청원들은 자기 개인의 리익을 조직과 혁명의 리익에 완전히 복종시켰다.

공청원 림춘익도 바로 그런 투사였다.

공청 연길현 8구 남선특별지부 서기였던 그는 일찍이 지하공청단체를 조직한 유능한 정치공작원이였으나 그 단체를 지도하다가 체포되였다.

그도 역시 야수적인 고문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조직의 비밀을 끝가지 고수하였다.

림춘익은 다른 동지들이 한 비밀공작까지도 다 자기가 했다고 진술하였다. 그 덕으로 체포되였던 동지들은 모두 석방되였다. 그는 18살 꽃나이에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아름답고 고상한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조직과 동지들을 살려내고 홀로 형장에 나선 18살 공청원의 고결한 인품앞에서는 적들도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공청원 리순희도 항일혁명이 낳은 불굴의 투사이다. 내가 리순희를 처음으로 만나본것은 1934년초 겨울이였다고 생각된다. 그때 나는 적들의 <토벌>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만나려고 아동단학교에 갔다가 리순희를 보게 되였다. 연길에서 현아동국장으로 사업하던 그가 왕청현 아동국장으로 소환되여온지 얼마 안되는 때였다.

내가 아이들속에 싸여 아동단학교마당에 서있을 때 리순희가 급히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눈매가 시원하게 생긴 그는 시내가의 물망초처럼 청초한 기운을 풍기는 처녀였다.

학교마당에서는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고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고 좋아라 매달리는 아이들속에는 홑바지저고리를 입고있거나 맨 짚신에 몽당치마를 두른 애들이 많았다. <토벌>을 당할 때 불속에서 뛰쳐나왔는지 얼굴에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도 보이였다. 적통치구역에서 부모를 잃고 찾아들어온 아동단원들은 거의나 헐벗은 몸들이였다.

나는 화상을 입은 한 어린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아동단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그 무슨 간절한 기원을 담고 나를 바라보는것 같았다.

그때 나는 몹시 아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기어이 너희들을 고아로 만든 왜놈들을 쳐없애야겠다고 속다짐하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애들에게 진심을 담아 말하였다.

 <너희들은 우리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앞날의 기둥이다. 너희들이 명랑할 때 우리도 명랑하고 너희들이 잘 자라면 우리도 기운이 솟는다. …어서 무럭무럭 커서 나라의 훌륭한 기둥들이 되거라.>

아이들은 금시 밝아진 얼굴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소리를 모아 기운차게 대답하고나서 좋아라고 떠들어댔으나 아동국장 순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장군님, 용서해주십시오. 공청조직은 저에게 아동국장의 책임을 맡겨주었는데 아이들이 저렇게 헐벗고있는것을 보면 서도…>

순희는 내앞에서 죄를 진 사람처럼 민망해하였다. 눈물에 젖은 그의 얼굴에는 짙은 회오의 빛이 어려있었다.

헐벗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어찌 리순희에게 있겠는가. 사실상 리순희는 아이들의 옷을 꿰매주고 신발을 손질하고 공책들을 매주느라고 밤에도 눈을 붙일새가 없었다.

내가 리순희와의 첫 상봉에서 받은 강한 인상은 자기 사업권안에서 나타나는 모든 잘못과 불상사들의 원인을 늘 주관에서 찾는 그 혁명가적인 자아반성의 태도였다.

나는 며칠후 아동단원들을 위해 일부러 전투를 조직하였다. 로획한 전리품을 가지고 아동단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솜이불과 새 옷 그리고 신발, 학습장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었다.

유격대원들이 피를 바쳐서 마련한 어린이들의 새 옷에 볼을 비비며 울고웃던 리순희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리순희는 그 일이 고마워서 어느날인가 아동단유희대를 무어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장군님! 솜이불과 새 옷을 보내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다소나마 보답하겠다고 아이들이 연예대를 무어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날 연예무대에서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준 종목중의 하나가 구연이였다.

나어린 소녀가 새 옷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와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왜놈들에게 학살되였다, 그러나 나는 새 옷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씩씩하게 자라고있다, 내가 입은 이 새옷은 유격대 언니, 오빠들이 피를 바쳐 구해준 옷이다 하고 허두를 떼고 화상을 입은 자기의 자그마한 손을 내보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왜놈의 <토벌>에 상처입은 이 손을 어루만지시며 너희들이 명랑할 때 우리도 명랑하고 너희들이 잘 자라면 우리도 기운이 솟는다고 하셨어요.

유격대 오빠, 언니들!

우리들은 명랑하게 잘 자라고있으니 기뻐해주세요. 기운을 내주세요.

장군님 말씀대로 나도 어서 무럭무럭 커서 공청원 오빠, 언니들처럼 총잡고 왜놈과 싸우겠어요. …>

소녀의 구연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무르익은 풍년이삭에서 근실한 농민의 구슬땀을 보듯이 우리는 그 무대에서 어린이들에게 바친 리순희의 심혈을 읽었다.

어느날 리순희는 나를 찾아와서 느닷없이 자기를 적구공작에 보내달라고 제기하였다.

아동단사업에 심혈을 쏟아왔고 거기에서 더없는 보람을 느끼고있던 그가 갑작스레 그런 제기를 하자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리순희는 그후 공청조직에 거듭 제기하여 마침내 박길송과 함께 라자구로 파견되였다.

삼면이 험준한 산으로 첩첩히 둘러싸여있는 라자구의 만첩청산과 비옥한 전야에는 항일혈전의 발자취와 함께 적구공작의 길을 걸어간 용감한 공청원들의 붉은 넋이 어려있다.

나는 여기서 리순희의 적구공작과정을 루루이 기록하려고 하지 않는다. 필요한것은 꽃다운 나이에 서슴없이 목숨을 바친 그의 정신력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이다.

리순희는 그때 라자구에서 조금 떨어진 초막을 근거지로 삼고 공작하였다. 찬바람이 스며들고 비물이 새는 어설픈 그 초막에서 봄을 맞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그 기간에 라자구에서는 공청조직이 늘어나고 아동단조직이 자라났다. 원쑤들의 아성에 강유력한 혁명의 포대가 쌓아진것이다.

리순희는 이 포대를 쌓느라고 변장한 몸으로 군경들의 총검과 밀정들의 감시가 무시로 뒤따르는 위험천만한 적구를 주야불식으로 수없이 누비며 다니였다.

그러나 그는 리봉문이라는 고약한 밀정놈에게 뒤를 밟히여 그만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적들은 라자구의 지하조직을 들춰내려고 순희를 음침한 철창속에 가둬넣고 가혹하게 고문하였다. 지하조직의 운명은 리순희에게 달려있었다.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라자구에 깔려있는 조직망들이 다 들창이 나고 애써 쌓아올린 혁명의 포대가 일조에 무너질수 있었다.

놈들은 거짓약속과 감언리설로 처녀의 심장을 움직여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리순희에게서 알아낸 비밀은 오직 하나, 그가 공청원이라는 사실뿐이였다. 아마도 순희는 철창속에 들어가서 공청원의 의미를 더욱 크게 느꼈던것 같았다.

고문을 주관하던 라자구헌병대 대장은 악에 치받쳐 마침내 순희를 총살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사형전날밤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헌병대장이 리순희에게 사형을 선포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꾀여보려고 졸개들을 이끌고 순희를 찾아갔을 때였다.

그때 순희는 옷을 손질하고있었다. 비록 땀에 절고 피로 얼룩지고 갈기갈기 찢어진 옷이나마 단정히 입고 사형장에 나가고싶어서 그랬을것이다.

헌병대장을 개처럼 따라다니던 리봉문이란자가 처녀의 곁에 다가가서 네가 살아날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이 시각밖에 없다, 꽃다운 네 나이가 아깝고 불쌍해서 그러니 라자구에 있는 지하조직원의 이름을 한사람만이라도 외워바쳐라. 그러면 너는 살아난다고 하였다. 처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피에 엉킨 머리를 비다듬고 찢어진 저고리품에 손을 가져가더니 조그마한 회색주머니 하나를 꺼내였다.

순간 리봉문은 사색이 되여 감방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교형리들도 아우성을 치며 그를 따라나갔다. 리봉문은 순희가 꺼낸 회색주머니를 수류탄과 같은 무슨 폭발물로 착각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폭발물이 아니라 흙주머니였다. 그 앙증스러운 주머니는 순희 아버지가 유격근거지에서 전사할 때 딸에게 물려준것이다.

 <놀라지들 말거라! 이것은 내 나라의 흙을 담은 주머니다. 더러운 그 목숨이 무얼 그리 귀중해서 줄행랑을 놓느냐!>

조국의 흙을 품에 안고 철창속에서 광복의 날을 그려본 공청원 리순희와 변절자 리봉문의 인격적대조를 <봉황새와 까마귀>라는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무리한 비유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리봉문과 같은 배신자가 그 흙주머니의 가치를 알수 있었겠는가.

이튿날 리순희는 사형장에서 혁명만세를 부르며 최후를 마치였다. 그가 마지막순간에 부른 <공청가>를 아래에 소개하고 싶다.

새 세상 동터온다 어서 마중가자

 우리는 무산청년 모두 앞서가자

 놈들의 낡은 사회를 용감히 무찔러나가자

 우리는 무산청년이니 무산청년답게

 우리는 근로대중의 청년전위대

 나는 언제인가 리순희와 함께 아동단학교에서 풍금을 타며 이 노래를 불렀다. <공청가>는 공청원들뿐아니라 공산당원들과 아동단원들, 부녀회원들까지 즐겨부르던 노래였다. 그것은 그 노래속에 새 사회에 대한 근로대중의 한결 같은 동경과 미래에 대한 열렬한 사랑, 새 세상을 앞당기려는 청년들의 확고부동한 의지가 잘 반영되여있기때문이였다. 수많은 공청원들이 리순희처럼 단두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공청가>는 원래 우리가 만든것이 아니였다. 로씨야청년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나 가사와 선률 속에 흐르는 사상감정은 자유를 사랑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온 세계 청년들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잡았다. 에젠 뽀지에의 <인터나쇼날>이 많은 나라 당들의 당가로 되였던것처럼 <공청가> 역시 국제적인 청년가로 널리 애창되였다.

리순희와 같은 렬녀를 배출한 것은 의심할바없이 그의 정치적생명에 빛을 주고 날개를 달아준 공청조직의 공로라고 말할수 있다. 조직이라는 존재가 없고 조직적단련이라는 성장과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리순희와 같이 애된 처녀가 교형리들앞에서 그처럼 용감해질수 있으며 그처럼 도도한 긍지와 자부를 안고 최후의 순간을 떳떳하게 장식할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조직은 영웅을 낳는 집이며 대학이라고 말한다. 조직생활을 통해 단련된 1명의 공청원이나 사로 청원은 100명, 1,000명의 적도 타승할수 있는 큰 힘을 가진다. 우리 인민이 일당백의 인민으로 되는것은 그들이 모두 조직생활을 통해 단련된 인민이기때문이며 우리 인민군대가 일당백, 일당천의 군대로 되는것은 그들이 다같이 조직이라고 불리우는 용광로에서 자신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철저히 련마해가는 군대이기때문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사로청이라는 조직을 통하여 투사로, 영웅으로, 혁명가로 자라나고있다. 항일전쟁당시의 공청조직이 직업적인 혁명가들을 키워내는 학교였다면 지금의 사로청조직은 사회주의건설의 전위부대를 육성해내는 기지라고 말할수 있다. 항일혁명시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청년들은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주공을 담당하고있다. 사로청은 우리 당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믿음직한 주력부대로 되고있다. 이 주력부대가 진출하는곳에서는 어데서나 위훈이 창조되고 기적이 나래친다. 서해갑문, 북부철길, 광복거리, 5.1경기장,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태권도전당 등 우리 조국의 만년재부로 되고있는 위대한 기념비적창조물들에는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로동당시대의 청년들이 바친 고귀한 피와 땀이 스며있다. 우리 인민이 <속도전청년돌격대>를 사랑하는것도 그때문이다.

우리 시대 사로청원들과 청년들 속에서는 만민의 찬탄을 자아내는 공산주의적미거들이 끝없이 발양되고있다. 한번 죽으면 두번다시 받아안을수 없는것이 사람의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청년들은 남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고있다. 일생을 영예군인의 손발이 되여줄것을 결심하고 그들의 안해가 된 처녀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이름을 다 꼽아내려갈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 나라 사로청원들속에는 미혼의 몸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여준 고마운 처녀도 있다. 다른 나라 청년들이 수도시민권을 얻지 못해 애를 쓰고있을 때 우리 청년들은 정든 수도를 서슴없이 떠나 전야로, 탄전으로, 개발지로 자진하여 탄원해가고있다. 진실을 말하건대 나는 이런 청년들을 금방석에 앉히고싶은 심정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우리 시대 청년들속에서 발양되고있는 공산주의적미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청년운동을 위해 바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로고를 더듬어보며 그 운동의 전통을 훌륭히 계승해가고있는 사로청을 생각하군한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속에서 세게를 뒤흔드는 미담들이 련이어 태여나 만사람을 격동시키고있는것은 사로청의 공적에 속한다고 평가할수 있다. 조직생활을 통해 단련된 청년들의 대부대, 그것은 사실상 원자탄보다도 더 위력한것이다.

세상에 청년사업처럼 보람차고 영예로운 일은 없을것이다. 만일 나에게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 있는 행운이 오고 직업을 새롭게 선택할수 있는 권리가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길림시절처럼 단연코 청년사업에 몸을 잠글것이다.

유격구해산을 계기로 우리는 많은 정치공작원들을 또다시 적구에 파견하였다. 우리는 그 당시 안도, 돈화, 무송, 장백, 림강 등지에 사람들을 보내여 공청료길변중심현위원회를 꾸리고 적구에서의 지하청년사업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료길변이란 료녕, 길림, 간도의 변경지대를 말한다. 우리는 또한 지하청년 조직을 무산, 갑산, 풍산, 회령을 비롯한 조선의 북부국경지대에 일차적으로 꾸리고 나아가서는 평양, 서울, 부산을 비롯한 조선의 중부지대와 남부지대에까지 확대할 원대한 구상을 세웠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왕청현 공청서기 조동욱도 공청료길변중심현위원회 서기의 책임을 지니고 적구로 들어갔다.

조동욱은 공청사업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였다. 그는 5.30폭동에 참가했다는 리유로 길림성 제3감옥이라고 부르던 할빈감옥에서 1년이상의 옥중생활까지 하였다. 감옥에서 중어공부도하고 공청에도 들었다는데 중학교졸업생치고는 지식이 매우 풍부하고 학구욕이 강하였다. 조동욱은 공청녕안현위의 위임을 받고 구국군부대에 파견되여 공청사업을 하다가 40여명에 달하는 무장인원을 이끌고 1932년 9월경에 왕청으로 나왔다.

내가 조동욱을 처음으로 만나것이 그해 가을이였다고 기억된다. 우리는 그를 리광별동대의 공청간사로 임명하고 녕안에서 나온 무장인원들을 그 별동대에 배속시킨 다음 대원들을 북만에 파견하여 그의 가족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조동욱의 이붓아버지 장기섭은 <공산주의아바이>라고 불리우던 성실한 당원이였다.

조동욱은 나와 오의성과의 담판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을뿐아니라 왕윤성과 함께 담판중의 내 사업을 적극적으로 보좌해준 사람이다. 이 담판이 있은후 나는 그와 왕윤성을 라자구시내에 있는 반일부대련합판사처에 파견하였다.

조동욱과 왕윤성은 각지의 반일부대들에서 파견되여온 련락군관들과 결의형제를 뭇고 중하층장교들과 병사대중 속에 공산당지부와 공청지부까지 조직하였다.

반일부대련합판사처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조동욱의 정치활동솜씨는 더 세련되였다. 그가 적구에 내려가서 처음으로 발을 붙인곳은 안도현 량강구였다. 그는 자그마한 상점을 하나 차려놓고 <장사>질을 하면서 상점에 드나드는 위만군들과의 사업을 능란하게 하여 15명의 중하층장교와 병사들로 결의형제를 뭇고 1개 중대를 완전히 전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1개 중대는 조동욱의 조종에 따라 병변을 일으키고 산속으로 달아나버리였다.

조동욱은 산중에 웅거해있는 병변군인들과 유격대와의 련계를 지어주려고 처창즈로 찾아갔다. 그런데 좌경분자들은 그를 <민생단>혐의자로 보면서 구속하려고 하였다.

후날 조동욱은 그때의 일을 아래와 같이 술회하였다.

 <그때 동만특위의 좌경분자들은 나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문초했습니다. 송일이 <민생단>이라는것이 판명되여 처형되였다, 그런데 송일이가 왕청현당 서기로 일할 때 너는 그밑에서 현공청서기로 일했다, 송일이가 <민생단>아니 너도 <민생단>이 아니겠는가, 증거를 내놓기전에 사실대로 말하는것이 좋겠다고 엄포를 놓지 않겠습니까.

저는 탈출을 결심하였습니다. 저에게 밥을 날라다주던 김정숙동무도 그 결심을 지지해주었습니다. 정숙동무는 로비로 쓰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량강구에 돌아온 다음 어머니를 데리고 조선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그후 조선의 여러 지역에 나가 청년사업을 계속 하였다.

김진의 넋이 리수복에 의해 이어지고 리수복의 넋이 김광철, 한영철에 의해 이어지고있는것처럼 공청의 명맥은 민청에 의해 이어지고 민청의 명맥은 사로청에 의해 튼튼히 이어지고 있다. 일부 나라들에서 청년학생들이 사회의 우환거리로 되고 반혁명의 하수인이 되여 할아버지네 세대들이 쌓아올린 탑을 허물어가고있을 때 우리의 청년들은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여 선렬들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믿음직하게 이어가고있다.

지금 사로청대렬에는 김정일조직비서의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수백만의 맹원들이 집결되여있다. 21세기의 우리 조국은 그들의 힘에 의하여 보다 살기 좋은 락원으로 꾸려지게 될것이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7-01-20 18:26:40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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