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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소식

문학 | 76년 “8. 18판문점사건”에 대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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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7-28 01:5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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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8. 18판문점사건”에 대한 재조명
[통일문화 만들어가며](186) 단편소설 《락엽》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3/07/28 [06: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편집자주 :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과 본지의 편집방향은 무관합니다. 다만 필자가 소개하는 북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오늘은 7월 27일, 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 60년 전 휴전된 날이다.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처럼 이견이 분분한 전쟁도 역사적으로 드물 것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이었다가 근년에 와서 알고 보니 “잊혀진 승리”더라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 또한 굉장히 우습다. 

그 전쟁에 대해서는 하도 많은 글들이 나왔고 필자 자신도 전쟁을 재구성하는 글들을 쓰기 때문에, 《자주민보》 독자분들이 심미피로를 느끼지 말도록 오늘에는 조금 다른 소재를 다루려 한다. 하기야 결국에는 그 전쟁과 관계가 되지만.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일어난 충돌사건이다. “판문점사건”이니 “미루나무사건”이니 “도끼만행사건”이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의 뿌리는 휴전협정의 내용에 있었고,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지난 7월 15일 “ 《도끼사건》의 주인공으로 영생하는 전사 -전 조선인민군 군관 공화국영웅 홍성문”이라는 소개프로를 방송했을 때, 이튿날 한국 언론들이 지난 해 12월에 촬영했다고 밝혀진 동영상을 이제 와서 방송하는 건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돌에 맞추는 것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련보도에서 한국 언론인들은 당시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유감”을 표시했다고 부각하면서 마치 사죄나 굴복을 한 듯이 묘사했고, 프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홍성문을 표창, 찬양한 것이 마치도 김일성 주석과 달리 나선 셈인 듯이 풀이했다. 조선(북한)관련 소식들마다 친절하게 토를 달아주는 한국 언론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야 그런가보다 믿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사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휴전협정을 맺을 때에는 그 협정이 60년을 넘길 줄 몰랐던지 아니면 관련 측들이 협정을 잘 지키리라고 믿었던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것을 설치했고 거기에서는 대립된 측들의 병사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미군이 그 구역에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감시에 방해된다는 구실을 붙여서 채벌하려는 바람에 큰 충돌이 벌어진 건 바로 그처럼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민군 경비병들이 자기 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채벌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제지하였으나 미군이 말을 듣지 않아 싸움이 붙었는데, 도끼 따위를 휴대한 미군 30여 명 대 맨손바람인 인민군 4명의 겨룸이 미군의 2명 사망, 여럿 부상이라는 일방적인 참패로 끝난 것은 무협소설가들도 꾸며내기 어려운 결과이다. 

격투가 끝난 다음 대규모 무력시위와 대결로 이어져 전쟁이라도 터질 법 했는데 좀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미군은 헬기까지 동원하여 그 미루나무를 기어이 없애버리고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채벌할 때 인민군이 보고만 있었으니 자기네가 이겼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장교와 병사들이 죽고 다쳤으나 그 어떤 보상도 받아내지 못한데 대해서는 슬그머니 피한다. 

조선 측에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승리를 주장해왔는데 자체 측에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도 당당한 이유지만, 사건결과 조선이 내놓은 주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스럽다, 그러니까 공동경비구역에서 쌍방 군인들의 자유로운 남북왕래가 새로운 충돌을 일으키지 말도록 공동경비구역을 분할함으로써 쌍방군인들의 직접접촉을 피하자. 결과 8월 25일 인민군과 “유엔군”이 유사충돌을 원천차단하는데 합의했다. 이런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구두로 전달되었다는 “유감”만 부풀려 굴복을 운운한다면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꼴이다. 

자료에 의하면 충돌사건 당시 한국군 혹은 미군에 속한 한국인병사인 카추사들도 있었다는데 김일성 주석은 언젠가 손님을 만난 자리에서 싸움이 터졌을 때 인민군 군인들이 “조선사람은 피하라!”고 소리쳤기에 남조선군인들은 다치지 않고 미군들만 죽고 다쳤다고 이야기했다. 필자가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66] “화합의 이점은 무한하다”(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6754&section=sc17)에서 소개한 중편소설 《대결》(김대성 지음)에서는 박호림이라는 한국 장교가 판문점사건에서 다쳐 이마에 상처가 남았다고 그려졌다. 

“8. 18사건” 및 그 뒤에 일어난 대결에서 한국군의 역할은 상당히 애매하다. 한국군이 워낙 휴전협정조인당사자가 아니어서인지 8월 25일 공동경비구역분할안확정에 끼이지 못했고 분할안자체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자료가 있는데 비해, 확인되지 않은 설들은 적지 않다. 게다가 그런 설들이 세월과 더불어 진화하니 그 또한 흥미롭다. 

5, 6년 전까기만 해도 한국 사이트들에서 관련자료를 검색하면 사건 후에 팽팽하게 맞설 때 한국 특전사가 동원되었는데, 어느 선배가 북을 향해 오줌을 쌌다는 것이 굉장한 자랑거리로 부각되는 정도였다. 맨손바람인 인민군들에게 호되게 당한 미군이 한국군의 태권도유단자들을 불러들였다는 해석도 합리한 면이 많았다. 헌데 차차 설설설들의 내용이 풍부해지더니 지난 해 대통령선거시절에는 급기야 한국 특전사의 대활약으로까지 진화됐다. 미루나무를 자르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하고서도 미군들이 벌벌 떨기만 하는 바람에, 한국 특전사 군인들이 달려나가 맞은 편 인민군 초소들을 박살냈는데 인민군이 꼼짝하지 못했고 지어는  수령의 초상화를 파괴해도 인민군이 움직이지 못했단다. 한국군이 미쳤다고 아우성치던 미군이 그제야 용기가 나서 나아가 나무를 잘랐다는 것이다. 이런 신화창조의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 특전사에 있었고 2012년에 대통령후보로 된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있었노라는 주장이 생겨나 퍼진 것 또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헌데 특전사 성원 문재인이 그런 신화의 창조자로서 무슨 표창을 받았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게 허점이라면 커다란 허점이겠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의 프로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사건 직후 참가군인들에게 높은 국가적표창을 했다는데, 미군이 던진 도끼를 받아쥐고 무섭게 날뛰면서 싸운 주역인 홍성문이 몇 해 후 다른 충돌에서 희생된 다음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다는데 따라 미뤄보면 최고급표창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그 큰 역사사건의 주역을 그린 문예작품을 지금껏 필자가 보지 못한 건 좀 이상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모았거나 본 문예작품들 가운데서는 《대결》에서 주인공의 고향선배로서 “판문점호랑이”를 언급하는 정도로 홍성문이 간접등장했는데, 오히려 그 사건에서 죽어버린 미군장교를 주역으로 삼은 소설이 조선에서 나왔으니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까? 2007년 평양출판사가 출판한 단편소설집 《출발점》에 실린 《락엽》(류선규 지음)이 바로  그 작품이다. 2006년 조선의 제1차 핵시험 직후를 다뤘는데, 반도 남반부의 어느 희한한 법을 잣대로 삼아 이리 재고 저리 재도 특별한 존칭 하나도 없으므로 걸릴 데가 없다고 판단하여 전문을 아래에 첨부하니 《자주민보》독자분들이 먼저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먼저 본문을 읽고 후에 필자의 분석을 보기를 권했는데, 《락엽》은 내용과 인물관계가 복잡하지 않으므로 필자가 이번에는 게으름을 좀 부려서 구체적인 분석을 줄인다. 단 실제로 죽은 장교와 관계되는 정보를 하나 거들겠다. 

▲ "판문점 사건"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제 도끼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중국시민]
2012년 4월 30일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반인반수가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공포의 한국 내 골프장?”(최보윤 기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의 미군기지 캠프 보니파스 안에 있는 ‘캠프 보니파스 골프장’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입구 푯말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장”이라고 명시되고, 그 밑엔 “러프에서 공을 찾으려 들지 말 것. 위험함”이라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다 한다. 1972년에 군인들이 만든 골프장으로서 1976년 판문점도끼사건에서 도끼(오스트리아제로서 조선이 어느 장소에 공개전시한단다, 사진)에 죽은 미군 장교 아더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1986년에 붙였단다. 조선의 “대남선전”이 똑똑히 들리는 환경에서 버티자는 게 골프장을 만든 계기였다는데, 심리적 공포는 별의별 소문을 만들어냈다 한다. 지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 호랑이가 있다느니, 반인반수를 봤다느니 하며 상상 속의 동물들이 입에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만약 판문점사건에서 사상자가 인민군이었더라면 소문의 내용도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남과 북이 합의하여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한 고성기 등 선전수단들을 해제할 때, 그 골프장을 이용하던 미군들도 안도의 숨을 쉬지 않았을까? 또 2010년 “천안함”사건 이후 한국군이 고성기, 전광판 등 선전수단을 재설치하여 대북선전하겠다 선포하고 그에 맞서 인민군이 “조준격파”를 선언할 때 그 골프장 일대의 미군들도 불안하지 않았을까? 

흔히 “한류”라는 이름으로 대외에 전파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들에서는 의도적으로 망각되곤 하는 주한미군, 현실 속의 언론보도들에서도 잘 거들어지지 않는 분계선부근의 미군, 그런 미군의 존재감을 조선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도 통일문화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반도의 문제를 확실히 풀려면 미군과 미국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조선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어떤지 문학작품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 결코 무의미한 노릇은 아니리라.(2013년 7월 27일)



첨부자료 1종: 
 
01: 단편소설 《락엽》 
 
류원규
 
 

옛 사 진
 
한 늙은이가 음침한 서재의 쏘파에 앉아있었다. 
이름은 에드윈 스틸, 
여든번째 년륜을 새기고있는 그의 평생에는 지난 태평양전쟁과 조선전쟁참가자 그리고 한때 어느 유력한 신문사의 중진으로 근무했다는 범상치 않은 경력도 들어있었다. 
스틸의 주름진 눈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떠돌았다. 좀전에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온것이다. 
그 친구로 말하면 젊어서는 스틸과 함께 전함 《미주리》호에서 근무했는데 그후 오래동안 국방성의 관리로 있었었다. 게다가 귀밑머리가 희여질 때까지 숱한 유부녀들의 가슴에 로맨스의 파도를 일으키던 미남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은 거부기나 까마귀처럼 몇백년을 살수 없다. 왜냐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낼 때 이미 인간의 수명을 정해주었기때문이다. 그에 따라 스틸의 친구였던 마이클도 《천당》으로 간것이다. 이제 한달이나 반년후에는 또 자기의 꽈꽈해진 몸이 축축한 흙구덩이속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스틸, 난 우리 미국의 운명이 걱정되네.》
이것은 마이클이 신부가 내민 십자가에 최후의 입술을 맞추기 전에 남긴 말이였다. 
(미국의 운명이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스틸은 화뜰 놀랐다. 반사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할아버지!》
서재에 들어선것은 키가 멋없이 큰 손자녀석이였다.
스틸은 이마살을 찡그렸다. 
중동에서 군사복무를 하다가 제대된 녀석인데 언제 보나 버릇이 없다. 망할 자식!
손자는 조부의 심장병은 아랑곳없이 벅적 떠들었다. 
《대<북조선제재>결의안이 통과된걸 알아요?》
스틸은 흥심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미 그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필경 카페나 호텔을 찾아다니며 환락의 세계와 정열적인 입맞춤을 하고있었을 손자는 이제야 안 모양이다. 
《이제 <북조선>이 제재맛을 톡톡히 보면 우리한테 굽어들거예요. 안그래요?》
웬일인지 스틸의 두툼한 입가에 쓰거운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제임스,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제임스는 눈을 사납게 치떴다. 
《그렇지 않구요. 우리 미국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어요? 저 이라크만 보라요. 난 찦차를 탄채로 싸담대통령궁전안에까지 들어갔댔어요.》
《물론 미국은 강하다. 하지만 조선은 이라크와 전혀 달라. 그 나라 속담에 <고추는 작아도 맵다>는 말이 있다.》
스틸의 심중한 말이였다. 
제임스의 길죽한 얼굴에 비웃음이 맴돌았다. 
《할아버진 마치 미국인이 아닌것 같군요.》
스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너무한걸. 헌데 비극은 미국인들 대개가 너처럼 어리석은 사고를 하고있는 사실이다.》
손자는 도전적으로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한장의 낡은 사진을 꺼냈다. 
《그럼 이건 뭐예요?》
스틸의 시선이 사진에 꽂혔다. 미해군복을 입은 두사람이 함선의 마스트우에서 나붓기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서있었다. 한사람은 스틸, 다른 해병은 몇시간전에 영원히 작별을 고한 마이클이였다. 
《그게 할아버지가 사무라이들의 항복조인식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라지요?》
《그래.》
스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1945년 9월 2일 오전 9시,
일본 요꼬하마항구로부터 29km 떨어진 곳에 정박중인 4만 5천t급의 미국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의 항복조인식이 있었다. 
먼저 지팽이에 몸을 의지한 정부대표 시게마쯔외상과 대본영대표 우메쯔대장이 떨리는 손으로 항복서에 서명했다. 
그다음 5성장군 맥아더가 거만한 자세로 서명했다. 이어 영국, 쏘련, 오스트랄리아를 비롯한 련합국대표들이 차례로 수표했다.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대표가 펜을 떼는 찰나였다. 
아침부터 하늘을 가리웠던 두터운 구름이 쫙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눈부신 해살이 강력한 조명처럼 뻗어나왔다. 
상공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400대의 《B-29》폭격기, 1,500대의 함재기들이 《미주리》호 상공을 위엄있게 날아가고있었다. 
당년 스무살의 에드윈 스틸은 해병모를 벗어쥔채 그 광경을 쳐다보고있었다. 그것은 백수십차례의 《승리》를 자랑하는 미국의 존엄이 여봐라- 하고 전세계를 굽어보는 순간이였다. 
젊은 해병의 숨결이 높아졌다. 
그때 맥아더가 마이크앞에 나섰다. 
《오늘 대포는 소리를 멈추었다. 하나의 큰 비극은 끝났다.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손아귀에 잡았다. 하늘로부터 이제는 죽음의 비가 쏟아지지 않을것이다. 바다는 통상뿐의 길로 되였고 사람들은 도처에서 밝은 해빛아래 똑바로 서서 걷게 되였다. 이제 전세계는 평화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고있다. 성스러운 우리들의 사명도 이제 끝났다. 나는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전미국국민 여러분에게 우리들이 뚫고 지나왔던 쟝글속에서, 바다가에서 혹은 태평양 깊숙이 영원한 잠을 자고있는 몇만이라는 목소리를 대신하여 여기서 보고한다.…》
스틸의 옆에 서있던 마이클이 속삭이였다. 
《맥아더장군이 멋있는데!》
스틸은 흥분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점점 격앙되는 몸을 가볍게 떨면서 맥아더쪽을 주시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맥아더의 어깨너머 함선마스트에서 펄럭거리는 성조기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로장군의 어깨우에 놓인 다섯개의 왕별도 그 기발에 그려진 수십개의 흰별에 비하면 너무도 무색했다. 별안간 스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례의 성조기가 무수히 불어나면서 지구를 뒤덮는 환영이 일어났던것이다. 
《오!》
스틸은 신음소리처럼 부르짖었다. 다음순간 젊은 해병은 자세를 바로하더니 성조기를 향하여 정중히 경례를 했다.…
스틸은 옛 사진을 쏘파에 내려놓았다. 자신도 이상할 정도로 그때의 미칠듯 한 흥분이 조금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늙어서인가? 아니다. 그럼 무엇때문에?
꿈속에서처럼 울리는 마이클의 유언, 
《스틸, 난 우리 미국의 운명이 걱정되네.》
스틸은 다시금 한숨을 내그었다. 
쏘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창가로 다가갔다. 
가을바람에 날리운 락엽들이 창턱에 올라앉아 애처롭게 떨고있었다. 
스틸은 그것들을 쓸쓸히 보다가 불쑥 물었다. 
《제임스, 넌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제임스는 얼떠름해서 대답했다. 
《<판문점사건>때… <공산군>과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했다고 사람들이 말해주더군요. 헌데 그건 왜 갑자기…》
스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너의 아버지가 불쌍하구나!》
《?》
《저승에 가서도 거짓말을 강요당하고있으니 말이다.》
순간 손자의 눈에서 튀여나온 날카로운 빛이 스틸의 우묵한 눈속으로 뚫고들어왔다. 
《그건 무슨 말이예요?》
스틸은 망설이였다.
말해줄가? 어차피 아무때건 진실을 알려줘야 했다. 내가 백살까지 산다는 담보야 없지 않는가.
요즈음은 심장발작이 자주 일어나군 한다. 좀전에 제임스가 문을 벌컥 열었을 때도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언제 저승문턱을 넘을지 모르는 판에 무덤속에까지 그 비밀을 안고가긴 싫었다. 더구나 《대북제재》요 뭐요 하면서 부나비처럼 덤벼치는 손자를 보니 더는 미룰수 없었다.
마침내 결심했다.
《제임스야, 이제 네 아버지묘로 떠나자.》
손자는 의아해서 마주보았다.
《가면서 다 말해주겠다.》
《?…》
제임스는 의아해하면서도 스틸의 뒤를 따랐다.
《가만!》
제임스가 무엇을 잃은듯 돌아섰다. 쏘파에 다가가더니 뭔가 집어들었다. 그것은 스틸의 옛 사진이였다.
얼마후 두사람을 태운 까만 《부이크》 한대가 도시교외를 달리기 시작했다. 

진실

제임스는 가속기를 계속 밟아댔다.
《천천히 몰아라!》
스틸은 한마디 했다.
《어지럼증이 나는게지요?》
《아니다. 사고날가봐 그런다.》
손자는 씩 웃었다.
《난 1급면허증을 가지고있어요.》
《그래도 지나친 과속은 좋지 않아. 더구나 너희 나이에는 말이다.》
제임스의 입이 비죽이 나왔다.
《부이크》가 속력을 늦추는데 《이스즈》형대형화물차가 마주 달려왔다.
그리 넓지 않은 도로였다. 자칫하면 두차가 서로 부딪칠수 있었다.
《개자식!》
제임스가 투덜거렸다.
《제임스, 조심해라!》
제임스는 조부의 말을 듣지 못한듯 조향륜을 힘껏 돌렸다.
눈깜짝할 사이에 《부이크》는 《이스즈》와 불과 한뽐 간격을 두고 바람처럼 어기였다.
그만하면 괜찮은 솜씨다. 하지만 어깨를 두드려줄 생각은 없었다. 과속하는데 버릇되면 종당에는 사고밖에 차례지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은 각종 사고가 많은 나라이다.
제임스는 기분이 좋은지 《백개의 피리》를 휘- 휘 휘파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곡은 지난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련합군 특히 미군병사들속에서 널리 불리웠었다.
《판문점사건》때 죽은 스틸의 아들은 아버지한테서 그 노래를 배웠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아들인 제임스에게 넘겨주었다. 이를테면 미국의 오랜 세대와 새 세대간의 음악《계주》인셈이다. 제임스는 점점 더 흥이 나서 불어댔다.
스틸은 손자의 열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미간을 찌프린채 시창을 보고있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몇개의 락엽들이 《부이크》의 창유리에 극성스레 달라붙었다. 마치 불행한 종말을 피하려는듯 락엽들은 애달프게 모지름을 쓰다가 종당에는 어디론가 휙 사라졌다.
그것들이 불쌍했다.
그 락엽들도 봄에는 싱싱했을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명을 다 살았으니 그렇게 비참한 운명을 면할수 없는것이다.
이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어찌 보면 국가의 운명도 락엽의 신세와 비슷했다.
《황야의 사자》라는 이름처럼 유럽을 삼키려는 나뽈레옹의 프랑스제국도, 아리아혈통을 떠들며 기세등등하던 히틀러의 제3제국도 한때는 얼마나 강대했던가. 하지만 나중에는 무너지고말았다.
그럼 《유일초대국》은?…
스틸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그이상 더 생각하기가 무서웠던것이다. 
한참후에야 그는 침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제임스, 내 말을 잘 들어라. 너의 아버지 아놀드는 용감하게 전사한것이 아니라 미쳐죽었다.》
삑-
《부이크》가 급정거했다.
《난 그 말을 믿을수 없어요.》
제임스의 숨소리가 대뜸 거칠어졌다.
《제임스, 그건…》
《부이크》가 왈캉 내달렸다.
속도계의 바늘이 정신없이 오른다.
스틸은 침착하게 담배를 꺼내물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부이크》가 속도를 죽였다.
《난 이제 얼마 살것 같지 못하다. 그러니 구태여 너에게 거짓말할 생각은 없다.》
스틸의 음울한 목소리가 울렸다. 제임스쪽에서는 잠잠해있었다.
《조선전쟁이 끝난 후 난 심장이 좋지 않아 제대되였다. 그후 대학을 나오고 신문사에 들어갔지. 군복은 벗었지만 펜으로 미국의 존엄을 빛내일 생각이였지.
<판문점사건>이 터질 당시 난 특파기자로 서울에 가있었다. 그때 아놀드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고있었지…》
이렇게 되여 도시교외를 달리는 평범한 승용차안에서 한 가정이 지난 30여년간 숨겨왔던 비밀이 새여나오게 되였다.

판문교부근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떠돌고있었다.
끼리끼리 모여 낮은 소리로 말을 하는 기자들, 날렵하게 움직이며 촬영기를 설치하는 금발머리, 누군가 《미스터 윌슨!》 하고 큰소리로 찾다가 《MP》의 사나운 눈총을 받자 목을 움츠렸다.
그럴만도 했다. 이제 얼마후면 세계를 소란케 할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되는것이다.
에드윈 스틸은 다른 기자들과 떨어져 구석진 창가에 묵묵히 서있었다. 당초에 본사를 만족시킬 기사를 써서 불룩한 돈봉투를 받거나 혹은 출세의 층계를 오르려는 신문쟁이들의 약삭바른 타산과는 인연이 없는 그였다.
그가 여기로 온것은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릴 이번 사건을 세계에 알리자는 의도에서였다.
스틸은 지금 아놀드를 생각하고있었다. 다름아닌 그의 아들이 《판문점사건》이라는 드라마의 주역을 담당한것이다.
반시간전에 아놀드를 만났었다. 그때 아들은 찌프차에 오르려는 참이였다. 
《아놀드, 자신있느냐?》
《걱정마십시오.》
아놀드의 노란 눈동자속에서 자신만만한 미소가 뿜어나오고있었다.
스틸은 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럼 가봐라.》
그는 아들의 손을 꽉 쥐였다가 놓았다. 
아놀드는 찌프차좌석등받이를 툭 치고나서 내뱉았다.
《일이 끝난 다음 우리 스코틀랜드위스키에 흠뻑 젖어보자요.》
스코틀랜드위스키는 아놀드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그래. 내 준비해놓겠다.》
아놀드는 경례를 멋부려 하고 찌프차에 훌쩍 날아올랐다.
그 자신만만한 몸동작 역시 스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차츰 멀어져가는 찌프차로부터 《백개의 피리》곡 휘파람반주가 신나게 울려오고있었다.…
갑자기 기자들이 촬영기와 사진기들을 꺼내들며 부산을 피웠다. 
스틸은 얼핏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45분이다.
사진기를 눈가에 가져갔다. 망원렌즈속에 백양나무곁으로 다가가는 미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미군병사들에게 뭐라고 훈시하는 아놀드의 형체가 유표했다.
조금후에 아놀드의 지휘에 따라 미군병사들이 무작정 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때마침 순찰중이던 《공산군》들이 나타났다.
말다툼이 일어났다. 
《공산군》들은 사전에 자기네와 합의도 없이 마구 나무를 찍는데 대하여 항의하는듯 했다.
그러다가 쌍방이 합의를 보았는지 《공산군》들이 자리를 떴다.
그런데 미군들은 또다시 나무밑둥을 찍었다.
《공산군》들이 되돌아왔다.
아놀드가 헤라클레스마냥 도끼를 휘두르며 《공산군》들에게로 접근했다. 다른 미군들도 찌프차안에서 도끼와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격투가 벌어졌다.
스틸은 여유작작하게 아들이 부르던 《백개의 피리》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승패는 불보듯 뻔했다.
고작 네명뿐인 《공산군》이 14명이나 되는 미군을 어떻게 당한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엔 별의별 일이 많다. 뜻밖에 여러명의 미군이 《공산군》의 드센 타격을 받고 썩은 울바자처럼 너부러진것이다.
《?》
미리 대기하고있던 30여명의 미군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잠시 멎었던 《백개의 피리》의 곡이 스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래, 저 인원이면 《공산군》은 뼈도 못 추릴것이다.)
또다시 치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윙- 윙- 날아다니는 도끼들, 주먹과 주먹의 부딪침, 어지러운 비명소리…
《으윽-》 하는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진기의 렌즈에 바퀴떼마냥 사방으로 달아나는 미군들이 안겨왔다. 마치도 그들은 자기들의 선천적인 긴 다리를 오직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기 위해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스틸의 눈이 사발처럼 커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공산군》들이 철수하자 기자들,의사들이 백양나무쪽으로 모여들었다.
스틸도 맥빠진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에 먼저 띄운것은 급급히 백포를 씌워놓은 2구의 시체였다. 그마저 꼼꼼히 씌우지 않아서 사망자의 이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옆에는 골이 터지고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자들이 고통스럽게 소리지르고있었다.
갑자기 란장판이 일어났다. 한 미군부상자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기자들속으로 뛰여든것이다.
《<공산군>이다. 죽여라- 앗!》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스틸은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싸쥐고 뛰여오는 금발머리를 붙들었다.
《어떻게 됐소?》
《저 미친 작자가 지금…》
그를 콱 밀쳐버렸다.
(도대체 어떤자인가? 더럽게도 미쳤군.)
몇발자국도 못 가서 그 정신병자와 면바로 마주했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미군장교였다.
그자는 스틸을 보자 제법 멋까지 부리며 경례를 했다.
《각하, <공산군>을 몽땅 소멸했습니다.》
정신병자는 제스스로도 만족했던지 먹이를 넘기는 수닭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리고는 장한듯이 팔소매로 얼굴을 뻑 훔쳤다.
그바람에 그자의 길죽한 얼굴이 드러났다.
《엉?》
스틸의 입에서 튀여나온 외마디소리!
그 정신병자는 다름아닌 아놀드였다.
눈앞이 아뜩했다. 술에 취한것처럼 웃몸이 마구 흔들렸다.
(아놀드, 네가 미치다니…)
그통에도 미군장교의 《용감성》은 계속 발휘되였다.
그의 곁으로 슬금슬금 접근하던 한 미군병사가 또 몽둥이세례를 받고 쭉 뻐드러졌다.
성이 독같이 오른 미군들이 아놀드를 와락 덮쳤다. 그들은 평시의 살인적인 훈련에서 배운대로 마치도 도살장에 끌어가는 돼지를 다루듯이 마구 걷어찼다.
피보라가 일고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스틸은 미군병사들이 그토록 잔인한데 놀랐다.
불과 10분전에 부상자들을 버리고 내뺄 때와는 판판 다른 모습이였다. 보매 그들은 《공산군》에게 되게 얻어맞은 분풀이를 아놀드-정신병자한테 하려는 꼬락서니였다.
《아놀드!》
스틸은 황급히 앞으로 나갔다. 그랬으나 이내 멈춰서고말았다. 떳떳치 못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에 와서 아놀드는 당당한 미군장교가 아니라 제편도 도저히 분간 못하는 일개 정신병자인것이다.
스틸은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고말았다.…
《제임스, 진실은 이렇다.》 하고 스틸은 침통하게 말했다.
《…》
손주에게서는 아무런 감정변화도 엿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주오는 차도 없는데 《부이크》의 속도가 좀 떨어졌을뿐이다.
(공연히 말을 꺼낸게 아닐가?)
불현듯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그후는 어떻게 됐어요?》

기대

2층밖에 안되는 병원층계단이 그렇게 높아보일수가 없었다.
스틸은 맥없이 층계를 오르고있었다.
(주여, 제발 아놀드를 회복시켜주옵소서!)
문득 아랍인들의 속담이 생각났다.
《희망을 가진자에게는 무엇이나 다 있다.》
스틸의 우묵한 눈에서 섬광이 번뜩거렸다.
(그래, 우리 아놀드는 그렇게 쉽게 미쳐버릴 바보가 아니다. 아마 지금쯤 제정신을 차리고 복수의 검을 벼리고있을것이다.)
그래서였던가, 아놀드가 입원한 호실문을 잡아당기는 그의 거동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호실에 들어선 스틸은 흠칫 놀랐다. 몸에 실오래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놀드가 침대에 꽁꽁 묶여있지 않는가.
《발작이 너무 심해서…》
담당의사가 피멍이 든 얼굴을 기분나쁘게 어루쓸며 설명했다.
불쾌했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성장한 아들의 알몸뚱이를 보는 아비의 기분이 좋을리가 만무한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어제 동료들로부터 짐승취급을 받는 아놀드를 보고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기서 또 망측한 꼴을 목격하자 울분이 왈칵 솟구쳤다.
생각 같아서는 뻔뻔스러운 군의녀석을 힘껏 후려갈기고싶었다. 그러나 스틸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로병이였다.
내색을 않고 듣기 좋게 일렀다.
《남들이 봐도 그렇고 백포라도 덮어주는게 좋을것 같소.》
《예, 예,》
그찰나 아놀드가 소리질렀다.
《각하, <공산군>을 완전소멸했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훈장을 주십시오!》
비록 미쳤을망정 자기의 무공에 대한 계산만은 정확한 아놀드였다.
《아놀드, 난 네 아버지다. 제발 정신을 차려라.》
그러자 아놀드가 호실이 떠나갈듯 고아댔다.
《개자식, 훈장을 달라, 훈장을!》
스틸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던 군의가 능란한 솜씨로 아놀드의 입에 헝겊을 틀어막았다. 
《아놀드중위는 완전히 미쳤습니다.》
스틸의 손에서 가방이 툴렁 떨어졌다. 
쨍가당- 방안에 떠도는 술냄새!
그것은 그가 아들과 함께 마시려고 가져왔던 스코틀랜드제위스키였다. 
별안간 스틸은 가슴을 그러쥐였다. 심장발작이 일어난것이다. 
군의가 급히 캄파주사를 놓고 옆방으로 안내했다. 군의가 나가버리자 그의 두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놀드는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들이였던것이다. 
물론 아들에게는 한살짜리 피덩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가문의 운명을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손자에게 걸자고보니 막막했다. 
후회란 늙은 급사처럼 늦게야 오는 법이다. 
만약 자기가 아놀드의 등을 이곳으로 떠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한가정의 행복한 아버지로 있을것이였다. 
누굴 탓할것도 없었다. 
어린 아놀드에게 름름한 왕자나 아릿다운 공주에 대한 옛말대신에 《미주리》호의 성조기에 대하여, 미국의 《강대성》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준것은 누구였던가.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눈을 부릅떴다.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
문기척이 났다. 
키가 무용배우처럼 늘씬하고 갈색머리를 멋지게 빗어넘긴 사나이가 들어섰다. 《미주리》호에서 함께 근무했던 마이클이였다. 
《마이클!》
친구의 두손이 스틸의 어깨를 그러쥐였다. 
《스틸, 내 지금 아놀드를 만나고 오는 참이네. 정말 유감일세.》
마이클이 위로했다. 
스틸의 눈에서 사나운 불찌가 튀여나왔다. 
《아니, 난 락심하지 않네. 미국은 우리 아놀드의 복수를 해줄걸세.》
《아무렴!》
《헌데 국방성의 관리가 여길 어떻게 나타났나?》 하고 스틸쪽에서 화제를 바꾸었다. 
마이클의 낯빛이 심중해졌다. 
《이번 사건때문에 날아왔네.》
《그러면 그렇겠지. 미국이 어련하겠나, 응? 하하하!》
스틸은 처음으로 웃었다. 
그날 저녁 두 친구는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스틸, 난 오늘 아놀드의 운명보다 미국의 존엄을 더 생각하는 자네의 모습에 감동되였네.》
《난 지옥의 기름가마에 열번을 들어갔다가 나와도 미국시민임을 자부하네.》
마이클이 먼저 술잔을 쳐들었다. 
《자, 미국시민의 존엄을 위하여!》
스틸도 술잔을 들며 근엄하게 말했다. 
《우리의 성조기가 <북조선>에 꽂힐 <승리>의 날을 위하여!》
유리잔들이 아츠럽게 부딪쳤다. 
며칠후 한대의 《링컨》이 서울시내를 달리고있었다. 
승용차안에는 풍채좋은 두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그래, 어떤가?》 하고 마이클이 물었다. 
《속이 후련하네.》
이렇게 대꾸하는 스틸의 눈앞에는 좀전에 벌어졌던 광경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가 마이클의 련락을 받고 판문교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대의 《B-52》전략폭격기가 군사정전위원회본부 상공을 맴돌고있었다. 
조금후에 또 30여대의 직승기, 전투기들이 그에 합세했다. 
《문제의 백양나무를 무조건 찍어버리라는 워싱톤의 지시일세.》
마이클이 알려주었다. 
그때 중무장을 한 수백명의 미군들이 백양나무를 둘러쌌다. 
얼마후 백양나무가 쾅- 하고 넘어졌다.…
《마이클, 그런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 나무를 찍어버렸으니 세계여론이 가만있겠나?》
마이클은 의기양양해서 대꾸했다. 
《그건 걱정말게. 우린 이번 <판문점>사건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상정시키고 모든 책임을 <북조선>에 넘겨씌울 계획이네. 그리고 여차하면 힘으로 <북조선>을 들이칠판일세.》
마이클의 말은 빈말이 아니였다. 
그무렵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대가 최대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때를 맞추어 미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비롯한 강력한 《기동타격함대》가 조선해역으로 기동전개했고 오끼나와로부터 수천명의 미해병대와 비행대들이 쓸어들어왔다. 
이와 관련하여 각국의 통신전파들이 우주공간을 그물망처럼 뒤덮었다. 전문가들은 《판문점사건》을 두고 지난 조선전쟁이후에 있은 조미군사대결의 제3회전이라고 평했다. 그에 의하면 제1회전은 《푸에블로》호사건이였다. 
그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앞에 진심으로 사죄할데 대한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공개서한을 받은 죤슨대통령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선동남해에 집결시켰던 미7함대소속의 항공모함들과 해외로부터 남조선에 반입했던 수십대의 최신예전투기들을 도로 철수시키고말았다. 
조미대결 제2회전은 미군대형정찰기 《EC-121》격추사건이였다. 그때에도 세계는 마치 지구가 깨여져나갈듯이 떠들었었다. 많은 사람들은 《푸에블로》호사건은 미국이 포로송환때문에 할수없이 《북조선》에 굽어들었지만 이번에는 바다속에 빠진 비행기를 건질것도 없으니 틀림없이 《보복》할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근 8개월간에 걸쳐 치렬하게 벌어졌던 조미간의 대결은 결국 《OH-23G》군용기격추사건으로 미국이 또다시 사죄문을 쓰고 무력을 철수하는것으로 막을 내렸었다. 
스틸은 《판문점사건》은 절대로 그렇게 끝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알건대 지금 백악관의 주인은 죤슨이나 케네디처럼 《유약》한 대통령이 아니였다. 
어제 스틸은 부두에 나갔다가 오끼나와로부터 들어오는 미해병대를 보았었다. 덩지 큰 땅크와 장갑차, 자동차들에는 성조기가 기세좋게 휘날리고있었다. 그 기발은 스틸네 세대가 후대에게 물려준 《승리》의 기치였다. 
스틸은 시창밖을 내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국은 이번에는 성조기를 저 군사분계선너머에 꽂고야 말것이다!)

락엽

한주일이 지난 어느날, 스틸은 취재차로 부두에 나갔다가 뜻밖의 일과 부딪쳤다. 며칠전에 성조기를 펄럭이며 남조선에 쓸어들었던 미해병대가 함선에 오르는것이 아닌가. 
꿈틀 놀랐다. 
《어째서 철수하는거요, 어째서?》
지나가는 한 장교를 붙들고 따졌다. 
그 장교는 이건 대체 웬놈이야? 하는 눈길로 보았다. 했으나 자기앞에 미국의 유력한 신문사 기자가 서있음을 알자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상부의 명령입니다.》
《뭐요? 그 상부라는게 어디요?》
《그건 모릅니다.》
대충 경례를 한 그는 제갈데로 가버렸다. 
(대체 어떻게 된건가?)
마이클의 잘 생긴 얼굴이 떠오른것은 그후였다. 
《마…이…클!》
스틸은 부리나케 차에 올랐다. 
그가 마이클의 사무실에 뛰여들었을 때 국방성의 관리는 무엇을 하고있었던가. 
마이클은 태평스럽게 술잔을 기울이고있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어 솟구친 놀라움이 앞의것을 눌러버렸다. 
마이클은 애주가였지만 근무중에는 일체 음주를 하지 않는 사나이였다. 그 습관은 《미주리》호에서 근무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다. 
스틸은 마이클의 손에서 술병을 나꾸어챘다. 
《누구야?》
고함소리에는 위엄이 배여있었지만 친구의 눈동자는 거의 풀려있었다. 
《이게 무슨 추태인가?》
《아, 자네 스틸이구만. 마침일세. 자네도 한잔하게.》
스틸은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통에 술병이 떨어져 박살났다. 
마이클이 두덜거렸다. 
《아까운 술은 왜 깨나? 자네 이제 보니 취했구만.》
스틸은 그의 어깨를 와락 흔들었다. 
《마이클, 정신차리라구.》
《정신을 차리라구? 그건 왜?》
《자넨 일개 병사가 아니지 않나?》
마이클의 얼굴에 비양조의 웃음이 떠돌았다. 
《그럼 국방성의 관리는 술도 마음대로 못 먹나?》
《넉두린 그만하게. 마이클, 하나 묻겠네. 어째서 증강했던 무력을 철수시키나, 엉?》
마이클의 눈빛이 사나와졌다. 
《자네 그걸 나한테 묻나, 왜, 왜?》
어떻게나 격했던지 쏘파에서 벌떡 뛰쳐일어나기까지 했다. 
스틸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평시에는 사업이나 개인적생활에서 언제나 점잖고 여유작작해보이던 친구였었다. 조금후에 마이클은 고개를 떨구고 쏘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워싱톤의 지시일세.》
스틸은 벼락이라도 맞은듯이 아찔했다. 
《뭐라구? 그, 그게 사실인가?》
친구의 길다란 목이 맥없이 방아를 찧었다. 
《?!》
눈앞이 그믐밤처럼 캄캄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려는것을 겨우 지탱했다. 
측은했던지 마이클이 슬그머니 부축해서 다른 쏘파에 앉혀주었다. 
《어허!-》 하고 스틸은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사실 아놀드가 미쳤을 때에도 그는 죽고싶을만치 괴로왔었다. 그때 그를 일으켜세운것은 성조기의 퍼덕임-미국의 위엄이였다. 그런데 그 미국이 《북조선》앞에 또다시 흰기를 들줄이야.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음!》
입술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대번에 쩝쩔한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느닷없이 그의 머리속에 무서운 의혹이 떠올랐다. 
(어째서 우리 미국은 조선과의 대결에서 매번 패하는가?)
그 생각은 오늘 비로소 생각난것이 아니였다. 
지난 조선전쟁때 스틸이 속한 함대는 《공산군》이 차지한 해안선을 향해 포신이 뜨겁게 달도록 숱한 포탄을 퍼부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수십만의 미군병사들이 조선의 《함정골》에 처박혔고 클라크대장은 정전협정조인식에 서명하는 수치를 당해야 했다. 
《나는 정부의 지령을 수행함으로써 결국은 미국력사상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패전장군이라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명성을 떨치게 되였다. 조선전쟁은 우리의 위신을 상실한것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클라크의 이 고백소식을 들었을 때 벌써 첫 의혹이 생겨났다. 그것은 지난 스물세해동안 굴러가는 눈덩어리처림 커만 갔다. 왜냐하면 자기가 세계에서 제일 강대하다고 믿는 미합중국이 령토도, 인구도 작은 조선앞에 매번 굴복하였던 까닭이다. 
이번 《판문점사건》에서 당한 미국의 패배는 그 의혹의 덩어리가 어떤 굳은 물체에 부딪쳐 마침내 깨여지게 한 계기였다. 
《자네 왜 우리가 련속 너카우드를 당하는지 알고있나?》
친구가 새 술병을 꺼내며 묻는 말이였다. 
《유감이지만 모르네.》 하고 스틸은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마이클은 책상우에 있던 신문을 내주었다. 
《이걸 읽어보게. 그러면 죄다 알거네.》
스틸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평양의 대답》이라는 큰 활자의 제목이 눈을 쿡 찔렀다. 얼마전에 조선을 방문했던 서방의 이름난 녀기자의 글이였다. 
《나는 공교롭게도 미합중국과 조선의 대결이 극도에 달한 시기에 평양을 찾았었다.…금방 입대한 군인들을 가득 실은 군수렬차들이 평양역을 떠나고있었다. 수도의 거리를 달리는 모든 차들에 위장그물이 씌워져있었다. 밤마다 공습경보고동이 울린다. 그러면 수도는 순식간에 암흑세계로 된다. 이것이 내가 본 평양의 모습이였다. 허나 그것은 때이른 속단이였다. 
하루는 거리에서 기운차게 행진해오는 인민군대렬과 마주쳤다. 그들의 어깨우에는 삽과 곡괭이가 얹혀있었다. 끝없이 지나간다. 얼핏 보건대 서너개 사단력량이였다. 
대렬을 책임진듯 한 한 인민군장령을 만나 인터뷰를 청했다. 
<물론 당신들은 평양시방어공사에 동원됐겠지요?>
장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린 지금 평양시를 더 잘 꾸리기 위한 수도건설에 동원되였소. >
잘못 들었는가 했다. 나라를 보위할 군대가 건설에 동원되다니, 이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닌가. 
장령의 말대로 휘틀, 모래를 실은 화물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 
믿을수 없었다. 혹시 이들이 어느 중요한 군사기지를 꾸리러 가면서 아닌보살하는게 아닐가? 쉽게 믿는자는 쉽게 속히운다는 말이 있다. 하여 며칠후 건설중인 한 예술극장과 고층살림집들에 나가보았다. 
조선사람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실지로 그때 본 군대들이 건설장에 있었다. 털어놓고말해서 일촉즉발의 정세속에서도 군대를 평화적건설에 동원시킨 조선수뇌부의 담력과 배짱에 감탄했다. 또 수뇌부에 대한 호기심이 불쑥 솟구쳤다. 
안면있는 인민군장령과 인터뷰를 요구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담력과 배짱을 지닌 수뇌분이 바로 김정일장군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김정일장군은 엊그제 미국의 <최후통첩>이 공포된 날 밤에도 평양대극장에서 예술공연시연회를 직접 지도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미합중국의 <최후통첩>에 대한 평양의 대답이다. 
지구가 깨여진다고 해도 드놀지 않을 그 담력, 천만대적도 눈아래로 보는 여유작작한 그 배짱! 죠지 워싱톤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껏 <승리>해왔다는 미국의 장군들이 언제 이런 천하무적의 령장과 맞서본적이 있었던가. 미국인들에게 묻고싶다. 그래, 당신들은 조선의 김정일장군을 당할수 있다고 보는가?…》
친구가 중얼거렸다.  
《그 녀기자가 우리의 정통을 찔렀거든.》
《!》
스틸은 채찍으로 가슴을 얻어맞은것처럼 비틀거렸다. 
(오, 미국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될것인가?)
그의 눈앞에서 환영이 펼쳐지고있었다. 
점점 커지는 《미주리》호의 성조기…
돌연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그것이 가라앉자 거인이 나타났다. 어찌도 큰지 거인의 두손은 하늘에 닿는다. 
별안간 그 거인이 성조기를 거머쥐더니 대번에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사방으로 날리는 천쪼각들…
돌연 그것들은 락엽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락엽들은 백악관의 지붕우에 내려앉는다. 또한 스틸 자기의 머리우에도…
락엽속에서 뭔가 허연것이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스틸은 그 정체를 알아보자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것은 꽛꽛하게 굳어진 시체였다!
《따르릉-》
스틸은 지금까지 수백번도 더 들어온 전화종소리가 이때처럼 고맙게 생각된적은 없었다. 
《후-》
그때에야 그는 자기의 몸이 땀으로 푹 젖었음을 알았다. 
송수화기를 든 마이클의 낯빛이 어두워져갔다. 
이윽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좋지 못한 소식일세. 자네의 아놀드가 심한 정신발작을 일으키다가 죽었다네.》
《으흑!》
스틸은 머리칼을 와락 거머쥐였다. 미칠것만 같았다. 로병의 좌절감… 아들의 비참한 죽음…
닥치는대로 부시고 내던지고싶은 충동!
마침 술병이 눈에 띄웠다. 언제 자기가 그것을 앗아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정신없이 마셨다. 미치지 않으려면 마셔야 한다. 마셔야 해!
불의의 습격에 놀란 애꿎은 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금시 토할것처럼 속이 메슥메슥했다. 
스틸은 계속 필사적으로 들이켰다. 그것은 격화된 감정과 주머니모양으로 생긴 소화기관과의 처절한 싸움이였다. 
《자네 정신나갔나?》
그는 친구의 목소리를 꿈속에서처럼 들으며 푹 꼬꾸라졌다. 에드윈 스틸은 패한것이다. 
이튿날 태평양상공을 날아가는 려객기안에는 얼굴빛이 꺼멓게 질린 50대의 한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 ×

《부이크》안에는 납덩이같은 정적이 떠돌았다. 
제임스는 용케 뻗치고있었다. 
《제임스, 라지오라도 틀려무나!》
손자의 긴 손가락이 앞쪽을 더듬었다. 이어 녀방송원의 감정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10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성명을 통하여 누구든지 유엔안보리사회<결의>를 내세워 자기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털끝만치라도 침해하려든다면 가차없이 무자비한 타격을 가할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음, 여전하구나!》
스틸에게서 흘러나온 말이였다. 
계속해서 방송원은 지금 부쉬대통령이 강력한 《제재》를 말하지만 조선은 오늘날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당당한 핵구락부성원으로 되였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조선과 직접대화를 가져야 한다고 한 케리의원(지난 2004년 민주당대통령후보)의 연설을 보도했다.
스틸은 쓸쓸하게 웃었다. 조선을 《악의 축》이라고 하면서 강경일변도정책만 고집하던 부쉬행정부가 조선과 직접대화를 한다는것은 미국의 정책변화, 즉 다시말해서 《유일초대국》이 흰기를 들었다는것이다. 하긴 미국의 흰기는 지난날에도 자주 올랐었다. 
이제 와서 더욱 명백한것은 선군령장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있는 한 성조기는 영영 조선에 꽂힐수 없다는 사실이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 미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장차 더 큰 비극을 겪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 마이클의 유언은 무척 교훈적이다.…
방송원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제임스가 라지오를 꺼버린것이다. 
스틸은 자기의 손자를 바라보았다. 스틸3세의 낯빛은 컴컴했다. 
갑자기 《부이크》가 위태롭게 비틀거렸다. 아가리를 쩍 벌린 도로옆의 벼랑. 
다행히도 스틸3세가 제동기를 콱 밟았다. 조금 내려진 차창으로 다이야냄새가 확 풍겨왔다. 
멍하니 앉아있던 스틸3세가 차에서 내렸다. 머리를 떨구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제임스, 어딜 가?》
《…》
겁이 덜컥 났다. 불현듯 아놀드-스틸2세의 모습이 생각났던것이다. 
《제임스, 돌아와!》
그러나 로병의 위엄있는 웨침도 스틸3세를 멈춰세우지 못했다. 대신 그의 등뒤로 뭔가 흩날렸다. 그중의 하나가 바람에 날려와 스틸의 발치에 떨어졌다. 

《?!》
《미주리》호 성조기를 배경으로 찍은 스틸의 사진이였다. 
그때 락엽 하나가 사진쪼박우에 내려앉았다. 
스틸은 학질에 걸린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행한 락엽신세가 성조기와 너무도 잘 어울렸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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