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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북, "지휘관은 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질줄 알아야 한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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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10-14 07:3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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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지휘관은 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질줄 알아야 한다시며

강위룡(북녘동포)

 

 

 

1938년 여름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여러 련대들이 독립임무를 수행하도록 파견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위중대의 일부 성원들만 데리시고 림강현 신태자일대에서 활동하고계시였다.

그때 사령부호위에 필요한 인원들이 부족하여 소대장인 나도 기관총을 메고 보초근무를 서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러다나니 나는 대원들의 식생활에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이 생활하고있는 천막으로 나오시였다.

마침 식사시간이였다.방금 근무교대를 하고와서 식사를 하던 대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인사를 받으시고 어서 앉아 식사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대원들은 식찬이 없어 맨 소금에 밥을 먹고있었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시자 즉시 나를 부르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로 달려가 보고를 드리였다.

《왜 대원들에게 산나물국이라도 끓여먹이지 못하고 맨 소금에 밥을 먹게 하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여느때없이 엄하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머뭇거리다가 근무가 긴장하여 산나물을 뜯지 못하였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동무는 소대장이 아닌가, 아무리 조건이 그렇다고 해도 소대장이 그런것도 해결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좋은 수림속에서 대원들이 소금에다 밥을 먹게 해서야 지휘관으로서 면목이 서는가 말이요!

사람이 모자라면 전령병도 한사람만 남기고는 모두 나물을 뜯게 할수 있지 않소.

조직사업을 잘해서 보초를 섰던 동무들이 돌아올 때만 나물을 뜯게 해도 국거리는 될것이 아니요?

그제서야 나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사실 나는 방금전만 해도 대원들에게 소금이나마 떨구지 않고 먹이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로 말하면 부대가 적의 포위속에서 활동하던 때였으므로 부식물을 구하러 떠날 형편이 못되였고 산나물은 모두 쇠여서 무수해싹밖에 먹을만 한것이 없었다.그래서 근무인원도 모자라는데 언제 얼마 없는 산나물까지 뜯겠는가 생각하면서 맨 소금에 밥을 먹어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인데 그이께 심려를 끼치고보니 크나큰 죄책감으로 가슴이 조여드는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이윽토록 지켜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지휘관은 언제나 머리를 써야 하오.저 물을 보시오.물은 언제나 곬을 따라 흐르고있소.소대도 지휘관이 이끌기에 달린것이요.

지휘관이 머리를 잘 써야 대원들이 배도 곯지 않고 고생도 하지 않게 되오.

동무도 잘 알겠지만 우리 부대에서도 지휘관이 머리를 쓰지 않아 대원들을 고생시킨 일이 있지 않소?

지휘관은 언제나 자기 대원들의 생활에 대하여 책임질줄 알아야 하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심장에 새기면서 나는 자신의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켜보았으며 소대의 식생활조직을 잘하지 못한것이 결코 긴장한 정세나 어려운 조건때문이 아니라 대원들의 생활에 대한 자신의 립장과 관점이 바로서있지 못한탓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때늦은것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시는 주력부대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풍파사나운 혁명의 길에 나선 이상 헐벗고 굶주리는것은 피할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나는 친솔부대에 와서야 비로소 나의 생각이 잘못된것임을 인식하게 되였다.

환경과 조건이 불리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친솔부대에서는 모든 대원들이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활기에 넘쳐 명랑하고 씩씩하게 생활하고있었으며 소박하나 정성이 담긴 식사는 언제 보아도 먹음직스럽고 구미를 돋구는것이였다.

나는 그 모든것이 혁명전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의 혜택이라는것을 생각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였었다.그런데 그 숭고한 사랑을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따르지 못하여 커다란 실책을 범한것이였다.그것은 혁명군지휘관의 자격을 상실한 행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나에게 준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소대장동무, 동무는 실지사업과 생활을 통하여 부대의 지휘관들이 대원들의 생활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더 배워야 하겠소.

나는 동무가 7련대 4중대에 내려가서 사업하면서 오중흡동무의 모범을 본받아 훌륭한 지휘관의 자격을 갖추게 되기를 바라오.

부족점이 많은 나를 훌륭한 지휘관으로 키우시려는 은정깊은 말씀이였다.

나는 그이의 숭고한 뜻을 가슴에 새기며 오중흡동무가 중대장으로 사업하는 7련대 4중대로 갔다.

7련대 4중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지시관철과 부대관리에서 가장 앞서고있는 모범단위였다.

7련대 4중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두도화원일대에서 식량공작을 하고있었다.

중대에서는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나는 먼저 오중흡중대장에게 내가 이곳 중대로 오게 된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고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난 오중흡중대장은 그런가고 하면서 진정어린 목소리로 따뜻하게 말하였다.

《우리 같이 배웁시다.나도 사령관동지의 뜻을 헤아리자면 아직 멀었소.배우고 또 배웁시다.》

그러면서 그는 중대의 실정과 전부대의 월동용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임무수행정형을 알려주었다.

그때 중대가 수행하고있던 식량확보임무는 일제침략자들의 대《토벌》공세를 예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주신 전투명령으로서 기어이 관철해야 할 중대한 전투과업이였다.

나는 이 어려운 임무수행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단련하며 오중흡중대장의 모범을 따라배워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것을 굳게 맹세다지였다.나는 그 결심을 지켜 혈전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식량공작전투들에서 언제나 앞장에 섰다.

그후 중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고 남패자로 들어가 두도화원막바지에 밀영을 건설하고 생활하였다.

그 나날에 나는 잘못을 더욱 깊이 뉘우치게 되였으며 오중흡중대장의 모범을 따라배우면서 지휘관들이 대원들의 생활을 어떻게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는가 하는것을 심장으로 체득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도화원밀영에 오시였다.

그렇게도 뵙고싶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인사를 드리고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하지만 오시는 길로 오중흡중대장을 불러 강동무가 잘 있는가, 그새 앓지나 않았는가 하시며 나의 사업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수령님께서는 나를 친히 불러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달려가 인사를 올리는 나를 뜨겁게 품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람은 혁명적단련을 받아야 강해지는 법이요.그동안 동무가 자기의 사업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한것은 동무의 발전에 유익한것이요.

이제는 그만큼 단련되였으니 오늘부터 다시 경위중대에 돌아와서 사업하시오.

《사령관동지!》

나는 그이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나를 탓하지 않으시고 이러지 말라고, 대장부가 이러면 되는가고 하시면서 더욱 뜨겁게 품에 안아주시였다.

그때로부터 몇십년세월이 흘러가 이제는 바야흐로 21세기를 내다보게 되였다.

그러나 피어린 항일전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주신 고귀한 가르치심은 지금도 어제런듯 잊혀지지 않는다.

지휘관은 언제나 자기 대원들의 생활에 대하여 책임질줄 알아야 하오.

그이의 이 말씀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자라난 우리 인민군대의 확고한 군풍으로 되고있으며 관병일치로 빛나는 우리 혁명무력의 숭고한 미덕으로 되고있다.

 

[출처: 로동신문]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10-14 07:51:46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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