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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기획] 종전선언이 필요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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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7-31 06:1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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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 강화협정, 평화협정 그리고 종전선언

[기획] 종전선언이 필요하다(1)

 

안호국 시사평론가 

 

 

싱가포르에서 종전선언이 있을 거라는 섣부른 기대가 있었으나 정전협정 65년째인 7월27일이 지나도록 종전선언 소식은 깜깜하다. 북은 핵‧미사일 시험 동결, 북부 핵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송환, 미사일발사 시험장 해체 등 선제적 조치를 연이어 취하고 있지만, 미국은 외려 몽니를 부리며 선비핵화 요구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런다고 다른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패권주의의 미몽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4.27판문점선언 시대를 낙관하는 것은 좋으나 미국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금물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상황이다. 
이에 4.27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할 종전선언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안호국 시사평론가의 글을 세 차례 연재한다.

1. 휴전협정, 강화협정, 평화협정 그리고 종전선언
2. 한국전쟁, 휴전협정과 정전체제
3. 판문점선언시대 종전선언이 가지는 의미

 

 

1. 평화의 첫 걸음은 종전선언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이 합의 발표한 판문점선언에서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하였다. 

 

선언에서는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남과 북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대한 과제로서 불가침 합의 준수, 단계적 군축 실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등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개최하는 전 단계로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종전을 선언하기로 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남북 정상 합의로서 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판문점선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반도가 비정상적인 정전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정전상태는 전투행위가 일시 중지된 상태, 즉 휴전상태를 말하며 이는 남과 북이 적대적 대결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굴레이며,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추구하는 중요한 근거로 되어 왔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은 교전이 일시 중단된 다른 전쟁의 휴전과는 달리 전쟁을 실제로 끝낸 협정이다’는 견해가 있다. 일반적으로 휴전상태는 강화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못하면 짧게는 몇 시간, 길어야 몇 달을 지속하지 못하고 전쟁이 재개된다는 점과 지난 65년 동안 전면 전쟁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런 주장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은 이 기간 동안 전면전을 몇 번 더 치른 것만큼의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했고 사회적 역량을 소모해왔다. 수십만의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 과중한 병역의무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갖은 사회적 갈등은 한국사회의 발전에 장애로 되고 있는 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대적인 대치로 인해 억압된 사회적 의식과 저하된 활력은 계량할 수도 없는 큰 손실이다.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로 희생된 사람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 심지어 남북관계가 개선되던 2000년대 초에도 서해상의 군사충돌로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미국이 세계최대 규모의 해외 군사훈련을 한반도를 대상으로 한 해에 몇 번씩 벌여온 것도 휴전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2010년 무렵부터는 북에 대한 핵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계획을 공개하고 한미합동 전쟁연습이 선제 도발과 침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명백한 적대행위인 이런 일이 가능한 것도 북과 미국은 교전이 일시 중단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적대행위에 미국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미국 언론 CBS의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전략자산인 B-1B(랜서) 전략폭격기, B-2A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B-52H 장거리 폭격기 각각 한 대씩을 한반도에 전개하는데 최소 왕복 비용만 347만337달러(약 38억7289만원)가 든다고 한다. 


판문점선언에서 밝힌 대로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면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부터 종식해야 한다. 
북미관계를 정상화하여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고 해도 북미간을 교전대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전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판문점선언에서는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이 놀라운 역사적 변화를 현실로 만드는 첫 공정이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는 것, 한반도를 휴전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종전선언에 대한 이해

 

교전당사국 또는 전쟁에 관련된 나라들이 맺는 조약에는 휴전협정, 강화협정, 평화협정, 종전협정 등이 있다. 이 각각은 조약으로 불리기도 하며 형식에 따라서는 선언이라는 이름을 가지기도 한다.


각각의 협정은 내용과 기능에서 중복되는 경우가 많고, 시대에 따라서 성격이 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협정의 성격과 기능을 이해하는데서 어려움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 휴전협정


휴전협정은 전쟁 중인 양측이 전투 중지에 합의하는, 즉 전쟁행위를 일시적 또는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이라고도 한다. 


휴전은 사상자 수습 등 전투수행상의 필요 때문에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부분적 또는 국지적 휴전(partial armistice)이라고 한다. 대개는 모든 군대가 전쟁구역 전체에 걸쳐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군에 한하여 또는 일정한 지역에 한하여 일시적으로 적대행위를 멈추는 것이다. 


휴전은 또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맺는 경우도 있다. 일반휴전(general armistice)이라고 한다. 교전당사자가 전투지역 전부에 걸쳐 적대행위를 전면적으로 정지하는 조치로 부분적·일시적인 적대행위의 중지, 합의를 뜻하는 정전(suspensions of arm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전쟁 전체에 대해 나름의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며 교전국 정부나 군사령관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다. 일반휴전은 사실상 전쟁의 종료와 동일한 효력이 있으며 통상적으로 강화의 전제가 된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은 이에 속한다. 


휴전은 전투 재개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맺는 다른 조약들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휴전은 당면한 전투를 중지시킴으로써 전쟁 자체를 끝낼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 둘을 일률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끝낸다는 교전당사국들의 의사가 담긴 휴전협정이라 하더라도 일방 또는 쌍방의 파기에 의해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는 휴전협정 자체에 전쟁을 끝내는, 전쟁 재발을 막는 효과나 효력이 없거나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1907년에 제정된 헤이그협약(제4협약 부속 헤이그규칙 제36조 제41조)에는 “정전은 적대행위의 정지(suspension of hostilities)일 뿐 평화상태의 확립은 아니다. 즉 정전 중에도 교전당사자 사이에는 여전히 전쟁상태(state of war)가 존속하며 교전당사자들과 제3국들 사이에는 계속 중립법규가 적용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휴전은 현상유지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국제법의 개념상 휴전 중에는 공격적 행위는 금지되지만 방어적 행위는 허용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해서 전투 또는 그와 관련된 행위가 완전히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휴전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군사적 공격 또는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는 것은 휴전협정 위반이 되는 것이지 새로운 도발이나 침략 또는 선전포고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휴전협정에서는 전쟁으로 발생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강화회담을 열거나, 전쟁발발의 원인을 해소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강화협정이나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이 결렬되면 휴전협정은 효력을 잃고 전면전이 재발하거나 군사적 분쟁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 강화협정 


강화협정은 교전당사국들이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체결하는 조약이다. 넓은 의미의 평화협정의 하나다. 


‘넓은 의미의 평화협정’은 ‘강화협정’과 ‘좁은 의미의 평화협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 설정은 강화협정과 평화협정이 내용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강화협정은 전쟁의 종료, 평화의 회복을 선언하고, 강화의 조건(영토의 할양ㆍ배상금의 지불 등)을 규정하며 그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담보수단을 정하기도 한다. 


전쟁상태를 종국적으로 끝내 평시의 정상관계를 회복하는 것, 이에 관한 기본적인 조건을 정하는 것이 강화협정이다. 강화협정에서는 교전국의 관계를 전쟁 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전쟁 발발의 원인과 위험을 해소하려는 (좁은 의미의)평화협정과는 다르다. 


더구나 강화협정에서는 전쟁의 승패에 따라 일방이 영토와 식민지 지배권, 전쟁배상 등에서 이익을 취하게 된다. 
대개의 강화협정은 전쟁에서 이긴 측이 패전한 측에 대해 이익과 권리를 취하는, 즉 전리품을 챙기는 것을 확정하기 위해 체결하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에게 배상의무와 군비제한을 가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대표적이다. 독일에 대한 과중한 의무부과로 유명한 베르사이유 협정은 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로 간주된다. 


강화조약 중에는 전쟁의 결과 패권을 쥔 나라가 자국 중심의 국가관계,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맺는 경우도 있다.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강화조약은 일본에 대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군정을 끝내고,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것을 규정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양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이 조약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질서를 샌프란시스코체제라고 하는데 이는 이후의 냉전대결을 초래한 질서이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전쟁이 어느 한쪽의 패배로 기울거나 해결하기 힘든 교착상태가 되면 전쟁당사국들은 강화협정을 맺어 해당 전쟁을 끝내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였다. 웨스트팔리아 강화조약(1648년), 영-프 강화조약(1774년), 시모노세키 강화조약(1895년), 미-스페인 강화조약(1898년), 포츠머스 강화조약(1905년)등이 역사에서 잘 알려져 있는 강화협정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강화협정의 많은 내용이 휴전협정에서 다루어지고, 영토의 귀속 등이 이후의 회담으로 넘겨지는 등 강화조약의 기능이 휴전협정과 평화협정으로 분해되었다. 이렇게 되자 강화협정은 협정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강화협정은 전쟁 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주된 목적과 기능으로 하므로, 전쟁 재발의 위험을 없애지 못한다. 또한 강화협정 자체가 전쟁 재발의 원인으로 되기도 하였다.

 

정전협정문(영문)

 

▪ 평화협정 


평화협정은 전쟁, 분쟁 또는 군사적 대치상태나 적대적 관계를 끝내거나 해소하고 우호관계를 수립, 발전시키기 위하여 맺는 협정이다. 평화협정은 전쟁의 당사자 또는 군사적 대치관계나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 사이에 맺어진다. 
평화협정이 휴전협정이나 강화협정 등과 다른 점은 협정의 내용과 목적이 당면한 전쟁을 종식하는 것에만 있지 않고, 전쟁 또는 적대적 관계를 낳는 원인을 해소하는 데 있다. 


평화협정의 예로는 파리평화협정(1973년), 캠프데이비드협정(1979년), 인도-스리랑카 평화협정(1987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1993년), 데이턴평화협정(1995년), 필리핀-모로이슬람해방전선 평화협정(2014년)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1993년)과 필리핀-모로이슬람해방전선 평화협정(2014년)과 같이 당면한 전쟁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승패와 우열이 뚜렷해진 결과로 만들어진 협정이 있다. 평화협정이라기보다는 휴전협정이나 강화협정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캠프데이비드협정과 같이 분쟁 해소에 실패한 협정도 있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은 1978년 9월17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자신의 대통령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하여 이뤄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단독 평화협상에서 체결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준다는 것과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대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핵심인 이 협정은 거듭된 분쟁관계에 놓여 있던 이스라엘과 아랍 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평화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평화조약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비롯한 아랍세계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고 1979년 3월26일 협정 조인 이후에도 중동지역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캠프데이비드협정 후에는 빈번하게 발생하던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전면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협정에 나름의 의의를 두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PLO가 협상에 참가하지 않았고 협정을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협정이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더 이상 전면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까닭도 이집트가 아랍주의에서 이탈한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협정의 주역이었던 사다트는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에 의해 국내에서 암살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전쟁종식을 위해 체결되던 협정이 대부분 평화협정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전쟁과 분쟁이 원인과 관련 당사자들이 복잡해졌고, 장기간에 걸쳐 전쟁과 적대행위가 반복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과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과 합의를 만든 평화협정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합의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평화협정이 안고 있는 문제로는 협정 당사자들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오래되고 복잡하여 효과있는 해결책에 합의하기 어렵다는 것, 합의사항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평화협정 전 단계 협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제네바협정(1994년)과 6자회담 9.19공동성명(2005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파기된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전쟁과 분쟁의 완전한 종식, 적대관계를 우호관계로 전환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도로 꼽히고 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중단시킨 파리평화협정은 효력을 발휘한 평화협정으로 꼽힌다. 파리평화협정은 미합중국, 베트남공화국, 베트남민주공화국,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등 4개 당사자와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4개국과 유엔사무총장으로 구성된 파리국제회의를 구성하여 협정의 이행을 감시 감독하게 하였다. 이는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국제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미국과 베트남간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특히 전쟁, 적대관계의 당사자간 힘의 균형이 달라지고, 어느 일방 또는 쌍방이 적대정책을 계속 추진하기 힘든 형편이 되면 평화협정은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유력한 방도로 될 수 있다.

 

▪ 종전선언


교전당사국들이 전쟁을 종료시켜 적대관계를 해소시키고자 공동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것, 강화협정이나 휴전협정과 구분하여 종전선언이라고 표현하다. 


종전선언은 전쟁을 종료한다는 점에서 전쟁 상태인 ‘정전’과 ‘휴전’과는 차이가 있으며, 전쟁의 원인을 해소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화협정이나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종전선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이 협정의 중요한 의의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전면전쟁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데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캠프데이비드협정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적대관계 해소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등 평화회담에서 다룰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또 그것이 협정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이라 할 수는 없다. 


종전선언으로서 최근의 예는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했던 두 번의 종전선언을 들 수 있다. 


이라크전쟁을 개시한 지 43일째가 되던 날 미합중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중동에서 미국 샌디에이고 항구로 귀환 중이던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에 전투기를 타고 와서 전쟁승리를 선언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물론 이는 종전선언이라기보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부시는 이를 종전선언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승전선언’ 이후에도 미국은 이라크전쟁에 막대한 군사비를 쏟아 부어야 했고 수천명에 달하는 장병이 숨졌다. 하지만 전쟁종료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는 종전선언으로 분류되고 있다. 


더 분명한 이라크전쟁 종전선언은 부시의 후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1년 12월15일에 한 종전선언이다. 


오바마는 그 전해인 2010년 8월20일에 ‘이라크 전쟁을 종전한다’는 발언을 하여 이라크전쟁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다음해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공수여단 기지를 방문해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근처 미군 기지에서 미국 국방장관 등이 참가하여 이라크전쟁 종전기념식을 열었다. 


미군의 철수와 재개입 불가 방침을 함께 밝힌 이 선언은 종전선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버락 오바마의 종전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 분쟁과 전쟁행위는 종식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개입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어떤 승리를 거두었는지조차 모호해지고 있다. 


상대의 승인이나 합의가 없는 일방적인 승전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전당사자들이 종전선언에 합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드믄 일이다. 전쟁에서 패한 쪽이라 하더라도 전쟁종결에 대한 대가와 처리문제, 즉 강화협정이나 평화협정에 대한 협상없이 전쟁종결을 인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에서 이긴 측도 마찬가지다. 


파쇼 독일과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이 이뤄진 2차 세계대전의 경우는 특이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라고 인정되는 베트남전쟁에서도 미국은 종전선언을 하거나 종전에 합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대적 관계에 있는 당사국과 관련국들이 상호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피할 수 없게 되고, 전쟁 수행 또는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부담을 견디기 힘들게 되면 종전선언으로 적대관계의 청산을 먼저 천명하거나 조약화하는 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 


특히 전쟁상태 또는 휴전상태가 매우 오래 지속되고 이 체제가 자기에게 더 큰 위험요인으로 되고 상호관계를 제약하고 있다면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공정으로 될 수도 있다.

 

[출처: 현장언론민플러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07-31 06:18:4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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