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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건축종합대학 학생이 된 ‘탈북청소년’ 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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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5-21 19:17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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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건축종합대학 학생이 된 ‘탈북청소년’ 문철

 

 

박수영 기자

2015-05-16

 

 

지난해 라오스에서 탈북한 9명의 청소년들이 강제 북송된 뒤 이남의 언론은 이들의 처형설을 기정사실화 하며 북이 인권유린의 나라라고 선전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북 당국은 9명의 청소년들 중 문철, 정광영, 류광혁,  박광혁은 영웅혜산시 제1중학교에서, 백영원은 함흥사범대학 예능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나이가 어린 리광혁, 류철룡, 장국화, 로영정은 금성제1중학교에서 자기의 재능과 희망을 마음껏 꽃피우고 있다고 반박하였다.

 

북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4월 이들 9명의 청소년들 중 영웅혜산제1중학교를 졸업한 문철, 박광혁, 정광영, 류광혁 학생들이 대학에 갔다. 문철은 평양건축종합대학에, 박광혁은 김형직사범대학에, 정광영은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류광혁은 평양인쇄공업대학에 입학하였다.

 

17일자 <우리민족끼리>는 조국에 돌아와 평양건축종합대학 학생이 된 문철의 기고문을 소개하였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조국의 품을 떠나 우린 못삽니다

 

- 평양건축종합대학 학생 문철 -

 

 

 

 

 

 

 

나는 온 나라 아이들이 행복에 겨워 목청껏 부르는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가 어제날 저주로운 남쪽땅에 끌려갈번 하였던 우리 9명 동무들의 심장속에 그토록 소중하게 자리잡게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

 

온 세상이 보란듯이 새 교복을 떨쳐입고 김형직사범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건축종합대학, 평양인쇄공업대학의 드넓은 교정에서 보람찬 배움의 나날을 보내고있는 저희들은 언제나 이 노래를 심장으로 부르군 합니다.

 

5월 28일은 저희들이 바람세찬 이국땅에서 괴뢰정보원놈들에 의해 현대판 노예와도 같은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다가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긴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을 맞으며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삶의 주인공들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이 너무도 크고 고마워 저는 끓어오르는 가슴속 격정을 온 세상에 터치려고 미숙하지만 펜을 들었습니다.

 

1

 

예로부터 부모없는 아이들을 가리켜 고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고아는 자기를 보살펴주고 지켜주는 따뜻한 품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낳아준 친부모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2살 나던 해 량강도 혜산시의 어느 한 기계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던 저의 부모들은 뜻밖에 일어난 화재속에서 공장의 기계들을 지켜내고 한날한시에 잘못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려도 보지 못하고 육아원과 애육원을 거쳐 초, 중등학원까지 보육원, 교양원선생님들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육아원의 포근한 침대와 애육원의 아담한 놀이터, 초, 중등학원의 넓다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며 공부하던 그 시절 저는 정말이지 복속에서 복을 모르는 철부지였습니다.

 

부모있는 아이들과 꼭같이 구김살없이 안아 내세워주는 나라의 은덕을 그저 응당한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나니 공부하기 보다는 놀음에 빠져 돌아다니기가 일쑤였고 중등학원시절부터는 학원에서 몰래 도망쳐나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랑생활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2011년 12월 어느날, 압록강변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썰매타기에 여념이 없던 저는 폭이 좁은 반대편 기슭에서 그 누군가가 찾는 소리에 별다른 생각이 없이 몇몇 아이들과 함께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 사람은 저희들의 손에 색다른 간식까지 쥐여주며 자기가 가지고온 소형뻐스를 타고 장백거리를 한바퀴 빙 돌고오자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각성없이 사나이의 친절한 꾀임에 넘어가 차를 탔는데 얼마간 달린 후 차에서 내려보니 그곳은 놈들의 소굴이였습니다. 겁이 덜컥 났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거기서는 목사의 탈을 쓴 장하진놈과 그의 처 신원이년이 살고있었는데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있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장하진놈은 이웃나라 국경연선에 둥지를 틀고있으면서 우리 청소년들을 유괴하여 남조선으로 끌어가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괴뢰정보원 끄나불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저와 비슷한 생활경력을 가진 1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근 2년째 우리안에 갇히운 짐승같이 생활하면서 그 년놈들에게 피눈물나는 학대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감옥같은 방에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거의 17시간동안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정말 무서운 고문이였습니다.

 

말뜻을 전혀 알수 없어도 무작정 읽어야 했고 말뜻을 바로 알자고 물어봐도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놈들은 성경 읽기가 힘들어 못하겠다고 하는 아이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호되게 들이치여 피투성이로 만들었고 찬송가를 부를 때 잠을 자는 아이의 귀를 비틀어 찢어지게 하였으며 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구정물을 머리에 들씌우게 하는 치떨리는 만행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습니다.

 

한편 놈들은 우리들에게 저들이 하라는대로만 하면 돈도 주겠다고 하면서 얼굴에 삵의 웃음을 띄우며 우리를 살살 얼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장하진놈의 소굴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음대로 말도 못하고 마음놓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조롱속에 갇힌 병든 새와 같았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성별에 가림없이 몇년씩이나 한집에 가두어놓고있는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가봐 몹시 두려워하던 놈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조용조용하게 생활할것을 요구했고 우리들이 매를 맞으면 제손으로 입에 수건을 틀어막고 소리없이 울음을 삼키도록 강박하였습니다.

 

특히 놈들은 우리에게서 천진한 동심을 빼앗고 비록 불효자식들이라 해도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여있는 고향과 조국의 넋을 송두리채 뽑아 없애려고 악착하게 책동하였습니다.

 

어느날 장하진놈은 우리에게 아침기도시간에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교회당을 세우게 해달라고 빌라는것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들중에는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가본 아이는 한명도 없었지만 그곳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태양의 모습으로 영생하시는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는것만은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뻗치였습니다.

 

그러자 놈은 《빨갱이새끼》, 《공산스파이새끼》라고 하면서 우리들을 무섭게 매질하였고 하루종일 물한모금 주지 않고 쫄딱 굶기는 가혹한 벌을 주었습니다.

 

그때 신원이년은 너희들을 몇년씩 집에 끼고있으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것이 뭐가 고와서 그러는줄 알아, 너희들이 북에 복음을 전파시켜 앞으로 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하나님의 사도가 되여야 한다고 지껄이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뿐아니라 너희같은 애새끼들을 더 많이 끌어다가 머리통을 까서라도 자본주의가 좋고 성경이 좋다는것을 쓸어넣을줄 알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벌였습니다.

 

그후 장백지구를 돌아치며 우리같은 아이들을 더 많이 끌어오려고 갖은짓을 다하던 장하진놈은 공안의 감시와 추적에 걸려들었습니다.

 

바빠난 놈은 우리를 끌고 거처지를 세번이나 옮기며 감시에서 벗어나보려고 발악하였으나 소용이 없게 되자 이제는 더이상 버틸수 없다, 애새끼들을 계속 끼고있다가는 몽땅 붙잡힐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남조선으로 끌고나갈 준비를 다그쳤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놈은 서울지시대로 몇명정도가 아니라 수십명의 청소년들을 한꺼번에 끌고나갈 계획이였는데 그래야 정치적효과도 크고 묵돈도 벌수 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북한자유련합》 대표 슈잔 숄티년은 장하진년놈들을 비롯하여 여러곳에 숨어있는 괴뢰정보원의 인신매매군들을 동원하여 우리같은 청소년들을 집단적으로 남조선과 미국으로 끌고가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써먹기 위해 《비상하는 독수리작전》이라는 대호까지 붙이고 놀아댔습니다.

 

며칠후 우리들은 장하진놈의 계획대로 낯모를 사람들의 손에 끌려 어디론가 먼길을 떠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또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방울소리만 듣고 따라가는 눈먼 송아지》처럼 우리는 이놈에게서 저놈에게로 돈봉투와 함께 넘겨지면서 짐짝처럼 차에 실리워 며칠씩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숨이 턱에 닿아 할딱거리며 무인지경을 오래동안 뛰여가기도 하였고 높은 산도 몇개를 넘었는지 모릅니다.

 

놈들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들을 참대로 만든 지팽이로 짐승처럼 때려몰면서 수십일간이나 정처없이 끌고다니였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나라 국경초소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는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단속에 걸리자 우리를 끌고가던 놈들은 경찰에게 돈도 찔러주며 갖은 회유를 다하였으나 우리를 빼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나라 국경경비초소에 있는 구류장에 갇히게 되였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서 또다른 타향으로 끌려가다가 총을 휴대한 그 나라 경찰들에게 잡혀 구류장에 갇히고보니 지옥의 나락에 굴러떨어진듯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소리쳐 울고싶어도 울음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의 눈앞에는 어느 한 영화에서 본 어린 노예의 비참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패쪽을 건 내 또래의 어린 노예가 악독한 노예주의 손에 끌려가다가 병들어 숨이 졌는데 그래도 그 어린 노예는 패쪽이나마있었지만 우리는 《패쪽》도, 《임자》도 없이 버려진 인생이였으니 이보다 더 불쌍하고 참혹한 아이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밤따라 둥근달이 구류장의 창문새로 흘러들었습니다.

달빛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서글퍼지며 세상에 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어떻게 생겼을가? 왜 나에게는 나를 고와하고 나를 위해 마음써주는 어머니가 안계실가, 어머니만 내 곁에 있으면 이 저주로운 곳으로 끌려오지 않았을텐데. 아, 어머니, 어머니!…)

 

입속말로 하염없이 어머니를 찾고 부르기를 그 몇번!…

 

그러는 내 얼굴에는 저도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이 나에게 어머니가 없기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애타게 그리고 바랬습니다.

 

2

 

죽음의 나락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조국의 품에 안긴 후에야 우리에게도 저희들을 위해 그리도 애타게 마음써온 진정한 어머니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저희들이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나라 국경경비초소에 구류되여 운명적인 시간을 보내고있을 때였습니다.

 

그 나라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하여 저희들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를 받은 조국에서는 저희들 전원을 무조건 데려오도록 조치들을 취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주공간으로 수많은 무선전파들이 날고 외교일군들과 해당 부문일군들이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하여 적들의 마수에서 저희들을 구원하기 위한 치렬한 전투를 벌리였습니다.

 

적들은 적들대로 몇년동안 품을 들여 자본주의물을 먹인 우리들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하나 남조선으로 끌어가려고 별의별 발악을 다하였습니다.

 

저희들을 두고 적아간에 벌어진 치렬한 공방전은 끝내 조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어느날 주재국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잡혀있는 이 못난 자식들을 찾아 우리 외교일군들이 달려왔습니다.

 

저희들은 구류장 한쪽구속에 몰켜선채 속이 조마조마해있었습니다.

 

제멋대로 조국을 떠나 이역땅에서 생활하다가 머나먼 그곳까지 끌려와 잡혀있는것이 죄스러워서였습니다.

 

조국에서 온 일군들은 저희들을 말없이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한창 피여나야 할 저희들의 얼굴에 비낀 불안과 죄의식, 주눅이 들어 머리조차 들지 못하는 아이들…

 

드디여 한 일군이 내앞으로 다가와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어서 조국으로 가자!》

 

나는 목이 꽉 메여 아무 말도 못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습니다. 내옆에 있던 동무들도 모두 울었습니다.

 

놈들에게 잡혀 2년동안 지옥같은 소굴에서 울음조차 소리내여 울지 못하던 저희들이 처음으로 엉엉 소리내며 울었습니다.

 

며칠후 저희들은 조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희들은 조국이란 무엇이고 사회주의 우리 조국이 어떤 품인가를 너무도 모르고있었습니다.

 

어머니조국은 우리를 절망의 나락에서 구원해주었을뿐아니라 병들고 상처입은 자식에게 더 마음을 쓰는 어머니의 심정그대로 뜨거운 사랑과 정을 가슴가득 부어주었습니다.

 

조국에서는 저희들이 도착한 후 병원에 데려다 검진도 하고 치료도 받게 하면서 평양에서 즐겁게 휴식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은 개선청년공원, 릉라곱등어관, 류경인민야외빙상장을 비롯한 유희오락장들에서 마음껏 웃고떠들며 놀았고 옥류관, 청류관, 향만루식당 등 이름난 식당들에서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었습니다.

 

그후 저희들은 나이와 취미, 소질에 따라 저와 박광혁, 류광혁, 정광영동무들은 고향인 량강도 영웅혜산제1중학교에 갔고 미술에 취미가 있는 백영원동무는 함흥사범대학 체육예능학부 미술과에서 공부하게 되였으며 나이가 제일 어린 리광혁, 류철룡, 장국화, 로정영동무들은 평양금성제1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렇듯 저희들이 생각도 못했고 꿈도 꾸지 못한 훌륭한 학교들에 보내주어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칠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들을 친자식보다 더 아껴주고 사랑을 주고 정을 준 영웅혜산제1중학교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기숙사의 료리사어머니, 도안의 간부선생님들을 정녕 잊을수 없습니다.

 

그때 학교에서는 우리 4명을 위한 학급을 따로 내오고 젊고 능력있는 선생님을 우리와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배워주도록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루도 아니고 매일같이 집에도 가지 않고 우리의 학업성적을 높이기 위해 애쓰시였습니다.

 

낮에는 교실과 도서실에서, 밤에는 기숙사호실에서 자정이 넘도록 우리에게 공부를 배워주고 우리가 정신없이 꿈나라에 가있을 때면 차던진 이불도 바로 덮어주며 혈육의 정을 다해주신 고마운 선생님!…

 

담임선생님뿐이 아니였습니다.

 

저희들이 처음 교정에 들어섰을 때 교장선생님은 집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자, 우리가 이 학생들의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되여 사랑을 주고 정을 주자고 하시며 그날 자기집에서 새 이불과 담요를 내오고 겨울내의와 신발, 장갑, 혁띠 등 색갈과 문양도 꼭같은것으로 4조를 마련하여 안겨주었습니다.

 

우리가 《〈공훈료리사〉어머니》라고 애칭을 붙여놓은 주방의 료리사어머니는 정말로 우리의 구미에 맞게 음식도 맛있게 해주었습니다. 언제인가 제가 고열로 심하게 앓아누웠을 때에는 생선국을 끓여와 입으로 훌훌 불어 제입에 떠넣어주면서 《앓으면 큰 일이야.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공부를 해야지.》라고 따뜻이 말해주었습니다.

 

도안의 간부아저씨들도 한주일에 한번씩 꼭꼭 학교에 내려와 우리의 학업성적도 료해하고 어떤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엄하게 타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모습에서 제가 지금껏 보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고 사회주의 내 나라, 내 조국의 따스한 정을 점차 느끼게 되였습니다.

 

어머니조국은 우리들에게 약동하는 배움의 새 생활만이 아니라 정신적자양분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시작한지 며칠 안되던 어느날 저희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백두산지구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우리 고향 량강땅, 삼지연군을 찾으시였다는 꿈같은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아버지원수님께서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일먼저 삼지연학생소년궁전을 찾아주시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희들은 원수님께서 너희들이 보고싶어왔다고, 어서 가까이 오라고 두팔벌려 다정히 불러주시는것만 같았습니다.

 

그토록 뵙고싶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고향땅에 모신 기쁨으로 하여 누구보다 마음을 진정하지 못해하는 우리들의 심정을 헤아려 학교에서는 곧 삼지연혁명전적지에로의 답사를 조직해주었습니다.

 

그때 우리와 만난 강사선생님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삼지연대기념비를 돌아보시면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백두산의 칼바람맛을 봐야 한다고,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답사를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심화시키며 특히 백두산기슭에서 나서자란 새 세대들이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전해주었습니다.

 

… 백두산기슭에서 나서자란 새 세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불러주신 영광의 대오에 우리도 서있다, 우리는 백두산기슭에서 나서자란 원수님의 아들딸이다, 백두산기슭의 새 세대답게 공부도 항일빨찌산식으로 하여 꼭 백두산강국을 빛내이는 인재가 되리라 …

 

이런 맹세를 다진 후 우리는 백두산답사행군에 두번이나 참가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일유격대원들처럼 천고의 밀림에서 며칠동안 천막을 치고 숙영도 하면서 밤이면 우등불가에서 백두산시도 읊고 빨찌산춤도 추며 백두의 혁명정신을 온몸에 받아안았습니다.

 

그때부터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자란 저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이면 고향땅에 모신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달려가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의 동상을 더 밝고 정중히 모시는 사업을 진행하는것으로 첫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남조선괴뢰들이 저희들에 대해 누구는 《처형》되였고 또 누구누구는 《감금》되였다는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불어대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원쑤놈들은 저희들이 조국에 돌아온 후 모두 잘못되였을것이라고 단정하고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깎아내리려고 이따위 악담질을 해대고있었던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분격하여 그달음으로 평양에 올라와 기자회견을 가지고 원쑤놈들의 두눈이 콱 뒤집어지라고 조국의 품에 안겨 마음껏 배우며 자라는 우리의 밝고 씩씩한 모습을 떳떳이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저희들이 체험하고 느끼고있는 사회주의 내 조국의 고마움을 격정에 담아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목청껏 불렀습니다.

 

저희들의 행복에 넘친 모습이 텔레비죤을 통하여 방영되자 우리를 걸고 반공화국《인권》소동을 벌리려던 원쑤놈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쑥 기여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온 량강땅이 온통 저희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애들이 하나같이 씩씩하고 똘똘하다, 말을 참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제날 설음에 울고 천대와 멸시속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던 저희들이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정신육체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사회주의 내 조국이 정말 좋은 세상이라는것을 가슴뿌듯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저희들은 우리를 이렇게 어엿하게 키워 내세워준 생명의 은인, 고마운 보호자인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보답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을 받게 되였습니다.

 

저희들은 우리가 안겨사는 사회주의 내 조국을 그 어떤 원쑤도 다치지 못하게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고 이제 학업을 마치면 모두 조국보위초소에 설것을 열렬히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16일 광명성절 아침이였습니다.

 

저희들이 뜻깊은 광명성절 경축공연에 출연할 준비를 하고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달려오더니 우리를 와락 그러안으며 아버지원수님께서 우리모두를 평양에 있는 제일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고 하는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여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던 동무들이 《야!》하며 환성을 올릴 때에야 저희들은 교장선생님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게 정말인가고, 사실인가고 묻고 또 물으며 기쁨의 눈물을 터쳤습니다.

교장선생님도 울고 담임선생님도 울고 동무들도 울었습니다.

 

조국에 들어선 첫 순간부터 친부모의 사랑보다 더 크고 뜨거운 사랑을 받은것만 해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오늘은 또 이렇게 평양에 있는 일류급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해주시였으니 우리보다 더 행복한 학생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저주로운 남조선으로 끌려갔다면 지금쯤 먹을것을 찾아 길거리를 방랑하고 일자리를 얻어보려고 사지판에서 헤매고있을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저희들이 안긴 내 조국, 우리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따사로운 어머니품이고 천만자식을 애지중지 안아키우는 화목한 대가정인가를 뼈에 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사회주의대가정의 위대한 아버지는 바로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이십니다.

부모잃은 아이들일수록 더 따뜻이 안아주시고 가슴속에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더 뜨겁게 보살펴주시며 사랑에 사랑을 덧쌓아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은 정녕 사랑과 정이 제일로 많으신 우리들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십니다.

 

해빛한점 스며들지 못하던 원쑤들의 악마의 소굴에서 저희들을 구원해주시고 태양의 빛으로 마음속 상처도 깨끗이 씻어주시며 오늘은 온 나라의 축복속에 선군시대의 대학생으로까지 떳떳이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온 나라 대가정의 위대한 아버지로 높이 모시고 모두가 서로돕고 이끌며 화목하게 사는 사회주의 내 조국의 품을 떠나 우린 못삽니다.

 

우리는 이 고마운 사회주의 내 조국의 품속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충직한 아들딸로 자신들을 튼튼히 준비하기 위해 대학교정에서 학습전투를 힘있게 벌려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인재, 원수님께서 아시는 인재, 원수님만을 받드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21 19:23:49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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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악질 선교사놈들아~!!!! 저아이들 제발 괴롭히지말라~!!!!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철아~!!!! 부디 거기 북녘에서 공부 열심히해서 나중에 통일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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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인민관이 맥동치는 뜻깊은 연설​
80일전투의 기본특징
편지들에 비껴있는 내 조국의 참모습
대중적당건설의 본보기를 마련하신 불멸의 업적
주체조선의 힘찬 전진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21일(수)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10월 21일(수)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10월 20일(화)
80일전투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선전화들 새로 창작
우리 식의 6축교류전기기관차 개발
애국으로 아름다운 우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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